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색소폰 연주자 레스터 영의 기일이었다. 그는 1959년 3월 15일 새벽에 세상을 떠났다. 파리에서 앨범 녹음과 공연 일정을 마치고 뉴욕으로 돌아온 날이었다. 도착 후 몇 시간이 지나지 않아 세상을 떠났는데 술이 원인이었다. 한때 술로 인해 하락의 세월을 보내기도 했지만 그는 술을 완전히 끊지 못했다. 파리에서도 식사는 거의 하지 않고 술만 마셨다. 그래서 뉴욕으로 오는 비행기에서 피를 토하고 복통을 호소하기도 했다.
대통령이라 불리곤 했던 그는 부드럽고 여유 가득한 연주, 내성적인 면이 강한 연주로 콜맨 호킨스와는 다른 재즈 색소폰의 계파를 만들었다. 그의 스타일을 너무나 면밀히 연구해서 부통령이라 불리기도 했던 폴 퀸체트를 비롯해 스탄 겟츠, 주트 심스, 알 콘 등 쿨 재즈 쪽 연주자들이 특히 그의 영향을 받았다. 평소 대통령이 “Cool”이라는 단어를 자주 사용했기에 그의 영향을 받은 연주자들의 음악을 두고 쿨 재즈라 부르게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레스터 영의 사망에 많은 연주자들이 애도를 표했다. 그 중 몇 연주자는 곡을 써 보다 직접적으로 슬픔을 표현했다. 찰스 밍거스가 그랬다. 그는 색소폰 연주자가 세상을 떠난 지 두 달 후에 녹음 된 앨범 <Mingus Ah Um>에 담긴 “Goodbye Pork Pie Hat”을 통해 애도를 드러냈다. 포크 파이 햇은 평소 레스터 영이 썼던 모자였다. 그는 애초에 여성을 위해 만들어진 이 모자를 직접 고쳐 쓰곤 했다. 그리고 늘 흑인 구역에서 모자를 구입했다.
앨범 <Mingus Ah Um>에 담긴 연주는 슬픔보다는 음울함에 더 가까웠다. 솔로를 담당한 존 핸디의 테너 색소폰 연주가 특히 그랬다. 남겨진 자의 눈물이 아닌 당황스러움, 막막함에 더 초점을 맞추었다고 할까?
찰스 밍거스는 1963년 앨범 <Mingus Mingus Mingus Mingus Mingus>에서 제목을 “Theme For Lester Young”으로 바꾸어 다시 연주했다. 이번에는 색소폰 에릭 돌피가 솔로를 담당했다. 에릭 돌피 또한 안개 자욱한 날처럼 긴장과 멜랑콜리가 뒤섞인 연주로 1959년의 녹음을 연장했다.
찰스 밍거스의 곡은 스탠더드 곡이 되어 수없이 연주되었다. 그 중 조니 미첼은 1979년 앨범 <Mingus>에서 가사를 직접 써 노래했다. 앨범 타이틀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앨범은 찰스 밍거스를 주제로 한 것이다. 그러나 추모 앨범은 아니었다. 찰스 밍거스가 직접 연주에 참여하지는 않았지만 앨범 제작에 관여했다. 이 앨범은 베이스 연주자의 마지막 프로젝트가 되었다. 1979년 1월 5일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의도치 않게 이 앨범은 찰스 밍거스의 추모 앨범이 되었다. 그 결과 베이스 연주자가 좋아하고 존경했던 선배 연주자를 위해 쓴 곡이 자신을 애도하는 곡으로 돌아온 셈이 되었다.
한편 요즈음 나는 “Goodbye Pork Pie Hat”를 들으면 절로 다른 곡 하나를 떠올린다. 바로 스웨덴 출신의 싱어송라이터 제이 제이 요한슨의 2017년도 앨범 <Bury The Hatchet>에 담긴 “You’ll miss me when I’m gone”이다. 평소 그는 찌질한 사랑 노래를 잘 써왔는데 이 곡 또한 나한테 관심 없는 여인에게 “내가 사라지면 날 그리워하게 된다”는 애처로운 남자의 마음을 담고 있다.
그런데 블루스 질감이 강한 이 곡의 테마가 기막히게 “Goodbye Pork Pie Hat”을 닮았다. 작곡가가 쳇 베이커를 비롯한 재즈를 좋아함을 생각하면 분명 찰스 밍거스의 곡을 들었을 것이다. 그런데 기억이 희미했던 것일까? 어쩌면 그 또한 곡을 써놓고 어디선가 들었던 멜로디인데 하면서 자기 검열을 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설마 아니겠지” 하며 자신의 이름으로 발표한 것은 아닐까? 그래도 같이 곡을 쓴 에릭 얀슨이나 참여한 연주자들도 몰랐을까?
같은 편성, 연주, 같은 가사로 녹음했다고 해도 한 쪽에 찰스 밍거스나 레스터 영이 언급되었다면 더욱 여러 의미를 지닌 곡이 되었을 텐데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