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노 연주자 데이브 그루신은 영화 음악 작곡가이자 1970년대 후반 GRP 레이블을 설립해 퓨전 재즈의 인기를 이끌었던 인물로 알려져 있다. 실제 그의 대표적인 앨범들은 영화 음악 사운드트랙이나 80년대 이후에 발표했던 퓨전 재즈 앨범들에 집중되어 있다.
하지만 그가 처음부터 전자 악기가 중심이 되어 팝과 록을 재즈에 결합한 퓨전 재즈를 연주했던 것은 아니다. 그 또한 피아노 앞에 앉아 전통적인 스타일의 연주를 하던 시기가 있었다. 1964년에 녹음한 앨범 <Kaleidoscope>도 그랬다.
트럼펫 연주자 태드 존스, 색소폰 연주자 프랭크 포스터, 베이스 연주자 밥 크랜쇼 등 하드 밥 시대를 풍미한 연주자들과 후에 GRP 레이블을 함께 세우게 되는 드럼 연주자 래리 로젠과 함께 한 이 앨범에서 데이브 그루신은 재즈의 전통을 제대로 흡수한 하드 밥 스타일의 연주를 펼쳤다. 그 가운데 모달 재즈 스타일의 “Inez”나 직선적인 스타일의 “Straight No Chaser”같은 곡은 현재의 관점에서 보면 데이브 그루신의 것이라 생각할 수 없게 만드는 하드 밥의 미덕으로 가득했다. 나아가 트리오 편성으로 녹음된 “Love Letters”나 “Stellar By Starlight” 같은 곡에서의 반짝이는 피아노 솔로는 이후 그가 나아간 작곡가나 새로운 사운드의 개척자의 삶이 아닌 뛰어난 피아노 연주자의 길을 걸으리라 예상하게 했다. 하지만 이 당시 데이브 그루신의 음악은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어쩌면 그래서 이와는 완전히 다른 키보드 중심의 도시적 질감의 음악을 하게 되었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