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에반스는 스윙 시대에 밀착되어 있던 재즈 빅 밴드에 쿨 재즈, 포스트 밥 등의 질감을 부여했던 편곡자이다. 그의 영향은 현대적인 빅 밴드 편곡에 있어 지금까지도 지속되고 있다. 그는 <Miles Ahead>(1957)을 시작으로 <Quiet Nights>(1962)에 이르기까지 약 5년간 마일스 데이비스와의 협연으로 잘 알려져 있다.
이후 그는 자신의 이름으로 여러 앨범을 녹음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펼치다가 (마일스 데이비스가 그랬던 것처럼) 강렬한 기타 연주로 1960년대를 강타한 지미 헨드릭스의 음악에 매력을 느끼게 되었다. 그래서 1970년 기타 연주자를 불러 앨범을 함께 할 것을 기획했다. 하지만 기타 연주자가 갑작스레 세상을 떠나면서 기획은 실현되지 못했다.
이러한 아쉬움을 만회하기 위해 그는 1974년 데이빗 샌본, 존 애버크롬비, 류 솔로프 등의 젊은 연주자들을 모아 빅 밴드를 만들어 “Angel”, “Little Wing”, “Voodoo Chile” 등 지미 헨드릭스의 곡들을 연주한 앨범 <Plays The Music Of Jimi Hendrix>을 녹음했다. 앨범에서 그는 빅 밴드의 참신한 울림을 유지하면서도 당시 대중 음악을 지배하고 있었던 록의 질감을 최대한 수용해 곡들을 편곡했다. 그 결과 원곡의 강렬함과 현대적인 재즈 사운드가 절묘하게 결합된 음악을 만들어냈다. 특히 기타 연주자가 참여했음에도 색소폰 솔로를 중심에 둔 것, 그럼에도 드러나는 지미 헨드릭스의 환영은 길 에반스가 얼마나 탁월한 편곡 능력을 지녔는지 새삼 확인하게 해주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