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출신의 피아노 연주자 케코 포르나렐리는 미셀 페트루치아니의 영향을 받은 듯한 활력과 시정 넘치는 음악으로 시작해 2010년대에 접어 들면서는 E.S.T의 영향이 느껴지는 사운드를 바탕으로 극적인 맛이 강한 음악을 선보여왔다. 그렇다고 선배들의 그림자만을 따른 것은 아니었다. 어디까지나 결과물로서의 음악은 그만의 것이었다. 과거 비밥 연주자들이 같은 양식에서 각기 다른 음악을 선보였던 것처럼 말이다.
이번에 새로이 발매된 다섯 번째 앨범도 그렇다. 2014년도 앨범 <Outrush>부터 함께 한 조르지오 벤돌라(베이스), 다리오 콘제도(드럼)와 트리오를 이룬 이번 앨범에서도 케코 포르나렐리는 피아노 외에 펜더 로즈와 신디사이저를 연주했다. 그래서 전반적인 사운드는 2014년도 앨범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 전의 2011년도 앨범 <Room Of Mirrors>와도 질감의 측면에서 유사하다. 일렉트로 어쿠스틱한 질감의 리듬을 바탕으로 다채로운 건반 연주가 현대적인 분위기를 연출하는데 멀리 E.S.T의 그림자가 다시 느껴진다.
하지만 록 적인 느낌의 육중한 리듬-배드 플러스가 생각나기도 한다-, 샘플링과 건반악기를 통해 만들어진 우주적인 질감, 그리고 이를 통한 한층 진해진 명암의 대비는 그가 이전 앨범의 반복이 아니라 자신이 생각한 길로 한층 더 나아간 음악을 추구하고 있음을 느끼게 한다. 특히 우주적인 공간 안에 처연한 느낌마저 주는 피아노 솔로의 이어짐은 피아노 연주자가 자신만의 서사를 음악을 통해 표현하려 했음을 생각하게 한다. 즉, 단순히 질감으로만 승부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랬다면 E.S.T의 아류로 머물고 말았을 것이다. 앨범 타이틀 곡과 “Apnea”에서 스트링 오케스트라를 기용해 서사적인 깊이를 더욱 강조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서사적인 이유로 이번 앨범은 개별 곡 단위로 들어도 상관 없지만 앨범 전체를 같이 들으면 그 맛이 더 좋다. 앨범 타이틀 “Abaton”이 의미하는 보통의 사람들이 접근하기 어려운 성소(聖所)를 향해 나아가는 여정을 절로 그리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