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T 레이블의 제작자 지기 로흐는 2012년부터 베를린 필하모닉 재단과의 협력으로 “재즈 앳 더 베를린 필하모닉”이란 콘서트를 해오고 있다. 이 콘서트는 하나의 주제 하에 여러 연주자들이 무대에 모여 그에 걸맞은 음악을 연주하는 것으로 이루어진다. (베를릭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의 협연으로 오래하지는 말자.) 그 결과 에스뵤른 스벤슨, 노르웨이, 아코데온, 셀틱 음악, 피아노 등을 주제로 이로 란탈라, 레젝 모제르, 마이클 볼니, 부게 베셀토프트(이상 피아노)를 비롯해 라스 다니엘슨(베이스), 뱅상 페이라니, 클라우스 파이에(이상 아코데온), 울프 와케니어스(기타) 등이 공연을 펼쳤다.
그런데 이 일련의 콘서트는 연주자들의 구성이나 주제에 있어 북유럽에 치우친 면이 있었다. 적어도 프랑스 위쪽의 음악적 색이 강했다. 이를 의식했던 것일까? 2017년 6월 12일에 있었던 재즈 앳 더 필하모닉의 17번째 콘서트에서는 이탈리아의 피아노 연주자 스테파노 볼라니가 무대에 섰다. 이 앨범은 바로 그 콘서트를 정리한 것이다.
알려졌다시피 이 피아노 연주자는 재즈의 여러 측면을 아우르는 동시에 모국 이탈리아적인 정서를 곳곳에서 드러내왔다. 이 앨범에서도 “지중해”라는 제목에 걸맞게 절로 이탈리아를 그리게 하는 음악을 들려준다. 그것은 무엇보다 몬테베르디, 푸치니, 로시니, 레온카발로 등 이탈리아 출신의 유명 오페라 작곡가들의 곡과 엔니오 모리코네, 니노 로타 등의 이탈리아 영화 음악 작곡가들, 그리고 이탈리아 대중 음악을 대표하는 파올로 콘테의 곡을 연주한 것에서 나타난다.
이들 곡들을 피아노 연주자는 자신의 트리오에 뱅상 페이라니의 아코데온, 그리고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중 14명의 단원으로 이루어진 빅 밴드를 더한 편성으로 연주했다. 이러한 레퍼토리와 편성에서 누구는 클래식, 팝, 영화 음악과 재즈의 만남 정도로 이 앨범을 생각할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과정일 뿐. 다시 말하지만 이 앨범의 주제는 이탈리아적인 정서이다. 장르를 어떻게 섞었냐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실제 스테파노 볼라니는 화려한 기교를 바탕으로 이탈리아적인 유쾌한 정서, 지중해적인 낭만을 표현하는데 집중했다. 이것은 테마의 연주가 아닌 긴장과 이완을 오가는 솔로 연주에서도 유효하다.
한편 이러한 이탈리아적 음악의 완성에는 가일 리슨의 편곡이 큰 역할을 했다. 특히 몬테베르디의 곡을 팡파레 풍으로 편곡한 “Toccata”로 공연을 시작해 니노 로타가 쓴 영화 <대부>의 주제곡을 이탈리아 반다 음악 스타일로 편곡한 “Fortunella”로 마무리한 것은 이 노르웨이 출신의 편곡자가 혈통을 의심하게 만들 정도로 푸른 햇살 가득한 이탈리아를 잘 이해하고 있음을 알게 해주었다.
재즈 앳 더 필하모닉의 모든 앨범들이 각각의 만족을 주지만 이번 8번째 앨범은 연주와 편곡 그리고 정서적 매력, 나아가 연주자들이 만나고 장르를 가로지르는 음악을 만들어 낸다는 콘서트의 주제에 가장 잘 부합된 것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