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9년 가을 베이스 연주자로 재즈와 클래식을 오가며 활동하던 맨프레드 아이허는 자신이 직접 운영하는 레이블을 만들기로 결심했다.
주변으로부터 돈을 빌려 레이블을 설립하면서 제작한 첫 번째 앨범은 피아노 연주자 말 왈드론의 트리오 앨범이었다. 그가 이 피아노 연주자를 선택한 이유는 간단했다. 당시 말 왈드론이 뮌헨에 거주하고 있었던 것.
1963년 마약 중독으로 인해 활동을 멈춘 후 말 왈드론은 유럽으로 건너가 파리, 로마, 볼로냐, 쾰른 등을 거쳐 1967년 뮌헨에 정착했다. 그가 유럽을 선택한 것은 빌리 할리데이, 에릭 돌피, 진 아몬스, 애비 링컨, 재키 맥린, 찰스 밍거스 등 재즈 계의 굵직한 인물들과 활동한 것을 비롯 리더로서도 꾸준한 활동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에서 연주자로 사는 것이 매우 힘들었기 때문이었다.
마침 이 무렵 <Three Rooms in Manhattan>(1965), <Sweet Love, Bitter>(1967) 등 유럽 영화의 사운드트랙을 담당할 기회가 생겼다. 이에 힘입어 유럽에 정학할 결심을 하게 되었다.
뮌헨에 거주하며 그는 파트리스 카라티니, 바레 필립스 같은 유럽-프랑스-연주자와 함께 앨범을 녹음하는 등 소소한 활동을 이어갔다.
그런 중 녹음한 앨범 <Free At Last>는 말 왈드론의 입장에서는 당시 유행하던 프리 재즈를 자기 식으로 소화한 것이었다. 사실 이전까지 그는 전통적인 비밥 스타일의 영역에 머무르는 연주를 펼치면서도 그는 남들과 다른 그만의 스타일의 연주를 펼쳐왔다. 델로니어스 몽크와 버드 파월의 중간 어디쯤 머무는 연주였다고 할까? 그와 함께 긴장을 기꺼이 즐기는 과감함을 보이곤 했다.
이 앨범은 이를 보다 구체적으로 드러냈다고 할 수 있다. 여기서 말 왈드론은 코드 변화나 멜로디 어느 하나에 치우치지 않는 연주, 그 둘을 오가는 연주를 펼치는 대신 그 둘을 리듬 위에서 융합한 듯한 연주를 펼쳤다.
한편 연주를 듣다보면 맨프레드 아이허가 말 왈드론에게 앨범을 제안한 것이 단지 가까이에 이 피아노 연주자가 있었기 때문만은 아닐 수 있겠단 생각이 들기도 한다. ECM을 이야기할 때 꼭 언급되는 여백이 이 피아노 연주자의 음악에서 발견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말 왈드론은 맨프레드 아이허의 취향에 맞는 연주자였던 것이다.
연주의 자유로운 느낌은 함께 한 두 연주자 아이슬라 에킹어(베이스), 클라렌스 벡톤(드럼)의 치열한 연주를 통해 한층 배가 되었다. 피아노 연주자의 매력이 “Balladina”, “Willow Weep For Me” 같은 곡에서 드러난다면 베이스, 드럼을 포함한 트리오의 매력은 확실히 “1-3-234”, “Rock My Soul” 같은 빠른 곡에서 드러난다. 근황이 궁금해질 정도로 베이스와 드럼 연주자의 존재감은 막강하다.
사운드 측면에 있어서는 지금의 ECM과는 매우 다르다. 공간은 건조하며 악기들이 좌우로 분리되어 있다. 라이브의 느낌을 살리려 한 것 같은데 그래도 현대적인 맛이 나지 않는다는 것은 현재 ECM을 생각하면 낯설 수 있다. 이 때까지 맨프레드 아이허는 모든 악기가 또렷하게 들리는 녹음과 믹싱을 생각했지만 그것의 구체적인 구현에 대해서는 막연했던 것 같다.
한편 2019년 레이블의 50년을 기념하기 위해 리마스터링되어 재발매 되면서 새로이 4곡이 추가되었다. 추가된 곡은 “1-3-234”,, “Willow Weep For Me”, “Boo”, “BalladIna” 등 기존 수록 곡의 다른 연주이다. 길이는 다르지만 연주의 흐름과 분위기는 거의 같다. 그래서 색다르다 할 수 있지만 놀랍다고 할 수는 없겠다.
다만 이렇게 ECM의 앨범에도 얼터너티브 테이크가 있다면 그 규모다 어느 정도이고 이것이 후에 재발매 시 새로운 흥미거리로 작용하겠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사실 기존을 확장한 앨범이 이어진다면 그냥 결정판 하나만을 원하는 나 같은 감상자들은 짜증낼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