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zz Moments : Jazz Connoisseur 30 CD (Box Set) (Sony 2017)

지난 2017년 소니뮤직 한국의 기획으로 발매된 박스세트 앨범의 해설지이다. 박스 세트는 개별로 발매된 Jazz Connoisseur 앨범들 가운데 엄선된 30장의 앨범으로 구성되었다. 명반을 듣고 나서 그 다음으로 무엇을 들어야 할까 고민할 때 들으면 좋을 앨범들이다.

Sidney Bechet – Bechet Souvenirs

색소폰과 클라리넷을 연주했던 시드니 베쉐는 뉴 올리언즈 재즈 시대 최고의 연주자 중 한 명이었다. 1897년 뉴올리언스에서 크레올로 태어난 그는 뉴올리언스 재즈를 들으며 성장해 자연스레 뉴올리언스 재즈 연주자가 되었다.

1920년대 중반 그는 프랑스 파리를 비롯한 유럽을 순회하며 공연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했다. 하지만 연주자로서 삶을 영위하기가 갈수록 어려워졌다. 그래서 1950년 파리로 건너갔다. 파리는 그를 환대했다. 그곳에서 그는 행복을 느꼈다. 그래서 1959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파리에서 활동하며 프랑스인들의 사랑을 받았다.

1951년 9월 그는 클라리넷 연주자 클로드 뤼테, 앙드레 레벨리오티 등 프랑스 연주자들과 함께 앨범 <Bechet Souvenirs>를 녹음했다. 앨범에서 그는 평소 자신의 연주로 인기 있었던 곡들을 그의 서명으로 자리잡은 강한 비브라토를 가미해 연주했다. 재즈의 낭만, 파리의 낭만을 담은 연주였다.

한편 당시 앨범에는 8곡만 수록되어 있었다. 그것이 CD로 재발매되면서 1952년 1월 18일 시드니 베쉐와 클로드 뤼테 오케스트라의 이름으로 녹음한 8곡, 그리고 3일 후 시드니 베쉐 올스타즈의 이름으로 녹음한 8곡이 추가되었다. 이들 녹음에서도 시드니 베쉐의 소프라노 색소폰 연주는 여전히 낭만적이다. 특히 클로드 뤼테 오케스트라와 함께 연주한 곡으로 우디 알렌 감독의 2011년도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에서 주제 음악으로 사용된 “Si tu vois ma mère 네가 내 엄마를 보면”는 색소폰 연주자의 매력을 제대로 맛보게 해준다.

Gigi Gryce & Clifford Brown – Gigi Gryce & Clifford Brown Sextet

일찌감치 재즈를 접한 유럽인들은 미국 연주자들의 공연을 유치하는 것을 넘어 직접 미국 연주자들의 앨범을 제작했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유럽 연주자들이 미국 연주자들과 함께 하도록 해 그들만의 재즈를 만들 자양분을 얻는 기회를 만들곤 했다.

1953년, 미국과 프랑스에서 학업을 마치고 막 활동을 시작했던 색소폰 연주자 지지 그라이스와 막 재즈의 미래를 책임질 인물로 주목 받고 있었던 트럼펫 연주자 클리포드 브라운도 그런 경우를 맞이했다. 서로 마음이 맞았던 두 연주자는 비브라폰 연주자 리오넬 햄튼이 이끄는 오케스트라의 멤버로 유럽 순회 공연 중에 파리에서 앨범 녹음을 제안 받았다.

녹음은 1953년 10월 8일부터 15일 사이에 5회에 걸쳐 다양한 편성으로 이루어졌다. 리듬 섹션은 피아노 연주자 앙리 르노를 비롯한 프랑스 연주자들이 담당했다. 그 가운데 두 연주자가 함께 한 섹스텟 편성의 녹음과 클리포드 브라운이 중심이 된 쿼텟 녹음은 각각 프랑스와 미국에서 LP로 발매되었다. 그리고 CD시대에 한 장의 앨범으로 합본되었다.

두 녹음에서 가장 돋보인 것은 역시 클리포드 브라운의 트럼펫이었다. 그의 트럼펫은 전체 사운드를 조율하고 이끌며 매력적인 솔로 연주를 펼쳤다. “Strictly Romantic”에서의 한 없이 낭만적인 연주, “Blue Brown”에서의 열정적인 솔로 연주는 이후 그가 정상의 연주자로 자리잡을 것임을 예견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3년 뒤 트럼펫 연주자는 불의의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나게 된다.

Fats Waller – Ain’t Misbehavin

패츠 월러는 랙타임 시대의 피아노 연주 스타일을 발전시킨 스트라이드 주법-왼손으로 베이스 음과 코드를 번갈아 연주해 리듬을 연주하고 오른손으로 즉흥 솔로 연주를 펼치는-의 연주로 1920년대부터 40년대 사이에 큰 인기를 얻었던 피아노 연주자-오르간도 병행했던-이다. 게다가 그의 연주는 시대를 넘어 재즈 피아노 발전에 영향을 주었다. 또한 “Ain’t Misbehavin'”, “Honeysuckle Rose” 등의 스탠더드 곡을 쓴 뛰어난 작곡가이자 쾌활한 성격으로 유쾌하게 노래했던 보컬이기도 했다.

이 앨범은 1929년부터 1941년 사이에 그가 녹음했던 주요 곡들을 정리한 것이다. 이 때는 아직 LP가 등장하지 않았던, 한 면에 한 곡 정도를 실을 수 있었던 SP의 시대였기에 녹음이 곡 단위로 흩어져 있었다. 그래서 1956년 이 앨범의 발매는 그가 뛰어난 실력의 피아노 연주자이자 상당히 매력적인 밴드의 리더이자 보컬이었음을 새로이 조망하게 해주었다.

예를 들면 1941에 녹음된 “Honeysuckle Rose”에서는 오래된 녹음임에도 반짝이는 톤과 절묘한 강약 조절 등 그의 연주 기교가 얼마나 훌륭했는지 보여준다. 반면 1929년에 녹음된 곡으로 스트라이드 리듬을 유지하며 멜로디에 가벼운 장식을 덧붙인 솔로가 기분 유쾌하게 흐르는 “Ain’t Misbehavin'”에서는 그가 기교만큼이나 정서적 매력 또한 뛰어났음을 생각하게 한다.

또한 1939년 우나 매 칼라일과 듀엣으로 노래한 “I Can’t Give You Anything but Love”를 비롯한 여러 보컬 곡들에서의 명랑한 노래는 그가 피아노 연주자로서 뿐만 아니라 보컬로서도 기억되어야 함을 깨닫게 한다.

Maynard Furguson – Birdland Dreamband, Vol. 1

메이너드 퍼거슨은 트럼펫, 플뤼겔혼 연주자이자 오랜 시간 인기를 얻은 빅 밴드의 리더였다. 캐나다 출신으로 1950년대 스탄 켄튼 오케스트라의 멤버로 본격적인 미국에서의 활동을 시작한 그는 관악기가 많이 포함된 7,8인조 규모의 밴드 활동에 이어 1956년 14명의 연주자로 구성된 빅 밴드인 버드랜드 드림 밴드를 결성하면서 자신의 시대를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록앤롤의 인기로 재즈, 특히 빅 밴드 재즈의 인기가 줄어들고 있는 상황에서 그가 이끄는 빅 밴드의 성공은 상당히 의미 있는 일이었다. 이것은 그의 빅 밴드가 단지 스윙 재즈만을 고집하지 않고 시대의 흐름을 따라 비밥, 쿨 재즈는 물론 라틴 재즈나 퓨전 재즈까지 아우르는 폭 넓은 성향을 보였기에 가능했다. 보다 현대적인 빅 밴드 사운드를 선보였던 것이다.

이 앨범에 담긴 버드랜드 드림 밴드의 1956년 9월 뉴욕 웹스터 홀 공연도 마찬가지였다. 지미 클리블랜드, 허브 겔러, 알 콘, 어니 윌킨스, 행크 존스 등 당대 최고의 연주자들이 참여한 버드랜드 드림 밴드는 기본적으로는 브라스 섹션이 몇 개의 파트로 나뉘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전통적인 빅 밴드 양식을 따르면서도 솔로는 스윙 시대보다는 더욱 자유로운 연주를 들려주었다. 특히 “Maynard the Fox”, “Little Girl Kimbi” 등의 곡에서 끝을 모르는 듯 초고역대로 상승하는 기예에 가까운 모습을 보인 메이너드 퍼거슨의 트럼펫과 밸브 트롬본 솔로는 이 빅 밴드를 다른 누구와 비교할 수 없는 특별한 것으로 만들었다.

George Russell – The RCA Victor Jazz Workshop

조지 러셀은 그 자신이 드럼과 피아노를 연주하곤 했지만 그보다는 작곡가, 재즈 이론가로 더 잘 알려져 있다. 특히 그가 1953년에 펴낸 이론서 <Lydian Chromatic Concept of Tonal Organization>는 자유로운 즉흥 연주를 위한 해법을 리디언 모드에 찾아낸 것을 설명한 것으로 이후 마일스 데이비스, 존 콜트레인 등을 통해 발전하게 되는 모달 재즈-코드가 아닌 모드 중심으로 솔로를 펼칠 수 있게 하는-에 큰 영감을 주었다. 이후 연주자들은 갈수록 복잡해 지는 코드 변화에서 보다 현대적인 음악을 만들어 낼 수 있게 되었다.

1940년대부터 디지 길레스피, 버디 디 프랑코 등을 위해 쓴 곡을 통해 새로운 방식의 작곡을 보여주기도 했던 그는 1953년 책을 발간한 후 자신의 이론을 구현한 음악을 직접 선보이기 시작했다. 1956년에 녹음한 <The Jazz Workshop>은 그 첫 번째 결과물이었다. 앨범에서 그는 피아노 연주를 빌 에반스에게 맞긴 것을 비롯해 아트 파머, 폴 모션, 할 맥쿠식, 배리 갈브레이스 등 자신의 구상을 실현시켜줄 연주자들을 모아 섹스텟을 결성했다. 이 밴드를 통해 그는 자신의 이론이 복잡하고 진보적으로 보일지는 모르지만 실제 음악은 상당히 청량하고 신선함을 보여주었다. 무엇보다 전체 앙상블의 밀도 높은 어울림은 6중주단의 연주임을 잊게 해주었다. 특히 트럼펫과 알토 색소폰 혹은 플루트의 어울림은 빅밴드 브라스 섹션의 연주라 착각하게 할 정도의 풍성한 울림을 들려주었다. 그러면서도 여백을 활용해 산뜻한 느낌을 준 것 또한 매혹적이었다.

Lou Levy Trio – A Most Musical Fella

피아노 연주자 루 레비는 아트 테이텀, 버드 파웰 등의 명인들에게서 영향을 받은 화려한 기교를 지닌 실력파 피아노 연주자였다. 1928년 생으로 10대 후반부터 전문 연주자로서 활동을 시작한 그는 우디 허먼, 사라 본, 토미 돌시, 플립 필립스 등과 함께 하며 차근차근 실력을 쌓아갔다.

하지만 연주자로서의 삶이 어려웠는지 1950년대 초반 재즈계를 떠나 2년여간 의학저널 출판업에서 일을 하기도 했다. 그 뒤 음악에 대한 사랑을 지우지 못해 1954년 다시 재즈계로 돌아왔다. 복귀 후에도 그는 페기 리, 엘라 핏제랄드, 준 크리스티 등의 여성 보컬들이나 쇼티 로저스, 스탄 겟츠 등 웨스트 코스트 재즈 연주자들의 사이드맨으로서 활동했다. 그래도 복귀 후 약 10년여 간은 자신의 이름으로 앨범을 녹음할 기회를 꾸준히 얻었다. 그 가운데 1957년 1월 헐리우드에서 베이스 연주자 맥스 베넷, 드럼 연주자 스탄 레비와 트리오를 이루어 녹음한 앨범 <A Most Musical Fella>는 그의 대표작이라 해도 좋을 반짝이는 연주를 담고 있다.

루 레비의 매력은 화려한 비밥 스타일의 연주에 쿨 재즈의 산뜻한 정서를 담아낼 줄 알았다는 것에 있다. 이 앨범에서도 그는 질주 본능으로 가득한 화려한 솔로 연주를 펼치면서 그 안에 산뜻하고 낙관적인 쿨 재즈의 정서를 담아내었다. 그 중 영롱한 질감으로 낭만 가득한 솔로를 펼친 “We’ll Be Together Again”이나 유쾌한 노래처럼 연주한 “Night & Day”는 피아노 연주자를 가장 음악적인 친구(A Most Musical Fella)로 생각하게 만들었다.

 Phineas Newborn Jr. And Trio – Fabulous Phineas

피아노 연주자 피니어스 뉴본 주니어는 뛰어난 실력에도 제대로 평가를 받지 못한 연주자이다. 아트 테이텀, 오스카 피터슨, 버드 파웰 등 굵직한 피아노 연주자들의 장점을 계승한 그는 고속 열차를 연상시킬 정도의 빠른 연주에 빛을 발했다. 그런 중에도 스윙감을 유지하고 곳곳에서 위트를 발산하는 여유 또한 있었다. 그렇기에 오스카 피터슨은 자신을 계승한 연주자로 주저 없이 그럴 뽑았으며 재즈 평론가 레너드 페더는 최고의 기교를 지닌 연주자라 그를 평했다. 이런 좋은 평가에도 불구하고 그는 건강 문제로 꾸준한 활동을 펼치지 못했다. 그 결과 50년대 중반부터 60년대 초반까지가 그의 가장 빛나는 시기로 기억되고 있다.

1958년에 녹음된 앨범 <Fabulous Phineas>에서 그는 자신의 장점, 매력을 잘 표현했다. 앨범에서 그는 2살 터울의 동생인 기타 연주자 캘빈 뉴본을 비롯해 베이스 연주자 조지 조이너, 드럼 연주자 덴질 베스트와 쿼텟을 이루었다. 이들과 함께 스윙감으로 가득한 연주를 펼쳤는데 여기서도 그의 피아노 솔로는 강력한 카리스마로 전체를 압도했다. 현란한 속주가 돋보이는 ” I`ll Remember April”, 당시 절정의 기량으로 전설을 만들어내고 있던 권투선수 슈가 레이 로빈슨을 위해 만든 여유로운 분위기의 “Sugar Ray”같은 곡이 대표적이다. 한편 “What’s New?”와 “Cherokee”는 피아노 솔로로 연주했는데 넘치는 힘을 바탕으로 한 세기와 속도의 완급 조절, 낭만적 정서의 표현 등 그가 지닌 모든 능력을 다 드러내었다

 The Dave Bailey Sextet – One Foot In The Gutter: A Treasury Of Soul

드럼 연주자 데이브 배일리가 전문 연주자로 활동했던 기간은 매우 짧다. 2차 대전 중 파일럿으로 근무했던 그는 1950년대 초반부터 1960년대까지 활동한 후 재즈를 떠나 항공 교관을 거쳐 음악 교육자로서의 삶을 살았다. 비교적 짧은 기간이었지만 그 사이 그는 제리 멀리건, 루 도날드슨, 클락 테리 등 정상급 연주자들의 앨범에 참여하는 등 매우 인상적인 활동을 펼쳤다. 1960년부터 61년 사이에 녹음한 5장의 리더 앨범 또한 인상적이었다.

그 가운데 <One Foot in the Gutter>는 그의 첫 뻔째 리더 앨범으로 스튜디오에서 소수의 관객을 초청한 라이브 형식으로 녹음되었다. 트럼펫 연주자 클락 테리를 비롯해 커티스 풀러(트롬본), 주니어 쿡(색소폰), 호레이스 팔란(피아노), 펙 모리슨(베이스) 등 당대 최고의 연주자들로 구성된 섹스텟은 여유로운 템포를 바탕으로 매력적인 하드 밥 사운드를 만들어 냈다. 느긋하게 연주했기 때문인지 각 곡들의 연주 시간도 길었다. 그 결과 당시 발매된 LP에는 10분여간 연주된 타이틀 곡과 “Well You Needn’t”, 20여분간 연주된 “Sandu” 이렇게 3곡만 수록되었다.

이 곡들에서 연주자들은 질서 있게 자신의 솔로 연주를 이어갔다. 하지만 이들에게 중요한 것은 화려한 솔로 연주가 아닌 전체 앙상블의 조화였다. 자유로이 인터플레이를 펼치면서도 촘촘한 호흡으로 단단한 하드 밥 사운드를 만들어 내는 것. 리더인 드럼 연주자도 자신을 드러내기 보다는 전면의 혼 연주자들을 지원하는데 집중했다.

그 결과 앨범은 데이브 배일리의 짧은 활동을 아쉬워하게 만드는, 1960년대의 명연을 담은 앨범으로 남았다.

The Ray Bryant Trio – Little Susie

피아노 연주자 레이 브라이언트는 재즈계에 새로운 무엇을 가져오기 보다는 기본적인 재즈의 법을 효율적으로 활용한 피아노 연주자에 해당한다. 20대부터 전문 연주자의 길을 걷기 시작한 그는 필라델피아의 블루 노트 클럽에서 하우스 피아노 연주자로 활동하며 유명 연주자들과 함께 하는 등 초기에는 세션 연주자로서 많은 활동을 했다.

그는 재즈가 갈수록 현대적으로 바뀌는 상황에서도 전통적인 블루스를 바탕으로 한 연주를 즐겼다. 콜럼비아 레이블에서의 첫 앨범인 <Little Susie>도 마찬가지였다. 자신의 사랑스러운 딸에게서 영감을 얻어 만든 앨범 타이틀 곡이 대표적이었다. 전형적인 블루스 형식을 지닌 이 곡은 사실 이 앨범을 녹음하기 전 먼저 싱글로 발표되어 적지 않은 인기를 얻기도 했다. 그것을 앨범을 위해 다시 녹음했는데 이 곡에서 피아노 연주자는 그의 어린 딸을 연상시키는 앙증맞은 테마 연주에 이어 밝은 톤으로 활기찬 솔로를 이어갔다. 그런 중 아예 특별한 가감 없이 왼손의 블루스 진행만으로 곡의 산뜻하고 사랑스러운 분위기를 강조했다.

다른 곡들에서도 그는 과한 욕심을 부리지 않고 오랜 시간 함께 했던 한 살 위의 형 토미 브라이언트의 베이스와 에디 록크 혹은 거스 존슨의 드럼이 만들어낸 살랑거리는 리듬을 배경으로 산뜻한 솔로 연주를 펼쳤다.

사실 지금은 물론 당시로서도 확연히 새로운 무엇을 담고 있는 앨범은 아니었다. 하지만 전통에 충실한 연주가 주는 친근감, 앨범 전체에 흐르는 밝고 여유로운 정서는 이후 피아노 연주자가 걷게 될 안정적인 미래를 예견하는 것이었다.

Johnny Coles Quartet – The Warm Sound

자니 콜스는 1940년대부터 90년대까지 주로 사이드맨으로 활동했던 트럼펫 연주자이다. 오랜 시간만큼 그와 함께 한 연주자들은 듀크 엘링턴, 길 에반스, 그랜트 그린, 아스트러드 질베르토, 제리 알렌, 찰스 밍거스, 허비 행콕, 듀크 피어슨 등 다양한 스타일을 아우른다. 그만큼 상황에 맞추어 연주를 펼치는 능력이 뛰어났다는 것이리라.

사이드맨 활동에 주력했기에 그의 리더 앨범은 몇 장 되지 않는다. 그래도 그가 1960년대에 녹음했던 두 장의 앨범 <The Warm Sound>와 <Little Johnny C>는 평단과 재즈 애호가들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은 앨범으로 남아 있다.

그 중 그의 첫 리더 앨범이었던 <The Warm Sound>는 사이드맨으로만 기억되기에 아쉬운 서정적 트럼펫 연주자로서의 자니 콜스를 담은 앨범이었다. “Where”, “Hi-Fly”같은 발라드 곡에서의 연주가 대표적이었다. 이들 곡에서 트럼펫 연주자는 부드럽고 따스한 톤으로 낭만 가득한 솔로 연주를 펼쳤다. 마이너 블루스의 자작곡 “Room 3”처럼 빠른 템포의 다른 곡들에서도 그는 하드 밥의 뜨거운 긴장으로 가득한 솔로 연주를 펼치면서도 앨범 타이틀에 걸맞은 정서적 매력을 놓치지 않았다. 마치 감상자에게 이야기를 거는 듯한 연주였다.

리듬 섹션의 연주 또한 긴장과 이완을 오가는 리더의 솔로 연주에 적절히 대응하며 매력적인 하드 밥 사운드를 완성했다. 특히 “Room 3”나 “Hi-Fly” 등의 곡에서 트럼펫 솔로에 이어 들리는 피아노 연주자 케니 드류의 솔로는 앨범 감상의 또 다른 별미를 제공했다.

Carmen McRae – Sings Lover Man and Other Billie Holiday Classics

카멘 맥래는 흔히 말하는 재즈 보컬의 3대 디바인 엘라 핏제랄드, 빌리 할리데이 만큼의 인기를 누리지는 못했지만 실력만큼은 그들과 어깨를 나란히 했던 보컬이다. 그녀는 10대 시절 빌리 할리데이의 피아노 연주자로 활동했던 테디 윌슨을 통해 빌리 할리데이를 만났다. 이후 베니 카터, 머서 엘링턴 밴드 등에서 피아노 연주자로 활동을 먼저 시작했지만 노래를 병행하고 나아가 전문 보컬로서의 삶을 살게 된 데에는 빌리 할리데이와의 인연이 결정적이었다. 그래서 평소 빌리 할리데이가 없었다면 자신도 없었다고 말하곤 했다.

따라서 빌리 할리데이가 1959년 7월에 사망하자 그녀를 위한 앨범을 녹음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자신의 우상이 세상을 떠난 지 2년이 지난 여름 카멘 맥래는 에디 록조 데이비스, 냇 아들레이를 비롯한 6명의 연주자를 대동하고 “Lover Man”, “God Bless the Child”, “Strange Fruits”빌리 할리데이가 평소 즐겨 노래했던 곡들을 녹음했다.

그렇다고 그 스타일까지 고인을 따르지는 않았다. 당시 카멘 맥래는 최고의 보컬로 인정받고 있었다. 그만큼 그녀의 노래는 빌리 할리데이와는 다른 그녀만의 매력을 발산했다. “Them There Eyes” 등에서의 넘치는 스윙감은 분명 빌리 할리데이와는 다른 것이었다. 또한 각 곡에 담긴 정서 또한 한층 부드러운 목소리만큼이나 더 낭만적이었다. 그래도 빌리 할리데이를 상징하는 곡의 하나로 먼델 로우의 기타 반주에 맞추어 비통한 분위기로 노래한 “Strange Fruits”에서는 우상의 그림자를 많이 드러내었다.

Dave Pike – Pike’s Peak

데이브 파이크는 1960년대부터 80년대 사이에 꾸준한 활동을 펼쳤던 비브라폰 연주자이다. 그는 어린 시절 드럼을 먼저 배운 후 독학으로 비브라폰 주법을 익혔다. 그의 연주는 리오넬 햄튼, 밀트 잭슨 등의 영향을 받았지만 비브라톤에 전기 앰프를 연결해 그 소리를 증폭했다는 점에서 또 다른 면을 보였다. 종종 자신의 악기를 스팀테이블(Steamtable)”이라 불렀던 그는 초기에는 열기 가득한 비밥 성향의 연주에 주력했다.

1961년 가을에 녹음된 두 번째 리더 앨범 <Pike’s Peak>은 이를 잘 담아냈다. 베이스 연주자 허비 루이스와 드럼 연주자 월터 파킨스에 막 빌리지 뱅가드 클럽에서 라이브로 녹음된 앨범 <Sunday at the Village Vanguard>로 재즈 피아노 트리오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었던, 그럼에도 베이스 연주자 스콧 라파로의 사망으로 인한 실의에사 빠져나오려 몸부림치던 피아노 연주자 빌 에반스가 가세한 이 앨범에서 비브라폰 연주자는 템포와 상관 없이 열기로 가득한 솔로 연주를 펼쳤다.

특히 마일스 데이비스의 “So What”에서 영감을 받은 첫 곡 “Why Not” 나 아예 마일스 데이비스의 곡을 연주한 “Vierd Blues”에서 허밍을 곁들인 강렬한 솔로와 즉흥 잼 세션에 가까운 인터플레이는 연주의 즐거움을 제대로 느끼게 해주었다. 한편 발라드 곡 “Wild Is The Wind” 에서는 영롱한 질감과 울렁거림을 잘 활용한 사려 깊은 솔로 연주 또한 하드 밥의 매력을 느끼게 해주었다.

Kenny Burrell – Bluesin’ Around

케니 버렐은 재즈 기타를 이야기할 때 제일 앞에 언급해야 하는 인물 중의 한 명이다. 디트로이트 출신인 이 기타 연주자는 학업을 마치고 1956년 뉴욕으로 건너오자마자 곧바로 블루 노트 레이블을 통해 솔로 앨범을 녹음하기 시작했다. 그 앨범들은 모두 성공적이었다. 이를 바탕으로 그는 1960년 콜럼비아 레이블과 계약하고 앨범 <Weaver of Dreams>을 녹음했다. 그런데 보다 큰 상업적 성공을 원했던 음반사는 그에게 기타 연주 외에 노래까지 부르게 했다. 하지만 이것은 역설적으로 기대한 만큼의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이에 그는 새로운 마음으로 색소폰 연주자 일리노이 자켓, 피아노 연주자 행크 존스, 오르간 연주자 잭 맥더프 등과 함께 1961년 11월부터 1962년 4월에 사이에 앨범 <Bluesin’ Around>를 녹음했다.

앨범에서 케니 버렐은 다시 기타에만 집중해 하드 밥 본연의 매력으로 가득한 연주를 펼쳤다. 그 가운데 “The Squeeze”, “One Mint Julep” 등에서는 그의 장점으로 인정받곤 했던 뛰어난 블루스 감각을 선보였다. 또한 “Mambo Twist” 등에서의 색소폰 연주자 일리노이 자켓, “Bluesin’ Around”에서 트롬본 연주자 에디 버트, 그리고 “Moten Swing” 등에서의 오르간 잭 맥더프의 존재감 또한 하드 밥의 진득한 맛을 강하게 했다.

그런데 이 앨범은 이전 앨범의 여파 때문이었는지 녹음 후 곧바로 발매되지 못했다. 한참의 시간이 흐른 1983년에서야 발매될 수 있었다. 앨범에 담긴 뛰어난 연주를 생각하면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었다.

Charlie Rouse – Yeah!

색소폰 연주자 찰리 루스는 1988년 우리 나이로 65세에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비교적 꾸준히 활동했음에도 솔로 연주자로서는 그다지 큰 조명을 받지 못했다. 여전히 1959년부터 1970년까지 피아노 연주자 델로니어스 몽크 그룹의 멤버로 활동한 것만 기억되고 있다. 하지만 이를 떠나 그는 독자적인 조명을 받아도 좋은 실력 있는 연주자였다. 역설적이지만 워낙 독특한 성격의 소유자이자 음악에 있어서도 긴장을 즐겼던 피아노 연주자와 오랜 시간 함께 했다는 것이 이를 입증한다. 그렇다고 그가 델로니어스 몽크처럼 긴장을 즐기는 연주자였다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부드러운 질감으로 편안하고 안정적인 연주를 즐겼다. 그것이 오히려 피아노 연주자의 음악에 균형감을 주었기에 오래 함께 할 수 있지 않았나 싶다.

그는 경력에 비해 그리 많은 리더 앨범을 남기지 않았다. 하지만 그 앨범들은 하나같이 재즈의 진득한 매력을 담아낸 것이었다. 1960년 12월, 그러니까 델로니어스 몽크 그룹의 일원으로 활동하던 당시에 녹음한 앨범 <Yeah!> 또한 마찬가지였다. 자작곡과 스탠더드 곡을 고르게 연주한 이 앨범에서 그는 템포와 상관 없이 일체의 긴장을 허용하지 않으려는 듯한 부드러운 연주를 들려주었다. 특히 “There’s No Great Love”, “Stellar By Starlight” 등의 발라드 곡에서 안개 같은 톤으로 펼친 솔로는 그가 지닌 따스하고 너그러운 풍모를 제대로 느끼게 해주었다. 여기에 피아노 연주자 비릴 가드너를 중심으로 한 리듬 섹션의 차분한 연주 또한 앨범의 낭만성을 더욱 강조했다.

Doris Day & André Previn with the André Previn Trio – Duet

흑인 여성 보컬들에 비해 백인 여성 보컬들은 노래 외에 연기를 병행하곤 했다. 아름다운 외모를 강조한다고 해서 블론디 보컬이라는 다소 폄하적인 평가를 받기도 했던 이들 보컬들은 흑인 보컬들과는 다른 담백함, 산뜻함으로 사랑을 받곤 했다. 도리스 데이도 마찬가지였다. 라디오에서 엘라 핏제랄드의 노래를 듣고 보컬의 길을 결심한 그녀는 20대 중반에 보컬로 인기를 얻은 후 연기 또한 병행하여 여러 영화와 TV 드라마에서 인상 깊은 연기를 하기도 했다. 또한 출연한 영화에서 주제곡을 노래해 보컬로서의 인기 또한 이어갔다.

1960년대에 그녀는 배우로서 절정의 인기를 누렸다. 1961년만 해도 록 허드슨과 함께 한 영화 <Lover Come Back>로 큰 성공을 거두었다. 그렇게 바쁜 중에도 노래에 대한 열정 또한 잃지 않고 두 장의 앨범을 녹음했다. 그 가운데 앨범 <Duet>은 피아노 연주자 앙드레 프레빈과 함께 한 것으로 그녀의 앨범들 가운데 가장 내면적인 분위기의 노래를 담고 있다. 사실 그녀의 노래들은 앨범마다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재즈보다는 팝적인 면이 많았다. 그러나 이 앨범에서는 달랐다. 앨범에서 그녀는 직접 노래할 곡을 선택하는 한편 각 곡들의 멜로디를 담백하게 노래하는 것에 집중했다. 그래서 그녀의 노래는 모두 사랑의 연가 같았다.

한편 앙드레 프레빈 또한 우아한 터치로 도리스 데이의 노래를 지원하면서도 반짝이는 솔로 연주로 자신의 역할이 보컬의 상대역임을 명확하게 드러냈다. 마치 영화에서 남녀 배우가 사랑의 대화를 나누는 것 같은 연주와 노래였다.

Chet Is Back – Chet Baker

트럼펫 연주자 쳇 베이커는 재즈계의 제임스 딘이라 불릴 정도의 수려한 외모와 모성 본능을 자극하는 보컬, 낭만적인 연주에서 빛을 발하는 솔로 연주로 인기를 얻었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그의 삶은 비극적이었다. 마약 중독 때문이었다. 그는1950년대부터 마약을 알게 된 후 평생 끊지 못하고 자기 파괴의 삶을 살았다. 역설적인 것은 어두운 그의 삶과 달리 음악은 한 없이 낭만적이었다는 것이다.

그는 1960년 8월 이탈리아 순회 공연 중 소지로 체포되었다. 이후 1년 7개월 10일 형을 받고 토스카나주 루카에 위치한 교도소에 수감되었다. 그러나 주변 사람들의 도움으로 이듬 해 12월 15일 모범수로 석방되었다.  교도소 생활을 하면서 음악에 대한 갈증이 심해졌던 것일까? 출소 후 그는 곧바로 이탈리아 연주자들을 소집해 투어를 시작했다. 그와 앨범도 녹음했다.

<Chet Is Back>이라는 타이틀로 발매된 앨범에서 그는 평소의 나른하고 낭만적인 연주와는 다른 역동적이고 자신감 넘치는 연주를 펼쳤다. 평소 절제를 통해 여백을 살렸던 것과는 달리 분출하는 열기로 공간을 꽉 채우는 연주였다. 연주된 곡들의 면모 또한 앨범을 쿨 재즈보다 비밥 재즈로 인식하게 했다. 정말 교도소 복역에도 불구하고 그의 연주력은 건재함을 알리는 연주였다.

한편 CD로 재발매되면서 앨범에는 같은 해 엔리오 모리코네와 함께 녹음한 네 곡이 추가되었다. 이 녹음에서 쳇 베이커는 엔니오 모리코네가 이끄는 오케스트라 반주 위로 트럼펫을 연주하는 한편 이탈리아어로 노래했다. 많은 사람들이 좋아했던 낭만적이고 달콤한 연주와 노래였다.

 Pony Poindexter (Featuring Eric Dolphy) – Pony’s Express

색소폰 연주자 포니 포인덱스터는 1940년대부터 활동을 시작해 리오넬 햄튼, 찰리 파커, 냇 킹 콜, 닐 헤프티 등 쟁쟁한 연주자들과 함께 했지만 그렇게 많아 알려진 편은 아니다. 여기에는 그가 리더 앨범을 많이 녹음하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1963년 프랑스 파리로 건너가 스페인과 독일 등에서 1970년대 후반까지 살았기 때문이었다.

1962년 2월, 4월, 5월에 각기 다른 연주자들과 함께 했던 녹음을 정리한 첫 앨범 <Pony’s Express>에서 포니 포인덱스터는 하드 밥을 바탕으로 하고 있으면서도 당시로서도 매우 이색적인 성향의 음악을 들려주었다. 앨범에서 그는 트럼펫이나 트롬본 없이 오로지 색소폰으로만 혼 섹션을 구성했다. 게다가 당시 진보적인 음악으로 최고의 위치에 올랐던 색소폰 연주자 에릭 돌피를 비롯해 덱스터 고든, 소니 레드, 클리포드 조던, 지미 히스, 페퍼 아담스 등 당대의 스타급 색소폰 연주자들로 이루어진 혼 섹션이었다. 한편 중량감 넘치는 연주자들이 함께 했음에도 그 음악은 하드 매우 산뜻했다. 성부로 나뉜 색소폰들의 어울림은 청량감으로 가득했고 질주하는 리듬 섹션 또한 경쾌했다. 그리고 이를 배경으로 한 포니 포인덱스터의 솔로 연주 또한 화사했다. “Blue”, “Skylark”같은 발라드 곡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앨범은 전체적으로 하드 밥에 해당하면서도 산뜻한 질감으로 인해 웨스트 코스트 재즈를 느끼게 했다. 한편 이것은 후에 스티비 원더를 비롯한 R&B 아티스트들과 함께 하게 되는 진 키의 편곡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Sonny Rollins – What’s New?

우리 나이로 88세에 이른 지금까지도 꾸준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색소폰 연주자 소니 롤린스는 찰리 파커 이후 존 콜트레인과 함께 재즈 색소폰에 있어 가장 중요한 연주자로 꼽힌다. 실제 그의 연주는 많은 동료와 후배 연주자들에게 영향을 주었다.

그는 1950년대 중반 <Saxophone Colossus>와 <Way Out West> 등으로 최고의 연주자로 인정 받았다. 하지만 그는 이 정상의 위치를 부담스러워 했다. 게다가 자신의 연주를 더 연마할 필요마저 느꼈다. 그래서 놀랍게도 은둔을 선택했다. 1959년부터 약 2년간 그는 이른 새벽이면 뉴욕의 윌리엄스버그 다리 위에서 홀로 색소폰을 연습했다. 그리고 1962년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재즈의 중심으로 돌아왔다.

복귀 후 그는 1962년 한 해 동안 석장의 앨범을 녹음했다. 그 가운데 <What’s New>는 <The Bridge>에 이은 두 번째 앨범에 해당한다. 색소폰 연주자는 두 개의 편성으로 앨범을 녹음했다. 그 가운데 “Jungoso”, “Bluesongo”는 베이스-타악기와 트리오를 이루어 녹음했다. 이들 곡에서 그는 <The Bridge>에서처럼 다양한 톤의 조절과 역동적인 솔로로 원시적, 원초적인 자유를 느끼게 했다. 나머지 곡들은 기타, 베이스, 드럼에 세 대의 타악기가 가세한 셉텟 편성으로 녹음했다. 다른 두 곡에 비해 이들 곡들은 한층 편했다. 보사노바, 칼립소 리듬 등을 사용하고 코러스까지 가세해 이국적이고 유쾌한 정서를 느끼게 했다. 이것은 색소폰 연주자가 잠적 하기 전에 들려주었던 음악과 연결되는 것이기도 했다.

Gerry Mulligan Jeru

쿨 재즈를 대표하는 인물 중 하나인 제리 멀리건은 지금도 연주자가 많지 않은 바리톤 색소폰을 연주했다. 그런데 바리톤 색소폰의 묵직한 톤과 달리 그의 음악은 가볍고 부드러웠다. 1950년대 초, 트럼펫 연주자 쳇 베이커와 함께 피아노 없는 쿼텟을 결성해 인기를 얻은 이후, 그는 좀처럼 피아노 연주자와 함께 하지 않았다. 필요하면 자신이 직접 연주하곤 했다. 1960년 ‘콘서트 재즈 밴드’라는 이름의 빅 밴드를 결성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피아노 연주자 대신 그는 관악기 연주자와 함께 하는 것을 즐겼다. 하지만 1962년에 녹음된 앨범 <Jeru>는 예외였다. 당시 그는 알토 색소폰 연주자 폴 데스몬드와 쿼텟을 이루어 앨범을 녹음 중이었다. 그런 중 드럼 연주자 데이브 배일리의 제안으로 타미 플라나간의 피아노와 함께 하루 만에 앨범을 녹음하게 되었다.

퀸텟 편성으로 바리톤 색소폰 연주자는 미디엄 템포의 부드러운 스윙감이 돋보이는 리듬 섹션을 배경으로 편안하고 긍정적인 분위기로 가득한 연주를 펼쳤다. 그의 솔로는 두터운 색소폰 톤에도 불구하고 깃털처럼 가벼웠으며 사랑하는 사람의 귓속말처럼 달콤했다.

이러한 분위기에 타미 플라나간의 피아노는 최적의 선택이었다. 피아노 연주자는 반짝이는 톤으로 바리톤 색소폰과 대비를 이루며 과거 다른 관악기들이 했던 역할을 대신했다. 그리고 살랑거리는 스윙감으로 사운드를 더욱 낭만적으로 만들었다.

하지만 이 멋진 조화는 여기가 끝이었다. 앨범 녹음 후 제리 멀리건은 다시 폴 데스몬드와의 쿼텟 녹음을 이어갔다.

André Previn – 4 To Go!

앙드레 프레빈의 이력은 독특하다. 유대계 러시아 혈통으로 독일에서 태어나 나치를 피해 미국으로 이주한 그는 현재 휴스턴 심포니 오케스트라,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 피츠버그 심포니 오케스트라를 이끌었던 클래식 지휘자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본격적인 지휘 활동을 하기 전까지 그는 20여년에 걸쳐 재즈 피아노 연주자로서 오스카 피터슨이나 호레이스 실버처럼 밝고 산뜻한 스타일의 연주를 펼쳤다. 클래식 연주자의 외도가 아닌, 재즈 역사상 기억될 인상적인 활동이었다. (1990년대 이후에 재즈 연주를 재개했다.)

1962년 앙드레 프레빈은 NBC 방송국의 스티브 알렌 쇼에서 기타 연주자 허브 엘리스를 만났다. 기타 연주자와의 협연이 마음에 들었던 피아노 연주자는 내친 김에 종종 호흡을 맞춘 드럼 연주자 쉘리 만과 당시 오스카 피터슨 트리오의 멤버였던 베이스 연주자 레이 브라운이 가세한 올스타 쿼텟 앨범 <4 To Go!>를 녹음했다.

스탠더드 곡과 연주자들의 자작곡으로 채워진 이 앨범에서도 산뜻한 스윙감과 낙관적이고 밝은 정서가 돋보이는 앙드레 프레빈의 연주는 반짝 빛이 났다. 그는 “No Moon At All”부터 “Don’t Sing Along”에 이르기까지 날아갈 듯 가볍게 움직이며 행복의 기운으로 가득한 솔로를 이어갔다. 그러면서 리더로서 자신의 연주만을 부각시키지 않고 동료 연주자들과 즉흥적이면서도 편안한 호흡을 이루었다. 마치 마음 맞는 친구들이 모여 파티를 연 것 같은 정겨움으로 가득한 쿼텟 연주였다. 동시에 그것은 웨스트 코스트 재즈의 매력을 제대로 드러낸 연주이기도 했다.

Martial Solar – At The Newport ‘63

프랑스 출신의 피아노 연주자 마르시알 솔랄은 프랑스는 물론 유럽 재즈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현재도 활동 중에 있는 이 피아노 연주자는 1950년대 미국에서 건너온 연주자들과 함께 활동하면서 주목을 받았다. 그리고 장 뤽 고다르 감독의 1960년도 영화 <À bout de soufflé>의 음악을 만드는 등 작곡가로서도 뛰어난 능력을 발휘했다.

프랑스에서 그의 활동은 많은 미국 연주자들의 호평을 받았고 급기야 1963년 빌 에반스와 함께 했던 테디 코틱(베이스), 폴 모션(드럼)과 트리오를 이루어 뉴 포트 재즈 페스티벌에 참가하게 되었다. 그의 공연은 그대로 녹음되어 앨범으로 발매될 계획이었다. 그에 걸맞게 공연은 대단했다. 하지만 한 장의 앨범으로 발매하기에는 분량이 짧았다. 그래서 스튜디오 리허설 녹음에 공연장의 박수소리를 믹싱해 만든 몇 곡을 추가해 한 장의 앨범으로 완성해야 했다.

비록 진정한 라이브 앨범은 아니었지만 이것은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아트 테이텀, 버트 파웰 등의 영향을 받은 화려한 기교와 강력한 타건, 리듬과 멜로디를 융합한 듯 종횡무진하는 솔로 연주는 재즈의 본고장 사람들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듀크 엘링턴, 디지 길레스피 등 명인들까지 그의 연주에 찬사를 보냈다.

이를 바탕으로 그는 미국에서의 활동을 계속 이어가려 했다. 미국에서의 상황 또한 좋았다. 하지만 잠시 파리로 돌아간 뒤 그는 이혼 등 개인 문제로 인해 다시 미국에 가지 못했다. 미국인들을 깜짝 놀라게 한 이 앨범은 그렇게 미국에서의 첫 앨범이자 마지막 앨범이 되었다.

Bob Brookmeyer – Bob Brookmeyer & Friends

밥 브룩마이어는 웨스트 코스트 재즈 혹은 쿨 재즈를 풍성하게 했던 밸브 트롬본 연주자이자 피아노 연주자, 그리고 작, 편곡자였다. 그는 1954년부터 리더 앨범을 녹음했다. 하지만 같은 시기 제리 멀리건, 스탄 겟츠, 지미 주프레 등의 색소폰 연주자와의 활동으로 더 큰 주목을 받았다.

1964년 5월에 녹음된 앨범 <Bob Brookmeyer & Friends>는 스탄 겟츠와의 7년만의 만남을 중심으로 당시 재즈에 신선한 기운을 불어넣고 있던 게리 버튼(비브라폰), 허비 행콕(피아노), 론 카터(베이스) 등의 신예-지금은 거장이 된- 연주자들과 엘빈 존스(드럼)와의 만남을 담고 있다.

그런데 자작곡만을 연주하려 했던 밥 브룩마이어와 스탠더드 곡만을 연주하기를 원했던 제작자 테오 마세로의 충돌로 인해 앨범 녹음 당시 분위기는 그리 좋지 않았다. 게다가 제작자는 당시 최고의 인기를 누리던 스탄 겟츠의 명성을 이용하고자 했다. 결국 둘의 충돌은 트롬본 연주자의 자작곡과 스탠더드 곡을 섞어서 연주하는 것으로 정리되었다.

이러한 긴장에도 불구하고 앨범의 사운드는 한 없이 부드럽고 우아했다. 밥 브룩마이어의 트롬본과 스탄 겟츠의 색소폰은 7년 전보다 한층 더 긴밀한 어울림으로 포근함을 연출했으며 게리 버튼의 영롱한 비브라폰도 나른한 질감을 전체 사운드에 부여했다. 그 가운데 “Misty”는 이러한 밴드의 매력이 잘 반영된 백미(白眉)였다.

한편 이 앨범은 CD로 발매되면서 미공개 트랙이 추가되었는데 그 가운데 “Day Dream”에서는 남성 보컬 토니 베넷이 참여해 나른한 맛을 더했다.

Paul Desmond – Easy Living

색소폰 연주자 폴 데스몬드를 이야기 하기 위해서는 데이브 브루벡과의 활동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1944년 처음 만난 이후 두 연주자는 데이브 브루벡 쿼텟으로1967년까지 함께 활동하며 큰 인기를 얻었다. 특히 쿼텟의 1959년도 앨범 <Time Out>에 수록된 “Take Five”는 재즈 역사상 가장 인기 있었던 곡의 하나로 자리잡고 있다. 그리고 이 곡은 데이브 브루벡이 아닌 폴 데스몬드가 작곡했다.

데이브 브루벡 쿼텟 활동에 주력했지만 그 사이 색소폰 연주자는 간간히 자신만의 활동도 했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그는 데이브 브루벡처럼 사이드맨 이상으로 자신과 호흡을 같이 하는 연주자들을 기용했다. 특히 1961년부터 1965년 사이에 함께 한 기타 연주자 짐 홀도 그런 경우였다. 이 기타 연주자와 함께 폴 데스몬드는 여러 장의 앨범을 녹음했는데 모두 그의 음악 인생에 있어 데이브 브루벡 쿼텟 활동 외에 가장 빛났던 시기를 담은 것으로 기억되고 있다.

그 가운데 앨범 <Easy Living>은 1963년부터 1965년 사이에 있었던 녹음으로 이루어진 것으로 짐 홀과 함께 한 앨범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호흡을 담고 있다. 잔잔한 베이스와 드럼의 지원 속에 안개처럼 공간에 흩뿌려지는 듯한 폴 데스몬드의 알토 색소폰과 봄날 아지랑이처럼 몽실몽실 피어 오르는 포근한 톤으로 차분하게 여백을 만들어 내는 짐 홀의 기타는 실내악 같은 어울림으로 앨범 타이틀에 걸맞은 아늑하고 달콤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데이브 브루벡 쿼텟 시절과는 다른 방식으로 쿨 재즈가 줄 수 있는 최고의 편안함을 표현한 연주였다.

Dave Grusin – Kaleidoscope

피아노 연주자 데이브 그루신은 영화 음악 작곡가이자 1970년대 후반 GRP 레이블을 설립해 퓨전 재즈의 인기를 이끌었던 인물로 알려져 있다. 실제 그의 대표적인 앨범들은 영화 음악 사운드트랙이나 80년대 이후에 발표했던 퓨전 재즈 앨범들에 집중되어 있다.

하지만 그가 처음부터 전자 악기가 중심이 되어 팝과 록을 재즈에 결합한 퓨전 재즈를 연주했던 것은 아니다. 그 또한 피아노 앞에 앉아 전통적인 스타일의 연주를 하던 시기가 있었다. 1964년에 녹음한 앨범 <Kaleidoscope>이 그랬다.

트럼펫 연주자 태드 존스, 색소폰 연주자 프랭크 포스터, 베이스 연주자 밥 크랜쇼 등 하드 밥 시대를 풍미한 연주자들과 후에 GRP 레이블을 함께 세우게 되는 드럼 연주자 래리 로젠과 함께 한 이 앨범에서 데이브 그루신은 재즈의 전통을 제대로 흡수한 하드 밥 스타일의 연주를 펼쳤다. 그 가운데 모달 재즈 스타일의 “Inez”나 직선적인 스타일의 “Straight No Chaser”같은 곡은 현재의 관점에서 보면 데이브 그루신의 것이라 생각할 수 없게 만드는 하드 밥의 미덕을 보여주었다. 나아가 트리오 편성으로 녹음된 “Love Letters”나 “Stellar By Starlight” 같은 곡에서의 반짝이는 피아노 솔로는 이후 그가 나아간 작곡가나 새로운 사운드의 개척자의 삶이 아닌 뛰어난 피아노 연주자의 길을 걸으리라 예상하게 했다. 하지만 이 당시 데이브 그루신의 음악은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어쩌면 그래서 이와는 완전히 다른 키보드 중심의 도시적 질감의 음악을 하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Duke Ellington – Duke Ellington’s Far East Suite

듀크 엘링턴은 카운트 베이시와 함께 스윙 재즈를 대표하는 인물이다. 게다가 그의 인기는 스윙 시대에 국한되지 않았다. 스윙 시대가 저문 이후에도 그와 그의 빅 밴드만큼은 지속적인 인기를 얻었다. 여기에는 그의 뛰어난 작곡 능력이 큰 힘을 발했다.

1963년 그와 그의 빅 밴드는 미 국무부의 후원으로 시리아, 요르단, 스리랑카, 파키스탄, 레바논, 터키, 이란 등 중앙 아시아 국가들을 순회하며 공연을 펼쳤다. 그리고 이듬 해에는 일본에서 공연을 하기도 했다.

미국과는 다른 문화를 지닌 아시아 국가에서의 공연은 60대에 접어 든 듀크 엘링턴에게 새로운 영감을 주었다. 그래서 오랜 시간 작곡, 편곡을 함께 했던 빌리 스트레이혼과 함께 1966년까지 일련의 곡들을 작곡했다. 그리고 1966년 12월에 앨범을 녹음했다.

엄밀히 말하면 일본을 주제로 한 “Ad Lib on Nippon”을 제외한 나머지 곡들이 중앙 아시아를 주제로 한 것이기에 <Far East Suite>란 앨범 타이틀 보다는 <Middle East Suite>란 타이틀이 어울릴 지도 모른다. 아마도 미국인들이 지닌 아시아에 대한 거리감 때문에 지금의 타이틀이 정해지지 않았나 싶다.

아무튼 그렇게 만들어진 9개의 곡은 블루스와 동양적인 요소가 결합된 현대적인 분위기로 1960년대의 감상자들을 사로잡았다. 감상자들은 앨범을 통해 중동의 신비를 느꼈다. 그 중 원래 “Elf”란 제목이었다가 이란의 도시명으로 제목이 바뀐, 자니 호지스의 색소폰 솔로가 아름다운 발라드 곡“Isfahan”은 듀크 엘링턴과 빌리 스트레이혼 콤비가 만든 곡 가운데 최고의 발라드 곡이란 평가를 받으며 스탠더드 곡의 반열에 올랐다.

Lee Konitz E II Complesso Di Giovanni Tommaso – Stereokonitz

1927년 생인 리 코니츠는 쿨 재즈를 시작으로 포스트 밥, 아방가르드 재즈 등을 가로지르는 폭 넓은 활동을 현재까지도 해오고 있는 색소폰 연주자이다.

1950년대 초반부터 그는 미국을 넘어 유럽에서도 앨범을 녹음하는 등 세계적인 활동을 펼쳤다. 1968년 10월만 해도 그는 로마에서 프랑스, 이탈리아 연주자들과 앨범 석장 분량의 녹음을 했다. 그 가운데 <Stereokonitz>는 이탈리아 연주자들과 퀸텟을 이루어 녹음한 것이다.

이 앨범은 스탠더드 곡이나 리 코니츠의 곡이 아닌 베이스 연주자 지오반니 토마소가 작곡한 곡들로만 채워졌다는 것이 특이했다. 앨범에서 리 코니츠는 평소 주로 연주하던 알토 색소폰 외에 당시 막 등장했던 일렉트릭 색소폰인 바리톤(Varitone) 색소폰을 연주했다. 그 색소폰의 톤은 창백했다. 화려하게 상승하는 연주에서도 차가운 느낌을 주었다. 푸른 불꽃 같은 연주였다고 할까? 그래서 다소 생경한 느낌을 주었다.

그래도 그 음악은 평소 밥과 쿨을 오가던 그의 성향을 잘 반영한 것이었다. 나아가 갈수록 개방적이고 현대적으로 변모할 미래의 음악을 예견한 것이기도 했다. 함께 한 유럽 연주자들도 그의 음악을 잘 이해했다. 냉정과 열정을 오가는 엔리코 라바의 트럼펫이나 프랑코 단드레아의 긴장 가득한 피아노 연주는 리 코니츠의 연주와 조화를 이루며 진보적인 색채를 띠었다.

유럽에서 먼저 발매되었기에 상대적으로 이 앨범은 다른 리 코니츠의 앨범에 비해 덜 주목 받았다. 그러나 현재의 관점에서 보면 그의 음악이 얼마나 시대를 앞섰는지 새삼 느끼게 한다는 점에서 새로이 감상해야 할 앨범이다.

Bill Evans – The Bill Evans Album

빌 에반스는 현대적인 재즈 피아노 트리오의 모범을 제시한 피아노 연주자였다. 또한 섬세한 보이싱과 서정으로 가득한 솔로 연주는 이후 많은 피아노 연주자들에게 영향을 주기도 했다. 하지만 마약에 중독되었던 그의 삶은 음악만큼 아름답지는 못했다.

그는 솔로 연주를 비롯해 다양한 편성의 연주를 하기도 했지만 트리오 연주를 가장 많이 했다. 그래서 1961년 6월 트리오의 멤버였던 베이스 연주자 스콧 라파로가 교통사고로 사망하자 큰 상실감에 한동안 활동을 멈추기도 했다. 이후 그는 베이스 연주자로 척 이스라엘을 거쳐 1966년 에디 고메즈를 만났다. 그리고 드럼 연주자 마티 모렐을 합류시켜 5년간 뛰어난 앨범들을 녹음해 나갔다.

그 가운데 1971년에 녹음된 <The Bill Evans Album>은 피아노 외에 펜더 로즈 피아노를 처음으로 앨범 녹음을 하여 화제를 모았다. 그는 피아노와 펜더 로즈 피아노를 오가며 연주하는 것에서 나아가 하나는 코드 진행을, 다른 하나는 솔로를 연주하는 식으로 동시에 두 악기를 연주하기도 했다. 반짝이는 불빛 같은 펜더 로즈 피아노의 음색을 활용한 빌 에반스의 연주는 마치 꿈결 같았다. 확실히 이전의 보통 피아노 연주와는 다른 질감의 연주였다. 그럼에도 그의 음악적 미감은 그대로였다. 어떤 악기가 되었건 그의 솔로는 시적인 느낌을 주었다.

에디 고메즈와 마티 모렐의 연주 또한 리듬 연주에 그치지 않고 피아노와 방향을 공감하며 자신의 연주를 펼쳐 보다 입체적인 트리오 연주를 완성했다.

Keith Jarrett – Expectations

키스 자렛은 자유로운 즉흥 솔로 콘서트, 재즈 역사상 가장 뛰어난 트리오의 하나로 평가 받는 스탠더드 트리오 등으로 평단과 애호가들로부터 가장 큰 사랑을 받고 있는 피아노 연주자이다. 그는 앨범마다 새로운 상상력으로 가득한 음악을 선보이고 있다.

이러한 성향은 초기부터 계속된 것이었다. 특히 그는 1970년대 초반 찰리 헤이든(베이스), 폴 모션(드럼)과 함께 하던 트리오에 색소폰 연주자 듀이 레드맨을 추가해 흔히 아메리칸 쿼텟이라 불리는 그룹을 결성했다. 이 쿼텟에서 키스 자렛은 종종 피아노 외에 소프라노 색소폰과 타악기 등을 연주해 한층 이색적인 음악을 펼쳤다.

1972년에 녹음된 콜럼비아 레이블에서의 유일한 앨범 <Expectations>도 그랬다. 이 앨범을 녹음하면서 키스 자렛은 피아노뿐만 아니라 오르간, 소프라노 색소폰 등을 연주했다. 그리고 기존 쿼텟에 샘 브라운(기타), 에어토 모레이라(타악기)를 합류시키는 한편 브라스 섹션과 스트링 앙상블까지 기용했다. 이를 기반으로 그는 아방가르드 재즈, 록, 소울, 가스펠 등 다채로운 요소가 혼재된 화려하고 서사적인 음악을 만들어냈다.

그런 중에도 그의 피아노 연주는 여전히 빛을 발했다. 스트링 앙상블이 가세한 앨범 타이틀 곡에서의 서정적인 피아노 연주, “Bring Back the Time When (If)”에서의 특유의 흥얼거림을 곁들인 화려한 솔로, “Take Me Back”에서의 소울, 가스펠적인 요소를 담아낸 연주 등은 그만의 개성이 되어 후에 더 많은 사람들을 사로잡게 될 것이었다.

Gil Evans Orchestra – Plays The Music Of Jimi Hendrix

길 에반스는 스윙 시대에 밀착되어 있던 재즈 빅 밴드에 쿨 재즈, 포스트 밥 등의 질감을 부여했던 편곡자이다. 그의 영향은 현대적인 빅 밴드 편곡에 있어 지금까지도 지속되고 있다. 그는 <Miles Ahead>(1957)을 시작으로 <Quiet Nights>(1962)에 이르기까지 약 5년간 마일스 데이비스와의 협연으로 주목을 받았다.

이후 그는 자신의 이름으로 여러 앨범을 녹음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펼치다가 (마일스 데이비스가 그랬던 것처럼) 강렬한 기타 연주로 1960년대를 강타한 지미 헨드릭스의 음악에 매력을 느끼게 되었다. 그래서 1970년 기타 연주자를 불러 앨범을 함께 할 것을 기획했다. 하지만 기타 연주자가 갑작스레 세상을 떠나면서 기획은 실현되지 못했다.

이러한 아쉬움을 만회하기 위해 그는 1974년 데이빗 샌본, 존 애버크롬비, 류 솔로프 등의 젊은 연주자들을 모아 빅 밴드를 만들어 “Angel”, “Little Wing”, “Voodoo Chile” 등 지미 헨드릭스의 곡들을 연주한 앨범 <Plays The Music Of Jimi Hendrix>을 녹음했다. 앨범에서 그는 빅 밴드의 참신한 울림을 유지하면서도 당시 대중 음악을 지배하고 있었던 록의 질감을 최대한 수용해 곡들을 편곡했다. 그렇게 해서 원곡의 강렬함과 현대적인 재즈 사운드가 절묘하게 결합된 음악을 만들어냈다. 특히 기타 연주자가 참여했음에도 색소폰 솔로를 중심에 둔 것, 그럼에도 드러나는 지미 헨드릭스의 환영은 길 에반스가 얼마나 탁월한 편곡 능력을 지녔는지 새삼 확인하게 해주는 것이었다.

Stan Getz presents Jimmy Rowles – The Peacocks

이 앨범은 보통 스탄 겟츠의 앨범으로 알려져 있지만 실은 (앨범 타이틀에도 나와 있듯이) 피아노 연주자이자 보컬인 지미 로울스의 앨범이다. 넓게 생각해도 두 사람의 공동 리더 앨범에 해당한다. 그럼에도 색소폰 연주자를 앞세운 것은 색소폰 연주자가 50대에 접어든 나이에도 여전히 최고의 인기를 얻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에 비해 피아노 연주자는 여러 장의 리더 앨범을 녹음했지만 사라 본, 엘라 핏제랄드, 카멘 맥래, 페기 리 등 여성 보컬의 반주자로 더 많이 알려져 있었다.

피아노 연주자가 상대적으로 저평가되고 있었다고 생각했던 것일까? 1975년 10월 스탄 겟츠는 자신이 직접 제작까지 책임지며 그룹 연주, 듀오 연주, 솔로 연주 등으로 구성된 앨범을 녹음했다. 앨범은 곧바로 지미 로울스의 대표작으로 평가 받을 만큼 성공적이었다. 스탄 겟츠의 포근하고 부드러운 색소폰 연주의 지원 속에 지미 로울스는 적절한 스윙감을 유지하며 편안한 솔로 연주를 이어갔다. “Body & Soul”같은 곡에서는 아예 솔로로 자신을 표현하기도 했다.

그리고 “I’ll Never Be The Same”, “My Buddy” 등에서 그윽한 중저음으로 부른 그의 편안한 노래는 상당한 매혹으로 작용했다. 여기에 “The Chess Players”에서 존 헨드릭스와 그의 가족, 그리고 스탄 겟츠의 아내 비벌리 겟츠까지 보컬로 참여한 것 또한 보컬 곡에 대한 관심을 높게 했다.

한편 공작새의 우아한 몸짓을 음악으로 형상화한 듯한 앨범 타이틀 곡 “The Peacocks”는 이후 수많은 연주자들이 연주하는 스탠더드 곡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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