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커스 밀러는 이 시대 최고의 일렉트릭 베이스 연주자이다. 그의 탄성도 높은 연주는 우리의 심장 박동을 펑키하게 바꿀 수 있는 힘이 있다. 그로버 위싱턴 주니어을 비롯해 허비 행콕, 조지 벤슨, 데이빗 샌번, 디지 길레스피, 데이브 그루신, 마일스 데이비스 등의 유명 재즈 연주자들은 물론 에릭 클랩튼, 빌리 아이돌, 브라이언 페리, 엘튼 존, 도널드 페이건 등의 팝 록 스타들, 그리고 아레사 프랭클린, 샤카 칸, 마이클 잭슨(!), 머라이어 캐리, 스눕독, 제이 Z, 비욘세에 이르는 R&B, 소울의 스타들이 그와 함께 한 것도 출중한 베이스 연주력 때문이었다.
그 뿐만이 아니다. 그는 작, 편곡은 물론 앨범 제작에도 탁월한 능력을 발휘해왔다. 1986년 27세의 나이에 재즈 사의 명반으로 남아 있는 마일스 데이비스의 앨범 <Tutu>의 제작을 담당한 것을 비롯해루더 밴드로스, 웨인 쇼터, 데이빗 샌번, 조지 벤슨, 버나드 라이트, 나탈리 콜, 테이크 6, 프랑스 갈 등 여러 장르의 유명 연주자와 보컬들의 앨범 제작을 담당했다. 그와 함께 자신의 곡을 앨범에 함께 수록하기도 했다. 이 뿐만이 아니다. 뛰어난 작곡 능력으로 1990년의 <하우스 파티>를 비롯해 지난 2017년의 <마샬>에 이르기까지 수십 편의 영화 음악을 담당하기도 했다.
이러한 이력을 보면 마커스 밀러는 최고의 일렉트릭 베이스 연주자이자 뛰어난 작, 편곡 자, 앨범 제작자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다재다능함은 오히려 그의 활동에 어려움을 주기도 했다. 연주자로서의 능력, 제작자로서의 능력, 작, 편곡 자로서의 능력 모두를 한꺼번에 잘하기가 그리 쉬운 일이던가?
나는 그의 매력이 가장 돋보이는 앨범을 선택하라 한다면 아직도 <The Sun Don’t Lie>, <Tales> 등 그의 초기 앨범들을 꼽는다. 작곡이나 전체 사운드의 매무새도 좋지만 무엇보다 연주자로서의 매력이 가장 잘 담겨 있기 때문이다. 이에 비해 2000년대 초, 중반의 앨범들은 완성도는 괜찮지만 상대적으로 마커스 밀러다운 맛이 부족했다. 재즈 연주자는 늘 과거의 자신과 단절하고 새로운 것을 향해 나가야 한다는 것을 너무 의식한 결과가 아니었나 싶다.
그러나 2010년대에 접어들면서 그는 다시 연주력과 작, 편곡 능력 그리고 제작 능력 모두가 잘 발휘된 앨범을 만들어냈다. 지난 2017년에 발표한 <Afrodeezia>는 그 정점이었다. 자작곡은 물론 클래식 곡까지 자기 식으로 소화한 이 앨범은 아프리카 흑인이 노예가 되어 미국으로 건너온 여정에 대한 탐구를 표현한 것이었다. 여기에는 유네스코 지정 평화 아티스트로서 “노예의 길 프로젝트”대변인 역할을 한 것이 영감을 주었다.
보통 완성도 높은 앨범을 선보인 후에는 다음 앨범의 부담이 따르기 마련이다. 특히 성공한 앨범의 주제가 특별했다면 그 부담은 더 커진다.
그래서 나는 베이스 연주자가 지금 우리가 듣고 있는 이 앨범을 발표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그리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Afrodeezia>만큼의 완성도만 유지하면 좋겠다는 생각만 했다. 하지만 결과는 내 예상을 뛰어넘었다. 전작의 노선을 연장하면서도 설득력 강한 새로운 주제와 한층 더 매력적인 연주로 신선한 음악을 담고 있었다. 감히 말하지만 또 다른 마커스 밀러의 또 다른 역작으로 기억되지 않을까 싶다.
전작 <Afrodeezia>가 아프리카를 떠난 흑인의 여정을 담았다면 이번 앨범은 그 반대로 일종의 귀향을 담고 있다. 그렇다고 아프리카의 토속적인 음악을 반영했다는 것이 아니다. 긴 시간, 여정에도 불구하고, 아니 그러한 과정 속에서도 변하지 않은 “흑인적인 것”을 다시 정리했다는 것이다. 그리고그 흑인적인 것이란 재즈를 기본으로 힙합, 소울, 펑크, R&B 등 현재 흑인 음악을 가로지르는 것을의미한다.
여러 흑인 음악을 아우르기 위해 그는 다양한 연주자와 보컬을 초빙했다. 먼저 도리스 데이의 1956년도 히트 곡을 “Que Sera Sera”에는 벨기에 출신의 보컬 셀라 수가 소울 가득한 스모키 보이스로 원곡과 완전히 다른 분위기를 만드는데 일조했다. 그리고 뉴올리언즈 스타일의 펑키 재즈의 인기를 만들어낸 트롬본 쇼티가 “T’s”에서 흥겨운 트롬본 솔로를 펼쳤으며 “Trip Trap”에서는 역시 펑키한 연주에 정통한 러셀 건이 뜨거운 햇살처럼 작렬하는 브라스 섹션의 편곡자로 이름을 올렸다. 또한 “Sublimity ‘Bunny’s Dream’”에서는 남아프리카 출신으로 스무드 재즈와 R&B 쪽에서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조나단 버틀러가 기타와 노래로 여유 가득한 평화로운 분위기를 만들어 냈다. 나아가 “Preacher’s Kid”에서는 R&B, 가스펠, 재즈 등을 넘나드는 남성 보컬 그룹 테이크 6가 참여해 예의 절묘한 화음으로 편안하고 경건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이 외에 스무드 재즈 색소폰 연주자 커크 웨일럼, 2014년 델로니어스 몽크 컴페티션 우승자로 최근 활발한 활동으로 주목 받고 있는 트럼펫 연주자 마르퀴스 힐이 여러 곡에서 존재감을 빛냈다.
한편 앞서 언급한 귀향의 여정은 아프리카에서 마커스 밀러가 위치한 미국으로 돌아오는 것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더 범위를 좁히면 세렝게티에서 도시로의 돌아옴에 해당한다. 앨범 전체에 흐르는 도시적인 정서가 이를 말한다. 감각적인 사운드로 채워진 앨범의 모든 곡은 문명의 편의를 지닌 화려한 도시의 삶을 절로 연상시킨다. 즐거운 파티가 있고 그 속에서의 정겨운 만남이 있는 낭만 가득한 도시의 삶 말이다.
그런데 이러한 도시적인 정서는 사실 마커스 밀러의 초기 앨범, 그러니까 앞서 언급했던 <The Sun Don’t Lie>, <Tales> 등의 앨범에서 멋지게 드러났던 것이다. 따라서 이번 앨범의 돌아옴은 기본으로 돌아감으로도 이해할 수 있다. 그것은 태핑, 슬래핑 등 일렉트릭 베이스의 모든 기교를 활용한 감각적인 연주를 유감 없이 펼치는 것을 통해 드러난다. 트롬본 쇼티가 만들어 낸 브라스 섹션과 춤을 추듯 연주를 주고 받는 “Trip Trap, 어스 윈드 & 파이어의 1977년도 앨범 <All ‘n All>에 수록된“Runnin’”을 차용한 곡으로 폭 넓은 역동성으로 펑키함을 만끽하게 해주는 “Keep ‘Em Runnin’”, 리듬과 멜로디를 아우르는 능란한 손놀림으로 곡 제목처럼 베이스 연주의 한계란 없다고 말하는 듯한 “No Limit”, 마치 노래나 랩을 하는 듯한 느낌으로 솔로를 펼친 “7-T’s” 등이 좋은 예이다. 이들 곡에서 연주 자체의 즐거움을 강조한 연주는 정말 매혹적이어서 흑인 음악의 현재를 정리한다거나 기본으로의 회귀 같은 주제를 생각할 필요 없이 그 자체로 앨범 감상의 이유를 제공한다.
한편 탄력 가득한 베이스 연주 외에 그는 “Sublimity ‘Bunny’s Dream’”나 “Untamed”같은 곡에서는 탄력적인 상하의 움직임이 아닌 수평적인 움직임으로 여유롭고 평화로운 분위기를 만들어 내기도 했다. 그리고“Someone To Love”를 비롯한 여러 곡에서는 베이스를 앞세운 코러스 정도의 수준이지만 보컬까지 담당해 정서적인 부분을 강화하고 악기처럼 사운드의 층을 두텁게 하기도 했다. 이 또한 앨범 감상의 또 다른 재미를 제공한다.
이처럼 마커스 밀러의 이번 앨범은 흑인 음악의 현재를 파악하고 그 도시적인 감각을 표현했다는 주제로 매력적이면서 그것을 훌륭한 연주로 구현했다는 점에서, 다시 말해 연주와 주제가 훌륭한 조화를 이루었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을만하다. 특히 한동안 작, 편곡과 제작에 상대적으로 가려져 있어 아쉬움을 주었던 그의 연주력을 제대로 맛보게 한다는 점에서 그의 음악을 꾸준히 들어온 애호가들에게는 무척이나 반가운 선물과도 같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