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n Erik Kongshaug – A Little Kiss

노르웨이의 사운드 엔지니어 얀 에릭 콩쇼그(보다 가까운 발음은 “얀 에릭 콩스헤우”다)가 어제 세상을 떠났다. 정확한 사인은 모르겠다. 그저 오랜 시간 병을 앓고 있었는데 그것이 사망으로 이끌었던 것 같다.

그는 아르네 벤딕슨 스튜디오에서 엔지니어의 삶을 시작한 이후 탤런트 스튜디오를 거친 후 1984년부터는 레인보우 스튜디오의 주인이 되어 수많은 음악인들의 앨범을 녹음하며 평생을 살았다. 그 가운데 ECM 레이블의 카탈로그 중 700장 이상의 앨범을 녹음해 명성을 얻었다. 단지 한 레이블의 앨범을 많이 녹음해서가 아니었다. ECM 특유의 공간감이 잘 반영된 사운드의 확립에 중요 역할을 했기 때문이었다. 특히 잔향의 미세하고 미묘한 사용은 음악의 질과 감상의 즐거움을 높였다.

사실 침묵 다음으로 아름답다는 평을 얻을 정도의 명징한 사운드는 ECM의 제작자 맨프레드 아이허의 취향에서 나왔다. 얀 에릭 콩쇼그는 음향에 대한 지식이 부족했던 제작자를 대신해 그 이상적 사운드를 구현했을 뿐이다. 그러나 비슷한 연배의 통함이 있었던 것일까? 그는 단지 콘솔과 기타 장비를 조작하는 기술자를 넘어 맨프레드 아이허와 사운드를 주제로 토론하고 사운드의 방향을 결정하는 동료였다. 특히 연주자마다 자신만의 믹스로 녹음이 진행 중인 음악의 전체 사운드를 들을 수 있도록 시설을 갖춘 것은 그가 맨프레드 아이허의 음향 철학-모든 소리가 빠짐 없이 잘 들리는-에 공감했음을 생각하게 한다.

오랜 시간 맨프레드 아이허와의 긴밀한 협력은 ECM을 이야기할 때 그를 빼놓을 수 없게 만들었다. 그렇다고 그가 ECM만을 위해서 일했던 것은 아니었다. 독일의 또 다른 레이블 ACT부터 Kirkelig Kulturverksted를 비롯한 여러 노르웨이 레이블의 앨범들, 그리고 ECM 같은 소리를 얻고자 하는 개별 연주자들의 앨범을 녹음했다. 음악 장르 또한 재즈에 국한되지 않았다. 노르웨이 포크, 종교 음악, 팝 등 고객의 의뢰가 있으면 음악을 가리지 않고 작업했다. 노르웨이 팝 그룹 아하의 2000년도 앨범 <Minor Earth Major Sky>을 녹음한 것이 좋은 예이다.

평생 사운드 엔지니어로 활동한 끝에 올 해 그는 노르웨이 국왕이 예술, 과학, 경제, 공공 서비스 부분에서 공적을 세운 사람에게 수여하는 훈장(King’s Merit Medal)”과 노르웨이 국립 대중음악 박물관 록하임에서 수여하는 상을 수상했다. 또한 그의 75세를 기념하는 콩쇼그 음악 페스티벌이 열리기도 했다.

하지만 흥진비래(興盡悲來.)라는 말이 있듯이 이 좋은 일들도 그의 건강을 회복하는데 도움이 되지는 못했다.

사운드 엔지니어로 유명하지만 그는 뛰어난 기타 연주자이기도 했다. 기타 연주자였던 아버지를 따라 그는 어린 시절부터 아코데온, 기타, 베이스 등을 배웠다. 그 가운데 전문 기타 연주자로서도 적잖은 활동했다.

그 중 1966년 유로비전 송 콘테스트에 노르웨이 대표 오세 클레벨란의 연주자로 참여해 “Intet Er Nytt Under Solen(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로 3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이 곡은 당시 노르웨이에서 인기를 얻고 있던 싱어송라이터 아르네 벤딕슨이 썼다. 이를 계기로 얀 에릭 콩쇼그는 작곡가가 만든 벤딕슨 스튜디오에서 엔지니어로서의 삶을 시작하게 된다.

기타 연주자로서 그는 몇 장의 앨범을 녹음했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오랜 인연에도 불구하고 ECM에서 앨범을 발매하지 못했다. 맨프레드 아이허의 취향에 맞지 않았던 모양이다. 일은 일이고 우정운 우정인 것이었던 것일까?

그 많은 연주 중 2003년도 앨범 <All These Years>에 담긴 “A Little Kiss”를 나는 좋아한다. 정적인 연주 가운데 가장 경쾌한 곡으로 제목이나 코드 진행으로 보아 “Besame Mucho”를 바탕으로 한 것이 아닌가 싶다. 이 곡을 그의 명복을 빌며 다시 들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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