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문화는 매년 돌아오는 생일 중에 환갑(61세), 칠순 혹은 고희(70세), 팔순 혹은 산수(80세) 등이 되면 평소보다 큰 잔치를 벌이곤 한다. 물론 요즈음은 잔치보다 가족 식사나, 여행 등으로 대체하기도 하지만 그 때에도 주인공은 잔치를 한번쯤은 고민한다.
잔치에는 주인공의 가족과 친구, 지인은 물론 자식의 친구와 지인까지 참석한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모여 떡, 고기, 과일 등을 먹고 술을 마시며 흥겨운 시간을 만들어 낸다.
우리네처럼 환갑, 칠순, 팔순 등의 특별한 생일이 있는지는 모르지만 서구 문화 또한 생일이면 의례 많은 사람들이 모여 즐거운 시간을 갖는다. 그런데 주인공이 유명한 음악인이면 특별한 공연이나 앨범이 기획되기도 한다. 80세, 85세, 90세에 기념 공연을 하고 앨범을 선보였던 토니 베넷이 대표적이다. 이들 공연이나 앨범은 혼자가 아니라 동료와 후배가 참여해 그와 즐거이 함께 노래한 것으로 채워졌다.
이번 앨범도 그와 같은 기획으로 이루어졌다. 조니 미첼의 75세 생일을 맞아 유명 뮤지션들이 한자리에 모여 공연을 펼치고 이를 녹음한 것. 게다가 공연은 촬영되어 지난 2월 7일 기념 공연이 열렸던 미국 LA의 뮤직 센터에서 상영되기도 했다.
1943년 캐나다의 앨버타에서 태어난 조니 미첼은 19장의 정규 앨범을 발표하며 포크를 기본으로 록, 팝 그리고 재즈까지 아우른 싱어송라이터이다. 사회 참여적인 것부터 개인적인 정서까지 포용하는 작곡은 그녀를 이 시대 최고의 싱어송라이터로 자리매김하게 했다. 실제 대중 문화지 롤링 스톤은 2015년 그녀를 역대 최고의 작곡가 중 9번째로 그녀를 꼽기도 했다.
개인적 성공 외에 그녀는 밥 딜런, 닐 다이아몬드, 마돈나, 비요크, 테일러 스위프트, 케이트 페리 등 포크를 넘어 여러 장르의 셀 수 없는 많은 뮤지션들에게 영향을 주었다. 이에 맞추어 “Both Sides Now”, “A Case Of You”, “River”, “Big Yellow Taxi”를 비롯한 그녀의 곡들이 다양한 스타일로 다시 노래되고 연주되었다.
따라서 그녀가 여러 동료 및 후배 뮤지션들이 그녀의 75세 생일을 축하하는 공연을 하고 이를 앨범으로 발매한 것은 매우 당연한 일이라 하겠다.
이번 앨범은 지난 2018년 11월 6일과 7일 이틀에 걸쳐 미국 LA의 뮤직 센터에서 있었던 조니 미첼의 75세 생일 축하 공연을 정리한 것이다. 특히 두 번째 날인 7일은 조니 미첼의 바로 그 75세 생일이었다. 베이스 연주자 브라이언 블레이드의 트리오 멤버를 주축으로 기타 연주자 마빈 스웰, 그렉 레이스, 트럼펫 연주자 앰브로스 아킨무시리, 색소폰 연주자 밥 쉐퍼드 등 유명 연주자들이 연주를 담당한 이 공연에는 조니 미첼의 경력과 영향력에 걸맞게 다양한 장르의 유명 뮤지션들이 출연했다.
먼저 주목해야 할 것은 제임스 테일러, 그래엄 내쉬, 크리스 크리스토퍼슨, 에밀루 해리스 등 조니 미첼과 같은 시기에 청춘 시절을 보낸 동료 뮤지션들의 노래다. 이들은 조니 미첼에게 곡을 받거나 함께 활동했다. 이번 공연 이전에 이미 그녀를 위한 헌정 앨범에 참여하기도 했다. 말하자면 서로의 속을 다 아는 오랜 친구인 셈이다.
그래서인지 이 동료 뮤지션들의 노래는 오랜 친구에 대한 우정과 어찌 이리 시간이 흘렀을까? 하는 아쉬움 같은 것이 공존한다. 제임스 테일러가 노래한 “River”와 “Woodstock”의 경우 친구를 만나기 위해 기나긴 길을 걸어 온 여행자의 피로와 안도가, 크리스 크리스토퍼슨이 브랜디 칼라일과 함께 부른 “A Case Of You”에서는 그 노쇠한 목소리에서 지난 청춘 시절에 대한 회한 같은 것이 느껴진다. 에밀루 해리스가 노래한 “The Magdalene Laundries”도 독백하는 듯한 분위기에서 조니 미첼의 노래에서 발견되곤 했던 내적인 우수가 느껴진다.
한편 공연에 참여한 모든 뮤지션이 조니 미첼의 곡을 노래한 것과 달리 그래엄 내쉬는 자신이 속했던 그룹 크로스비, 스틸스, 내쉬 앤 영 시절의 히트 곡 “Our House”를 노래했다. 이 곡이 담긴 그룹의 1970년도 앨범 <Déjà Vu>에서 조니 미첼의 “Woodstock”을 노래했었음에도 이 곡이 아닌 “Our House”를 선택한 것이 흥미로운데 혼자지만 관객들과 함께 원곡처럼 즐겁게 노래하는 것을 보면 곡에 담긴 사랑과 위안의 정서를 조니 미첼에게 보내려 했음이 느껴진다.
로스 로보스, 샤카칸, 다이아나 크롤, 루퍼스 웨인라이트, 글렌 한사드, 브랜디 칼라일, 노라 존스, 라 산타 세실리아의 보컬 라 마리솔 등의 후배 뮤지션들은 장르적 다양성에서 관심을 끈다. 포크, 컨트리, 록, 재즈, R&B, 라틴 음악 등 다양한 장르에서 활동하는 인물들이기에 그만큼 조니 미첼의 음악적 영향력이 대단함을 엿보게 한다.
이들은 평소 자신들의 스타일 그대로 노래했다. 로스 로보스는 평소 그들이 했던 라틴 리듬이 돋보이는 흥겨운 분위기로 “Dreamland”를 노래했다. 한편 “Help Me”를 노래한 샤카 칸이나 “Both Sides Now”를 노래한 실도 평소처럼 소울과 재즈의 어디쯤에 속하는 스타일로 조니 미첼을 노래했다. 피아노를 연주하며 각각 “Amelia”와 “Count and Spark”를 노래한 다이아나 크롤과 노라 존스도 자신만의 개성을 명확히 담아 노래했다. “All I Want”와 “Blue”를 노래한 루퍼스 웨인라이트나 “Coyote”를 노래한 글렌 한사드, “Down To You”를 노래한 브랜디 칼라일도 우리에게 알려진 그들의 모습 그대로 노래했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모두 각자의 방식으로 노래했지만 그 안에서 조니 미첼의 그림자가 느껴진다는 것이다. 실제로는 녹음되지 않았지만 조니 미첼이 후배들의 노래를 들으며 함께 노래했을 것만 같은 느낌을 준다.
그렇다면 조니 미첼은 자신을 위한 공연에 참석했을까? 살아 있는 뮤지션에 대한 헌정 공연은 보통 그 주인공이 참여한 동료 및 후배들과 몇 곡 정도는 같이 노래하곤 한다. 그런데 이 앨범에는 조니 미첼이 등장하지 않는다. 정말 공연장에 없었던 것일까? 그렇지 않았다. 조니 미첼 또한 공연 장에서 동료와 후배 뮤지션들의 노래를 들으며 감사해했고 즐거워했다.
하지만 무대에 올라 노래할 수는 없었다. 2015년 뇌병변에 걸려 회복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처음보다는 호전되었다고는 하지만 노래를 할 수 있는 정도는 아니라 한다. 그래서 아쉽지만 무대에 올라 생일 케이크 촛불을 끄는 것으로 대신했다고 한다. 어쩌면 그녀는 동료와 후배들과 함께 노래할 수 없는 것을 아쉬워했을 지도 모른다. 또한 그런 그녀의 모습에 무대에 선 뮤지션들 모두 가슴 아파했을 것이다. 그런 서로의 마음이 전해져 조니 미첼이 다시 노래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바란다. 그래서 80세 생일 축하 공연에서는 보다 더 즐거운 잔치를 연출했으면 좋겠다.
전 러브액츄얼리를 통해서 조니 미첼을 알게 되었습니다. 엠마톰슨이 극중(…)남편에게 받은 이 앨범을 들으면서 눈물훔치던 장면이..갑자기 떠오르네요. 엠마톰슨의 쓸쓸함이 그대로 느껴졌던 장면이었죠. 포스팅 읽고나니 이유는 모르겠지만 기분이 착찹해지는..^^
조니 미첼과의 작별을 준비해야 한다는 사실, 그와 함께 러브 액추얼리의 기억도 더 멀어진다는 사실 때문이 아닐까 싶네요….
그러게요,^^ 답글을 달다 보면 제 나이듦을 자각하게 됩니다. 그래도 나이듦이 나쁘지 않습니다, 저에겐. 그냥 삶의 경험이 풍부해진다는 느낌이 더 강하게 드네요. 중년을 살다보면 삶의 씁쓸함, 착착함 정도는 ㅋ;; 느껴줘야 되지 않을까 싶네요.
나이가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죠. 적절히 중심에서 멀어지는 것도 받아들여야 하고…아쉽지만 또 그만큼 새로이 얻는 것도 있으니…
^^ 그렇죠. 하지만 전 중심이었던 적이 없어서..ㅋ 중심으로부터의 박탈감, 소외감은 크게 느끼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인지 전 매 순간 일어나는 모든 경험들에 감사하고 있지만..인생은 앞으로 어떻게 펼쳐질지 모르죠. 좋은 일이면 충분히 즐기고 나쁜일이면 잘 극복하길 바랄뿐.
왜요. 누구나 세상의 중심이엇던 적이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설령 실제는 주변이었다 해도요. ㅎ 물론 중요한 것은 그것과 상관 없이 현재를 잘 받아들이고 살아가는 것이겠지만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