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혹은 처음이라는 말에는 늘 설렘이 담겨 있다. 다음 혹은 두 번째, 세 번째로 이어지는 연속의 잠재성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첫 번째나 처음의 순간은 어느 곳으로 귀결될 지 모르는 여정의 시작을 의미하고 우리는 그 출발의 순간을 기억하려 한다.
그렇기에 나는 이 출발 시점과 지점을 결정하는 것에 신중 하려 한다. 조급함과 과욕에 섣불리 한 발을 내딛지 않으려 한다. 물론 이후 방향을 수정할 수는 있다. 그러나 그 연둣빛 순간은 되돌릴 수는 없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연주자들이 자신의 학창 시절에 녹음한 앨범을 첫 앨범으로 들고 나오는 것에 아쉬운 마음을 갖고 있다. 이들 졸업 앨범들은 출발보다는 정리의 의미가 더 강하다. 그리고 음악 이전에 연주자 자신의 실력을 단번에 드러내려 하는 조급함, 과욕이 우선하곤 한다. 물론 이 자체도 기록될 가치가 있다. 그래도 “첫 앨범”이라는 단 한번의 기회를 소비할 정도는 아니다.
어쩌면 장승호도 “첫 번째”의 중요성을 두고 오랜 시간 고민했던 것 같다. 미국에서 공부하면서 이 앨범에 담긴 곡들을 녹음해 놓고 약 3년을 묵혔으니 말이다. 그렇다면 결국 그 또한 손쉬운 첫 앨범 발표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한 것일까? 그 자신은 그런 마음을 가질 수는 있겠지만 나는 결과적으로는 잘한 결정이었다고 말하고 싶다. 물론 쿼텟 연주 두 곡, 트리오 연주 두 곡, 그리고 자신의 베이스가 부각된 트리오 연주 두 곡으로 앨범을 구성한 것에서 그 또한 준비된 모든 것을 단번에 보여주려 했다는 인상을 준다. 6곡에 40분을 넘지 못하는 비교적 짧은 분량 또한 한 곡 정도는 더 있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을 불러일으킨다.
그러나 앨범에 담긴 6곡이 주는 인상은 강렬하다. 단순히 숙제를 하는 마음으로 혹은 오디션을 보는 마음으로 펼친 연주의 수준을 넘어선다. 다른 편성, 다른 구성이 보여주기가 아니라 연주, 작곡, 밴드 리딩 등 베이스 연주자가 지닌 여러 능력이 악흥의 순간에 자유로운 비율을 이룬 결과임을 깨닫게 해준다. 그래서 쿼텟 편성으로 녹음한 “The Passover”와 “Song For The Journey”에서 긴장을 밀어붙여 어울림의 희열로 이끄는 밴드 연주, “Purify My Heart”에서의 목가적인 서정성, 그리고 앨범에서 가장 흥미로운 부분으로 바흐의 “Cello Suite No.5 Prelude”와 빌라로보스의 “Bachianas Brasileiras”를 피치카토 주법으로 전면에 나서 연주한 것까지 여러 스타일, 연주가 이어지지만 그것이 백화점식 나열로 다가오지는 않는다.
또한 장승호의 베이스 연주 외에 다른 멤버들의 연주도 인상적이다. 이들의 참여가 앨범을 풋풋한 졸업에서 야심 가득한 출발로 바꾸었다. 위한 특히 물러 설 때와 나설 때를 적절히 포착하며 인상적인 연주를 이어간 피아노 연주자 심규민은 앨범의 주인공과는 별도의 관심을 가져볼 만하다.
장점이 많은 앨범이다. 그래도 다음에는 조금 더 확고한 주제를 정하고 이를 깊게 파고든 음악을 들고 나오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