견디기 힘든 일들이 이어지면 사람들은 절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하루를 꿈꾸게 된다. 지루하더라도 일 없이 흘러가는 시간 속에 나를 두기를 바라게 된다.
요즈음은 추위가 그런 역할을 하는 것 같다. 이른 아침 집에서 나오는 순간부터 나는 따뜻한 실내에서 빈둥거리는 하루를 그리기 시작한다. 때로는 이런 마음의 바람을 모른 척 하고 집과는 반대 방향으로 한 걸음 내디뎌야 하는 상황에 짜증이 나기도 한다.
하지만 삶의 매력은 결국 밤이 된다는 데 있다. 암울하고 어두운 사건이 발생하는 밤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낮의 추위를 지우는 따스한 밤, 자연인으로서의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소중한 밤을 말하는 것이다.
이런 밤에 쳇 베이커의 1959년도 앨범 <Chet>을 듣는다. 적당히 고독한 트럼펫 연주가 쓸쓸함보다는 안식의 느낌을 준다. 매서운 강풍을 견디며 먼 길을 걸어 어느 여인숙에 도달한 피곤한 여행자가 느끼는 감정이 이런 것일까? 20여년 전 겨울 아무런 준비도 없이 밤 늦게 뒤셀도르프에 도착했던 적이 있다. 열 시가 넘은 늦은 시각 한참을 헤맨 끝에 간신히 내 경제적 여력에 맞는 호텔을 찾아낼 수 있었다. 그 호텔의 허름한 침대에 누웠을 때 참 편안했다. 목적 없이 떠난 길이었지만 무엇인가 내가 대단한 일을 마무리한 것 같은 느낌이었다.
계속 듣다 보내 앨범 <Chet>은 정말 달콤한 고독을 위한 곡이라는 생각이 든다. 특히 “Alone Together”가 그렇다. 빌 에반스의 피아노니, 허비 맨의 플루트나, 페퍼 아담스의 바리톤 색소폰이나 모두 음악 안에서 잘 어울리면서도 그 분위기는 서로에게 무심한 듯한 느낌을 준다. 한 스튜디오에 있음에도 서로 등을 지고 연주했던 것일까?
사실 이 곡의 제목 “Alone Together”는 우리 말로 “단 둘이”를 의미한다. 의미상으로는 연인의 달콤한 밤에 가깝다. 실제 하워드 디에츠가 쓴 가사도 이를 의미한다. 하지만 이 곡의 분위기는 “따로 또 같이”에 더 가깝다. 좋은 음악이 흘러나오는 카페나 바에 홀로 앉아 있는 사람들 같다. 외롭지만 비슷한 다른 손님에게 말을 건네지 못하는.
1958년 12월 30일 이 달콤한 곡을 연주할 때 쳇 베이커는 이미 마약에 중독되어 모든 돈을 탕진하고 있었다. 자신이 속한 리버사이드 레이블의 창고에서 앨범을 훔쳐 헐값에 팔아 마약을 살 정도였다. 그래서 음악적으로도 많이 위태로웠다. 그 결과 같은 해 가을에 녹음한 <Chet Baker in New York>이나 <Chet Baker Introduces Johnny Pace>는 상업적으로나 음악적으로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제작자 오린 킵 뉴스는 이를 만회하기 위해 당시의 1급 연주자들을 모아 앨범 <Chet>을 녹음했다. 여기에 쳇 베이커가 얼마나 애정을 가졌었는지는 모르겠다. 녹음을 하면 돈이 생긴다는 마음으로 연주했을까? 아무튼 그 음악은 전과 달리 매혹적이었다. “Alone Together”는 그 백미였다. 그의 삶에 있어서 빛나는 순간의 하나라 할 정도였다.
앨범 타이틀이 <Chet>이 된 것도 바로 이 때문이 아닌가 싶다. 트럼펫 연주자의 내면에 자리잡은 음악적 자아가 온전히 표출되었음을 오린 킵 뉴스는 단번에 알아챘던 것 같다. 동시에 그는 이 마약 중독자가 평생 스스로를 외롭게 할 것이라 생각했을 것 같다. 마약으로 세상과 등을 지는 것은 물론이고 그런 상태에 이르러서야 솟아나는 매혹적인 음악 때문에서라도 스스로를 고독의 끝에 둘 것이라 생각하며 쓴 웃음을 짓지 않았을까?
“Alone Together”를 듣고 다시 또 듣는다. 신비로운-“Blue In Green”의 탄생에 영향을 준-피아노 인트로를 시작으로 이어지는 여러 악기들의 솔로가 부드럽게 실내를 감싼다. 좋다. 마눌님은 거실에서 텔레비전을 시정하고 있다. 그것으로 낮의 피로를 풀고 있다. 진짜 “Alone Together”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