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마도 국내에서 제일 늦을) 2019년 우리 재즈 앨범을 정리해 본다. 2019년 우리 재즈는 이제 수적인 측면과 상관 없이 독자적인 음악적 자생력을 지녔음을 생각하게 했다. 다양한 개성의 연주자와 앨범이 나왔던 것이다. 게다가 그 내용까지 훌륭해 15장을 선정하기 매우 어려웠다.
물론 음악적 자생력이 상업적 자생력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이 다양성은 연주자나 보컬들이 상업적인 측면을 포기했기에 가능했다. 흔히 말하는 대중적인 연주를 펼친다고 해도 상업적으로 성공할 수 없으니 자신이 평소 하고 싶던 음악을 하자는 쪽으로 연주자나 보컬들이 생각을 바꾼 결과라는 것이다. 그래서 이 15장의 앨범은 한국 재즈의 다양성과 함께 슬픈 현실을 나타내기도 한다.
어쨌건 음악적 다양성과 내용의 훌륭함은 이제 우리 재즈가 해외 재즈와는 별개로 생각할 필요가 없음을 생각하게 했다. 그 중에는 우리 연주자나 보컬만이 할 수 있는 음악도 있어서 자부심마저 느끼게 했다.
Tribute – 송영주, 써니 킴 (Blue Room)

2019년 한국 재즈 최고의 앨범으로 고민 끝에 송영주와 써니 킴의 앨범을 선정한다. 두 사람의 연주와 노래는 모든 것을 잊고 음악의 아름다움에 젖게 만들었다. 마치 두 명의 시인이 만나 이야기를 나누듯 두 사람의 어울림은 대화의 수준을 넘어 지고한 서정미를 향했다. 스타일에서는 유럽의 여성 보컬과 피아노 연주자가 만든 여러 앨범들 같은 느낌을 주지만 아름다움은 그 이상이었다.
Invisible – 조민기 (AM)

베이스 연주자 조민기의 이번 첫 앨범은 그 동안 사이드맨으로 활동하며 보여주었던 음악과 다른 보다 자유로운 연주로 새로움을 느끼게 했다. 그러면서도 구성 요소들이 정치하게 맞물리는 것이 주는 안정감을 느끼게 했다. 비유적으로 말한다면 수영을 하지 못하는 나 같은 사람이 물 속을 유영해도 답답함을 느끼지 않는 상태를 상상하게 해주는 앨범이었다.
주기율표 – 최성호 특이점 (STUDIO 877)

기타 연주자 최성호는 앨범마다 명확한 주제와 그에 걸맞은 연주로 귀를 즐겁게 한다. 이번 앨범에서는 주기율표에 빗대어 일상을 말 그대로 그려냈다. 그 그림의 중심은 부유하는 기타였지만 이야기하듯 노래하던 장기하를 연상시키는 최성호의 노래-뛰어나다 할 수는 없지만- 또한 인상적이었다. 주제가 설득력 있으면 연주가 아무리 자유로워도 듣기에 어렵지 않음을 확인하게 했던 앨범.
스피릿선발대 – 김오키 (봉식통신판매)

그 동안 색소폰 연주자 김오키는 아방가르드 재즈를 한다 싶더니 힙합, R&B, 록 등이 어우러진 앨범을 선보이며 자신의 음악 취향이 전방위적임을 보여주었다. 그래도 이번 앨범은 그 취향의 본류를 담고 있지 않았나 싶다. 실직, 이혼, 부채, 자살 등 사회의 부조리한 문제부터 이로 인한 인간의 소외를 실험적인 면과 대중적인 면을 조합한 음악으로 표현했는데 그것이 매력적이었다. 특히 “코타르증후군”은 그의 대표 곡이 되리라 생각한다.
Don’t Explain – 김민희 (Mirrorball)

골든 스윙밴드의 보컬로 알려진 김민희의 이번 앨범은 음악 스타일, 편성에 따라 한 연주자나 보컬에 대한 느낌이 확 달라질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태도와 명도를 한 단계 낮춘 느린 발라드를 통해 그녀는 줄리 런던에 버금가는 매혹적인 공간을 연출했다. 여기에는 그녀와 같은 공간을 유영하며 서로에 스며드는 따스한 기타와 담담한 베이스도 큰 역할을 했다.
배장은 & 리버레이션 아말가메이션 / JB Liberation Amalgamation (Pageturner)

피아노 연주자 배장은의 오랜만의 새 앨범은 한국 연주자와 처음으로 밴드를 구성했다는 점에서 흥미를 자극했다. 그와 함께 연주의 중심을 그녀 자신의 피아노에만 두지 않고 함께 한 다른 연주자들 특히 베이스 연주자 신동하에게 할애한 것도 색달랐다. 이러한 연주적인 변화 외에 이전 앨범들보다 한층 부드럽고 서정적인 면을 부각시킨 것 또한 새로운 풍경을 그리게 했다.
Entropy – 이선재 (Fermata Wellness 2019)

색소폰 연주자 이선재는 2019년 활발한 활동을 펼쳤다. 그 가운데 발매된 그의 솔로 앨범은 자유도 높은 연주와 포스트 밥 성향의 잘 짜인 연주로 여러 상황에 탄력적으로 대응하는 그의 모습을 확인하게 해주었다. 또한 일상에서 영감을 얻어 작곡한 곡들이었기에 자유도가 높은 연주에서도 감상자를 어지럽게 하지 않았다. 계속 새로움을 줄 수 있는 실력 있는 연주자의 앨범이었다.
인간탐구 – 오재영 트리오 (오재영)

이명건 트리오의 베이스 연주자였던 오재명의 트리오 앨범은 전통과 현대의 어느 경계를 넘나드는 연주가 인상적이었다. 베이스 연주자의 트리오 앨범이기 때문이었을까? 경계를 위태롭게 춤추면서도 트리오의 삼각형을 유지하는 것 또한 훌륭했다. 확실히 오재영의 작곡만큼이나 이를 구현하는데 함께 한 임채선(피아노), 조해솔(드럼)의 역할 또한 컸다. 이 트리오가 지속된다면 더 좋은 음악이 만들어질 것이다.
좋은게 좋은거지 – 이명건 트리오 (LMG Music)

이명건 트리오의 음악은 늘 밝고 역동적이다. 건강한 힘으로 가득하다. 그래서 유치한 앨범 이미지마저 이해하게 된다. 중요한 것은 주제만큼이나 연주 자체가 매력적이라는 것이다. 둥글둥글 사는 것이 좋다라는 주제를 표현하면서 스윙, 랙타임, 가스펠 등의 전통적인 요소가 돋보이는 “뉴트로”한 연주를 펼쳤는데 그것이 참 매력적이었다. 한국의 트리오 토이킷이라 할만한 연주였다.
Composure – 임미정 (마장뮤직앤픽처스)

8년 만에 선보인 피아노 연주자 임미정의 이번 앨범은 평정이란 주제를 그림처럼 펼쳐낸 연주가 인상적이었다. 단번에 들어오는 그림보다는 조금 시간을 두고 봐야 느낄 수 있는 그람 같은 연주였다. 그렇다고 회화적이라는 것은 아니다. 밴드의 연주는 여유로우면서도 내적 역동성을 드러냈는데 이것은 오랜 시간에 걸쳐 성숙해진 연주자만이 보여줄 수 있는 것이었다.
Unexpected Fly – 이한얼 트리오 (이한얼)

피아노 연주자 이한얼의 이번 트리오 앨범은 이전과는 다른 시간과 공간을 담아냈다는 점에서 흥미로웠다. 흔히 말하는 유럽적임 감성도 직선적인 트리오 연주를 오가며 그는 독일 유학시절의 내적인 불안과 한국에서 안정을 되찾은 자신의 현재를 보여주었다. 그것은 이번 트리오의 핵심이기도 했다.
J.A.M. – 남경윤 (Jnam Music)

피아노 연주자 남경윤의 이번 앨범은 9년만의 새 앨범이었다. 그 동안의 삶이 음악적 공백이 아님을 입증하려는 듯 피아노 연주자는 그간의 삶에서 영감을 얻은 곡들을 연주했다. 그와 함께 연주자로서의 능력 트리오의 리더로서의 능력은 더욱 깊어졌음을 보여주었다. 특히 속도에 매몰되지 않은 사려 깊은 연주는 시간은 사람을 성숙하게 함을 새삼 확인하게 했다
이상한 꽃 – 이지민 (Jimin Lee)

보컬 이지민의 이번 앨범은 시인 이상의 글을 가사로 노래했다는 점에서 흥미를 끌었다. 이상의 시가 자유롭고 추상적인 만큼 전형적인 음악적 구조에 넣기는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이지민의 이를 수평적으로 부드럽게 흐르는 곡으로 해결했다. 그래서 앨범을 보컬 앨범이 아니라 시적인 보컬이 악기의 하나처럼 다가오는 연주 앨범으로 바라보게 했다.
The New Path – 신노이 (NPLUG)

2019년 우리 재즈 앨범 중에는 국악과 결합한 음악을 담은 것이 많았다. 그 가운데 베이스 연주자 이원술을 중심으로 민요와 정가를 노래한 김보라 일렉트로닉 사운드 아티스트 하임으로 이루어진 신노이의 음악은 재즈와 국악이라는 상이한 스타일의 결합을 넘어 융화된 새로운 음악을 선보였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할 만 했다. 베이스가 자유로이 연주하고 그 위로 국악적 색채의 구음이 흐르고 이를 전자 질감의 앰비언트 사운드가 감싼 음악을 듣는 것은 매우 신선한 경험이었다.
DMZ – 지박 (포크라노스)

비무장 지대 DMZ와 북한이 판 남침용 땅굴을 탐사하고 여기서 받은 영감을 주제로 한 곡을 담은 첼로 연주자 지박의 이번 앨범은 시각적 경험을 음악으로 표현했다는 점에서 나는 감상의 장애가 있을 지 모르겠다고 우려했다. 그러나 첼로 연주자는 정서적인 연주로 이를 해결했다. 음악은 음악임을 생각했던 것이다. 한국적인 느낌을 주는 지 박의 연주와 멜로디에서 분단 상황에 대한 연주자의 안타까움, 슬픔을 엿보게 한 5곡으로 이루어진 “DMZ Suite”가 특히 그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