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그 자리에 영원히 있을 것만 같은 연주자가 있다. 시간의 흐름을 벗어나 있다고 할까? 음악이 늘 같아서가 아니다. 스타일의 문제도 아니다. 매번 이전과 다른 음악을 선보이는 연주자일수록 탈 시간적인 느낌이 강하다. 새로움이 연주자의 나이를 잊게 하기 때문이다. 앨범을 거듭할수록 음악적으로 더 깊어지면서도 과거와 또 다른 맛의 음악이 연주자의 정체성을 쇄신하면서 신예 같은 신선함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기타 연주자 존 스코필드도 그런 경우다. 이 시대를 대표하는 동시에 많은 후배들이 존경하는 거장의 길을 걷고 있는 이 기타 연주자는 늘 젊음의 향기가 난다. 1970년대부터 활동을 시작해 40년 이상의 이력을 지녔음에도 그는 나보다 앞선 시대의 연주자가 아닌 나와 같은 시대를 살고 있는 연주자로서의 이미지가 강하다. 이것은 그가 하나의 스타일을 고집하지 않고 늘 다른 무엇을 추구했기 때문이다. 당장 근 10년간 그가 선보인 앨범들만 해도 소울 재즈, 펑키 재즈, 포스트 밥, 그리고 컨트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스타일의 음악을 가로지르고 있다. 또한 자신의 워킹 밴드 외에 메데스키, 마틴 앤 우드, 조 로바노, 빈스 멘도사가 이끄는 메트로폴 오케스트라. 잭 드조넷, 래리 그레나디에 등 현존 최고의 개성 강한 연주자들과의 함께 하며 완성도에 있어서도 최선의 노력을 거듭해 왔다.
그래서 2018년에 발매된 이 앨범 <Combo 66>이 존 스코필드의 나이 66세를 기념하는 앨범이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 나는 깜짝 놀랐다. 나는 그를 처음 알게 되었던 80년대, 그러니까 30대의 존 스코필드만을 생각하고 있었다. 그의 앨범을 소홀히 듣지도 않았으면서도 말이다. 시간의 끊김 없이 꾸준히 새로운 앨범, 그것도 새로움 음악을 담은 앨범을 선보인 탓이다.
1951년 12월 26일에 태어난 존 스코필드는 왜 하필 60세나 65세도 아닌 66세를 기념하고자 했을까? 이 또한 나이와 상관 없이 색다른 그의 사고방식 때문이었다. 사실 그는 자신의 66세 생일을 기념하는 앨범을 먼저 생각하고 이를 위해 곡을 쓰지는 않았다. 그저 영감이 떠오르는 대로 곡을 썼을 뿐이다. 그리고 앨범을 녹음해야겠다는 결심이 섰을 무렵 그는 자신의 나이가 66세가 되었음을 깨달았다. 그리고 “66”이란 숫자가 재즈 연주자에게는 가장 멋진 숫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냇 킹 콜, 척 베리, 롤링 스톤즈 등 많은 재즈, 블루스, 록 아티스트들이 연주하고 노래했던 리듬 앤 블루스의 명곡“Route 66”이나 세계적인 인기를 누렸던 브라질 출신 세르지오 멘데스가 이끌었던 그룹 “Brasil ’66”같은 선례 때문이었다. 참으로 단순하면서도 기발한 생각이 아닌가?
그렇다면 기타 연주자는 어떻게 자신의 66세 생일을 기념했을까? 그것은 현재 자신이 펼치고 있는 다양한 스타일의 음악-포스트 밥, 소울 재즈, 펑크, 록, 블루스 등을 종합하는 것이었다. 여러 스타일의 음악이 모여 존 스코필드라는 기타 연주자의 음악적 정체성을 이룸을 보여주려 했다고 할까? 그렇다고 곡에 따라 스타일의 구분을 명확히 나누어 자신의 음악을 백화점 식으로 나열하려 하지는 않았다. 그보다는 여러 스타일을 가로지르고 아우르는 그의 음악이 지닌 가장 매혹적인 지점을 명확히 드러내는 것에 더 집중했다.
앨범은 “Can’t Dance”로 시작한다. 춤을 잘 추지 못하는 존 스코필드 자신을 위한 것이라는 이 곡은 제목과 달리 도시적 질감의 그루브로 가득하다. 울렁이는 오르간을 중심으로 베이스와 드럼이 규칙적으로 흔들리는 리듬 섹션과 퍼지(Fuzzy)한 톤으로 제목과 달리 춤을 추듯 흐르는 솔로 기타의 어울림이 1960년대의 소울 재즈를 그리게 한다.
이러한 흔들림은 역시 오르간을 중심으로 리듬 섹션이 요동치고 존 스코필드의 기타가 감칠맛 가득한 멜로디를 이어가는 “New Waltzo”를 거쳐 컨트리 웨스턴과 블루스가 어우러진 끈적한 “Dang Swing”의 흥겨움으로 자연스럽게 이동한다.
“Can’t Dance” 다음에 배치된, 어쩌면 앨범 타이틀 곡일 수도 있는 “Combo Theme” 또한 템포는 상대적으로 느슨해졌지만 기분 좋은 흔들림이 돋보이는 곡이다. 그러나 연주의 전개는 블루지한 맛과 록적인 질감이 곳곳에서 드러남에도 한층 전통적인 재즈에 가깝다. 존 스코필드가 보다 진지하게 재즈의 전통을 염두에 두고 연주할 때 나타났던 바로 그 재즈다. 이러한 전통적인 스타일의 연주는 앨범의 마지막에 배치된 “King Of Belgium”에서 다시 나타난다. 2016년 세상을 떠난 벨기에 출신의 세계적 하모니카 연주자 투츠 틸레망을 위해 썼다는 이 곡은 멜로디적인 맛이 강한 기타와 피아노 솔로와 가볍고 여유로운 스윙감이 절로 손가락을 까딱거리게 한다.
한편 포크 록 듀오 사이먼 앤 가펀클의 “Scarborough Fair”에 대한 허비 행콕의 새로운 코드 진행 위로 마일스 데이비스를 그리게 하는 멜로디를 써 완성했다는 “Icons at the Fair”는 포스트 밥 스타일의 연주로 재즈의 전통을 현재로 연장하려는 존 스코필드의 의지를 느끼게 한다.
존 스코필드가 자신의 손녀 딸을 위해 썼다는 “Willa Jean”은 유쾌하고 가벼운 분위기의 솔로만큼이나 밝고 화사한 멜로디가 돋보이는 곡이다. 작곡 동기처럼 손녀 딸에 대한 기타 연주자의 애정, 행복감을 맛보게 한다. 매혹적인 멜로디와 밝고 화사한 질감은 “Uncle Southern”으로 이어진다. 이 곡은“Dang Swing”처럼 컨트리적인 정서가 강하다. 그러나 이미 2016년도 앨범 <Country for Old Men>에서 확인했듯이 남부의 백인 정서에만 머무르지는 않는다. 과거 레이 찰스가 소울을 바탕으로 컨트리 곡을 노래했던 것처럼 끈적거리는 오르간과 늘어지는 기타 솔로로 재즈적인 컨트리 웨스턴 음악을 들려준다. 그런데 이 이질적인 요소의 결합이 참 아름답다. 특히 넉넉한 분위기가 마음을 편안하게 한다.
이 넉넉함은 “I’m Sleeping In”에서 최고조에 달한다. 존 스코필드 최고의 발라드 앨범이었던 2011년도 앨범 <A Moment’s Peace>을 연상시키는 이 곡은 곡 제목처럼 나른한 연주가 햇살 좋은 일요일 오후의 낮잠을 그리게 한다. 음악을 듣다가 나도 모르게 그 편안함에 취해 정신을 잃는 달콤한 잠의 시간 말이다.
이처럼 존 스코필드의 이번 앨범은 그동안 그가 보여주었던 다양한 스타일의 음악의 매력적인 부분을 종합하고 있다. 그런데 이 성공적인 종합에는 그와 함께 한 연주자들의 역할도 컸다. 기타 연주자는 이번 앨범을 오랜 시간 함께 한 드럼 연주자 빌 스튜어트 외에 피아노와 오르간을 연주한 제랄드 클레이튼, 베이스 연주자 비센트 아처를 새로이 합류시킨 쿼텟 편성으로 녹음했다. 익숙함과 새로움을 적절히 불어넣기 위한 합리적인 선택이었다. 그리고 그 기대대로 세 연주자는 존 스코필드를 주인공으로 돋보이게 하는 것에 머무르지 않았다. 기타 연주자와 이야기를 주고 받고, 다양한 스타일을 능숙히 소화하고 결합하는 한편 경쾌함과 나른함을 오가는 정서의 상승과 하강을 매끄럽게 타면서연주와 그 결과물로서의 음악의 입체감을 높였다. 물론 이들 외에 존 스코필드와 어울릴 수 있는 연주자들은 많다. 그러나 연주자가 달랐다면 음악 또한 지금 우리가 듣고 있는 것과 달랐을 것이다.
보통 나이가 들어 자신이 그 동안 했던 일을 뒤돌아보는 것은 삶의 정리라는 의미가 강하다. 이제는 조금 편안하게 휴식하며 삶의 마지막을 준비하겠다는 느낌이 강하다. 그러나 존 스코필드의 이번 앨범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2019년 현재 이제는 67세, 더욱이 우리 나이로는 69세가 되었다지만 그가 음악을 생각하고 연주하는 자세는 여전히 젊다. 음악적 나이는 청춘인 것이다. 따라서 이번 앨범에 담긴 정리의 느낌은 새로운 시기로 이행하기 위한 것이리라 생각한다. 다시 그는 충동적인 청춘처럼 자신이 하고 싶은 그 음악으로 다시 새 앨범을 준비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