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래드 멜다우가 바흐를 연주했다. 요즈음은 재즈 연주자가 클래식 곡을 연주하는 일이 흔하기에 그가 바흐를 연주한 사실은 그리 특별한 일이 아닐 수 있다. 게다가 그는 스탠더드 곡 외에 라디오헤드, 오아시스, 사운드가든 등의 록을 독자적으로 연주하곤 했다. 그와 마찬가지로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피아노 연주자는 록을 연주할 때 했던 것처럼 단지 클래식의 테마를 차용하고 나머지는 재즈의 방식을 따라 연주하는 식으로 바흐를 연주하지 않았다. 먼저 그는 바흐의 “평균율 클라비어 조곡” 중 전주곡과 푸가 5곡을 있는 그대로 클래식적인 관점에서 연주했다. 이에 대한 클래식 애호가들의 평가가 어떨지는 모르지만 재즈 연주자의 바흐 연주라 욕먹을 정도는 아니라 생각한다. 바흐가 어쨌건 브래드 멜다우보다 크게 느껴지니 말이다.
이들 곡 다음으로 브래드 멜다우는 자신의 연주를 이어간다. 사실 클래식 곡을 연주하고 여기서 영감을 받아 연주하는 것은 이미 엔리코 피에라눈지, 에두아르 페를레, 댄 테퍼 등이 했었다. 그것도 먼 과거의 일이 아니다. 그러므로 이 또한 새로운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브래드 멜다우의 연주는 특별한 감흥을 선사한다. 바흐에서 영감을 받았다고는 하지만 그의 연주는 원곡에서 아주 멀리 떨어진 지점을 향한다. 바로크 시대에서 2018년 현재로 순식간에 이동한 듯한 음악이다. 그와 함께 재즈, 블루스 등 다른 음악 요소가 가미되어 현대적인 브래드 멜다우의 솔로 연주라는 생각을 먼저 갖게 한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그러면서도 바흐의 그림자가 곳곳에서 드러난다는 것이다. “After Bach Rondo”같은 곡이 특히 그렇다. 수 많은 가능성 중에 절대적이다, 결정적이다 싶은 길을 제시한 듯한 바흐의 조화로움이 자유로운 연주 속에 왼손과 오른손의 어울림을 통해 환영처럼 드러났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그래서 시간 차가 현격히 느껴지는 연주의 맞물림임에도 마치 한 시기에 연주된 듯한 느낌을 준다.
물론 브래드 멜다우는 이 앨범을 한 시기에 녹음했다. 그로 인한 스튜디오라는 공간적 동질감이 영향을 주기도 했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말하는 한 시기의 느낌은 이것이 아니다. 현재만큼이나 바흐의 시대에도 브래드 멜다우의 솔로 같은 연주가 가능했을 것이라는 느낌을 준다는 것이다. 바흐가 뛰어난 작곡가 이전에 탁월한 즉흥 연주자였다는 것을 생각하면 좋을 것 같다.
그렇다고 브래드 멜다우가 바흐가 선택하지 않았을 다른 가능성을 탐구하는 마음으로만 연주했다는 것은 아니다. 엄연히 브래드 멜다우의 연주는 그 자신이 선택에 의한 것이다. 따라서 나는 앨범을 듣고 나서 투명한 셀로판지에 그려진 그림 두 장을 겹침으로 인해 새로운 그림이 만들어지는 것을 생각했다. 브래드 멜다우와 바흐의 모습이 겹쳐진 그림이랄까?
시작은 그의 음악에 담긴 바흐의 영향이나 바흐가 이 시대에 남긴 영향을 말하려는 것이었을 지도 모른다. 확실히 앨범의 시작과 끝에 자작곡 “Before Bach Benediction”, “Prayer For Healing”을 배치한 것을 보면 그런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그 시작과는 별개로 결국 브래드 멜다우는 어떤 소재라도 새로운 방향으로 곡을 전개시킬 수 있는 재즈 연주자라는 것이 명확히 드러났다. 테마를 연주하고 그와 관련된 솔로를 펼친 후 다시 테마로 돌아오는 전통적인 방식은 아니지만 바흐를 연주하고 이에 영감을 받은 별도의 연주를 펼치는 것은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나아가 이 앨범은 재즈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클래식처럼 연주한 솔로 연주는 재즈일까? 과거에는 클래식 연주자도 뛰어난 즉흥 연주를 펼쳤다는데 그렇다면 이 또한 클래식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렇다고 장르 구분을 무의미하다고 생각할 필요는 없다. 그보다는 모든 음악은 통할 수 있다는 것이 핵심이라 생각한다. 물론 여기에는 큰 전제가 필요하다. 간극을 메울만한 상상력이 풍부한 연주자여야 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