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재즈의 매력 중 하나는 이곳이 아닌 다른 곳을 상상하게 하는 힘이 아닐까 싶다. 여기에는 형식에 있어서의 자유가 큰 역할을 한다. 블루 노트, 스윙 등 전통적인 재즈의 규범들을 굳이 따르지 않아도 되는 자유 말이다. 또한 자유롭다고 해서 프리 재즈처럼 긴장 가득한 혼돈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유럽의 전통음악을 바탕으로 한 서정의 표현에 집중한 경우가 많은 것도 매력이다.
독일 출신의 아코데온 연주자 클라우스 파에르와 크로아티아 출신의 첼로 연주자 아자 발치치가 이끄는 쿼텟의 이번 앨범도 그런 경우다. 특히나 이번 앨범은 영화적 상상력의 표현을 주제로 하고 있어 더욱 흥미롭다. 앨범에서 두 연주자는 베이스, 드럼과 함께 현실적이면서도 실제 현실에서는 만나기 힘든, 꿈 같은 현실을 그린 음악을 들려준다. 영화 음악의 재즈적 해석이 목표가 아니란 이야기. 실제 수록 곡들을 보면 <메디슨 카운티의 다리>의 사운드트랙으로 레니 니하우스가 쓴 “Doe Eyes”와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를 위해 알렉상드르 데스플라가 쓴 “Griet’s Theme”을 제외하고는 모두 창작곡이다.
리더가 둘인 이 쿼텟의 매력은 충분한 여백의 활용에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피아노처럼 코드를 밀도 있게 연주하는 악기가 없는 것에서 오는 비어 있음이 전체 사운드에 공간감을 불어넣고 나아가 감상자의 상상을 자극한다. 물론 아코데온이 코드 악기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지만 이 악기 또한 공기가 새어나가는 것을 통해 소리를 내기에 피아노에 비해 밀도감이 덜하다. 오히려 공간의 넓음을 확인하게 해 줄뿐이다. 아자 발치치의 첼로 또한 음의 한계가 명확한 울림으로 음악을 감싸는 공간적 깊이에 관심을 갖게 한다. 아마도 나무 바닥이 있는, 가구가 별로 없는 거실에서 앨범을 듣는다면 훨씬 더 정서적 울림이 크지 않을까 싶다.
두 연주자의 영화적 상상력이 서정에만 머무르지 않고 있다는 것도 앨범 감상을 재미있게 한다. 악기만 보면 단조롭고 느린 흐름의 영화의 사랑의 테마만 연주할 것 같은데 실제 연주는 이 외에 긴장과 흥분, 상승과 하강의 비중이 다채롭게 등장한다. 그래서 앨범 전체를 들으며 가상의 영화 한편을 상상해도 좋을 정도다.
한편 이러한 역동적인 측면의 표현을 위해 베이스와 드럼을 가세시킨 것은 앨범에 담긴 음악에 재즈의 맛을 강화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연주자들의 주고 받음, 헤어졌다가 함께 가는 과정을 통해서 영화적 분위기가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앞서 언급한 여백은 잠재된 가능성이 아닌 단순한 비어 있음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음악은 그리 큰 감흥을 주지 못했을 것이다.
정리하면 서정적 유럽 재즈가 지닐 수 있는 단점을 적절히 피해간 음악을 담고 있는 앨범이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