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의 피아노 연주자 엔리코 피에라눈지는 평소 클래식적인 색채를 드러내곤 했다. 여기서 나아가 클래식 작곡가들의 곡을 자기 식으로 연주하기도 했다. 2016년 드럼 연주자 앙드레 세카렐리와 베이스 연주자 디에고 잉베르와 함께 했던 <Ménage à Trois>에서도 그는 바흐, 드뷔시, 사티, 풀랑, 슈만 등의 클래식 작곡가들의 곡을 연주해 호평을 받았다.
이후 같은 멤버로 연주한 이번 트리오 앨범에서는 클로드 드뷔시의 곡들만을 연주했다. 작곡가의 사후 1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한 기획이 아니었나 싶다. 그런데 이전 트리오 앨범과 달리 이번 앨범에서는 필요에 따라 다비드 엘 말렉의 색소폰이나 시모나 세베리니의 보컬이 가세했다는 것이 색다르게 다가온다. 아무래도 한 작곡가의 다양한 곡들을 소화하기에는 편성을 다르게 가져가는 것이 보다 합리적이리라 생각했던 것 같다.
앨범에서 피아노 연주자와 트리오는 “Valse Romantique”, “Ballade”, “La fille aux cheveux de lins”, “Golliwogg’s Cakewalk” 을 비롯한 대표곡을 연주했다. 그런데 제목을 “Bluemantique”, “L’autre ballade”, “Cheveux” “Mr. Golliwogg” 등으로 조금씩 다르게 가져갔다. 그와 함께 원곡의 클래식적인 면을 반영하면서도 재즈의 맛을 보다 많이 강조했다. 그렇다고 보통의 클래식을 연주한 재즈처럼 유명 클래식 곡의 테마를 재즈 리듬 위에 얹는 것에 만족하지 않았다. 마치 클래식 원곡에 내재된 새로운 가능성을 드러내려 했다는 듯 클래식과 재즈가 섞인 연주를 펼쳤다. 희미하기는 하지만 드뷔시가 그의 생전에 인기를 얻었던 초기 재즈에 영향을 받아 작곡 활동을 했었음을 생각하면 재즈와 클래식의 혼용은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그럼에도 클래식보다 재즈적 색채가 훨씬 강하다는 것은 평소 피아노 연주자의 이력을 따라온 감상자들에게는 의외로 다가올 수도 있겠다. 피아노 연주자가 이보다 한층 더 클래식적 서정을 강조한 연주를 할 수 있는 능력을 지녔기 때문이다. 특히 색소폰이 가세한 쿼텟 연주는 원곡과 상관 없이 재즈 자체를 지향한다. “Mr. Golliwogg” 같은 곡이 대표적이다.
반면 Nuit d’étoile”, “Rêverie” 등 보컬이 가세한 곡은 재즈와 클래식의 중간 지점을 향하면서도 여기에 샹송과의 접점도 보여준다. 어쩌면 보컬 곡이야 말로 피아노 연주자에게서 많은 감상자들이 바랬던 엔리코 피에라눈지식 클래식적 재즈 연주의 모범이 아닐까 싶다. 시모나 세베리니의 신비롭고 청순한 보컬이 유럽적인 분위기를 연출하는데 그것이 (음악적 차원에서) 매우 인상적이다. 게다가 정서적 매혹 또한 상당하다. 안개 짙은 유럽의 이른 아침을 생각하게 한다.
글쎄. 나는 피아노 연주자가 클래식과 재즈의 만남을 생각하며 앨범을 녹음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원곡의 정서가 재즈적으로 변형되고, 그러면서도 재즈적인 틀 안에서 클래식이 효과적으로 활용될 수 있음을 보여주려 했다고 생각한다. 그랬다면 앨범은 일정 부분 이상의 성과를 보인다고 말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