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 에반스는 현대적인 재즈 피아노 트리오의 모범을 제시한 피아노 연주자였다. 또한 섬세한 보이싱과 서정으로 가득한 솔로 연주는 이후 많은 피아노 연주자들에게 영향을 주기도 했다. 하지만 마약에 중독되었던 그의 삶은 음악만큼 아름답지는 못했다.
그는 솔로 연주를 비롯해 다양한 편성의 연주를 하기도 했지만 트리오 연주를 가장 많이 했다. 그래서 1961년 6월 트리오의 멤버였던 베이스 연주자 스콧 라파로가 교통사고로 사망하자 큰 상실감에 한동안 활동을 멈추기도 했다. 이후 그는 베이스 연주자로 척 이스라엘을 거쳐 1966년 에디 고메즈를 만났다. 그리고 드럼 연주자 마티 모렐을 합류시켜 5년간 뛰어난 앨범들을 녹음해 나갔다.
그 가운데 1971년에 녹음된 <The Bill Evans Album>은 피아노 외에 펜더 로즈 피아노를 처음으로 앨범 녹음을 하여 화제를 모았다. 그는 피아노와 펜더 로즈 피아노를 오가며 연주하는 것에서 나아가 하나는 코드 진행을, 다른 하나는 솔로를 연주하는 식으로 동시에 두 악기를 연주하기도 했다. 반짝이는 불빛 같은 펜더 로즈 피아노의 음색을 활용한 빌 에반스의 연주는 마치 꿈결 같았다. 확실히 이전의 보통 피아노 연주와는 다른 질감의 연주였다. 그럼에도 그의 음악적 미감은 그대로였다. 어떤 악기가 되었건 그의 솔로는 시적인 느낌을 주었다.
에디 고메즈와 마티 모렐의 연주 또한 리듬 연주에 그치지 않고 피아노와 방향을 공감하며 자신의 연주를 펼쳐 보다 입체적인 트리오 연주를 완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