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r From Over – Vijay Iyer (ECM 2017)

피아노 연주자 비제이 아이어는 앨범마다 하나의 출발점으로 회귀되지 않은, 아니 애초에 출발점이 없었던 것 같은 새로운 음악을 선보여왔다. 그 새로움은 재즈의 지난 과거에 대한 경의, 아프리카, 인도 음악에 대한 호기심, 클래식, 전자 음악 등에 대한 애착 등을 하나로 버무린 끝에 만들어진 것이었다. 여기서 말하는 버무린다는 것은 의미 그대로 섞는다는 것이다. 즉, 조화로만 수렴되지 않고 이질적인 충돌 또한 허용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의 음악은 역동성이라는 또 다른 매력을 지닌다.

사보이 재즈와 ACT 레이블을 거쳐 지난 2014년 ECM 레이블에 합류한 이후 그는 문화와 장르, 시간을 가로지르는 (예측 불가한) 상상력을 바탕으로 앨범마다 다른 편성, 다른 질감의 음악을 시도했다. 그 결과 스트링 쿼텟과의 협연, 솔로 연주, 영화 음악, 트럼펫과의 듀오, 트리오 연주 등이 석 장의 앨범과 한 장의 DVD에 담겼다.

이 앨범들은 모두 작곡과 연주 모두에서 왜 비제이 아이어가 주목을 받고 있는지 확인하게 해주었다. 하지만 나는 그 음악에 만족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아쉬움을 느끼곤 했다. 그것은 바로 역동성이 완화되었다는 점 때문이었다. 매번 예측 불가한 음악을 들려주는 그이기에 꼭 넘치는 힘으로 감상자를 들었다 놨다 하는 음악을 고집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감상자의 입장에서 어디 그럴 수 있을까? 게다가 특히 ACT 시절부터 함께 한 트리오 편성으로 녹음한 2015년도 앨범 <Break Stuff>은 그가 ECM의 제작자 맨프레드 아이허의 취향을 신경 쓰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심마저 들게 했다. ACT 시절의 강렬한 연주에 비해 한층 부드럽고 연한 음악을 담았기 때문이다.

스테판 크럼프(베이스)와 타이숀 소리(드럼)의 리듬 섹션에 스티브 레만(알토 색소폰), 마크 심(테너 색소폰), 그래함 헤인즈(코넷) 등 세 관악기가 가세한 섹스텟 편성으로 녹음된 이번 앨범은 이러한 나의 의심, 아쉬움을 단번에 해소한다. 앨범 단위의 상상력을 넘는 디스코그라피적 상상력이라도 있다는 듯 피아노 연주자는 지난 몇 년간의 앨범들과는 다른 뜨거움으로 가득한 연주를 이번 앨범에 담았다. 그 뜨거움은 단지 피아노 연주자가 조금 더 건반을 세게 때린 것에서 나오지 않았다. 그보다는 연주자로서 자신의 역할을 6분의 1로 줄이고 함께 한 다른 연주자들의 힘을 수용한 결과였다. 앨범 타이틀 곡이 좋은 예이다. 이 곡에서는 강력한 타건으로 곡 전체의 중심을 지탱하는 비제이 아이어의 피아노도 인상적이지만 그 위로 알토와 테너 색소폰 그리고 트럼펫이 숨쉴 틈 없이 전진하며 충돌하고 어울리는 극적인 흐름이 귀를 사로잡는다. 긴장하게 만드는 연주지만 그것이 롤러 코스터를 탈 때나 동작이 큰 액션 영화를 볼 때처럼 심장을 쫄깃하게 한다. “Good On The Ground”는 어떠한가? 이국적인 리듬으로 터질듯한 긴장을 만들어 내는 타이숀 소리의 드럼이 아니었다면 이 곡은 그리 매력적이지 않았을 것이다. 또한 “End Of The Tunnel”이나 “Wake”에서 마일스 데이비스나 허비 행콕의 70년대를 연상시키는 우주적 질감의 사운드는 비제이 아이어의 펜더 로즈 피아노 외에 그래함 헤인즈의 공간을 확장하는 코넷 연주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렇다고 비제이 아이어는 연주자들의 결합에서 발생하는 우연적 결과에 이번 앨범을 맞기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치밀한 작곡과 편곡을 통해 각 연주자들의 즉흥성이 자신이 계획한 큰 그림 속에서 이루어지게 했다. 실제 앨범의 모든 곡들은 넘치는 힘과 터질듯한 긴장으로 가득하지만 그렇다고 위태로운 느낌을 주지 않는다. 과거 비밥 재즈가 저 멀리 날아갈 듯 하면서도 결국엔 경계를 넘는 일이 없었듯이 이번 앨범에 담긴 진보적인 연주 또한 비제이 아이어가 설정한 세계에서 균형을 유지한다. 첫 곡 “Poles”을 예로 들면 이 곡은 모든 연주자들이 자신의 방식대로 소리를 발산하고 솔로를 펼치는 것 같다. 수렴이 아닌 확산을 지향하고 있다는 인상을 준다. 하지만 복잡하다 싶은 그 확산적 연주는 시도에 머물 뿐 실현되는 일이 없다.

그는 15년간 클래식 바이올린을 배웠으면서 피아노는 자신의 귀만을 따르며 독학으로 습득한 독특한 배경을 지니고 있다. 이를 보면 그는 작곡과 연주, 자유와 체계 등 어울리기 어려운 것을 병행하는 능력을 어린 시절부터 지니고 있었다고 생각된다. 그리고 이번 앨범은 그 능력이 가장 잘 발현된 예이다. 그것도 2017년의 재즈를 대표하게 될.

4 COMMENTS

  1. 평점에 별 4개 반! 재즈스페이스에서.. 저는 처음 접하는 평가입니다. 오~..(아닐수도..ㅋ)
    개인적으론, 비제이 아이어의 피아노 연주와 관악기 소리가 굉장히 잘 어울린다는 느낌입니다. 트리오보다 피아노 연주도 살고, 섹소폰 소리도 살고..서로 증폭되는..뭐 그런 느낌이 드네요. Wake가 매우 끌립니다.

    홈피 ui가 바뀌었네요~ 공유기능 추가되어서 좋습니다!

    • 오래된 리뷰에는 이 점수가 많았죠. 그래서 지난 해부터 좀 짜게 주고 있네요. ㅎ
      비제이 아이어의 앨범은 어쨌건 좋습니다. ㅎ

      그런데 홈피 개편을 하면서 아직 평점과 동영상을 새로운 환경에 맞도록 옮기지 못했습니다.
      조금 가볍게 구동되는데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아. 공유 기능은 이전부터 있었습니다. ㅎ

    • 공유기능을 이제서야 알아차리다니! 뭔가 부끄부끄 ㅋ

      개편하면 아무래도 이래저래 오류가 발생할 수 밖에 없죠. 오류 발생하면 버그 잡고..당분간은 그 과정의 반복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감상자인 저로서는 크게 영향을 받을 것 같지는 않습니다만.^^

      참, 글씨체가 핸드폰에서 보니 예전보다 가독성이 훨씬 좋습니다~

    • 이번에 아셨으면 공유 많이 해주세요 ㅎ

      버그는 아직 없는 것 같습니다. 다만 별점에 대한 데이터 이전 작업이 아직 안 끝난거죠. 좀 오래 걸릴 것 같네요. ㅎ

댓글

피아노 연주자 비제이 아이어는 앨범마다 하나의 출발점으로 회귀되지 않은, 아니 애초에 출발점이 없었던 것 같은 새로운 음악을 선보여왔다. 그 새로움은 재즈의 지난 과거에 대한 경의, 아프리카, 인도 음악에 대한 호기심, 클래식, 전자 음악 등에 대한 애착 등을 하나로 버무린 끝에 만들어진 것이었다. 여기서 말하는...Far From Over - Vijay Iyer (ECM 2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