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간이라는 말이 사람(人) 사이(間)를 의미하듯 우리는 살면서 많은 사람을 만난다. 그리고 그 만남은 우연이건 필연이건 삶을 새로운 방향으로 이끌곤 한다. 우리의 현재는 과거의 다양한 만남이 만들어 낸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여러 만남 중에는 삶의 방향을 획기적으로 바꾸는 것이 있다. 피아노-베이스-드럼으로 구성된 독일 출신의 트리오 클라즈 브라더즈와 쿠바 출신의 타악기 연주자 두 명의 만남도 그랬다. 베이스 연주자 킬리안 포스터를 주축으로 드럼 연주자 팀 한, 피아노 연주자 토비아스 포스터로 구성된 트리오는 2000년 공연을 하기 위해 쿠바로 떠났다. 그리고 현지의 타악기 연주자 알렉시스 헤레라 에스테베즈와 엘리오 로드리게즈 루이스를 만났다.
이들은 국적의 차이만큼이나 음악적 성향도 달랐다. 클라즈 브라더즈는 클래식과 재즈 쪽에서, 쿠바 퍼커션 듀오는 라틴 음악 쪽에서 활동 중이었다. 이러한 차이에도 불구하고 인간적인 이끌림과 음악적 호기심은 다섯 연주자를 함께 하게 만들었다. 클라즈 브라더즈 앤 쿠바 퍼커션이라는 다소 긴 그룹 이름처럼 이들의 음악은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는 것에서 출발해 상이하다 할 수 있는 각자 음악을 결합해 새로운 음악을 만들었다. 그 새로운 음악은 트리오의 음악적 기반인 클래식의 유명 곡들을 쿠바 타악기 연주자들의 음악적 기반인 라틴 스타일로 연주한 것이었다.
그렇게 만들어진 2002년의 첫 앨범 <Classic Meets Cuba>는 평단과 대중의 화려한 찬사를 받으며 그룹이 안정적으로 음악을 이어갈 수 있는 토대가 되었다. 이후 그룹은 <~ Meets Cuba>란 타이틀로 모차르트, 오페라, 재즈, 보컬, 크리스마스 캐롤 등을 쿠바 음악과 결합한 앨범을 연이어 발매했다. 정도의 차이가 있긴 했지만 그 앨범들은 꾸준한 호응과 지지를 받았다.
이들의 음악이 인기를 얻을 수 있었던 것은 단순히 클래식 곡을 라틴 스타일로 편곡한 것에 그치지 않고 그 사이에 재즈를 매개로 넣어 연주의 생동감, 그것이 주는 즐거움을 음악에 불어넣었기 때문이었다. 단순히 타악기 리듬 위에 잘 알려진 클래식 멜로디를 연주하는 대신 두 스타일의 만남이 주는 새로운 감흥을 즉흥적인 솔로 연주를 통해 표현했다는 것이다. 그 결과 그룹의 음악은 언제나 낭만적이었고 긍정적이었다. 이들의 음악은 일체의 불안을 지우고 행복을 느끼게 했다. 이것은 17년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피아노 연주자가 데이빗 가자로프를 거쳐 지금의 브루노 뵈머 카마초로 바뀌었어도 그대로 유지되었다.
지금 우리가 듣고 있는 앨범은 바로 성인이라 부를 정도로 뛰어난 음악가(樂聖)였던 베토벤을 주제로 하고 있다. 한 명의 작곡가를 주제로 한 것은 모차르트에 이어 두 번째가 된다. 이들이 베토벤의 음악을 라틴 음악과 결합해 연주하기로 마음 먹은 것은 2005년 모차르트를 주제로 앨범을 녹음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작곡가의 탄생 25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서였다. 2020년은 베토벤의 탄생 250주년이 되는 해이다.
사실 그룹은 이미 이전 앨범들에서 베토벤의 곡을 연주한 바가 있다. 이번 앨범에서도 보너스 트랙을 포함한 총 14곡 중 “월광”, “비창”, “9번 교향곡”, “엘리제를 위하여”, “5번 교향곡”, “피아노 소나타 1번” 등 <Classic Meets Cuba>, <Classic Meets Cuba II>, <Play Classics> 등의 앨범에서 연주했던 9곡을 다시 연주했다. 이미 연주했던 곡들을 대거 다시 연주한 것은 이들 곡들이 베토벤을 대표하기 때문일 것이다. 실제 이 곡들은 클래식을 모르는 사람이라도 한번쯤은 들어봤을 법한 곡들이다.
다시 연주했다고 해서 이전과 같은 편곡으로 동일하게 연주하지는 않았다. 앞서 언급했듯이 그룹은 클래식을 라틴 스타일로 연주하면서 재즈의 특징인 연주자의 자유로운 해석을 적극 불어넣었다. 게다가 그 사이 피아노 연주자도 바뀌었다. 그 결과 그룹의 음악적 장점은 그대로 살아 있으면서도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연주를 할 수 있었다.
“Für Elise”의 경우 첫 앨범 <Classic Meets Cuba>에서 “Aerolise”란 제목으로 연주했었다. 활력 가득한 연주였었다. 그런데 이번 앨범에서는 템포를 다소 늦추고 한적한 휴양지에서 일광욕을 하며 누워 있을 때에 어울리는 나른하고 평화로운 분위기로 바꾸어 연주했다. 게다가 오스발도 플레이테스의 트럼펫과 후안 다비드 레스트레포의 기타가 가세해 한층 색다르게 다가온다. 여기에 브루노 뵈머 카마초가 피아노와 함께 키보드를 연주한 것은 이 곡뿐만 아니라 그룹 음악 전체에 가져온 큰 변화가 아닐까 싶다.
“교향곡 5번 1악장”을 연주한 “Conga No.5” 역시 첫 앨범에서 “Salsa No.5”란 제목으로 연주했었다. 이 또한 운명의 두드림을 현악기의 질감의 키보드로 연주한 것을 비롯해 브라스 섹션 효과를 연출한 오스발도 플레이테스의 트럼펫이 타악기 드럼의 화려한 움직임 위로 드러나며 제목의 변화만큼이나 새롭게 다가온다. 이 외에 <Play Classics에 이어 다시 연주한 “피아노 소나타 1번 1악장”의 연주 곡 “F Moll Sonata I”에서도 피아노 외에 키보드를 추가하여 보다 풍성한 질감을 느끼게 했다.
“교향곡 5번”만큼이나 널리 알려진 “교향곡 9번 4악장 ‘환희의 송가’” 도 <Play Classics>에 이어 새롭게 연주했다. 유럽 연합의 공식 상징가로 지정된 곡임을 알리려는 듯 “Mambo Of Europe”란 제목을 붙인 이 곡을 그룹은 맘보 리듬을 전면에 내세워 라틴의 색채감을 한층 많이 드러냈다. 이를 통해 원곡의 “환희”를 새로운 차원에서 느끼게 했다. 승리의 환희 이전에 삶 자체가 즐거운 환희를 표현했다고 할까? 아마도 앨범에서 가장 많은 사랑을 받을만한 연주가 아닐까 싶다.
“월광”이라 불리는 “피아노 소나타 14번”을 연주한 “Mondschein Sonata”는 어떠한가? <Classic Meets Cuba II>에 이어 이번에도 그룹은 1악장과 3악장을 연주했다. 이전 앨범에서 그룹은 1악장은 밤의 분위기를 살려 서정미를 강조하는 한편 3악장은 극적인 부분을 라틴 리듬과 맞물려 색다른 밤의 이미지를 창조했었다. 그런데 이번 앨범에서는 1악장의 경우 서정성을 유지하면서도 타악기를 조금 더 부각시켜 라틴적 색채감을 강화했다. 여기에 오스발도 플레이테스의 트럼펫 솔로는 멀리 축제의 흥겨움이 들리는 하바나의 어느 한적한 골목의 밤 풍경을 그리게 했다. 또한 3악장은 <Classic Meets Cuba II>에서처럼 극적인 면을 살려 연주했다. 하지만 이 긴장 또한 템포의 완화와 그룹 멤버의 노래, 그리고 킬리안 포스터의 베이스 솔로를 통해 부드럽게 완화되었다.
한편 “비창”이라 불리는 “피아노 소나타 8번”을 연주한 “Pathetique”도 <Classic Meets Cuba>에 이어 다시 연주되었다. (3악장은 <Play Classics>에서도 연주했다.) 이 곡의 경우 템포나 연주의 흐름 등 편곡적인 측면에 있어서는 처음의 연주와 비슷하다. 그러나 그 비슷함은 재즈적인 면을 통해 차이를 보인다. 특히 브루노 뵈머 카마초의 존재감이 돋보인다. 그는 1악장에서 화려한 피아노 속주를 펼치더니 2악장에서는 몽환적인 키보드 연주를 추가해 곡의 나른한 분위기를 멋지게 살렸다. 그리고 3악장에서는 능란한 완급조절로 곡이 행복한 결말을 맺게 했다.
새로이 연주된 곡들로는 “피아노 소나타 17번 1악장”을 연주한 “Strum Sonata”가 있다. “폭풍”이라 불리는 이 소나타를 베토벤은 비극적 분위기를 가득 담아 썼다. 그런데 다섯 연주자는 부드러운 라틴 리듬과 킬리안 포스터의 서정적인 아르코 연주로 비극적인 맛을 완화했다. 그것이 비극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긍정적인 희망을 꿈꾸게 한다.
“피아노 소나타 21번” 1악장도 베토벤이 이 곡을 헌정했던 발트슈타인 백작의 이름을 따 “Waldstein Sonata I”이란 제목으로 연주했다. 베토벤의 악보는 강약과 속도의 화려한 변화로 가득했지만 그룹은 한 없이 평화롭고 온화하게 곡을 연주했다. 그것이 따스한 햇살이 비치는 오후의 한가한 풍경을 그리게 한다.
“7번 교향곡 2악장”을 연주한 “Symphony No. 7/2”도 원곡의 음울한 분위기를 잔잔한 타악기 리듬과 반짝이는 피아노 솔로, 그리고 온화한 바람 같은 베이스의 아르코 연주, 그리고 구수한 보컬 합창을 통해 맑은 날을 위한 곡으로 바꾸었다. 그럼에도 이러한 변화가 어색하거나 인위적인 느낌을 주지 않는 것은 라틴 음악의 질감을 잘 활용했기 때문이다.
“황제”로 알려진 “피아노 협주곡 3번” 2악장을 연주한 “Piano Concerto No. 3”은 원곡의 서정성을 단출한 편성에 잘 옮겨 연주했는데 간결한 리듬 위로 흐르는 서정적인 피아노와 베이스 솔로가 극적이지 않음에도 동경의 정서로 가슴을 채운다. 인간 승리나 재난 극복에 관련된 영화의 장엄한 마지막 장면을 본 것 같은 느낌이랄까?
한편 “터키 행진곡”도 보너스 트랙으로 연주되었다. 그런데 여기서는 라틴 스타일로 곡을 연주하면서도 곡 제목을 반영하려 한 듯 코카서스 지역의 민속 악기인 지나와 두둑을 연주하는 타일란 아르카를 합류시켰다. 그것이 지도상에 존재하지 않는 독특한 지역을 그리게 한다.
사실 베토벤의 음악은 중후한 무게감이 있다. 이를 가벼이 연주하기란 쉽지 않다. 그런데 클라즈 브라더즈와 쿠바 퍼커션의 다섯 연주자는 지금까지 여러 클래식 음악을 독창적으로 연주했던 것처럼 베토벤의 음악 또한 그들만의 감성으로 연주했다. 그렇다고 베토벤의 음악을 쉽게 여긴 것은 아니다. 그보다는 음악적 새로움과 즐거움을 향한 연주자의 열망을 따랐을 뿐이다. 베토벤과 그 음악을 독일에서 쿠바로 옮겼다고 할까? 따라서 당신은 이 앨범을 들으며 쿠바로 휴가를 떠난 행복한 베토벤을 떠올릴 것이다. 그리고 그 옆에서 그의 멜로디를 흥얼거리는 당신을 상상할 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