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즈 문답 10 – 재즈는 대중 음악인가요?

답: 지난 시간까지 재즈의 초기 모습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래서 역사적인 부분에 대해 살펴보기도 했는데요. 그래서인지 이 시간이 다소 딱딱해졌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네요.

문: 괜찮습니다. 재미 있는 걸요. 조금 더 길어지면 지루할 것 같긴 하지만요.

답: 그래서 오늘은 무엇이 궁금하신가요?

문: 재즈를 이것저것 들으면서 어떤 곡은 편하게 다가오고 어떤 곡은 좀 어렵게 느껴지기도 하는데요. 그런데 저는 매우 어렵게 들었는데 그 곡이 많은 대중의 사랑을 받은 곡이란 이야기를 들으면 다소 당혹스러울 때가 있습니다. 왜 그리 어려운 곡을 과거의 대중들은 편하게 잘 들었던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제가 재즈를 잘 모르기 때문일까요?

답: 그럴 수 있죠. 그런데 어떤 곡을 들으셨는데 그런 느낌을 받으셨나요?

문: 존 콜트레인의 <Love Supreme>앨범이요. 세계적인 잡지나 음반 리뷰 사이트부터 국내 여러 필자 분들이 모두 명반이라고 해서 들었는데 제게는 좀 어렵더라고요. 그런데 이 앨범이 재즈 역사상 두 번째로 많이 팔린 앨범이라면서요? 어떻게 이것이 가능하죠? 모두 잘 이해하지 못하면서 이해하는 척 하는 것은 아닌가요?

답: 그럴지도 모르죠. (웃음) 아무튼 <재즈 문답>을 시작하면서 꼭 명반을 들어야 할 필요가 없다고 말씀 드렸는데 그리 하신 것이네요. 그리고 개인마다 느낌의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내 마음에 드는 앨범을 찾아 들어라 했는데 나 자신보다 타인의 평가와 느낌에 더 신경을 쓰셨고요.

문: 그렇게 되나요? 그래도 말씀해 주세요. 왜 그런 거죠? 제가 무엇을 놓친 부분이 있을까요?

답: 아닙니다. 어렵다고 느끼실 수도 있습니다. 재즈 역사상 두 번째로 많이 팔린 앨범이지만, 그런데 첫 번째는 어떤 앨범인지 아시나요?

문: 마일스 데이비스의 <Kind Of Blue>

답: 예. 맞습니다. 이 앨범은 어떻게 들으셨어요?

문: 아주 좋게 들었죠? 그래서 명반이 달리 명반이 아니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답: 예. 그렇군요. 좋네요. 이야기를 계속하면 <Love Supreme>이 재즈 역사상 두 번째로 많이 팔린 앨범이란 것은 분명합니다. 그런데 2001년 미국의 음반산업협회(RIAA)에서 골드 레코드 공인을 받았는데요. 골드 레코드는 50만장을 의미합니다. 그러니까 1965년에 발매된 이후 35년에 걸쳐서 50만장이 팔렸다는 것입니다. 한 해에 50만장이 아니고요. 1년에 14000장 조금 넘게 팔렸다는 것이니까 15년 정도가 지난 지금은 70만장을 넘어 80만장을 향해 가고 있겠네요. 요즈음은 파일로 들으시는 분들이 많아서 음반 판매 집계가 그리 큰 의미를 지니지 않기는 하지만. 게다가 노라 존스의 <Come Away With Me>를 재즈에 포함시킨다면 모든 통계는 다 바뀌어야 할 것입니다.

아무튼 제가 하고픈 말은 재즈 역사상 가장 많이 팔린 앨범의 하나라지만 실제 숫자는 그리 많지 않다는 것입니다. 재즈 인구가 워낙 적기에 그 자체로 의미가 있을 지는 모르지만 절대적 판매량은 보통의 팝 음악만큼은 아닌 것이죠. 그리고 지금은 명반이라니까 한번 들어보자 하는 분들이 많기 때문에 실제 이 앨범에 얼마나 많은 분들이 만족하고 명반의 가치를 공감하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문: 그래도 꾸준히 많이 팔리는 것은 그만큼 부정적인 평가가 없기 때문이 아닌가요?

답: 맞습니다. 이 부분은 부인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제가 보기에 이 앨범이 정말 대중적으로 널리 이해되었던 때는 아무래도 앨범이 발매된 1965년 근처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문: 그래서요? 그 때는 왜 많이 이해되었으리라 생각하시는 거죠? 지금 제가 이해하지 못하는 것과는 어떤 관계가 있나요?

답: 한 마디로 시대적 상황 분위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1960년대는 아방가르드 재즈의 시대였습니다. 그래서 <Love Supreme>같은 앨범이 인기를 얻을 수 있었던 것이죠. 이리 말씀 드리면 어떻게 어렵게 느껴지는 아방가르드 재즈가 그 시대에 인기를 얻을 수 있었는가? 궁금하지요?

문: 예.

답: 아방가르드 재즈가 인기를 얻었던 1960년대는 매우 혼란스러운 시대였습니다. 미국과 소련의 냉전이 지속되었고 인종차별, 남녀차별을 없애라는 시민운동이 뜨겁게 불타올랐던 시대였습니다. 이러한 불안이 지배하던 상황에서 기존의 가치, 규범을 거부하는 예술이 득세했는데요, 아방가르드 재즈가 바로 그랬습니다. 엄밀히 말하면 큰 차이가 있지만 프리 재즈와 같이 묶여서 논의되곤 하는 아방가르드 재즈는 기존의 형식을 버리고 새로운 형식의 재즈를 만들자는 것이었습니다.

문: 그것이 시대의 흐름과 맞물려서 인기를 얻었다는 것이군요.

답: 그렇죠. 모든 예술은 사회, 시대적 상황과 관련을 맺으며 변화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특히 대중 예술이라면 말이죠.

문: 그렇다면 재즈는 대중 음악인가요? 지금 재즈를 대하는 것을 보면 재즈는 대중 음악이라기 보다 예술 음악에 더 가까운 것 같아요. 재즈를 가르치는 대학도 있으니까요.

답: 예. 재즈를 예술 음악으로 볼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재즈는 자신의 예술적 가치를 고양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왔고 그만큼 성과를 거두기도 했습니다. 말씀 하신 대로 클래식만큼이나 재즈를 전문적으로 가르치는 교육기관이 많은 것, 재즈에 대한 국가나 사회 단체의 후원이 많은 것이 그 증거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실 이러한 지원이나 교육은 그만큼 재즈가 인기가 없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심하게 말하면 지속적인 관심과 후원이 없으면 조금씩 규모가 줄어서 사라질 지도 모르는 미국의 전통 음악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죠. 물론 아직 그런 단계는 아닙니다.

그리고 지금도 재즈는 여전히 대중 음악적인 면도 있습니다. 한 차례 말씀 드렸던 것 같은데 사실 재즈는 예술적인 면과 대중적인 면이 긴장 관계를 이루며 발전을 해왔습니다. 너무 대중적이다 싶으면 예술적인 부분이 힘을 냈고 너무 예술적이다 싶으면 대중적인 면이 힘을 냈죠.

문: 그렇다면 지금의 재즈는 예술적인 면이 강한가요? 아니면 대중적인 면이 강한가요?

답: 답변하기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지금은 재즈를 지배하는 특정 사조가 없기 때문입니다. 과거에는 한 스타일이 중심이 되어 시대를 이끌어가곤 했는데 지금은 너무나도 다양한 스타일이 공존하고 있습니다.  아방가르드 재즈처럼 어려운 재즈와 스무드 재즈처럼 팝에 아주 가까운 재즈가 같이 자리를 나누고 있죠. 그래서 재즈를 좋아한다고 해도 서로 이야기를 나누기 어려운 상황이 발생하기도 합니다.

문: 지금의 재즈가 시대적인 면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인가요?

답: 꼭 그렇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저는 지금의 재즈가 우리가 사는 지금을 반영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모든 부분에 있어서 개인적인 부분이 강조되고 있고 여러 가치들이 공존하고 있잖아요?

문: 그럴 지도 모르겠네요. 그런데 아방가르드 재즈가 아무리 시대적인 면을 반영했다고 해도 예술적인 면이 강한 음악이 아닌가요?

답: 흠. 만약 조금 복잡하게 고도화된 음악일수록 예술적이다 하고 한다면 예술적인 음악이 맞습니다. 하지만 <Love Supreme>에는 당시의 혼돈스러운 상태를 살던 사람들의 마음에 파고들만한 메시지가 있었어요. 종교적인 색채까지 느껴지는 절대적인 것을 향한 마음, 숭고한 사랑 등에 관련된 의미를 담고 있는데 이것이 당시의 감상자들에게 공감을 일으켰던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적어도 1년에 14000명 정도는 듣고 좋아할 수 있었다는 것이죠.

문: 좋습니다. 그렇다면 재즈가 진정 대중 음악이었던 때는 언제인가요?

답: 스윙 시대였습니다. 이 때는 스윙 음악이 곧 팝 음악을 의미했습니다. 뉴 올리언즈 재즈 시대를 거쳐 플레쳐 헨더슨 오케스트라에서 활동하면서 스윙 시대의 탄생에도 영향을 주었던 루이 암스트롱은 아예 팝스란 별명으로 불리기도 했죠. 모든 클럽에서는 스윙 시대를 상징하는 빅 밴드 연주가 들렸고 사람들은 그 음악에 춤을 추곤 했습니다.

문: 지금의 EDM같은 음악이었군요.

답: 그렇다고 할 수 있네요. 다만 전자악기와 프로그래밍을 중심으로 EDM 음악이 이루어졌다면 스윙 재즈는 오로지 연주자들에 의해서 음악이 이루어졌다는 것이 다르죠. 물론 리듬, 화성 등도 다르긴 하지만 말이죠. 그러니까 음악의 용도나 위치가 그랬다는 것이죠.

문: 그런데 왜 스윙 재즈는 빅 밴드를 중심으로 이루어졌나요?

답: 그것은 보다 큰 소리를 내기 위해서였습니다. 당시에는 음향 시설이 발달하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대형 댄스 홀, 클럽 전체를 채우는 소리를 내기 위해서는 많은 연주자들이 필요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색소폰, 트럼펫, 트롬본 등의 악기들이 함께 같은 소리를 내야 큰 공간 구석구석까지 소리를 전달할 수 있었습니다.

문: 그랬군요.

답: 예. 그래서 빅 밴드는 연주자 개인의 솔로 능력보다는 연주자들의 일치된 어울림이 더욱 중요했습니다. 그래서 밴드의 리더는 자신의 밴드에 적합하게 곡을 만들고 편곡을 하곤 했죠.

문: 집단 연주에만 집중했다고 하면 재즈적인 자유로움은 덜하지 않았을까요?

답: 그런 면이 있기는 했죠. 그렇다고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연주가 합주로만 진행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브라스 섹션을 둘, 셋 등으로 나누어 그 섹션들이 서로 대화하듯 교차하게 하거나 브라스 섹션과 피아노나 베이스 등의 교차를 통해 연주의 묘미를 살리곤 했습니다. 그리고 전체 사운드와 특정 연주자의 솔로를 섞는 것도 일반적이었습니다. 그래서 스윙 재즈를 무조건 합주 중심으로만 보기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다만 솔로의 비중이 매우 한정되었고 솔로가 멜로디에 매우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었기에 매일 같은 곡을 연주해야 하는 연주자들에게는 답답할 수 있었다는 것이죠.

문: 왜 같은 곡만 연주했던 것이죠? 지겨우면 다른 곡을 연주하면 되잖아요.

답: 댄스 음악이었으니 그랬죠. 아무래도 사람들이 클럽이나 댄스 홀에 많이 모이게 하려면 사람들이 좋아하는 곡을 연주해야 하겠죠? 지금도 라디오를 들으면 최신 인기가요는 하루에도 몇 번씩 방송되잖아요. 그것을 또 대부분의 청취자들이 좋아하고. 그런 것이었습니다. 또 저도 그런 경험을 했는데 클럽 등에 가서 춤을 출 때 아는 음악이 나오면 더 흥이 나고 춤을 추고 싶어 지더군요. 그러니 대중적이고 상업적인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는 인기 곡을 수 차례 연주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문: 생각해 보니 그렇네요. 연주자들이 참 지겨워 했을 것 같아요.

답: 그래도 생계를 위한 것이었으니 그만 둘 수는 없었습니다. 대신 밤 늦게까지 빅 밴드 연주를 마친 후에 마음 맞는 연주자들끼리 삼삼오오 모여서 자기네들이 하고픈 연주를 펼치며 하루의 스트레스를 푸는 연주자들이 있었습니다. 이것을 애프터 아워즈(After Hours)세션이라 부릅니다. 그러니까 ‘일과 후 연주’란 뜻인데요 이것이 비밥의 탄생을 이끌기도 했습니다. 스윙 재즈에 반기를 든 연주자들에 의해서 말이죠.

문: 비밥은 그렇다면 연주자들의 솔로 연주가 강한 음악이었겠군요. 솔로 연주가 복잡한.

답: 예. 감상자들이 춤을 추지 못하게 하려고 일부러 연주를 빠르고 복잡하게 했고 멜로디도 막 뒤틀어서 잘 모르게 연주했죠.

문: 그래서 재즈가 어려워진 것이군요.

답: 예. 그렇습니다. 비밥 시대부터 재즈가 예술적인 음악으로 인정받기 시작했습니다.

문: 그런데요. 스윙 재즈가 대중적인 연주를 펼쳤다고 해도 전혀 예술적이지 않았다고는 말할 수 없지 않을까요? 비중의 문제일까요?

답: 맞습니다. 팝 음악 그 자체였다고 해도 무조건 상업적이다 가볍다라고 생각하면 안됩니다. 지금의 팝 음악도 그렇잖아요? 스윙 재즈 안에서도 예술적인 성취를 이룬 음악이 분명 있었습니다. 댄스 홀이나 클럽 보다는 콘서트 홀에서 연주되면 좋은 음악 말이죠. 사실 듀크 엘링턴, 카운트 베이시 등의 오케스트라가 스윙 시대를 대표하는 밴드로 기억되고 있는 것은 단순히 이들의 음악이 댄스 음악으로서의 역할을 잘 수행했기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이들은 정교한 편곡과 새로운 작곡 등 감상의 재미 또한 주었습니다.

사실 스윙 재즈가 워낙 인기를 얻다 보니 유사한 성격의 다른 대중 음악까지 스윙 재즈로 정의되는 일이 빈번했습니다. 그냥 빅 밴드로 연주되면 무조건 스윙 재즈로 인정받곤 했던 것이죠. 빙 크로스비, 프랑스 시나트라 등의 음악은 지금도 스윙 시대의 음악으로 분류되고 있지만 다수는 그냥 팝 음악이었습니다. 한편 카운트 베이시나 듀크 엘링턴 오케스트라가 큰 인기를 얻었다고는 하지만 대중적인 인기는 주로 베니 굿맨, 아티 쇼, 글렌 밀러 등 백인 오케스트라가 얻었습니다. 이들의 음악은 정말 가볍고 경쾌한 스윙, 댄스 음악에 충실한 스윙 재즈였습니다.

이처럼 스윙 재즈에서도 대중성과 예술성에 있어서 정도의 차이가 있었고 그만큼 예술적인 성취도가 높은 음악이 있었다고 생각할 수 있겠습니다.

문: 그렇다면 어떻게 스윙 재즈는 인기를 잃게 되었나요? 아까 말씀하신 연주자들이 지루해 했기 때문이었나요?

답: 꼭 그것만은 아닙니다. 아까 아방가르드 재즈가 일종의 시대적인 요청에 의해 만들어졌다고 말씀 드렸잖아요? 스윙 재즈는 1930년대 대공황기에 어려운 경제 상황으로 인해 실의에 빠진 사람들이 이를 극복할만한 즐거움을 찾는 과정에서 인기를 얻었습니다. 그들에게 빅 밴드가 연주하는 스윙 재즈에 맞추어 춤을 추는 것은 대단한 행복이었습니다. 그런데 2차 대전이 끝나면서 댄스 홍, 클럽의 인기가 시들해집니다. 특히 댄스 홀에 대한 세금의 부가로 많은 빅 밴드들의 일자리를 잃게 되었습니다. 세금 때문에 문을 닫는 댄스 홀이 많았거든요. 사정이 이렇게 되니 밴드 리더들은 많은 연주자들로 구성된 밴드를 운영하는데 어려움을 겪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밴드를 해체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스윙 재즈는 몰락하고 소규모 밴드에 의해 보다 자유로이 연주를 펼치는 비밥과 보다 대중적인 R&B 음악에 자리를 내주게 됩니다.

문: 그렇게 스윙 재즈는 사라진 것이군요.

답: 아닙니다.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다만 중심에서 밀려난 것이죠. 빅 밴드 스윙 재즈는 전성기 때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지속되었습니다. 카운트 베이시, 듀크 엘링턴 오케스트라는 70년대까지도 인기를 얻었습니다. 리더가 세상을 떠난 후에도 그 명맥을 유지했습니다. 사실 유행과 상관 없이 그 음악을 즐기는 사람들은 늘 있잖아요? 지금도 세계 곳곳에 빅 밴드가 있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문: 알겠습니다. 그렇다면 재즈는 대중 음악이지만 예술적인 면도 높은 음악이다 라고 정리하면 될까요?

답: 예 그렇습니다. 예술성과 대중성이 미묘한 긴장관계를 이루며 발전하는 음악이라 생각하면 될 것 같습니다. 아방가르드 재즈와 스윙 재즈를 예로 생각했지만 이것은 비밥, 쿨 재즈, 프리 재즈, 퓨전 재즈에도 그대로 적용할 수 있습니다.

갈수록 대중 음악으로서의 비중이 줄어들고 있다는 느낌이 있지만 그래도 재즈는 대중 음악으로서의 성격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어느 날 갑자기 스윙 시대처럼 대중 음악의 중심에 다시 설 날이 올 지도 모르겠습니다. 물론 반대로 완벽한 예술 음악으로 자리잡을 가능성도 있기는 합니다. 그래도 저는 그보다 대중 음악으로서 재즈가 자리를 굳건히 하기를 바랍니다. 소수를 위한 음악보다는 다수를 위한 음악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자유로운 상상력, 자유로운 연주의 매력을 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문: 예. 알겠습니다. 저라도 계속 열심히 듣도록 하겠습니다.

답: 감사합니다. 그러면 오늘은 여기까지 하죠.

4 COMMENTS

  1. 포스팅 내용, 개인적으로 많이 위로받네요. 재즈를 좋아한다고 말할때 받는 피드백에 사실 좀 많이 위축되었거든요. 공감받는게 너무 힘들었습니다.ㅠ ‘개인취향’임을 얘기하는 과정자체도 힘이 많이 쓰이더라고요.

    전 사실..마일스데이비스를 좋아하진 않습니다만, Kind of blue 앨범은 매우 좋아합니다.
    빌에반스를 좋아하는 관계로^^
    이 앨범은 제 개인적 호불호를 넘어서 처음 듣는 순간부터, 아…탄식과 함께 감상했던 것 같아요. 전율과 함께.

    • 재즈도 그냥 음악, 그것도 폭이 넓은 음악이니 발라드, 댄스 음악처럼 그냥 맘에 드는 것만 듣자가 핵심이죠.ㅎ

  2. 늘 어려운 주제라고 생각했었는데 알기 쉽게 이야기 해 주셨네요. 마지막은 저도 같이 대답해야 할 것 같습니다.^^
    저도 계속 열심히 듣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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