세르지오 멘데스-보다 정확히는 세르지우 멘지스-는 보사노바가 미국을 중심으로 세계적인 인기를 얻던 1960년대에 등장한 이후 꾸준히 활동하며 브라질 음악이 세계의 음악이 되는데 기여했다. 그에 걸맞게 그의 음악은 보사노바, 삼바 등 브라질 음악부터 이를 적극 수용했던 재즈는 물론 팝까지 아우른다. 1983년에 발표했던 R&B 스타일의 발라드 “Never Gonna Let You Go”는 그의 팝적인 성향을 대표한다.
그는 당대의 대중적 취향을 바탕으로 자신의 음악을 만들곤 했다. 특히 1997년도 앨범 <Timeless>부터 2007년의 <Encanto>, 2009년의 <Bom Tempo>, 2014년의 <Magic>에 이르는 최근 앨범에서는 존 레전드, 블랙아이드 피스, 에리카 바두, 인디아 아리, 윌아이엠, 퍼기, 저스틴 팀버레이크 등 힙합, 소울, R&B를 중심으로 한 미국의 팝 음악을 대표하는 인기 뮤지션과의 협업을 통해 그가 꾸준히 시대와 소통하려 함을 보여주었다.
6년 만에 선보이는 이번 새 앨범 <In the Key of Joy>도 그렇다. 이번 앨범에서는 배우이기도 한 래퍼 코먼(Common)이나 버디(Buddy) 같은 래퍼와 “Never Gonna Let You Go”를 노래했던 그 목소리 조 피줄로(Joe Pizzulo)를 비롯해 슈가 조안스(Sugar Joans), 쉘레아(Sheléa Frazier) 등의 보컬이 참여했다.
미국 쪽 뮤지션만 참여한 것이 아니다. 세르지오 멘데스의 아내로 앨범에서 가장 큰 존재감을 보여준 보컬 그라싱야 레포라시(Gracinha Leporace), 멀티 악기 연주자 에르메투 파스코아우(Hermeto Pascoal) 기타 연주자 깅가(Guinga), 콜럼비아 출신의 라틴 팝 듀오 칼리 이 엘 단디(Cali y El Dandee) 등 라틴 음악 쪽 뮤지션들도 참여했다.
그 결과 앨범은 다시 한번 팝과 라틴 음악 그리고 재즈를 아우르는 음악을 들려준다. 그러나 그 분위기는 조금 다르다. 이전 앨범들이 팝적인 면을 많이 강조하는 한편 이를 보완하기 위래 리듬 파트의 양감을 높였던 것과 달리 이번에는 라틴 적 색채감이 보다 강하고 한층 부드럽게 순화된 리듬으로 이루어진 음악을 들려준다. 이전 앨범이 화려한 축제의 밤 같았다면 이번에는 축 제를 앞둔 날의 기분 좋은 저녁 같다고 할까?
이것은 앨범의 시작을 알리는 “Sabor Do Rio(리오의 맛)”부터 감지된다. 이 곡은 코먼의 온도 높은 랩이 전면에 나섰지만 이를 부드럽게 감싸는 인상 깊은 코러스 라인, 사이사이로 감칠맛나게 끼어드는 브라스 섹션 그리고 정돈된 리듬이 화려한 축제의 분위기를 연출하면서도 감정적 과잉을 보이지 않는다. 슈가 조안스의 아름다운 목소리가 돋보이는 “Samba In Heaven”도 마찬가지다. 역시 인상 깊은 코러스 라인과 흥겨운 리듬을 지녔지만 머리가 어지러울 정도로 뜨거운 삼바 축제와는 거리가 있다. 버디가 참여한 타이틀 곡은 라틴적이면서도 미풍이 부는 바다에 인접한 도시의 유쾌한 풍경을 그리게 한다.
화려하면서도 삼바의 정열보다는 온화함을 머금은 분위기는 앨범의 유일한 연주 곡인 “Romance In Copacabana”에서 절정을 이룬다. 이 곡은 브라질의 명소를 소개하는 관광 프로그램의 배경 음악이나 한가로이 해변을 산책할 때 들으면 좋을 분위기를 띄고 있다. 화려한 리듬에도 불구하고 자못 나른한 맛까지 풍긴다.
여기에 칼리 에 엘 단디가 노래한 “La Noche Entera(밤새도록)”, 에르메투 파스코아우가 노래한 “Bora Lá”, “Muganga”, “This Is It (É Isso)”, “Tangara”, 쉘레아가 노래한 “Catch The Wave”, “Times Goes By” 등의 곡은 잘 만들어진 라틴 팝의 전형이라 할만하다. 특히 “This Is It (É Isso)”, “Tangara”는 멜로디를 허밍 코러스로 처리하여 “Romance In Copacabana”만큼이나 낭만적이고 기분 좋은 세르지오 멘데스 사운드의 매력을 담뿍 느끼게 한다.
사실 나는 이 앨범에서 존 피줄로가 노래한 “Love Came Between Us”를 제일 많이 기대했다. 그가 노래했던 “Never Gonna Let You Go”의 좋은 기억 때문이었다. 그 기대에 비한다면 이 곡은 “Never Gonna Let You Go” 보다는 덜 인상적이다. 그러나 앨범에서 가장 팝적인 사운드와 존 피줄로의 보컬은 이번 앨범의 핵심 발라드 곡으로 주목을 받지 않을까 싶다.
한편 이번 앨범은 60년이 넘는 세르지우 멘데스의 음악 인생을 조명한 다큐멘터리 영화 <In the Key of Joy>의 개봉에 맞추어 발매되었다. 그래서 디럭스 버전에는 다큐멘터리의 사운드트랙으로 사용된 16곡을 별도의 보너스 앨범으로 정리했다.
그런데 그 선정된 곡들이 대단하다. 그룹 브라질 66을 이끌던 초기 시절에 발표해 큰 인기를 얻으며 그의 대표곡으로 자리잡은, 축제적 열기로 가득한 “Mas Que Nada”를 시작으로 역시 브라질 66시절의 “Going Out Of My Head”, 버트 바카락의 곡을 이국적으로 해석했던 “The Look Of Love”, 팝 히트 곡 “Never Gonna Let You Go”, 그리고 윌 아이엠과 함께 한 “Agua De Beber”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이들 선곡은 6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세르지오 멘데스가 브라질 음악을 바탕으로 어떻게 미국의 팝 음악과 소통하며 그만의 감각으로 대중적 음악을 만들어왔는지를 제대로 보여준다.
그래서 다큐멘터리와 상관 없이 그 자체로 세르지오 멘데스 음악 인생 전체를 살필 수 있도록 한다. 아마도 새 앨범의 보너스 앨범이 아니라 별도로 발매해도 괜찮은, 가장 충실한 세르지오 멘데스의 베스트 앨범이 아닐까 싶다. 따라서 감상자에 따라서는 새 앨범보다 이 보너스 앨범에 더 공감할 수도 있겠다.
1941년 2월 브라질 리우 지 자네이로에서 태어난 세르지오 멘데스의 나이는 올 해 우리 계산으로 80세이다. 이쯤 되면 은퇴를 고민해야 할 시기다. 그러나 그는 젊은 뮤지션들과 함께 한 새로운 앨범으로 그의 음악이 계속 현재에 있음을 보여주었다. 지난 과거의 영광에 의존하기에 자신의 음악적 나이는 여전히 젊음을 보여주었다. 그것도 매력적인 브라질 풍의 팝 음악으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