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배장은을 늘 새로움을 향해 열려 있으며 이를 통해 자신의 음악적 내/외연을 확장하려는 의지가 강한 연주자라 생각한다. 그래서 그녀는 늘 새로운 환경에 몸을 던지고 그 안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재확립한다. 이러한 그녀의 자세는 한국이라는 공간에만 머무르지 않는 도전적인 음악으로 이어졌다. 그녀에 대한 내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하지만 지난 6년간 새로운 앨범이 없었던 것은 의외였다. 2006년 첫 앨범 <The End & Everything After>부터 13년 <JB>에 이르기까지 1,2년 간격으로 앨범을 발표했었는데 말이다. 여기에는 물론 생활인으로서의 부담이 작용했을 것이다. 그래도 두 개의 트리오 편성으로 연주했던 <JB> 이후 그녀가 보다 은 활동을 펼칠 것이라 기대했었기에 그와 달리 시간이 흐른 것은 아쉬웠다. 그렇기에 이번 앨범이 반갑다.
이번 앨범에서 그녀는 첫 앨범의 첫 곡이었던 “Liberation Amalgamation”을 다시 꺼냈다. 이 곡은 “자유 합병”이라는 다소 모호하고 어려운 곡 제목은 자신을 구속하는 외부의 힘에서 자유로운 상태를 얻으려는 의지를 의미한다. 그렇기에 초기 시절의 곡을 다시 꺼낸 것은 지난 6년의 공백을 깨고 (어쩌면 그 기간 동안 겪었을) 외부의 억압으로부터 해방된 자신을 찾는 여정의 시작을 알리기 위한 것이라 생각된다.
한편 2006년도 앨범에 담긴 곡은 2분 가량의 짧은 연주였다. 그리고 완전히 끝나지 않고 재즈 연주로는 드물게 페이드아웃으로 끝났다. 그래서 완결되지 못한 느낌을 주었다. 그녀도 이에 대한 마음의 부담이 있었던 듯 이번 앨범에서는 7분이 넘는 곡으로 “완성”했다. 여기서 그녀는 이전보다는 한층 느긋한 자세로 연주하며 해방을 찾는 여정을 즐거운 것으로 그렸다. 이를 통해 아직은 아닐지 몰라도 자유를 획득하는 날이 언젠가는 올 것이란 확신을 드러낸다.
이번 앨범에서 그녀는 기타 연주자 이수진, 일렉트릭 베이스 연주자 신동하, 드럼 연주자 신동진과 함께 했다. 신동진을 시작으로 신동하와 이수진을 알게 되어 밴드가 이루어졌다는데 그녀가 우리 연주자로만 밴드를 구성해 앨범을 녹음한 적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 또한 그녀의 음악을 새롭게 기대하게 하는 요인이다.
실제 이번 앨범에 담긴 음악은 색다른 신선함으로 가득하다. 무엇보다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한층 여유롭고 부드럽다. 부드럽다고 해서 일체의 긴장이 제거된 심심한 연주를 생각하지는 말자. 그보다는 연주의 중심을 그녀에게만 두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그만큼 그녀가 동료 연주자들을 깊이 신뢰했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공간을 나누고 공유하며 연주하고 곡을 완성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수진의 기타에 중심 부분을 양보하고 배장은 자신은 피아노와 키보드로 기꺼이 배경에 스며들며 서로 부딪힐 수 있는 부분을 차단한 것이 그렇다. 나아가 신동하의 베이스가 솔로는 물론 리듬 섹션에 자리잡은 순간에도 보다 바쁜 움직임을 보일 수 있었던 것도 그만큼 배장은이 동료를 배려했기 때문이다. “Zahara de la Sierra(스페인 남부 안달루시아 지역에 위치한 호수 마을 이름이다.)”나 “모란봉”처럼 지역을 주제로 한 곡들에서의 입체감은 네 연주자 모두의 역동적 움직임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이 외에 스팅의 곡인 “A Thousand Years”를 기타와 베이스를 전면에 내세워 연주한 것이나 “Feel Like”의 펑키한 감각 또한 동료 연주자에 대한 배장은의 신뢰를 엿보게 한다.
한편 앨범 전체에 흐르는 여유는 배장은의 서정성을 돋보이게 했다. 피보나치 수열과 배장은의 생년월일을 가지고 만들었다는 “피보나치 보름달”만해도 수와 관련된 곡이기에 조금은 어려운 수학적 흐름이 아닐까 싶지만 실제는 아련하고 평화롭게 흐른다. 앨범의 시작을 알리는 “감출 수 없는 비밀”도 그 동안 배장은이 미처 보여주지 못했던 서정미를 물씬 드러낸다. 감추지 못하고 드러난 비밀이 슬픈 것이라 생각하게 한다.
이번 앨범에서 배장은은 6년 만에 해방된 자아의 탐구가 이어지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그런데 그것은 혼자가 아닌 새로운 동료와 함께 하면서 새로운 풍경으로 나아갔다. 누군가는 이를 두고 외부의 억압에 영향을 받은 것이 아닌가 생각할 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이는 오해다. 외부를 주체적으로 수용해 내면화하는 것이야 말로 자유를 획득하는 것이 아닐까? 이런 과정을 통해 우리는 매번 새로워질 수 있다. 다시 한번 이번 앨범의 타이틀이 “Liberation”이 아니라 “Amalgamation”이 함께 함을 생각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