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해로 블루 노트 레이블이 창립 80주년이 되었다. 독일 이민자 알프레드 라이언과 프랜시스 울프에 의해 1939년에 설립된 블루 노트는 상승과 하강의 순간이 있었지만 지금까지 재즈의 현재를 지속하고 새로운 미래를 열어왔다. 따라서 블루 노트의 역사는 그대로 1939년도 이후 재즈의 역사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러한 블루 노트 레이블을 주제로 한 다큐멘터리 영화 <블루노트 레코드>가 8월 10일 제 15회 제천국제음악영화제에서 첫 선을 보인 후 공식 개봉된다. 스위스 출신의 영화 감독 소피 후버 감독이 만든 이 다큐멘터리 영화는 블루 노트 레이블의 시작부터 현재까지를 깊이 있는 인터뷰와 자료 영상을 통해 차분하게 정리했다.
영화는 지난 2014년, 블루 노트의 창립 75주년에 맞추어 결성된 블루 노트 올 스타즈의 앨범 <Our Point Of View>의 녹음 현장을 주요 배경으로 삼아 시작된다. 블루 노트 올 스타즈는 트럼펫 연주자 앰브로스 아킨무시리, 색소폰 연주자 마커스 스트릭랜드, 피아노 연주자 로버트 글래스퍼, 베이스 연주자 데릭 허지스, 드럼 연주자 켄드릭 스콧, 기타 연주자 라이오넬 루에케 등 블루노트는 물론 재즈의 현재를 이끌고 있는 젊은 연주자들로 구성되었다. 이들은 인터뷰에서 블루 노트의 오랜 역사에 대한 존경심을 드러내는 한편 그 역사가 다시 새로운 음악을 향해 나아가려는 의지를 제공했다고 밝힌다. 그 중 “혁신적인 사람들과 판도를 바꾼 이들의 레이블”이라는 앰브로스 아킨무시리의 이야기는 블루 노트의 역사와 현재에 끼친 영향력을 가장 잘 드러낸 말이라 하겠다.
이 외에 현재 블루 노트의 수장으로 있는 돈 워스와 색소폰 연주자 루 도날드손과 웨인 쇼터, 피아노 연주자 허비 행콕 등 1950년대부터 블루 노트 레이블에서 활동했고 그 역사를 직접 체험한 노장 연주자들이 레이블의 숨은 일화들을 이야기해준다. 그 가운데 트럼펫 연주자 리 모건의 1964년도 앨범 <The Sidewinder>, 피아노 연주자 호레이스 실버의 1965년도 앨범 <Song For My Father>의 큰 상업적 성공이 배급사들이 유사한 앨범 제작을 강요하게 해 블루 노트 레이블의 존립에 부정적 영향을 주었다는 언급은 충격적이다. 이 사실은 그만큼 알프레드 라이언과 프랜시스 울프가 상업적인 성공보다는 연주자들의 음악적 독립성을 유지하려 했었음을 생각하게 한다.
한편 영화 후반부에 연주자들과 웨인 쇼터, 허비 행콕이 함께 한 “Masqualero”의 녹음 장면이 등장한다. 이 장면은 그 음악적인 훌륭함으로도 극 영화의 절정에 버금가는 깊은 인상을 주는 동시에 블루 노트 레이블이 신구 세대가 함께 했기에 오랜 시간 지속될 수 있었음을 느끼게 해준다.
사실 블루 노트의 80년 역사-제작 당시는 75년의 역사-를 86분여의 영화에 담기란 불가능하다. 설령 가능하다고 해도 그 경우 단순한 나열 이상이 아닐 것이다. 이에 소피 후버 감독은 노장 연주자들과 블루 노트와 관련된 제작자와 역사가 등의 인터뷰를 통해 미드 럭스 루이스, 델로니어스 몽크, 버드 파웰, 존 콜트레인, 마일스 데이비스 그리고 허비 행콕과 웨인 쇼터 등을 중심으로 소박하게 레이블의 혁신적 역사를 정리했다.
그런 과정에서 연주자들의 생전 연주나 인터뷰 영상, 프랜시스 울프가 녹음 현장에서 찍은 수 많은 사진, 리드 마일스가 제작한 앨범 커버 등이 리드미컬하게 등장해 보는 재미를 선사한다. 그 가운데 알프레드 라이언과 프랜시스 울프가 한 라디오에 출연해 했던 인터뷰는 블루 노트를 보다 생생하게 느끼게 한다. 또한 최근 세상을 떠난 녹음 엔지니어 루디 반 겔더, 2대 제작자 부루스 룬드발의 등장 또한 색다른 감흥을 불러 일으킨다.
한편 이 영화는 “Beyond The Notes”라는 부제를 지니고 있다. 원래 허비 행콕의 연주에 대해 리오넬 루에케가 한 말인데 영화는 이 말처럼 단순히 한 레이블의 역사를 정리하는 것에 멈추지 않는다. 재즈가 늘 시대와 호흡했음을 이야기한다. 그래서 숨가쁘게 새로운 음악이 만들어졌음을 말한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재즈를 힙합과 연결한 것이 흥미롭다. 단지 블루 노트가 1993년 허비 행콕의 곡을 샘플링해서 화제를 모았던 랩 그룹 Us3의 앨범 <Hand On The Torch>를 제작했기 때문은 아니다. 또한 색소폰 연주자 루 도날드손의 1968년도 앨범 <Mr. Shing-A-Ling>에 담긴 “Ode To Billie Joe”의 드럼 연주-이드리스 무하마드가 한-가 어 트라이브 콜드 퀘스트, 카니예 웨스트 등 수 많은 힙합 뮤지션의 곡에 샘플링 되었기 때문도 아니다. 나아가 로버트 글래스퍼, 앰브로스 아킨무시리가 힙합을 수용한 앨범을 제작하고 켄드릭 라마의 앨범에 참여하는 등 혁신적이고 열린 자세로 재즈의 폭을 넓히고 있기 때문도 아니다.
물론 이러한 사실 또한 재즈와 그 역사에 의미가 있지만 영화는 그보다 재즈의 본질인 자유, 시대와의 호흡이 힙합으로 건너갔음을 강조한다. 특히 흑인의 문화적 환경 변화가 이러한 상황을 만들었다고 말한다.
그렇다고 영화가 재즈가 죽었다고 이야기한다는 것은 아니다. 그보다 영화는 연주자들의 입을 빌어 블루 노트가 늘 개방적인 자세로 장르의 장벽을 부수어 1939년의 시드니 베쉐에서 현재의 노라 존스에 이르는 역사를 만들었듯이 현재의 연주자들 또한 같은 자세로 보다 많은 사람들이 재즈를 알고 접하게 해야 한다고 한다.
따라서 이 영화는 꼭 재즈 애호가들만을 대상으로 하지 않는다. 재즈 나아가 흑인 음악이라는 문화의 차원에서 본다면 꼭 재즈를 좋아하지 않아도 재미있게 볼 수 있다. 그런 중 재즈에 관심을 갖게 될 지도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