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스무드 재즈 앨범은 음악적으로 후한 평가를 받기 어렵다. 단지 그 음악이 팝적인 색채를 띠고 있어서가 아니다. 부드러운 분위기, 듣기 편한 분위기를 연출하기 위해 앨범마다 반복되는 상투성 때문이다. 연주자들 또한 그때 그것의 반복을 의도적으로 즐기는 것 같기도 하다. 하나의 패턴이 정해지면 그에 따라 곡을 쓰고 연주하는 것 같다.
색소폰 연주자 스티브 콜도 그렇다고 할 수 있다. 그는 햇살 좋은 날, 아니면 유쾌한 파티가 기다리는 밤에 어울릴 법한 도시적 질감의 음악을 선보여왔다. 3년 만의 이번 새 앨범도 마찬가지다. 노래하듯 멜로디를 이어가는 스티브 콜의 색소폰을 중심으로 밝고 산뜻한 사운드가 앨범을 채우고 있다. 앨범 감상 전 예상했던 바로 그 사운드를 벗어나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이 익숙한 사운드가 마음에 든다. 무조건 진부하다고 생각되지 않는다. 새로운 모험이 주는 짜릿함을 추구한 대신 익숙한 요소들로 깊은 맛을 내려 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 맛이 참 좋다.
여기에는 스티브 콜의 작곡만큼이나 그와 오랜 시간 함께 해 온 데이빗 만-색소폰, 플루트, 키보드, 프로그래밍도 한-의 편곡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본다. 그는 보통의 스무드 재즈가 공간을 꽉 채우려는 경향을 보인 것과 달리 여백을 적절히 활용한 편곡을 했다. 보컬 포함 최대 9명의 연주자가 참여한 연주에서 이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브라스 섹션-색스 팩(Sax Pack)이라 불리는-을 간결하게 하고 리듬 섹션의 움직임 또한 담백하게 움직이도록 설정하는 것으로 그는 여러 악기들의 울림 속에서 숨쉴 틈을 만들었다. 또한 섹션과 섹션을 촘촘히 붙이지 않은 믹싱도 여백의 맛을 살리는데 일조했다. 그래서 첫 곡 “Good News Day”부터 “Starting Over”, “Let’s Go” 등 경쾌한 속도감이 있는 곡에서도 숨이 가쁘지 않다.
이러한 여백은 결국 스티브 콜의 색소폰을 부각시킨다. 다른 어느 앨범에서보다 그의 연주는 노래하는 것 같다. R&B와 펑크 음악을 선보였던 밴드 L.T.D의 1976년도 히트 곡을 연주한 “Love Ballad”가 좋은 예이다. 여기서 그의 색소폰은 존 제임스의 코러스를 배경으로 연주하는데 그것이 정말 노래하는 것 같다.
한편 여백이 깃든 사운드는 스티브 콜이 이번 앨범을 통해 전달하고자 했던 “감사(Gratitude)”의 긍정적인 정서를 보다 효과적으로 전달한다. 색소폰 연주자는 가족의 건강 문제를 극복한 것에서 영감을 받아 앨범을 만들었다고 한다. 그래서 앨범에는 함께 걱정해준 사람들, 문제를 극복하는데 도움을 준 사람들에 대한 감사를 담고 있다. 실제 그는 자신의 기쁨을 앨범에 담았고 그것이 감상자에게도 큰 의미로 다가가기를 바란다고 했다.
이를 위해 세련된 기교나 공간을 꽉 채우는 압도적인 사운드보다는 담백한 사운드와 절제된 연주를 선택한 것은 잘 한 일이었다. 그래서 나는 이전과 유사한 스타일의 음악임에도 이번 앨범이 새롭고 만족스럽다. 잘 만들어진 스무드 재즈의 좋은 예를 모처럼 만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