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즈 뮤지션은 늘 새로움을 지향한다. 그것은 타인과 나의 비교가 아닌 나의 과거와 현재의 비교를 통해 이루어지곤 한다. 이것은 나만의 스타일이라 할 수 있는 익숙함과 이곳이 아닌 다른 곳을 향하는 신선함이 공존할 수 있게 해준다. 게다가 과거와 현재의 시간차가 클수록 그 비교는 깊어지고 익숙함과 신선함의 공존은 더욱 매력적이 되곤 한다.
마들렌느 페루의 음악 여정이 바로 그런 경우다. 그녀의 첫 앨범 <Dreamland>는1996년에 발매되었다.그러니 앨범만을 두고 보면 올 해로 23년의 경력이 그녀 뒤에 놓이는 셈이다. 그런데 강산이 두 번이나 바뀌고도 남는 기간 동안 그녀가 선보인 앨범은 지금 우리가 듣고 있는 앨범 <Anthem>을 포함해 고작 8장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다고 중간에 긴 휴식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조급해하지 않고 2,3년 간격으로 앨범을 만들다 보니 그렇게 되었을 뿐이다. 대신 그녀는 복고적인 맛이 물씬 풍기는 목소리-때로는 빌리 할리데이를 그리게 하는-를 중심으로 앨범마다 새로운 음악을 들려주었다. 그것은 스탠더드 재즈곡이나 타인의 곡을 노래하거나 자작곡을 노래하는 것으로, 기존 스타일에 컨트리, 블루스, 펑키 사운드를 가미하는 것으로, 제작자의 교체로 이루어지곤 했다. 이러한 새로움의 추구 과정을 통해 그녀는 자신의 음악이 재즈로만 규정지어질 수 없음을, 그보다는 마들렌느 페루라는 한 개인의 음악으로 이해되어야 함을 보여주었다.
이번 앨범도 마찬가지다. 이번 앨범에서도 그녀는 여전히 아련하고 포근한 목소리로 재즈와 포크 그리고 프랑스 샹송을 가로지르며 노래했다. 그리고 이러한 익숙함 위에 새로운 요소를 가미했다. 그 새로움의 핵심은 자신의 내면에서 밖으로 시선을 돌렸다는 것에 있다. 그녀는 2016년 도널드 트럼프가 당선되었던 미국 대통령 선거 당시의 혼란을 보고 이번 앨범을 기획했다. 알려졌다시피 당시 미국 대통령 선거는 다른 어느 때보다 후보간의 대립이 심했으며 스캔들에 가까운 다양한 뉴스들이 쉴 새 없이 쏟아져 미국인들은 물론 이를 지켜보는 세계인들을 혼란에 빠트렸다. 그녀 또한 일련의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서 자신의 관점, 자신의 생각을 드러내야 할 필요를 느꼈다. 그렇다고 정치인처럼 남에게 설교하듯 이야기할 수는 없는 법. 대신 그녀를 자신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음악을 사용하기로 했고 그것이 지금 우리가 듣고 있는 앨범이 된다.
한편 사회적인 주제였기 때문일까? 보다 설득력 있게 자신의 생각을 전달하기 위해 마들렌느 페루는 혼자가 아니라 생각을 공유하는 동료들과 함께 공동으로 작곡하기로 했다. 그 결과 4명의 뛰어난 작곡가가 그녀와 팀을 이루었다. 그녀의 앨범 대부분을 제작해 준 제작자이자 베이스 연주자인 랠리 클 라인, 보니 래이트, JD 사우더, 부르스 스프링스틴, 레드 핫 칠리 페이퍼스, 라나 델 레이 등과 작업했던 작곡가이자 제작자 그리고 뛰어난 건반 연주자인 패트릭 워렌, 사라 바렐리스, 레너드 코헨, 티나 터너 등과 함게 했던 드럼 연주자겸 작곡가 브라이언 맥레오드, 조니 미첼, 쉐릴 크로우 등과 작업했던 기타 연주자겸 작곡가 데이비드 배어발트가 그 멤버였다. 이들은 한 자리에 모여 생각을 나누고 정서를 공유하며 그녀와 함께 곡을 쓰는 한편 직접 연주에 참여하기도 했다.
그렇게 팀 단위로 씌어진 곡들은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에 대해 다시 바라보게 한다. 예를 들어 직장을 잃었다는 가사로 시작하는 “Down On Me”는 경제적인 파탄이 가져오는 비극적 상황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나아가 “The Brand New Deal”에서는 경제적 불평등, 권력의 불공정 등으로 이루어진 현대 사회에 대한 신랄한 비평을 건네고 이것은 “The Ghost Of Tomorrow”에서의 꿈과 희망을 담보하지 못하는 내일에 대한 불안, 실망으로 이어진다.
또한 2차 대전 이후 최고의 현대 시인이라 평가 받았던 존 애시베리가 2017년에 세상을 떠난 것에서 영감을 받아 작곡되었다는 “All My Heros”에서는 애도하는 것에서 나아가 시간의 흐름 속에서 사라진, 어둠 속에서도 빛났던 존경의 대상에 대한 갈망을 드러낸다. 또한 굉활한 바다를 표류하면서 자식에게 자장가를 불러주는 여인을 그린 “Lullaby”는 전쟁과 학살을 피해 막막한 바다에 배를 띄우고 손으로 바닷물을 가르는 절박한 난민의 모습을 그리게 한다.
이 외에 잃어버린 어린 시절, 자아에 대한 상실감을 담은 “On My Own”, 약물 중독자들을 통해 현실 도피 욕구를 표현한 “Party Time”등의 곡들도 혼돈의 시대에 대한 마들렌느 페루의 시선을 반영한다.
그렇다면 마들렌느 페루의 시선은 현재를 불안하고 어지러운 것으로만 보는 것일까? 그녀는 이 혼돈의 시대가 계속되리라는 생각에 절망하고 있을까? 그녀가 영웅이 죽고, 사람들이 삶의 터전을 잃고, 경제적 불평등이 성행하고 내일의 희망이 사라지는 현실에 실망하고 때로는 피하고 싶어하는 것은 맞다. 그러나 한편으로 그녀는 이러한 답답한 현실을 불평만 하는 것이 아니라 음악을 통해 사람들을 위로하고 새로운 희망을 주는 것이 자신의 역할임을 자각하고 있는 것 같다.
앨범 타이틀 곡 “Anthem”이 그렇다. 이 곡은 그녀와 동료들이 쓴 곡이 아니다. 그녀의 우상 레너드 코헨의 곡이다. 마들렌느 페루는 2004년도 앨범 <Careless Love>에서 “Dance Me To The End Of Love”를, 2013년도 앨범 <The Blue Room>에서 “Bird On The Wire”를 노래하는 등 평소 레너드 코헨에 대한 애정을 드러내왔다.
그런 중 이번에 노래한 “Anthem”은 그녀가 레너드 코헨의 노래와 가사에서 현재의 위안 내일의 희망을 찾았음을 의미한다. 레너드 코헨처럼 ‘모든 것에는 균열이 있고 그 사이로 빛은 들어오게 되어있다.’고 나지막이 속삭이듯 노래한다. 그래서 정치인의 설득이나 강요가 아니라 자식이 스스로 생각하고 깨닫기를 바라는 부모 같은 느낌을 준다.
미래에 대한 희망적 메시지는 “그래 많은 재앙들이 있다는 것은 알아. 그러나 시간이 영혼을 진정시킬 것이다. 그러니 춤을 추자”는 “We Might As Well Dance”, 평안한 일요일 오후 풍경을 통해 행복을 제시한 “On A Sunday Afternoon”으로 이어진다. 특히 “We Might As Well Dance”는 레너드 코헨에 대한 마들렌느 페루의 답이라 할 정도로 위로와 희망의 정서가 많이 통한다.
개인적으로 앨범에서 가장 매혹적인 곡은 “Liberté(자유)”이다. 이 곡의 가사는 프랑스 시인 폴 엘뤼아르의 시 “Liberté(자유)”로 마들렌느 페루와 래리 클라인이 곡을 작곡하며 이에 맞추어 시를 편집해 사용했다. (참고로 그녀는 10대 시절 프랑스에서 살았기에 프랑스어를 잘 한다.)
시인은 21연으로 된 이 시를 1942년 독일이 프랑스를 점령하고 있던 시절에 썼다. 따라서 시에서 말하는 자유는 독일로부터의 자유를 의미한다. “자유”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고 그저 “나는 너의 이름을 쓴다”고만 표현한 자유는 겉으로는 덤덤한 듯한 마들렌느 페루의 노래에 의해 독일이 아닌 평범한 우리네 삶을 옥죄고 있는 모든 부조리로부터의 자유로 치환된다.
마들렌느 페루가 현재의 혼돈을 그저 지적하고 사람들을 절망하게만 하려 하지 않았다는 것은 희망적인 가사 외에 앨범 전반에 흐르는 편안하고 온화한 사운드로도 드러난다. 예를 들면 “Lullaby”의 경우 가슴 시린 풍경을 담고 있지만 담담한 드럼과 몽환적인 울림의 기타 그리고 그 위를 꿈결처럼 흐르는 마들렌느 페루의 노래는 불안, 절망을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애써 완화하고 위로하려는 것 같다. 경제적 파탄을 주제로 하고 있는 “Down On Me”나 내일을 유령으로 생각한 “The Ghost Of Tomorrow”에 흐르는 블루스의 여유로운 분위기도 마찬가지다. “The Brand New Deal”은 어떤가? 현실에 대한 날카로운 시선과 달리 곡의 흐름은 매우 경쾌하고 감각적이다. 이 외에 “On My Own”, “We Might As Well Dance” 등의 곡도 가사와 상관 없이 매우 달달한 멜로디와 부드러운 사운드가 밝고 편안한 상태를 그리게 한다.
참, 예전부터 궁금해서 물어보고 싶었는데…여기 포스팅을 sns로 연동할 순 없을까요?
훌륭한 포스팅이 너무 많아서, 마구마구 퍼나르고 싶습니다만..
원래 공유버튼이 있었습니다. 아주 오래 전부터요. ㅎ
그랬던 것이 몇 달 전 수정을 하다보니 공유버튼이 원하지 않는 위치에 자꾸 놓이게 되더군요.
그래서 삭제했습니다.
그런데 필요로 하신다니 일단 아무 문제 없는 페이스북과 메일, 프린트 버튼을 넣었습니다.
카카오, 밴드 등을 위한 버튼은 연구좀 해보겠습니다. ㅎ
읏..그랬었군요.ㅋㅋ 그치만, 다시 버튼을 넣어주시다니 독자에 대한 배려 감사합니다!
그런데, 사실은…. 제가 페북이 아닌 트위터를 하는 관계로 카카오,밴드 연구하실때 같이 해주시면 안될까요?
잘 부탁드립니다~(__)(^^)
트위터는 넣기 쉽네요. 추가했습니다. ㅎㅎ
오~ 감사합니다! ^^b
시간이 개인의 영혼을 진정시킬순 있겠지만, 사회적 영혼을 진정시킬 수 있을까싶습니다.
아픈 역사가 되풀이 되는건 다 이유가 있겠지요.
그럼에도 마들렌느 페루 음색이 너무 좋습니다.
언어로 표현되는 비판적 의식은 그 자체로 선명하지만 널리 퍼져나가지 못하는 한계를 지닌다고 생각합니다만,
마들렌느 페루의 음색을 거치니 작곡의도가 더 많은 리스너에게 공감을 일으킨다는 생각을 하게 되네요.
음악의 힘이란 그런 것이겠지요. 은근히 오래 메시지가 전달된다는 것.
다만 이 경우는 영어를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지만요.
저도 그런 능력이 되지 않아서….ㅎ
사회적 영혼도 결국 개인의 영혼의 합이라 생각하면 진정 가능하지 않을까 싶네요.
물론 그 합에서 이를 아우르는 그 이상의 떨림이 생기는데 그것은 조금 더 시간이 필요하지만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