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키스 자렛을 좋아한다. 그래서 그의 앨범 발매 소식을 늘 기다리고 있으며 모든 앨범을 들으며 가슴 벅찬 감동에 빠지곤 한다.
지난 2016년 7월 16일 독일 뮌헨의 필하모닉 홀에서 가졌던 솔로 콘서트를 담은 이번 앨범도 그랬다. 특히 이번 앨범은 최근 몇 년간 발매된 그의 솔로 콘서트 앨범 가운데 가장 최근의 연주를 담고 있기에 더욱 반가웠다. 모든 솔로 연주가 현실의 시간을 넘어선 독자적 시간, 특별한 세계를 담고 있지만 그래도 그가 현재의 연주자로 함께 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기에는 최근의 연주가 제일이기 때문이다.
가장 최근의 연주라 해서 이전과 확연히 다른 연주를 펼쳤다는 것은 아니다. 앞서 언급했듯이 그의 솔로 콘서트 앨범들은 연속의 의미, 시간에 따른 발전과는 거리가 있다. 그저 그 자체의 순간으로 존재한다. 수 많은 연주의 순간 중 연주자 본인과 맨프레드 아이허가 좋았다고 싶은 순간만이 앨범이 되어 영원성을 획득한다.
그럼에도 연주의 기초를 이루는 부분, 그러니까 <Radiance> 이후 해오고 있는 긴 연주가 아닌 상대적으로 짧은 즉흥 연주로 공연을 채우고 이를 조합해 앨범으로 만드는 것은 같다. 그 안에 재즈, 클래식, 블루스 등 키스 자렛이 지닌 모든 음악적 역량이 자유로이 조합되어 순간의 아름다움을 만들어 내는 것도 같다. 그렇기에 우연한 사건을 확인하듯 앨범을 들으면서도 절로 이전 앨범과 비교하게 된다.
내 경우 기본적으로 이번 앨범의 연주에 만족한다. 특히 각 곡들이 실제로는 병렬적으로 연주되었겠지만 감상의 수준에 있어서는 직렬적인 의미를 띄는데 그 직렬성이 한층 또렷해 좋다. 여기엔 맨프레드 아이허의 직관이 반영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음악적 만족과 별개로 이번 앨범을 들으며 그의 지난 앨범들을 생각했음을 고백해야겠다. 과거의 연주와 유사하다는 것이 아니다. 반대로 한참 멀리 나아간 연주가 과거를 그리워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과거-그러니까 최소 20년 이전-의 연주는 모호한 탐색 끝에 선명한 무엇이 있었다. 순간적이고 자유로운 연주이기에 모든 것이 흐트러진 듯 하다가도 아 이것을 위해서 그 먼 여정이 시작되었구나 싶은 완벽한 순간이 있었다. 그런데 이번 앨범은 그런 부분이 상대적으로 부족하다. “Part III”, “Part VIII”을 비롯한 느린 연주, 그러니까 오른 손의 멜로디적인 면이 보다 또렷하며 이를 지탱하는 왼손 연주가 보다 정돈된 연주가 그에 가깝다 할 수 있겠지만 그 또한 순간의 탐색이 도달할 고갱이는 아이라는 생각이다.
바로 여기서 나는 시간성을 느낀다. 그는 수십 년간 솔로 콘서트를 해왔다. 그런 중에 이제는 그 즉흥의 순간이 다한 것은 아닐까? 석탄을 캐는 광부를 생각해보자. 하나의 탄광에서 그는 석탄을 캔다. 캘수록 그는 더 깊이 들어가야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풍부한 채굴을 보장받지는 못한다. 언젠가 매장된 석탄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키스 자렛도 즉흥의 순간을 따라 반짝이는 음악적 보석을 캐기 위해 수십 년을 연주했다. 실제 작곡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아름다운 결과를 만나기도 했다. 그러나 이제 그는 그 주변을 맴돌거나, 순도가 덜한 보석을 캐다가 힘이 빠진다. 그 부분이 아쉽다.
물론 여기에는 내가 그의 연주에 매우 익숙해졌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러나 <Köln Concert>, <Vienna Concert>, <Sun Bear Concerts>, <Solo Concert: Bremen & Rosanne> 혹은 병상에서 돌아 혼 후의 앨범인 <Testament>같은 앨범에 비해 힘겨운 탐색이 많은 것은 분명하다.
앙코르 곡으로 세 곡을 담은 것도 그 힘겨움의 증거가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