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해 4월, 나는 서울 재즈 페스티벌 공연을 앞두고 팻 마티노와 서면 인터뷰를 했다. 당시 나는 서면 인터뷰였기 때문이었는지 팻 마티노가 내 질문에 답하기 싫어했다는 인상을 받았다. 지금 생각하니 확실히 그랬던 것 같다.
인터뷰에서 나는 새 앨범을 계획하고 있냐고 물었다. 여기에 그는 없다고 말했다. 덧붙여 자신에게 중요한 것은 현재를 즐기며 사랑하는 것이라 했다. 그랬던 그가 몇 달이 지나지 않아, 정확히는 지난 해 10월에 새로운 앨범을 발매했다. 그래서 나는 이번 앨범의 발매소식에 매우 놀랐다. 게다가 이번 앨범은 2006년 <Remember: A Tribute To Wes Montgomery> 이후 11년만의 스튜디오 앨범이라 더 의미가 깊다.
지난 서울 재즈 페스티벌 무대에 함께 올랐던 팻 비안치(오르간), 카멘 인토르 주니어(드럼)와의 트리오를 기본으로 필요에 따라 아담 니우드의 색소폰과 알렉스 토리스의 트럼펫이 가세해 완성한 이번 앨범을 기타 연주자는 그가 막 활동을 시작했던 청춘 시절의 재즈, 그러니까 1960년대의 주요 사조였던 소울 재즈로 채웠다.
연주한 곡들의 면모 또한 과거 지향적인 면이 강하다. 데뷔 앨범에서 선보였던 “El Hombre”, 건강 문제로 기타 연주법을 완전히 잊는 위기를 극복하고 다시 복귀 한 후인 1996년에 선보였던 “Nightwings”같은 자작곡들과 행크 모블리, 듀크 엘링턴, 찰스 밍거스, 데이브 브루벡 등이 쓴 곡 등 지난 시절의 곡이 주를 이룬다. 신선한 곡이 있다면 조이 칼데라조의 “El Niño”-이 또한 벌써 20년 전의 곡이다-나 아담 니우드의 아버지인 제리 니우드가 쓴 “Homage”정도일 뿐이다.
질감의 측면에서 본다면 이번 앨범은 팻 마티노가 늘 하던 바로 그 연주를 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익숙한 음악임에도 앨범이 주는 쾌감은 남다르다. 나이든 노인이 과거를 돌아보는 듯한 연주가 아닌 현재의 연주를 들려주기 때문이다. 같은 재료와 같은 조리법이라도 누가 만들었느냐에 따라 맛의 깊이가 달라지듯이 팻 마티노의 소울 재즈는 익숙하면서도 뻔하다는 느낌을 주지 않는다. 그보다는 시간을 벗어나, 앞으로도 지속될 소울 재즈의 가장 아름다운 이상형을 생각하게 한다.
그 이상형이란 다른 것이 아니다. 흥겨운 리듬에 연주자들의 조화와 각각의 솔로가 필요한 부분에서 빛을 발하면 된다. 마이클 브레커의 연주로 알려진 “El Niño”같은 곡이 그렇다. 느긋한 분위기로 시작해 기타-색소폰-트럼펫이 유니즌으로 테마를 연주하고 기타 솔로를 중심으로 트럼펫과 색소폰이 경쟁하듯 솔로를 주고 받는 연주를 펼치는데 그 들어감과 나감, 어울림의 순간이 그 자체로 짜릿한 리듬을 만들어 낸다. 이것은 아트 블래키의 재즈 메신저스의 연주로 알려진 “Hipsippy Blues”, “El Hombre” 등의 곡에서도 반복된다. 여기에 “Nightwings”는 오래된 질감임에도 지금의 젊은 감상자들의 몸을 움직이게 만들법한 강력한 그루브로 소울 재즈의 진수를 맛보게 한다. 엄청나다. Formidable!
한편 리더로서 팻 마티노의 기타 솔로는 속주의 순간에서도 흐트러지지 않는 매끄럽고 동그란 톤, 아무 일 아니라는 듯 가뿐히 리듬을 타는 움직임 등에서 거장의 모습을 보인다. 특히 흥겨운 리듬의 연주보다 “Duke Ellington’s Sound Of Love”나 “In A Sentimental Mood”같은 발라드 곡에서 몽롱한 톤의 느긋한 연주는 다른 웨스 몽고메리의 후예들과 다른 그만의 매력을 강하게 느끼게 해준다. (나아가 이 연주는 그의 뮤즈 레이블 시절을 강하게 연상시킨다.)
한편 이 점성(粘性) 강한 사운드를 매력적이게 한 것에는 팻 마티노 외에 팻 비안치의 힘이 컸다. 소울 재즈 시대에 기타와 오르간의 어울림이 중요했던 것처럼 이 앨범에서 팻 비안치의 넘실대는 연주는 리더의 조력자가 아닌 질감의 생산자, 완성자 역할을 한다.
앨범 표지를 보면 같은 곳을 바라보고 있는 사자상과 팻 마티노의 옆모습이 보인다. 그런데 사자상과 기타 연주자의 모습이 매우 닮았다. 그래서 앨범 표지로 사용하지 않았나 싶다. 실제 표지는 앨범의 내용을 그대로 대변한다. 사자는 아무리 말랐어도 그 위압적인 존재감은 변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팻 마티노의 음악은 스타일이 오래되었어도 그 매력은 변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