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토니아 출신의 피아노 연주자 크리스티안 란달루의 ECM에서의 첫 앨범이다. 그는 1978년 생으로 독일, 영국, 미국에서 공부하고 현대 재즈를 이끌고 있는 여러 유명 연주자들과 함께 활동한 탄탄한 실력의 연주자이다. 이번 앨범만 해도 미국의 기타 연주자 벤 몬더, 핀란드 출신의 피아노 연주자 마르쿠 오나스카리와 트리오를 이루고 있어 그의 음악적 활동 반경이 폭 넓음을 느끼게 해준다.
그는 수많은 색으로 분산되는 빛처럼 촘촘하고 화려한 연주로 오랜 경험을 통해 만들어진 비범함을 드러낸다. 하지만 그의 관심은 자신의 화려한 연주가 아닌 고밀도의 트리오 연주, 나아가 이를 통해긴장 가득한 공간감과 회색조의 서정미가 돋보이는 음악의 구현에 있는 것 같다. 특히 그 음악은 양감을 지녔으면서도 세 악기의 자유로운 어울림에 따라 부단히 외양이 바뀌는, 말하자면 젤리 같다. 느슨한 듯하면서도 탄탄히 묶인 사운드가 감상을 매번 새롭게 한다.
하지만 크리스티안 란달루의 피아노보다 벤 몬더의 기타가 전체를 결정하는 리더처럼 보일 때가 많다는 것은 음악적으로 이해되면서도 한편으로는 아쉽다. “Lumi”, “Adaptation” 등 연작으로 이루어진 곡에서 특히 그렇다. 두 연주자는 이미 듀오 앨범을 통해 음악적 신뢰를 구축한 적이 있다. 그래서 이런 선택이 가능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기타로 인해 피아노 연주자의 일부가 가리워진 듯한 느낌이 든다면 한번쯤 비중을 조율할 필요가 있지 않았나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