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 지난 시간에는 비밥과 쿨 재즈를 비교해서 공통점과 차이에 대해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래서 음악을 좀 들어보셨나요?
문: 예. 쳇 베이커, 마일스 데이비스, 존 콜트레인, 스탄 겟츠, 리 코니츠, 제리 멀리건, 쉘리 만 등의 음악을 들어봤습니다.
답: 비밥과 쿨 가리지 않고 들어보셨네요.
문: 예. 차이가 느껴지기는 했지만 확실히 쿨과 비밥은 비슷한 면이 많더라고요. 특히 하드 밥과 쿨 재즈가 비슷한 면이 많은 것 같아요. 그래도 찰리 파커나 디지 길레스피 같은 비밥 연주자들의 음악은 워낙 기교가 돋보여서 다르다라는 느낌이 있는데 하드 밥은 그래도 다르더라고요.
답: 여기엔 시대적인 부분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쿨 재즈와 하드 밥이 서로 공존한 시간이 많았거든요. 그나저나 신기하지 않으세요? 처음에는 뭐가 뭔지 모르겠다고 제게 말했던 분이 지금은 쿨 재즈가 어떻고 비밥이 어떻고 또 그 사이 하드 밥이 어떻고를 이야기하고 있잖아요?
문: 그렇네요?
답: 그만큼 열심히 재즈를 듣고 느끼셨다는 이야기입니다. 이제는 혼자서 이것저것 들으셔도 큰 문제가 없겠는데요?
문: 이제는 조금은 뭔가 알 것 같기는 합니다.
답: 다행이네요.
문: 그래도 아직 이해가 가지 않거나 모르는 부분이 많습니다. 오늘도 있는걸요.
답: 뭐죠?
문: 마일스 데이비스의 연주를 이것저것 듣다가 70년대에 녹음된 것들을 들었습니다. 퓨전 재즈라는 것이죠. 그런데 생각보다 듣기 어렵더라고요. 제가 재즈를 처음 들을 때 많은 사람들이 퓨전 재즈부터 들으면 좋다고 했거든요. 그게 듣기 쉽고 편하다고요. 그런데 그게 아니었단 말이죠.
답: 예. 재즈를 처음 들을 때 퓨전 재즈를 추천하는 분들이 많죠. 아마도 퓨전 재즈가 다양한 스타일의 재즈 가운데 가장 재즈적이지 않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문: 재즈가 아니라면?
답: 그러니까 재즈를 잘 모르는 분들이 평소 듣던 음악과 가장 가깝다는 거죠. 그래서 낯선 느낌이 덜하다는 겁니다.
문: 그런데 저는 어려웠던걸요. 참고로 제가 들었던 마일스 데이비스의 앨범은 <Bitches Brew>였습니다.
답: 아하 퓨전 재즈의 탄생을 알린 앨범을 들으셨군요. 예. 이 앨범은 처음에는 듣기가 참 어렵죠.
문: 퓨전 재즈의 명반이라고 해서 들었습니다. 그런데 연주자가 많아서인지 프리 재즈보다 더 어지러운 느낌을 받았습니다.
답: 그럴 겁니다. 퓨전 재즈라고 하지만 아방가르드 재즈에 훨씬 가깝죠.
문: 그럼 왜 퓨전 재즈라 불린 거죠?
답: 그것은 마일스 데이비스가 이 앨범을 녹음할 때 프리 재즈보다는 록과 재즈의 결합을 염두에 두었기 때문입니다. 록과 재즈가 결합되었다는 것에서 퓨전 재즈라 불리게 되었죠. 사실 마일스 데이비스는 프리 재즈의 방법론에 그리 호의적이지 않았습니다. 늘 기성의 것을 거부하고 새로운 형식을 만들기 위해서 노력한 사람이 마일스 데이비스였지만 그렇다고 형식 자체가 붕괴되는 것에는 그리 재미를 느끼지 못했습니다.
문: 그래서 프리 재즈를 받아들이는 대신 퓨전 재즈를 만드는 것을 선택했다는 것인가요?
답: 그런 셈인데 한편으로 생각하면 비밥 이후 재즈의 주요한 스타일은 마일스 데이비스에 의해 만들어졌잖아요? 그런데 프리 재즈는 그가 아닌 색소폰 연주자 오넷 콜맨에 의해 만들어졌단 말이죠? 그래서 마일스 데이비스로서는 다른 사람이 만든 길을 따르는 것이 기본적으로 마음에 들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새로운 길을 개척한 것인데 그래도 그가 제시한 초기 퓨전 재즈는 집단 즉흥 연주 같은 프리 재즈의 방법론을 많이 반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어렵게 들리는 것입니다.
문: 그렇다면 왜 하필 록과 재즈를 결합시킬 생각을 했을까요?
답: 이유는 간단합니다. <Bitches Brew>를 구상할 당시 록이 대중 음악의 중심이었기 때문입니다. 이 무렵은 록의 역사에서 상당히 창조적인 시기였습니다. 프로콜 하럼, 레드 제플린, 딥 퍼플, 예스, 블랙 사바스 등 록의 역사를 장식하게 되는 주요 밴드들이 1968년과 1969년 사이에 등장했거든요. 지금은 프로그레시브 록이나 하드 록도 어렵게 생각하는 분들이 많지만 당시에 이들 음악은 그냥 대중 음악 그 자체였습니다.
문: 그렇다면 당시 록이 아니라 다른 음악이 중심에 자리잡고 있었었다면 그 음악과 결합한 재즈를 마일스 데이비스가 만들었을 수도 있겠군요.
답: 그럴 지도 모르죠. 하지만 마일스 데이비스가 재즈가 대중적 관심을 더 많이 받기를 원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마냥 당시의 대중 음악과 재즈를 결합 시킬 생각을 했다고 보기에는 어려운 부분이 많습니다. 왜냐하면 퓨전 재즈 이전 프리 재즈가 득세했을 무렵 재즈는 이미 대중 음악의 중심에서 멀어졌거든요. 물론 그래서 퓨전 재즈를 만들었다고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마일스 데이비스가 단지 대중적인 측면을 고려했다면 하드 록이 등장하기 전 인기를 얻었던 소울 음악과의 결합을 시도했을 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거든요. 실제 하드 밥 시대의 한 흐름이긴 했지만 소울 재즈라 불리던 음악이 직전에 등장하기도 했음에도 말이죠.
문: 그렇다면 마일스 데이비스가 록에서 어떤 매력을 느꼈기 때문에 재즈와 결합할 생각을 했다는 것이군요.
답: 그렇습니다. 마일스 데이비스는 당시 지미 헨드릭스의 음악에서 퓨전 재즈의 영감을 얻었다고 합니다. 일렉트릭 기타에 대중이 열광하는 것에도 큰 흥미를 느꼈고요. 그래서 <Bitches Brew>를 들어보면 조 자비눌과 칙 코리아가 좌우로 나뉘어 일렉트릭 피아노를 연주한 것도 당시로서는 새롭고 흥미로운 것이었지만 존 맥러플린의 일렉트릭 기타가 가세했다는 것이 더 색달랐습니다. 레니 화이트와 잭 드조넷이 함께 연주한 리듬과 함께 존 맥러플린의 일렉트릭 기타는 그 자체로 <Bitches Brew>가 이전의 재즈, 이전의 마일스 데이비스 음악과는 다른 것임을 깨닫게 해주었습니다.
문: 단지 일렉트릭 기타가 가세했다는 것으로 새로운 재즈를 만들 수 있었다는 것인가요? 그래도 록을 가져다가 재즈와 결합하기에는 무엇인가 더 큰 음악적 고려가 있었을 것 같습니다. 단지 결합하려 한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잖아요?
답: 그렇죠.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지미 헨드릭스의 음악을 들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지미 헨드릭스는 강력한 디스토션이 걸린 일렉트릭 기타로 오케스트라 이상의 거대한 사운드를 연출했는데요. 그것이 새로운 느낌을 주기는 했지만 사실 그의 연주는 기본적으로 블루스에 바탕을 둔 것이었습니다. 이후 등장한 딥 퍼플 등의 하드 록과는 다른 느낌이었습니다. 레드 제플린도 블루스적인 색채가 강했지만 질감만큼은 지미 헨드릭스와는 또 달랐습니다.
한편 지미 헨드릭스의 솔로 연주를 들어보면 즉흥 연주라고 할 수는 없지만 많은 부분에 있어서 재즈적인 느낌이 강합니다. 그래서 몇몇 재즈 평론가는 지미 헨드릭스가 재즈에 미친 영향을 강조한 나머지 그를 록 기타의 혁명가인 동시에 재즈 기타 연주자의 한 명으로 설명하기도 합니다. 아무튼 이렇게 지미 헨드릭스의 음악 자체가 재즈적인 부분이 있었기에 마일스 데이비스가 재즈와 록을 결합할 생각을 했으리라 생각됩니다.
문: 그렇군요. 퓨전 재즈를 듣기 위해서는 지미 헨드릭스와 하드 록, 프로그레시브 록 같은 록 음악도 들어야 하겠네요.
답: 들으면 좋겠지만 꼭 그럴 필요까지는 없습니다. 그냥 있는 그대로 듣고 느끼면 되죠. 스타일을 먼저 의식할 필요는 없습니다.
문: 그래도 귀에 쏙 들어오지 않는걸요? 그렇다면 퓨전 재즈가 록을 결합하고 프리 재즈적인 요소를 일정부분 수용해서 만들어져 어지럽고 어려운 느낌을 주는데 왜 퓨전 재즈를 재즈를 처음 듣는 사람들에게 추천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일까요?
답: 그분들이 추천하는 퓨전 재즈는 70년대 후반 이후의 퓨전 재즈일 겁니다.
문: 그 때의 퓨전 재즈는 다른가요? 좀 쉬운가 보죠?
답: 상대적으로 듣기 편하긴 합니다. 마일스 데이비스가 제시한 퓨전 재즈는 이 트럼펫 연주자의 예상대로 큰 대중적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그래서 다른 연주자들도 퓨전 재즈를 연주하기 시작했죠. 특히 마일스 데이비스와 함께 퓨전 재즈의 탄생을 이끌었던 연주자들이 독립해 퓨전 재즈의 인기를 이끌었습니다. 칙 코리아가 결성한 리턴 투 포에버, 존 맥러플린이 결성한 마하비시누 오케스트라, 조 자비눌과 웨인 쇼터가 이끌었던 웨더 리포트 같은 그룹이 대표적입니다. 이들 그룹의 음악은 강력하고 거친 질감과 화려한 연주가 특징이었습니다. 그래서 아예 재즈 록 혹은 록 재즈로 불리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1970년대 후반부터 퓨전 재즈는 새로운 방향으로 흐르게 됩니다. 여기에는 하드 록 등이 더 이상 대중 음악의 중심에 자리잡지 않은 것도 영향을 주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하지만 그 전에 비밥 재즈가 나와 인기를 얻은 뒤 그 치열하고 화려한 연주에 질린 연주자들이 쿨 재즈를 만들었던 것처럼 록에 가까운 재즈와는 다른 음악을 만들고 싶었던 연주자들이 퓨전 재즈 내에서 새로운 사운드를 만들려 노력한 결과라고 보는 것이 더 나을 것 같습니다.
문: 그런 연주자가 누구였나요?
답: 여러 연주자들을 생각할 수 있겠지만 일단은 얼 클루, 데이빗 샌본, 데이브 그루신, 팻 메시니, 리 릿나워, 그로버 워싱턴 주니어 같은 연주자들이 떠오르는군요. 이들 연주자들은 기존의 퓨전 재즈에 비해 훨씬 부드럽고 편안한 스타일의 음악을 만들었습니다.
문: 어째서 그렇게 변화된 퓨전 재즈를 만들게 되었을까요?
답: 시대적인 분위기 때문이겠죠? 아까 말씀 드린 것처럼 강력한 록 음악이 더 이상 대중 음악의 중심이 아니게 되었기 때문이기도 하고 그만큼 연주자는 물론 대중이 새로운 무엇을 원했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록적인 요소보다는 팝이나 라틴 음악적인 요소가 가미된 새로운 퓨전 재즈가 등장하게 되었죠.
문: 록이 아니라 당대의 팝 음악을 수용했다. 그래서 부드럽게 순화된 퓨전 재즈가 만들어졌다 이 말씀인 거죠? 그렇다면 상업적인 면이 더 많이 고려되었다는 것인가요?
답: 예. 그렇게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보통 상업적이다 하면 다들 예술적이지 않다, 음악적이지 않다며 부정적으로만 생각하는데요. 무조건 그렇게 보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입니다. 재즈는 애초에 대중 음악이었습니다. 그것이 더 대중적인 음악에 의해 중심에서 멀어지게 된 것이죠. 그래서 연주자들이 예술적인 측면 외에 상업적인 측면 대중적인 측면을 고려하는 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마일스 데이비스의 <Bitches Brew>가 대표적인 경우잖아요? 대중적인 인기를 얻었으면서도 음악적으로도 훌륭한 앨범이죠. 아니 그 전 재즈사의 명반이라 불리는 앨범들도 대부분은 상업적으로도 일정 이상의 성공을 거둔 앨범들입니다.
따라서 70년대 후반 이후의 퓨전 재즈가 상업적이었다는 것에 대해 그리 비판적으로 바라볼 필요는 없습니다. 다만 문제가 되는 것은 상업적인 측면을 고려하면서 재즈적인 부분을 많이 버렸다는 것입니다. 너무 팝적이 되어서 재즈를 들을 때의 즐거움이 그만큼 감소된 퓨전 재즈가 많습니다.
한편 1990년대 들어서면서 퓨전 재즈는 록적인 요소를 버리고 당대의 인기 음악인 R&B를 적극 차용하면서 더욱 대중적인 음악으로 변화를 거듭했습니다. 그래서 이를 구분하기 위해 스무드 재즈라는 말이 등장합니다. 말 그대로 듣기에 부담 없는 부드러운 재즈라는 것이죠. 이 스무드 재즈는 그래서 종종 너무 재즈적이지 않다는 이유로 비판을 받곤 합니다. 아예 팝 재즈라 불리기도 합니다. 실제 들어보면 경우에 따라서는 그냥 R&B 연주곡 같은 느낌을 주기도 합니다.
문: 그렇군요. 그러면 더 이상 퓨전 재즈는 물론 재즈라 부르지 않으면 되지 않나요?
답: 그러면 되죠. 그런데 또 그게 어렵습니다. 그냥 보통의 팝음악과 비교하면 그래도 재즈적이긴 하거든요. 그리고 이 연주자들이 라이브나 세션 연주를 할 때보면 재즈 본연의 맛을 잘 살린 연주를 펼치곤 한단 말이죠. 게다가 재즈가 이런 저런 스타일을 수용하고 변용하면서 그 의미를 명확히 설명하기 어렵게 된 것도 한몫 합니다. 과거에는 스윙해야 하고 즉흥 연주가 있어야 하고 뭐 이런 규칙 같은 것이 있었다면 지금은 워낙 다양한 스타일로 분화를 거듭하다 보니 그냥 기존 음악과 다른 무엇의 의미가 강해졌단 말이죠.
문: 그렇군요. 지난 시간에 쿨 재즈가 아방가르드 재즈에 영향을 주어서 깜짝 놀랐는데 오늘은 퓨전 재즈는 처음에는 여러모로 편히 듣기 어려운 부분이 많았는데 그것이 완전히 팝적인 재즈로 이어졌다는 것이 놀랍네요.
답: 그렇죠? 이 또한 음악을 듣는 재미가 아닐까 싶네요.
문: 예. 앞으로 계속 듣고 또 들어야겠습니다.
답: 그럼 여기서 마칠까요? 아! 그리고 안타까운 말씀을 드려야겠습니다. 오늘이 <재즈문답>의 마지막 시간이었습니다.
문: 아니 왜요?
문: 제가 질문을 그리 한 것이잖아요.
답: 그런가요? 그래도 조금은 더 세세한 부분을 이야기하고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한 것은 맞습니다. 그래서 한 해가 지는 것에 맞추어 <재즈문답>도 마칠까 합니다. 새해에는 조금 더 알찬 코너로 찾아 뵙도록 하겠습니다. 그 때까지 재즈 계속 잘 들어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문: 안타깝지만 알겠습니다. 그 동안 감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