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즈 연주자들이 클래식 곡들을 연주하는 것은 이제는 특별한 일이 아니다. 클래식을 연주한 재즈 앨범들은 무수히 많다. 바흐의 음악 또한 자주 재즈로 연주되었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다른 클래식 작곡가들과 달리 바흐의 유명 곡을 연주하는 차원을 넘어선, 바흐의 특정 작품 집을 소재로 한 앨범들이 많다는 것이다. 바흐가 엄격한 대위법과 자유로운 푸가 및 변주기법을 제시한 작곡가인 동시에 뛰어난 즉흥 연주자였다는 사실이 재즈 연주자들의 관심을 끌었기 때문인 것 같다. 브래드 멜다우의 이번 앨범 <After Bach>도 바흐를 재즈적 상황에 놓는 것 이상의 창의적인 연주를 담고 있다. 그래서 이를 기회로 바흐를 연주한 재즈 앨범들 중 주목할만한 몇 장을 소개해 본다.
Preludes And Fugues From The Well-Tempered Clavier, Book 1 – John Lewis (Philips 1984)
피아노 연주자 존 루이스는 1984년 바흐의 “평균율 조곡 1번”을 넉 장의 앨범에 걸쳐 녹음했다. 앨범은 존 루이스의 피아노 솔로 연주로만 이루어지지 않고 바이올린, 비올라, 기타, 베이스 등이 필요에 따라 가세한 실내악적인 연주로도 녹음되었다. 이것은 재즈적인 필요가 아니라 바흐의 원곡이 지닌 여러 성부의 선율을 보다 명확하게 드러내려는 의도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색다르면서도 바흐의 정서를 벗어나지 않은 음악을 만들어 냈다.
한편 존 루이스는 1987년 아내이자 하프시코드 연주자인 미리아나 루이스와 함께 바흐의 “골드베르그 변주곡”을 연주한 앨범 <Chess Game>을 발표하기도 했다. 두 장으로 제작된 이 앨범은 바흐의 곡을 그대로 연주하고 여기에 재즈적 상상력을 가미한 새로운 연주가 덧붙여진 형태로 이루어졌다. 이 또한 함께 감상해 보기 바란다.
Blues On Bach – Modern Jazz Quartet (Atlantic 1974)
모던 재즈 쿼텟은 재즈를 연주할 때도 클래식적인 우아함을 드러내곤 했다. 그것이 피아노-비브라폰-베이스-드럼으로 이루어진 이 쿼텟의 인기요인기도 했다. 쿼텟은 1973년 11월 바흐의 주제로 한 앨범 <Blues On Bach>를 녹음했다. 앨범에서 쿼텟은 ‘평균율 조곡’, ‘Jesu, Joy of Man’s Desiring’ 등 바흐의 곡들을 제목까지 새로이 부여하며 보다 재즈적인 맛이 강조된 연주를 펼쳤다. 그러면서도 존 루이스가 피아노 외에 하프시코드를 연주하는 등 바흐적인 느낌 또한 살리려 했다.
Play Bach No. 1 – Jacques Loussier (Decca 1959)
바흐와 재즈를 이야기 할 때 자끄 루시에를 어찌 빼놓을 수 있을까? 이 피아노 연주자는 평생에 걸쳐 바흐의 음악을 연구하고 이를 수 많은 앨범과 공연을 통해 재즈로 연주해왔다. 그 가운데 그 시작을 알렸던 1959년도 앨범 <Play Bach No. 1>는 발매 당시 커다란 충격을 주었다. 단지 바흐를 재즈로 연주했기 때문만이 아니었다. 그 이상의 수준 높은 완성도 때문이었다. 피에르 미슐로(베이스), 크리스티앙 가로(드럼)와 함께 피아노 연주자는 바흐의 ‘평균율 조곡’이 애초에 재즈를 위한 곡이었던 것처럼 완벽하게 바꾸어 연주했다. 게다가 연주 자체가 무척이나 깔끔하고 신선했다.
Jazz Bach – Eugen Cicero (Timeless 1985)
클래식 피아노 연주자의 길을 걷다가 재즈로 삶의 길을 바꾼 유진 시세로는 오스카 피터슨의 영향이 느껴지는 경쾌한 스윙감과 재치 가득한 솔로로 유명 클래식 곡들을 재즈로 바꾸어 연주하기를 즐겼다. 그 가운데 1985년도 앨범 <Jazz Bach>에서는 평소 그의 발랄한 모습과 조금은 다른 음악을 들려주었다. 피아노 트리오에 빌헬름 크룸바흐의 오르간이나 하프시코드가 함께 했기 때문인데 그래서 재즈의 흥겨움과 바흐의 경건함이 어우러져 색다른 느낌이 났다. 재즈의 매력과 클래식의 우아함이 잘 어우러진, 후대에 클래식을 연주한 수 많은 트리오의 모범이라 할 수 있는 것이었다.
Jazz Sebastian Bach vol.1 – Swingle Singers (Philips 1963)
프랑스 출신의 스윙글 싱어즈는 남녀 각 4명으로 구성된 혼성 보컬 그룹이었다. 이들은 베이스 드럼만을 배경으로 각 성부의 어울림이 아름다운 노래로 인기를 끌었다. 그 시작을 알린 첫 앨범 <Jazz Sebastian Bach>은 지금까지도 그룹을 대표하는 앨범으로 남아 있다. 이 앨범에서 그룹은 바흐의 ‘평균율 조곡’, ‘푸가의 기법’ 등을 스캣으로만 노래했다. 이것은 바흐의 대위법, 푸가 및 변주 기법에 잘 어울리는 것이었다. 특히 ‘푸가의 기법’ 중 “Contrapunctus 9”의 노래는 바흐 음악의 매력과 그룹의 청량하고 재즈적인 성향을 두루 맛보게 해주는 대표 곡이라 할만하다.
Bach: Plucked/Unplucked – Edouard Ferlet, Violaine Cochard (Alpha 2015)
프랑스 출신의 피아노 연주자 에두아르 페를레도 꾸준히 바흐의 음악을 재즈적 관점에서 탐구하고 있다. 먼저 그는 2012년도 솔로 앨범 <Think Bach>에서 바흐의 곡을 먼저 연주한 후 이에 영감을 얻은 즉흥 연주를 펼쳤다. 3년 뒤 하프시코드 연주자 비올랜 크로샤르와 함께 한 앨범 <Bach: Plucked/Unplucked>에서도 바흐를 편곡에서 출발한 자유로운 연주로 재즈 연주자로서의 바흐를 상상하게 했다. 여기서 하프시코드는 클래식적인 맛을 유지하는 역할을 했다.
The Goldberg Variations/Variations – Dan Tepfer (Sunnyside 2011)
피아노 연주자 댄 테퍼도 앨범 <The Goldberg Variations/Variations>을 통해 바흐의 ‘골드베르그 변주곡’에 자신의 해석을 더한 연주를 선보였다. 앨범에서 그는 타이틀처럼 바흐의 골드베르그 변주곡의 32곡을 연주하고 그 뒤에 같은 코드, 리듬을 배경으로 새로운 즉흥 변주를 더했다. 그렇게 해서 바흐의 음악에 내재된 우주적인 공간과 유사하면서도 다른 새로운 공간을 제시했다. 마치 평행 우주를 창조했다고 할까?
Goldberg – Uri Caine Ensemble (Winter & Winter 2000)
피아노 연주자 유리 케인은 모차르트, 베토벤, 말러, 바그너, 슈만 등의 클래식을 자유로운 상상력으로 새로이 연주해왔다. 그 가운데 바흐의 ‘골드베르그 변주곡’을 주제로 한 앨범 <Goldberg>는 그 정점이라 할만했다. 앨범에서 그는 ‘골드베르그 변주곡’을 탱고, 보사노바, 왈츠, 가스펠, 테크노 등의 다양한 음악 문화, 헨델, 비발디, 라흐마니노프, 모차르트, 현대 음악, 재즈 등의 다양한 음악 사조로 변주했다. 세상의 모든 음악으로 변주했다고 할 수 있겠는데 그 결과 세속적인 바흐, 수학적 엄격함 뒤에 감추어진 우연적인 바흐가 드러났다.
Play Bach – The Classical Jazz Quartet (Vertical Jazz 2002)
클래시컬 재즈 쿼텟은 케니 배런(피아노), 스테폰 해리스(비브라폰), 론 카터(베이스), 루이스 내쉬(드럼)으로 구성된 프로젝트 그룹이었다. 이들은 2002년도 앨범 <Play Bach>에서 네 연주자는 바흐의 ‘브란덴부르그 콘체르토’, ‘Jesu, Joy Of Man’s Desiring’, ‘인벤션’ 등의 곡을 산뜻한 쿨 재즈 스타일로 연주했다. 그렇다고 단순히 바흐의 곡에서 테마만을 취해 일률적으로 스윙하는 리듬에 얹힌 연주는 아니었다. 편성에서 유사함을 발견할 수 있듯이 쿼텟의 연주는 조금 더 경쾌해지고 더욱 현대화된 모던 재즈 쿼텟 같았다.
Bach: Renovation – 조윤성 (Sound Sketch 2009)
우리 피아노 연주자 조윤성도 앨범 <Bach: Renovation>을 통해 바흐에 대한 자신만의 재즈적 관점을 담은 연주를 펼쳤다. 앨범에서 그는 피아노 솔로로 바흐의 ‘Two Part Invention’을 원곡보다 두 배 정도 느리게 연주했다. 그런데 단순해 보일 수 있는 그 느린 연주는 절대적인 느낌이 강한 바흐의 음악을 인간적 애상, 동경의 정서를 담은 것으로 바꾸었다. 늘어난 여백 사이로 연주자의 풍부한 감성이 배어든 것이다. 그것이 바로 앨범 타이틀이 의미하는 ‘혁신’이었다.
전 1, 2, 6, 7, 8을 들었습니다만, 존 루이스와 에드와르 페를레 연주가 제일 좋더라고요. 한동안 계속 리플레이해서 듣게 되더라고요.^^
존 루이스는 우아하고 에두아르 페를레는 사왜하다고 할까요? 각각 다른 맛이 있지요.
그래서 같은 곡이라도 계속 다른 연주를 찾게 되나봅니다.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