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연은 두 장의 앨범을 통해서 피아노 연주 이전에 작곡과 편곡에 뛰어난 능력을 보여주었다. 그런데 이것은 기교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었다. 음악적 상상력 때문이었다. 그녀의 음악은 흐르는 시간 속에서 자신과 삶을 관조하고 그 속에서 발견한 시정이야 말로 좋은 음악의 출발점임을 깨닫게 해주었다.
피아노, 베이스, 드럼에 서로 다른 다섯 관악기, 스트링 쿼텟이 가세한 12인조 밴드로 녹음한 이번 앨범도 그렇다. 음악가로서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초심으로 돌아가 큰 그림을 그리려 했다는 그녀는 그에 걸맞게 숲, 달, 깃털, 바람, 바다, 해, 안개 등 자연적이며 상징적인 이미지로 가득한 음악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그 음악은 자신이 연주하는 피아노 외에 관악기와 현악기에서 나오는 소리를 잘 이해한 후 섬세하게 배치한 편곡을 통해 완성되었다. 겹치지 않는 악기들의 소리가 모이고 다시 몇 개의 부분으로 나뉘며 12인조 이상의 대형 오케스트라 같은 입체적 울림을 만들고 그 속에서 피아노, 색소폰 등의 솔로 연주가 정서적 핵심을 강조하는 곡들은 음악 감상을 책을 읽거나 그림을 읽는 것처럼 만들어 버린다. 반대로 말한다면 시간가는 줄 모르고 읽게 되는 책, 감상자를 떠나지 못하게 만드는 그림 같다.
이쯤에서 많은 감상자들은 마리아 슈나이더를 생각할 것이다. 나 또한 적어도 이번 앨범만큼은 현대 재즈의 뛰어난 작곡가의 음악에 견줄만하다고 생각한다. 분명 올 해 한국 재즈의 인상적인 성과 중 하나로 기억될 앨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