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alance – Abdullah Ibrahim (Gearbox 2019)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로 이어지는 시간의 흐름을 우리는 벗어날 수 없다. 만약 벗어날 수 있다면 그것은 내가 아닌 또 다른 나가 되는 것이리라. 그런데 자기 동일성이 해체되는데 그것을 두고 시간의 흐름을 벗어난 것이라 할 수 있을까? 시간의 흐름을 벗어날 수 없기에 우리의 현재는 과거의 영향을 받고 또 미래는 우리의 현재에 영향 받는다. 우리가 현재에 지루해하고 늘 새로운 것을 꿈꾸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일 지도 모른다.

음악도 마찬가지다. 우리 삶의 일부인 만큼 음악 또한 과거에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새로운 음악을 만들기란 매우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남아프리카 공화국 출신의 피아노 연주자 압둘라 이브라힘은 새로움을 위해 과거와 단절하려는 대신 끊임 없이 자신의 과거에서 양분을 찾아 현재의 음악을 구축해왔다. 그것도 진부함이 느껴지지 않는 새로운 음악으로서 말이다.

솔로 피아노 연주-몇 곡은 솔로 색소폰 연주-로 채웠던 2014년도 앨범 <The Song Is My Story>에 이어 5년 만에 선보이는 이번 새 앨범에서도 그는 과거를 재조명하여 현재의 음악을 만드는 한편 이를 통해 새로운 미래의 음악을 꿈꾸게 했다. 앨범 타이틀 “균형”은 바로 이 과거, 현재, 미래의 연결과 균형을 의미한다.

그가 의지한 과거는 먼저 오랜 시간, 그러니까 남아프리카 재즈 그룹 재즈 에피스틀스(The Jazz Epistles)의 리더이자 이슬람교로 개종하기 전 달라 브랜드란 이름의 피아노 연주자로 활동할 당시부터 드러냈던 고향 케이프 타운의 토속적인 음악이다. “Jabula”같은 곡이 대표적이다. 넘실대는 리듬과 관악기의 어울림이 사람이 모여 있는 것만으로 즐거운 순박한 축제를 연상시킨다. 꼭 남아프리카에 가보지 않았더라도 어느 뜨거운 지역의 즐거운 하루를 그리게 한다.

한편 자신의 고향 음악을 바탕으로 수용했던 과거 재즈의 그림자 또한 명백히 드러냈다. 예를 들어 클리브 가이튼 주니어의 피콜로와 마샬 맥도날드의 육중한 바리톤 색소폰이 대조를 이루며 뒤뚱거리는 “Skippy”에서는 원 작곡자인 델로니어스 몽크의 그림자가, 베이스의 긴박한 솔로 연주로 시작해 끝까지 치열한 긴장을 유지한 채 질주하는 “Tuang Guru”에는 프리 재즈 시절 오넷 콜맨의 그림자가 드러난다.

그런데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토속 음악이나 재즈의 고전 시대를 느끼게 하는 연주는 워낙 오랜 시간 지속되어 이제는 그의 견고한 전형이 된 부분이지만 여전히 진부하다는 느낌을 주지 않는다. 그것은 결국 그 연주와 음악이 과거를 지향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것은 앨범 수록곡 중 언급한 “Tuang Guru”, 차분한 분위기로 명상적인 느낌마저 드는 “Song For Sathima” 등 이전에 연주되었던 곡을 새로이 연주한 것에서 잘 느낄 수 있다. 이들 곡의 연주는 과거의 되살림이 아니라 과거를 현재에 다시 놓기에 더 가깝다.

한편 과거의 것을 현재에서 다시 바라보는 것은 80대 중반의 삶을 살고 있는 노장 연주자의 인생 정리로 이해할 수도 있겠다. “Devotion”이나 “ZB 2”처럼 차분하다 못해 경건한 느낌마저 드는 피아노 솔로 곡을 들으면 이러한 정리정돈의 인상은 강화된다.

하지만 나는 이 앨범이 노장의 자기 회고로만 이해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여전히 그는 새로운 음악을 만들 수 있는 능력을 지녔기 때문이다. 특히 인상주의 클래식의 압둘라 이브라힘식 소화라 할 수 있는, 나른한 분위기의 “Dreamtime”, 관악기들의 실내악적 어울림과 정제된 솔로로 이루어진 “Nisa”같은 곡은 피아노 연주자의 과거와 상관 없이 그 자체로 신선한 매력에 취하게 한다.

끝으로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아우르고자 하는 압둘라 이브라힘의 의지는 앨범 타이틀 곡에서 그 정점을 이룬다. 여기서 그의 피아노는 베이스, 드럼의 지원 속에 첼로, 하모니카, 플루트와 아름다운 조화를 이룬다. 그리고 그 속에서 남아프리카 공화국 태생으로 인종차별에 반대하여 추방되기도 했던 피아노 연주자의 음악과 삶이 매우 소박하게 연상된다. 모든 것이 바로 지금 하나로 모여 균형을 이루었다고 할까?

최근 그는 미국 국립 예술기금 위원회(National Endowment for the Arts)에서 매년 지정하는 재즈의 대가(Jazz Master)로 선정되었다. 그가 지금까지 했던 음악적 성과를 인정 받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과거에만 머무르지 않고 이렇게 현재를 응시하고 미래를 꿈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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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로 이어지는 시간의 흐름을 우리는 벗어날 수 없다. 만약 벗어날 수 있다면 그것은 내가 아닌 또 다른 나가 되는 것이리라. 그런데 자기 동일성이 해체되는데 그것을 두고 시간의 흐름을 벗어난 것이라 할 수 있을까? 시간의 흐름을 벗어날 수 없기에 우리의 현재는 과거의 영향을 받고...The Balance - Abdullah Ibrahim (Gearbox 2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