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한번 재즈로 새롭게 듣는 디즈니 주제 음악
어린 시절 어른들은 만화는 어린 아이나 보는 것이라 했다. 그래서 중,고등학생이 되어도 만화를 보는 나를 이해하지 못하곤 했다. 나와 동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은 아마도 비슷한 경험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만화를 좋아하는 청소년들은 청년이 되어 나이 지긋한 어른이 되어도 만화를 놓지 않았다. 그래서일까? 요즈음은 나이와 상관 없이 많은 사람들이 만화를 본다. 그래서 온 가족이 손잡고 만화 영화-이제는 애니메이션이라는 말이 더 친숙한-를 보러 가는 일이 많아졌다. 특히 겨울에는 로맨틱 코미디 영화만큼이나 애니메이션의 인기가 높다.
애니메이션이 세대를 가로지르는 인기를 얻게 된 데에는 디즈니사의 역할이 컸다. 과거의 <미키 마우스>, <백설 공주>, <신데렐라> 등을 시작으로 최근의 <겨울 왕국>, <카>에 이르기까지 디즈니사는 꾸준히 애니메이션을 제작했고 그 영화들은 크고 작은 성공을 거두었다. 이와 함께 그 주제 음악들 또한 함께 사랑 받았다. 그 중 다수는 아카데미, 골든 글로브 등의 주제가 상을 받기도 했다. 이와 함께 많은 재즈 연주자들과 보컬들이 디즈니 음악을 연주하고 노래하고 있다.
지난 2016년에 발매된 앨범 <Jazz Loves Disney>는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오랜 역사를 확인하고 그 주제 음악들이 생각보다 더 우리 가까이에 있었음을 확인하게 해주었다. 그 결과 앨범은 기대 이상의 큰 반향을 얻었다. 지금 우리가 듣고 있는 그 두 번째 앨범이 발매된 것도 첫 앨범의 성공에 기인한 것이라 하겠다.
사실 나는 지난 첫 앨범이 참여 연주자나 보컬들의 구성이나 수록곡들이 워낙 화려했기에 이번 두 번째 앨범은 그만큼 덜 매력적이지 않을까 우려했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이번 앨범 또한 많은 사랑을 받을만한 매력을 지녔다. 어쩌면 이번 앨범이 대중적인 매력은 더 크지 않나 싶다. 첫 앨범에 이어 이번 앨범의 제작을 담당한 제이 뉴랜드는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주제 곡들이 재즈로 바뀐 것이 주는 색다름을 넘어 애니메이션처럼 보다 많은 사람들이 편안하게 들을 수 있는 앨범으로 방향을 설정한 것 같다.
이것은 참여한 연주자나 보컬들의 면모를 보면 쉽게 확인된다. 지난 앨범에도 참여했던 제이미 컬럼을 비롯한 조지 벤슨, 마들렌느 페루, 제이콥 콜리에 등 재즈 쪽 인물 외에 보사노바, 소울, R&B, 포크 등 다른 장르 쪽 인물들의 비중이 높아진 것이다. 게다가 그들은 미국이나 영국 외에 베냉(안젤리크 키조), 프랑스(이마니, 토마 뒤트롱), 브라질(베벨 질베르토), 벨기에(셀라 수) 등 유럽, 아프리카, 남미를 포괄하는 다양한 지역 출신이다. 여기에 앨범 수록 곡 대부분의 반주를 책임진 어메이징 키스톤 빅 밴드는 데이비드 앙코, 프레드 나르댕(이상 피아노), 바스티앵 발라즈(트럼펫), 로익 바슈빌리에(트롬본) 등의 젊은 프랑스 연주자들로 구성된 밴드이다. 이러한 참여 연주자와 보컬들의 다양성은 앨범에 화사함을 부여했다. 그래서 이번 앨범은 재즈 이전에 다양한 연주자와 보컬들의 색다른 구성에서 색다름을 느끼게 된다.
여기에 선곡된 주제 음악들의 구성도 이번 앨범이 모든 세대가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것을 목표로 했음을 생각하게 해준다. 이번 앨범에 담긴 곡들은 1928년의 <증기선 윌리>, <실리 심포니> 시리즈 중 1935년작 “마이더스 왕의 황금 손”, 1937년의 <백설공주>, 1941년의 <덤보>, 1950년의 <신데렐라>, 1964년의 <메리 포핀스> 같은 고전과 1989년의 <인어공주>, 1991년의 <미녀와 야수>, 199년의 <타잔>, 2016년의 <주토피아> 등 비교적 최근에 제작된 애니메이션까지 오랜 시간을 아우른다.
그런데 다양한 성향의 연주자나 보컬들이 모인 앨범은 다채로움을 넘어 어지러운 느낌을 주기 쉽다. 마음에 드는 곡 한두 곡 정도 건지면 다행인 그럼 모음집 말이다. 그러나 이 앨범은 디즈니 애니메이션과 재즈라는 주제로 백화점식 나열의 느낌을 슬기롭게 비껴갔다. 특히 첫 앨범에서처럼 스타일은 다를지라도 원래 음악의 분위기를 반영한 것은 이번 앨범이 새로움과 익숙함을 함께 담은 성공 요인으로 작용했다.
제이미 컬럼이 노래한 “Be Our Guest”가 대표적이다. <미녀와 야수>에서 이 곡은 야수가 사는 성의 루미에(촛대)와 미세스 팟(주전자)가 미녀를 환대하는 장면에 사용되었다. 이 곡을 제이미 컬럼은 장난기 어린 목소리로 원곡과 유사한 유쾌한 분위기로 노래했다. 게다가 프랑스 출신으로 영국 프리미어 리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전설을 썼던 축구 선수 에릭 칸토나가 함께 해 애미네이션에서 루미에와 미세스 팟이 보여준 호흡을 색다르게 재현해 더욱 더 재미를 준다. 여기에 빅 밴드의 경쾌한 울림은 곡의 즐거움을 배가한다.
노래는 물론 기타, 베이스, 건반, 타악기 등 모두를 원맨 밴드로 연주한 제이콥 콜리에의 “Under The Sea”도 마찬가지다. <인어 공주>에서처럼 제이콥 콜리에는 칼립소 리듬을 바탕으로 이국적이고 흥겨운 분위기를 그대로 반영했다. 원곡 대신 애니메이션에 사용하더라도 잘 어울리겠다 싶을 정도이다.
안젤리크 키조가 노래한 <주토피아>의 “Try Everything”도 그렇다. 샤키라가 노래해서 인기를 얻었던 전자 악기 중심의 팝 곡이 안젤리크 키조의 이국적인 목소리와 브라스 섹션이 반짝이는 곡으로 바뀌었지만 전반적인 분위기는 원곡과 크게 다르지 않다. 또한 어메이징 키스톤 빅 밴드가 연주한 <증기선 윌리>의 “Steamboat Willie”는 아예 원곡의 뉴올리언즈 풍의 사운드를 다시 연주한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이 외에 토마스 뒤트롱이 집시 풍의 기타를 연주하며 노래한 <덤보>의 주제 곡 “J’ai Vu Voler Un Eléphant 코끼리가 나는 것을 보았네”나 <신데렐라>의 달콤한 주제곡을 노래한 셀라 수의 “So This Is Love”, 마들렌느 페루가 원작에서처럼 연기하듯 노래한 <마이더스 왕의 황금 손>의 주제곡 “The Golden Touch”, 애니메이션이 아닌 영화로 제작된 <매리 포핀스>의 주제곡을 줄리 앤드류스의 원곡만큼이나 평화로운 자장가풍으로 노래한 로라 음불라의“Stay Awake”등도 신선함 속에서 원작 애니메이션을 연상시킨다.
한편 원곡의 분위기를 반영했으면서도 연주자나 보컬의 개성이 더 많이 돋보이는 곡들도 있다. 조지 벤슨이 연주한 <타잔>의 주제곡 “You’ll Be In My Heart”가 대표적이다. 필 콜린스가 노래했던 원곡을 조지 벤슨은 그 자신에 뛰어난 보컬임에도 기타 연주로만 영화의 낭만적 분위기를 그려냈다.
베벨 질베르토 또한 <미녀와 야수>의 주제곡 “Beauty & The Beast”를 셀린 디온과 피보 브라이슨이 듀오로 노랬던 원곡과는 다른 보사노바 스타일로 편안하게 노래했다. 하지만 사랑스러운 분위기는 원곡가 통하는 부분이 있다.
한편 이마니가 노래한 <백설 공주>의 주제곡 “Someday My Price Will Come”은 이미 수많은 재즈 연주자들과 보컬들이 연주되고 노래된 스탠더드 곡인 만큼 애니메이션에서 백설 공주의 노래와 비교하는 대신 어메이징 키스톤 빅 밴드와 이마니의 안정적인 저음이 어우러져 만들어낸 재즈적인 맛 자체에 집중하게 한다. 그렇다고 원작 애니메이션과 전혀 다른 분위기를 연출하지는 않는다.
이처럼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주요 곡들을 새로이 연주하고 노래한 이번 앨범은 이질적이라 할 수 있는 친근함과 신선함이 조화를 이룬 사운드로 인해 첫 앨범에 이어 많은 감상자들의 호응을 이끌어 낼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리고 보다 많은 감상자들이 자신이 보았던 디즈니 애니메이션을 추억하게 되지 않을까 싶다. 나아가 (희망사항이지만) 많은 디즈니 애니메이션 애호가들이 재즈에 관심을 갖게 되리라 믿는다.
한편 2016년의 첫 앨범처럼 이번 앨범 또한 겨울에 발매된 것은 겨울이면 유난히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인기가 높은 것을 반영한 것이라 생각된다. 그래서 같은 방식으로 시리즈 앨범이 꾸준히 이어진다면 겨울이면 발매되는 크리스마스 캐롤 앨범에 버금가는 의미를 지니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