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후반을 거쳐 1990년대 우리 가요는 보다 세분화되고 다양화된 길을 걷기 시작했다. 그와 함께 재즈의 어법을 차용한 아티스트와 그들의 앨범이 여럿 등장했다. 보컬 그룹 낯선 사람들도 그 중 하나였다.
1990년 유재하 음악 경연대회에서 대상을 받은 고찬용을 중심으로 그가 활동했던 인천대학교의 음악 동아리 “포크라인” 멤버였던 이소라, 허은영, 신진과 명지대학교 음악동아리 주리랑 출신의 백명석 등 다섯 명의 보컬로 이루어진 이 그룹은 미국의 맨하튼 트랜스퍼나 뉴욕 보이스를 연상시키는 보컬의 절묘한 어울림과 도시적 감각이 깃든 재즈적인 사운드로 그룹 이름만큼이나 낯설고 새로운 음악을 선보였다.
이러한 신선한 음악에는 앨범의 전 곡을 쓴 고찬용의 역할이 절대적이었다. 그는 화성과 멜로디의 진행 모두에서 남들과 확연히 구분되는 그만의 번뜩임을 드러냈다. 특히 자신을 포함한 다섯 명의 보컬이 지닌 질감의 차이를 반영하면서도 절묘하게 어울리게 한 것은 그 자체로 재즈적이었다. 그 가운데 멤버들의 유쾌한 어울림과 느긋한 솔로가 어우러진 타이틀 곡, 고찬용의 노래 뒤로 빅 밴드의 브라스 섹션처럼 보컬 하모니가 화사하게 작렬하는 “동그라미, 네모, 세모”, 오로지 목소리만으로 탄력적인 리듬이 돋보이는 사운드를 연출해 낸 “비닐 우산”, 스캣의 매력을 유감 없이 드러낸 “해의 고민” 등 재즈의 산뜻함으로 가득한 곡들은 고찬용의 탁월한 작곡 능력에 감탄하게 했다.
한편 이 앨범은 이소라라는 걸출한 여성 보컬의 등장을 알리는 역할도 했다. “낯선 사람들”,“왜 늘”, “무대 위에” 등의 가사를 쓰기도 한 그녀는 한번 들으면 쉽게 잊기 어려운 개성 강한 목소리로 다섯 목소리의 어울림에 양감을 불어 넣는 한편 완성된 솔로로서의 면모를 보여주었다. 관능적인 재즈 보컬의 이미지를 투영한 “무대 위에”가 특히 그랬다. 실제 이후 그녀는 이 앨범의 편곡에 참여했던 김현철의 영화 음악 <그대 안의 블루>(1992), <네온 속으로 노을지다>(1994)를 거쳐 솔로 1집 <이소라 vol.1>으로 음악적 개성과 대중적 매력 모두를 겸비한 보컬의 길을 걷게 되었다.
이 앨범이 재즈적인 색감을 지니게 된 데에는 고찬용 외에 김현철, 정원영, 조동익, 김광민 등 고찬용에 앞서 당시 가요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고 있던 인물들의 편곡도 큰 역할을 했다. 도시적인 펑키 사운드를 바탕으로 한 “왜 늘…?”, 하얀 도화지에 그림을 그리는 듯한 서정적인 피아노반주만으로 이루어진 “색칠을 할까”, 퓨전 재즈의 질감을 훌륭히 표현한 “동그라미, 네모, 세모”, 아련하고 나른한 풍경을 그리게 만드는 “버드나무가 있는 공원” 등은 각각 고찬용의 음악인 동시에 정원영, 김광민, 김현철, 조동익의 것이기도 했다. 한편 박성식, 이영경, 이정식, 장기호 등 재즈에 정통한 실력파 연주자들의 참여 또한 앨범이 시대를 벗어난 완성도를 지니는데 특별한 역할을 했다.
화사하고 산뜻한 감성으로 채워진 낯선 사람들의 음악은 분명 새로운 것이었다. 하지만 새롭다 못해 그룹이름만큼이나 그 음악이 낯설었던 것일까? 앨범은 그에 상응하는 대중적 지지를 얻지 못했다. 그 결과 이소라를 대신해 차은주가 가세했던 두 번째 앨범 <낯선 사람들 2집>이후 그룹의 활동은 멈추었다.
추천곡 – 낯선 사람들
그룹의 이름과 같은 제목의 이 곡은 보컬의 절묘한 어울림과 재즈적 어법을 차용한 사운드를 추구하는 낯선 사람들의 음악적 전형을 정의한다. 고찬용의 기타와 김병찬의 베이스가 중심이 되어 남궁연의 타악기와 정원영의 건반이 감칠맛을 내는 스윙감 강한 사운드와 스피커의 좌우를 활용해 각각의 목소리가 또렷이 들리면서도 절묘하게 어울리는 낯선 사람들의 노래는 맛 좋은 재즈인 동시에 신선한 감수성을 지닌 가요였다.
*한국 대중음악 100선에 41위로 선정되어 작성한 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