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 지난 시간에는 재즈의 대중성을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었죠?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재즈가 팝 음악 그 자체였던 스윙 재즈와 가장 대중적이지 않았던 아방가르드 재즈와 프리 재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래서 음악을 좀 들어보셨나요?
문: 예. 듀크 엘링턴, 카운트 베이시를 들으며 스윙 재즈를 느껴보았고요. 아방가르드 재즈를 위해서는 말씀 하신 존 콜트레인의 <A Love Supreme>을 들어봤고, 프리 재즈도 궁금해서 오넷 콜맨의 <Free Jazz>를 들어봤습니다.
답: 어떻던가요?
문: 왜 스윙 재즈가 팝 음악의 위치에 올랐었고 아방가르드 재즈와 프리 재즈가 왜 대중적이지 않았나를 확실히 깨달았습니다. 그런데 아방가르드 재즈와 프리 재즈는 정말 아무나 들을 수 없는 음악인 것 같아요.
답: 어렵죠. 그래도 이들 음악 역시 스윙 재즈에 비해서는 대중적이지 않았지만 분명한 애호가들을 지녔습니다. 특히 지난 시간에 말씀 드린 것처럼 그 시대와 호흡하며 만들어진 음악이었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냥 일반 감상자를 무시하기 위해서, 연주자 혼자만의 만족을 위해서 만들어진 음악이 아니란 것입니다. 아시겠죠? 그럼 오늘은 무엇이 궁금하신가요?
문: 스윙 재즈와 아방가르드 재즈, 프리 재즈를 같이 듣다 보니까 시대의 차이가 너무 크게 느껴지더라고요. 그래서 비밥 재즈를 들어보려고 했습니다. 팔리 파커, 디지 길레스피 등의 연주를 들었습니다. 즉흥 연주 이야기를 할 때 좀 들어서 그런지 이제는 아주 어렵다는 느낌이 들지 않더군요.
답: <재즈 문답>을 함께 한 효과가 있네요.
문: 그런데요. 내친 김에 쿨 재즈도 들었는데요. 그게 참……잘 모르겠더군요.
답: 무엇이 모르겠다는 거죠? 쿨 재즈는 상대적으로 비밥에 비해 듣기 편해서 그리 어려움이 없었을 텐데요.
문: 예. 데이브 브루벡, 모던 재즈 쿼텟, 스탄 겟츠, 쳇 베이커, 아트 페퍼 같은 연주자들의 음악을 들었는데요. 분명 찰리 파커나 디지 길레스피보다는 듣기 좋았습니다. 특히 쳇 베이커와 데이브 브루벡의 음악이 매력적이더군요. 느낌은 다르지만 말 그대로 쿨 하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제가 들은 음악들이 비밥과 어떤 차이가 있는지를 모르겠다는 것입니다. 듣는 것이 조금 편하다는 느낌은 있어도 비밥과 쿨 재즈가 완전히 다르다는 느낌은 받지 못했습니다. 스윙 재즈와 비밥을 같이 들으면 두 재즈 사이에 아주 큰 변화가 느껴지는데 비밥과 쿨 재즈는 그만큼의 큰 변화가 느껴지지 않습니다. 특히 아트 페퍼나 모던 재즈 쿼텟의 연주가 그랬습니다. 조금 빨리 연주하면 비밥 같고 느리고 감미롭게 연주하면 쿨 재즈로 들리더군요.
답: 아주 좋은 질문입니다. 한번은 생각해야 할 부분을 정확히 집으셨네요. 예. 비밥과 쿨 재즈는 서로 상반된 이미지를 지니고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비밥은 화려하고 뜨거운 연주로 이루어졌다면 쿨 재즈는 온화하고 부드러운 연주로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생각해야 할 것은 이 차이가 음악적인 차이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보다는 질감의 차이에 더 가깝죠.
문: 그게 무슨 뜻이죠?
답: 같은 맥락에 놓이는 음악이라는 것이죠. 말씀 하신 대로 스윙 재즈와 비밥 사이에는 아주 큰 차이가 존재합니다. 혁명적이다 싶을 정도로 큰 차이죠. 지난 시간에 잠시 말씀 드렸지만 스윙 시대의 대중적인 연주, 그래서 매번 비슷한 연주에 지친 연주자들이 보다 자유롭게 자신을 드러낼 수 있는 연주를 펼치고자 하면서 만들어진 것이 비밥이니까요. 그래서 대중들은 비밥의 출현에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스윙 재즈보다 리듬이 너무나 빨라 춤을 출 수도 없고, 제목으로 보아 잘 알려진 인기 곡을 연주하는 것 같은데 멜로디를 알아 듣기 어렵고, 솔로 연주도 긴장으로 가득해 편안하게 들을 수 없었습니다.
문: 제가 재즈를 처음 들었을 때와 같은 심정이었겠군요.
답: 예. 그렇다고 할 수 있습니다. 현재의 관점에서 보면 프리 재즈가 제일 듣기 어려운 것으로 생각되는데요. 당시에는 비밥 재즈가 프리 재즈처럼 들렸을 것입니다. 아니 그 이상으로 어렵게 느껴졌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문: 하지만 비밥과 쿨 재즈는 그만큼 혁명적이지 않다는 것이군요.
답: 그렇죠. 물론 비밥이 스윙 재즈에 대한 반동으로 생긴 것처럼 쿨 재즈 또한 비밥에 대한 반동으로 생겨났습니다. 하지만 그 반동의 정도는 매우 다릅니다. 아니 반동이라고 하기보다는 변용이라는 것이 더 적합하겠네요.
문: 조금 더 자세히 말씀해 주세요.
답: 그러죠. 말씀 드린 대로 비밥 재즈는 연주자의 존재감을 매우 강조한 연주를 추구했습니다. 나는 남들과 다르다를 추구했던 음악이라 할까요? 이미 알려진 곡을 연주할 지라도 코드는 물론 과감하게 테마 멜로디까지 해체해 새로이 조립할 정도로 연주자의 개성을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심하게 말하면 대중을 무시했다고까지 할 수 있을 정도였습니다.
문: 그래서 대중적인 면을 다시 생각하는 쿨 재즈가 나온 것이군요.
답: 예. 하지만 꼭 대중적인 면을 되살리기 위해서만은 아니었습니다. 연주자 스스로가 비밥을 힘들어한 것도 중요한 이유 중 하나입니다. 누구나 찰리 파커, 디지 길레스피처럼 연주할 수 있다면 모르겠는데 그게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설령 그렇게 연주할 수 있어도 찰리 파커와 디지 길레스피를 넘어선 새로운 경지를 개척하기가 매우 어려웠죠. 마일스 데이비스만 해도 물론 비밥 시대에 찰리 파커 옆에서 화려한 연주를 펼치긴 했지만 디지 길레스피, 팻츠 나바로 같은 연주자들에 비해 기교가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또 페라리나 포르쉐 같은 빠른 연주를 요구하다 보니 정서적인 표현을 다채로이 하기 어렵다는 문제도 있었습니다.
자 문제는 명확해졌습니다. 그럼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연주해야 했을까요?
문: 느리게 감정을 실어 연주하기?
답: 비슷합니다. 느리다고 해서 발라드 연주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고 비밥에 비해 상대적으로 연주의 속도를 늦추고 그렇게 생긴 여백에 낭만적이고 서정적인 분위기를 넣는 것이 쿨 재즈의 큰 방법론이었습니다. 그래서 새로운 느낌이 나긴 했지만 그렇다고 비밥의 연주법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비밥의 연주법을 바탕으로 이것을 연주자의 입맛에 맞게 다시 변용한 것, 그러면서 쿨한 맛이 가미된 것이 쿨 재즈가 된 것입니다.
문: 그래서 아트 페퍼, 모던 재즈 쿼텟의 연주를 들을 때 경우에 따라서는 비밥에 가까운 연주가 들렸던 것이군요.
답: 예. 사실 다수의 연주자들은 비밥과 쿨 재즈를 오가며 활동했습니다. 말씀 하신 아트 페퍼 같은 연주자가 대표적이죠. 그리고 마일스 데이비스도 그런 편에 속합니다.
문: 마일스 데이비스는 비밥부터 쿨 재즈, 퓨전 재즈까지 모든 재즈의 탄생에 관여했다면서요? 그렇기 때문이 아닐까요?
답: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네요. 하지만 그렇다고 쿨 재즈와 하드 밥을 정해놓고 연주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많은 분들이 발라드를 들을 때 부드러우니까 쿨 재즈 아냐? 하고 업 템포로 연주하면 이건 밥이구나 하고 생각하곤 하는데요. 이 생각이 그릇된 것은 맞지만 마일스 데이비스의 연주는 이 그릇된 판단도 배반합니다.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템포에 쿨한 톤으로 뜨거운 연주를 펼쳤다고 할까요? <Kind Of Blue>같은 앨범을 들어보세요. 아! 들어보셨나요?
문: 예. 마일스 데이비스의 매력이 아주 잘 느껴졌습니다. 정말 앨범 푸른색의 공간을 상상하게 하더군요.
답: 잘 들으셨네요. 그런데 이 앨범에 담긴 마일스 데이비스의 연주는 어떤 스타일이라 생각하세요?
문: 생각해보니 그렇네요. 쿨 재즈에 가깝다고 생각은 되는데 또 그게 그런 것 같지 않네요.
답: 예. 그렇습니다. 그래서 저는 쿨-밥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중요한 것은 스타일이 연주에 앞서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나는 쿨 재즈 연주자야 하고 나는 비밥 연주자야 하는 연주자는 없다는 것입니다. 그 스타일의 창시자라면 모르겠지만 말이죠. 그저 자신의 필요대로 연주를 했다는 것이죠. 그리고 이것이 가능했던 것은 쿨 재즈와 비밥이 연주법에 있어서 그리 큰 차이가 없었기 때문이고요.
문: 그렇다면 왜 굳이 쿨 재즈와 비밥을 나누었던 것인가요? 비밥이 너무 빨리 그리고 너무 복잡하게 연주해서 문제라 느꼈다면 그냥 느리고 단순한 비밥이라고 해도 되잖아요? 그렇지 않은 것은 결국 쿨 재즈도 그 스스로만의 개성, 특징이 있지 않을까요?
답: 물론 쿨 재즈만의 특징이 있지요. 말씀 드린 것처럼 비밥에 비해 리듬을 완화하고 코드 진행의 긴장을 보다 완화한 것이 가장 일반적인 특징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여기에 더 추가한다면 편곡을 들 수 있습니다. 비밥 연주자들은 코트 진행 등에 있어 곡에 새로운 기운을 불어넣기 위해 매우 혁신적인 방식의 편곡을 했습니다. 이 또한 스윙 재즈 시대의 집단적이고 다소 진부한 방식에 대한 거부에서 출발한 방식이었습니다. 그런데 쿨 재즈 연주자들은 스윙 시대의 부드럽고 경쾌한 움직임을 만들어 내는 편곡에 반감을 지니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연주자들의 산뜻한 어울림을 위해 스윙 시대의 편곡에서 많은 영감을 받았습니다. 그렇기에 쿨 재즈가 비밥에 비해 대중적인 인기를 더 많이 얻게 되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솔로 연주에 있어서도 속도가 완화되고 코드 진행의 긴장이 느슨해지니까 여유가 생기잖아요? 그로 인해 비밥처럼 수 많은 음을 마구 쏟아 붓듯이 연주하는 대신 경제적으로 절제해가며 사용한 솔로를 즐겼습니다. 그러면서 멜로디가 돋보이기도 했죠.
문: 그렇다면 대중적인 비밥이었다 이렇게 생각해도 되겠네요.
답: 아닙니다. 쿨 재즈를 비밥을 거부한 연주자들이 만들어 낸 재즈로 보는 것도 문제가 있지만 그저 비밥이 어려워서 쉬운 것을 추구한 재즈로 생각하는 것도 무리가 있습니다. 예. 어쩌면 시작은 그랬을 지도 모릅니다. 특히 쿨 재즈가 웨스트 코스트 지역의 백인 연주자들을 중심으로 연주되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그러니까 마음을 여유롭게 하는 지역에서 주로 연주되었음을 생각하면 대중성을 높이려는 의도가 강하게 작용했다고 생각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사실 미국 동부에 위치한 뉴욕과 떨어진 곳이었기에 일어난 일이기도 했습니다. 재즈의 중심지에서 좀 멀리 있다 보니 비밥이 늦게 지역에 소개되었고 그만큼 스윙 재즈 시대의 유산이 많이 남아 있었다는 것이죠. 그래서 그 사이에서 자연스레 쿨 재즈가 나온 것으로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아무튼 시작은 대중적인 것에 바탕을 두었을 지 몰라도 이후 진행은 의외의 방향으로 발전했습니다. 아방가르드 재즈에 영향을 주었거든요.
문: 아방가르드 재즈요? 그것은 비밥에 더 영향을 받지 않았나요? 연주가 어려운데 말이죠.
답: 아방가르드 재즈는 어느 특정 사조의 영향 혹은 반감에서 출발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이전의 모든 재즈를 아우르면서도 새로운 형식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졌다고 볼 수 있습니다.
문: 그렇다면 쿨 재즈의 어떤 부분이 아방가르드 재즈에 영향을 준 것인가요?
답: 아까 말씀 드린 것처럼 쿨 재즈는 스윙 시대처럼 각 악기 파트간의 절묘한 조화를 즐겼습니다. 그리고 주 멜로디와 조화를 이루면서도 독자적인 멜로디를 진행시키는 대위법적인 방식을 종종 사용했습니다. 그러면서 몇몇 연주자들은 유럽의 전통 클래식 편곡법과 현대 음악의 12음 기법 같은 것을 연구해 재즈에 적용하려는 시도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부드럽고 청량한 분위기를 너머 이지적이고 냉랭한 느낌을 주는 곡을 만들곤 했습니다. 지미 주프레 같은 연주자가 대표적입니다. 모던 재즈 쿼텟도 일정부분 그런 분위기를 연출했고요. 아무튼 클래식적인 요소의 도입은 흔히 건서 슐러가 이끌었던 서드 스트림(The Third Stream) 재즈의 등장을 이끌었습니다. 재즈만큼이나 클래식적인 요소를 중요하게 사용한 재즈였는데 매우 진보적인 색채의 연주를 종종 선보이곤 했습니다.
문: 신기하네요. 편한 것을 추구했던 재즈에서 다시 긴장 가득한 재즈가 나올 수 있다는 것이.
답: 사실 재즈사 전체가 긴장과 이완을 통해 발전해왔다고 할 수 있습니다. 스윙 재즈보다 어려운 비밥, 비밥보다 편안한 쿨 재즈, 다시 그보다 긴장 가득한 아방가르드 재즈, 다시 그보다 대중적인 퓨전 재즈 이런 식으로 말이죠. 그렇다고 재즈가 이전 사조를 거부하면서 발전한 것으로 생각할 필요는 없습니다.그보다는 보완하고 새로이 하면서 발전했다고 보는 것이 더 좋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사조가 어떻건 재즈고 음악이잖아요? 그러니 그 자체로 그 음악을 좋아하는 감상자들은 많건 적건 있습니다. 연주자도 마찬가지죠. 그래서 비밥과 쿨 재즈를 오가며 연주할 수 있는 것이고 시대가 흘러 다른 스타일의 재즈를 연주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연주자 또한 취향이 있고 그 또한 새로움에 대한 욕망과 맞물려 시간의 흐름 속에 변화를 거듭하니 말이죠. 마일스 데이비스가 바로 그런 사람이었겠죠?
문: 그렇네요.
답: 예. 그럼 오늘은 여기까지 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