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인 이야기를 공감 가능한 보편적인 이야기로 풀어 내다.
당신이 실예 네가드를 오래 전부터 알고 있다면 그것은 아마도 그녀의 2001년도 앨범에 실린 <At First Light>에 수록된 “Be Still My Heart”를 통해서일 것이다. 토드 구스타프센 트리오의 담담한 연주와 틸 브뢰너의 서정적 트럼펫 솔로를 배경으로 이야기하듯 편안한 분위기로 흐르는 실예 네가드의 보컬이 매력적인 이 곡은 그녀의 고향 노르웨이는 물론 한국을 비롯한 세계 곳곳에서 큰 사랑을 받았다. 나 또한 이 곡을 통해 그녀의 음악을 접했다. 그리고 이후 그녀의 음악을 꾸준히 들었다.
그런데 “Be Still My Heart”같은 곡은 더 이상 나오지 않았다. 그녀의 음악적 재능이 줄었기 때문이 아니다. 성공을 가져다 준 곡이었던 만큼 계속 그와 비슷한 음악을 해도 좋을 듯한데 이 노르웨이 출신의 보컬은 “Be Still My Heart”에 머무르지 않았다. 앨범마다 꾸준히 새로운 무엇을 넣었다. 그러면서 재즈를 넘어 포크, 팝, 록 등 다양한 음악이 혼재하는 음악을 만들기에 이르렀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그 음악들이 그 자체로 매력적이었다는 것이다. “Be Still My Heart”같은 곡은 없지만 그와는 다른 매력으로 감상자를 사로잡곤 했다.
그렇다고 그녀가 단지 새로운 음악, 새로운 사운드만을 맹목적으로 추구했다는 것은 아니다. 그랬다면 그렇게 많은 공감을 얻어내지 못했을 것이다. 그녀가 앨범마다 편성을 바꾸고 연주자를 바꾸었던 것은 막연한 새로움을 위해서가 아니라 보다 효율적으로 그녀 자신의 이야기를 펼치기 위함이었다. 즉, 앨범마다, 곡마다 지닌 이야기를 잘 전달하기 위한 고민의 과정에서 새로운 변화가 이어졌다는 것이다.
지금 우리가 듣고 있는 그녀의 15번째 앨범 <For You A Thousand Times>는 지난 2015년도 앨범 <Chain Of Day> 이후의 경험과 사유를 담은 음악을 담고 있다. 그런 과정에서 지난 앨범에서 함께 했던 베이스 연주자 아우둔 에를리에와 트럼펫 연주자 마티아스 에익을 제외하고 새로운 연주자로 밴드를 구성하는 한편 이를 통해 신선한 사운드를 만들어 내는 등 변화도 있었다.
그렇다면 그녀가 이번 앨범에서 우리에게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무엇일까? 사랑과 희망이다. 물론 사랑과 희망을 주제로 한 노래들은 수 없이 많다. 하지만 이 흔하다 할 수 있는 이야기가 구체적인 사건을 바탕으로 하고 있기에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그녀의 일기를 읽는 듯한 느낌마저 준다.
특히 이번 앨범의 타이틀 곡 “For You A Thousand Times”는 우리 한국 감상자들에게는 조금은 더 특별하게 다가오지 않을까 싶다. 그녀는 이 곡의 영감을 한 사진에서 얻었다. 6.25 전쟁으로 인해 이산가족이 되어 생사도 확인하지 못한 채 살아온 부부가 수십 년 만에 만나 울며 부둥켜 포옹하는 장면을 담은 사진이었다. 어쩌면 한국 감상자들에게는 익숙해, 큰 감흥을 느끼지 못할 수도 있는 이 사진에서 그녀는 사랑의 위대함을 느꼈다. 떨어져 있으면서도 그들은 그리움 속에 영원의 맹세를 지키며 그 세월을 살았을 것이다.
이야기에 걸맞게 비감 어린 키보드 연주를 배경으로 흐르는 그녀의 노래는 그리움과 그에 따른 먹먹함으로 가득하다. 그렇기에 다음 곡으로“Breath”가 이어지는 것은 상당히 의미가 깊다. 속수무책인 상황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숨을 깊게 들이 쉬는 것이라고 그녀는 벨테 홀테의 단단한 드럼을 배경으로 노래한다. 그러면 결국 모든 것은 다 지나가리라 노래한다.
한편 앨범에서 가장 대중적인 인기를 얻을 것으로 예상되는 “Cocco Bello”는 이탈리아 남부 해변에서 코코넛 장수를 만났던 경험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우리네 상인들이 “찹쌀떡~ 메밀묵~”, “된장~팔아요~” 등 자신의 상품을 팔면서 특별한 가락을 만들어 냈듯이 이 코코넛 상인도 해변을 다니며 독특한 멜로디로 자신의 물건을 사라고 외쳤다. 실예 네가드는 여기서 영감을 얻었다. 그 결과 할그림 브랏버그의 잔잔한 보사노바 기타와 아르베 헨릭센의 그윽한 트럼펫이 돋보이는 사운드를 만들고 여기에 직접 핸드폰으로 녹음한 상인의 멜로디를 믹싱했다. 그리고 코코넛 상인의 입장에서 노래를 불렀다. 행복한 분위기의 노래를.
곡이 완성되고 녹음까지 마친 후 그녀는 다시 이탈리아의 해변을 찾았다. 여전히 그 코코넛 상인은 독특한 선율로 코코넛을 사라고 외치고 있었다. 그에게 그녀는 곡을 들려주었다. 통역이 있어야 대화가 가능한 상대였지만 음악은 달랐다. 상인은 어색한 웃음으로 음악에 만족을 표했다. 그의 삶을 그녀가 공감하고 있다고 느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Hush Little Bird”는 귀여운 아이의 웅얼거림으로 시작된다. 그녀가 입양한 에티오피아 출신의 남자 아이 요나(Jonah)가 잠이 들 무렵 모국어로 내는 웅얼거림이다. 이에 그녀는 스스로의 삶을 결정할 수 없는 나이에 위험 속에 노출되어야 했던 아이의 과거가 지워지고 안전하고 평화로운 삶이 지속되기를 바라며 자장가를 들려주듯 차분하게 노래한다.
앨범을 대표하는 이들 곡들 외에 다른 곡들에서도 실예 네가드는 현재 낙담하고 힘들어하는 사람들을 위로하는 사랑과 희망의 이야기를 전한다. 이야기가 확실한 만큼 이를 위한 음악 또한 다른 것이 아닌 바로 이것이어야 했다는 듯이 필연적인 느낌으로 다가온다.
“It’s Gonna Rain”이 대표적이다. 이 곡은 아프리카를 연상시키는 이국적 리듬과 코러스가 곡 전체의 질감을 결정하고 있다. 그저 월드 뮤직적인 맛을 가미했다고 받아들이기에는 다소 낯섦이 강할 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그녀는 갈증으로 가득한 아프리카에 단비가 내리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곡을 만들고 노래했다. 즉, 이 곡에서 “비”는 “눈물”이나 “슬픈 기억”같은 것이 아니라 “희망”을 상징한다. 이를 이해한다면 이 낯선 사운드가 보다 쉽게 이해될 것이다. 나아가 그럴 수 밖에 없겠다는 생각을 하게 될 것이다. 이 곡을 앨범의 첫 번째 곡으로 배치한 것도 이러한 공감과 이해에 대한 확신이 자리잡고 있을 것이다.
내용에 어울리는 필연적 사운드의 느낌은 추운 겨울날 차가운 공기 속에 홀연히 떠 있는 달의 아름다움을 노래한 “Winter Moon”에서의 호콘 아세의 바이올린 연주, 눈은 열려 있지만 마음은 잠들어 있는 인간 관계를 이야기하는 “Sleepwalkers”에서의 안드레아스 울보의 몽환적인 키보드 등을 통해서도 확인된다.
한편 자신의 경험과 사유를 바탕으로 앨범을 만들면서 실예 네가드는 자기기분에 취해 지극히 개인적인 앨범, 감상자의 공감을 얻지 못하는 앨범을 만드는 것을 경계한 것 같다. 앨범의 모든 가사를 그녀의 오랜 파트너 마이크 맥구르크에게 일임한 것이 이를 말한다. 사실 그녀만큼 자신의 이야기를 잘 표현할 사람이 누가 있을까? 하지만 그런 과정에서 자기 객관성을 잃을 수가 있다.
물론 여기에는 마이크 맥구르크가 오랜 시간 그녀와 함께 작업을 해오며 신뢰를 쌓았다는 것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아무튼 작사가는 그녀의 경험을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보편적인 것으로 만들어 냈다.
가사를 타인에게 일임한 것과 달리 작곡은 그녀가 전담했다. (두 곡은 아우둔 에를리엔과 공동 작곡했다.) 이것은 그녀가 가사에만 의존하지 않고 음악 전체로 이야기를 전달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그것이 음악이니까. 이것은 그녀가 자신을 가사를 전달하는 사람을 넘어 음악을 만드는 사람으로 인식하고 있기에 가능했다.
한편 자신이 작곡을 전담하면서 다시 개인적인 차원에만 머무를 것이 불안했던 것일까? 앨범의 전체 제작은 아우둔 에를리엔이 담당했다.
그 결과 앨범은 개인적인 이야기에 바탕을 두고 있으면서도 독백처럼 다가오지 않는다. 친한 친구가 내게 자신의 이야기를 고백하고 공감을 구하는 것처럼 다가온다. 역설적으로 이것은 감상자에게 큰 위안을 준다. 내게 말을 거는 친구가 있다는 편안함, 내 말 못할 속 이야기를 해도 괜찮을 것 같은 안도감 같은 것을 느끼게 해준다. “Be Still My Heart”와는 다른 표현이지만 친근함과 다정함을 느끼게 해준다. 바로 여기에 이 앨범의 매력, 실예 네가드의 매력이 있다.
자. 그럼 이제 그녀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보자. 그녀가 전하는 사랑과 희망의 기운에 미소를 짓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