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Best Jazz Albums 30

2017년 내 마음을 사로잡은 30장의 앨범 중 10장을 소개한다. 다른 해와 마찬가지로 올 해도 앨범 선정이 힘들었다. 마지막까지 치열한 다툼을 벌인 앨범이 대략 10장이 더 있었다. 차라리 통 크게 50장을 선정할까도 했지만 그러면 너무 느슨한 선정 같아서 과감히 버렸다. 나머지 앨범들에 미련을 두었던 것은 그만큼 우열을 가리기 힘든 훌륭함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중에는 스타일이나 편성의 안배를 위해 버려진 것도 있다.

한편 선정에 어려움을 겪었던 다른 이유는 그만큼 확연히 돋보이는 앨범이 없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맛난 반찬은 많은데 매인 메뉴가 없었다고 할까? 그래. 백반 같았다. 그래서 30장 내부에서도 순위를 정하기 힘들었다. 특히 11위부터 30위가 그랬다. 확연히 돋보이는 앨범이 없었다는 것은 요즈음 연주자들의 개인화된 성향 때문인 것 같다. 시대를 아우르려는 욕망 자체가 그들은 없는 것 같다. 그냥 자기 식으로 자기 생각을 표현하는 것에 집중한다. 어찌 보면 예술적 사고라 볼 수도 있지만 여기에는 대중적 성공을 거두기엔 어렵다는 생각이 바탕에 자리잡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감상자와의 소통 가능성의 축소를 낳았고 그것이 내게도 영향을 끼친 것이다.

30
Fred Nardin Trio – Opening (Jazz Family)


2017년에는 의도치 않게 프랑스 연주자들의 앨범을 많이 들었다. 그리고 그 앨범들 대부분 훌륭했다. 게다가 그 중에는 프랑스 재즈의 지형을 바꿀 젊은 연주자들이 많았다. 피아노 연주자 프레드 나르댕도 그 중 한 명이었다. 오르 바레켓(베이스), 레온 파커(드럼)과 트리오를 이룬 이 앨범에서 막 30대를 시작한 피아노 연주자는 전통적인 피아노 트리오의 틀 안에서 재기 발랄한 기량을 마음껏 드러냈다. 특히 속주에서도 잃지 않는 명료함이 인상적이었다.

29
Melanie De Biasio – Lilies (Le Label)


벨기에 출신의 여성 보컬 멜라니 드 비아시오의 이번 앨범은 재즈로만 두기엔 어려움이 있다. 그렇다고 쉽게 다른 장르라 말하기도 뭣하다. 흐느낌과 속삭임 사이의 어느 지점에 위치한 듯한 창법으로 몽환적인 노래를 부르는데 강렬한 정서적 흡입력이 대단했다. 몽환적이었다. 우주에서 재즈를 듣는다면 이런 느낌일까? 한편 목소리의 질감은 다르지만 니나 시몬의 그림자가 느껴지기도 했다. 니나 시몬이 지금 살아 있다면 이렇게 노래했을 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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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erso – Suite Ravel (Promise Land)


레베르소는 트롬본 연주자 라이언 케베를과 피아노 연주자 프랑크 뵈스테를 주축으로 첼로 연주자 뱅상 쿠르투아와 드럼 연주자 제프 발라드가 가세한 독특한 프로젝트 그룹이다. 이 앨범에서 네 연주자는 모리스 라벨의 클래식 곡들을 새로이 연주했다. 그런데 단순히 재즈에 맞게 편곡해 연주하는 것이 아닌 완전히 분해한 뒤 재(즈)조립하듯 연주했다. 그러면서도 재즈의 미래를 예견했던 라벨의 느낌을 유지했다. 그것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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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nys Baptiste – The Late Trane (Edition)


존 콜트레인의 음악은 영원하다. 영국 출신의 색소폰 연주자 데니스 밥티스트가 이를 다시 입증했다. 그는 존 콜트레인의 후기(1963년부터 67년) 곡들을 현대적인 질감으로 다시 연주했다. 그러면서 고인의 음악이 지닌 초월적인 매력을 다시 확인하게 해주었다. 특히 색소폰 연주자의 솔로는 존 콜트레인의 세계를 받았음을 여실히 드러냈다. 그래서 모처럼 존 콜트레인을 다른 장소에서 만난 친구처럼 새로이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데니스 밥티스트의 존재감이 옅다는 아쉬움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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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fanie Kunckler YMONOS – Le Jour Avec Les Yeux Fermés (Unit)


다양한 유럽 재즈 중에서 나는 긴장 속에 유랑자적 서정이 드러나는 것을 좋아한다. 스위스 출신의 여성 베이스 연주자 스테파니 쿤클레가 이끄는 그룹 이모노스의 이번 앨범이 그랬다. 클라리넷-피아노-아코데온-베이스-드럼으로 이루어진 퀸텟 편성으로 그녀는 발칸 반도를 떠도는 영혼들을 위한 듯한 음악을 만들어냈다. “두 눈을 감은 날”이란 앨범 타이틀은 슬픔과 불안 속에서 무조건 이동해야 했던 자들의 삶을 그린 것일 지도 모른다. 아무튼 그 노마드적 우수가 좋았다. 한편으로는 미리엄 알터의 앨범 <If>가 많이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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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ri Honing Acoustic Quartet – Goldbrun (Challenge)


2015년 최고의 앨범으로 나는 유리 호닝의 <Desire>를 꼽았었다. 욕망을 주제로 한 느린 연주는 정말 매혹적이었다. <Goldbrun>도 그와 유사했다. 색소폰 연주자는 피아노 연주자 볼페르트 브레데로데가 중심이 된 트리오와 함께 다시 한번 시적인 연주를 펼쳤다. 가만히 있는 듯하면서도 공기의 움직임이 있는 공간을 그리는 연주였다. 메두사의 치명적 아름다움이 감춰진 어두운 공간. 그냥 고요 속에서 듣기엔 아주 좋았다. 단, 그 매혹이 <Desire>를 넘지 못했을 뿐이다.

24
Thierry Eliez – Improse (Dood)


2017년에는 인상적인 피아노 솔로 앨범이 많았다. 프랑스 피아노 연주자 티에리 엘리즈와 티에리 마이야르의 앨범들도 그랬다. 그래서 둘 사이에서 티에리 엘리즈만 선정하기로 했다. 나는 티에리 엘리즈의 이번 앨범이 매우 의외였다. 평소 디디 브리지워터, 앙드레 세카렐리 등과 리듬 강한 연주를 펼쳤던 그였기에 이리 인상주의 클래식의 분위기를 머금은 즉흥 솔로 연주를 펼칠지 전혀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침묵의 공간에서 자유로이 쏟아내는 연주가 더 아름답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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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in Vallon Trio – Danse (ECM)


ECM의 트리오 앨범들은 피아노 연주자 중심이 아닌 트리오 자체의 연주가 돋보이는 경우가 더 많다. 스위스 출신의 피아노 연주자 콜랭 발롱의 앨범들도 마찬가지다. 특히 이번 앨범은 피아노 연주자가 전곡을 작곡했고 곡들의 분위기를 지배하고 있음에도 트리오의 어울림이 빛났다. 그렇다고 무슨 대단한 솔로가 있던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함께 감에서 트리오의 존재감이 드러났다. 서로가 어떤 연주를 할지 알고 있다는 듯 편안한 움직임이 정적인 흐름에 역동성을 부여했다. 나아가 마냥 말랑한 연주에 머물지 않게 했다.

22
Emile Parisien, Vincent Peirani, Andreas Schaerer & Michael Wollny – Out of Land (ACT)


현재 ACT 레이블의 대표 인물들인 색소폰 연주자 에밀 파리지앵, 피아노 연주자 미하일 볼니, 아코데온 연주자 뱅상 페이라니 그리고 보컬 안드레아스 쉐어러가 함께 만든 이 앨범의 음악은 각자의 장점이 모이면 그 이상의 결과를 만들어 낼 수 있음을 보여준다. 비상한다고 할까? 특히 스튜디오가 아닌 공연을 통해 만들어 낸 것이기에 만남이 주는 확장의 효과가 더 컸다. 목적 없이 지상을 박차고 올라 아래를 조망하는 듯 광활한 풍경을 그리게 하는 연주가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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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ve Henriksen – Towards Language (Rune Grammofon)


트럼펫 연주자 아르베 헨릭센은 동양을 동경하는 것 같다. 그리고 그의 동양은 신비로 가득하다 믿는 것 같다. 그의 음악은 늘 떠나온 고향을 그리워하듯 저 먼 아시아의 한 지점을 향한다. 트럼펫이지만 동양의 목관 전통악기를 연주한 듯한 음색으로 그는 안개로 휩싸인 신비롭고, 비의(秘義)적인 공간을 만들어냈다. 욘 방, 아이빈트 아르셋 등 일렉트로 재즈의 실험자들의 몽롱한 사운드도 여기에 한 몫 했다. 한편 그렇게 만들어진 음악은 이전 앨범들에 비해 한층 접근이 쉬었다. 그만큼 이미지가 명확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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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écile McLorin Salvant – Dreams and Daggers (Mack Avenue)


세실 맥로린 살번트는 아직 서른이 되지 않은 보컬이다. 그런데 노래는 물론 곡을 자신만의 것으로 만들어 감상자를 사로잡는 능력은 그 이상이다. 빌리지 뱅가드 클럽 공연을 중심으로 몇 곡의 스튜디오 녹음이 포함된 이 앨범에서 그녀는 스탠더드 곡들을 자작곡처럼 바꿔 노래했다. 다른 장르를 섞거나 하지도 않은 전통적인 방식 속에서 말이다. 뛰어난 보컬은 노래 외에 자신의 이야기, 자신의 사운드를 가져야 함을 다시 한번 느끼게 해주는 앨범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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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urtney Pine – Black Notes from the Deep (Freestyle)


어쩌면 영국출신의 색소폰 연주자 커트니 파인의 이 앨범의 선정에 의아해하는 사람들이 있을 지 모르겠다. R&B가 섞인 컨템포러리 재즈이니 말이다. 그럼에도 내가 이 계열의 음악에서 기대하고 있는-예상이 아니다- 사운드를 들려주어 선정했다. 앨범에서 색소폰 연주자는 R&B 보컬 오마르와 몇 곡을 함께 했다. 아마도 이 보컬 곡들에 관심이 많이 쏠리지 않았나 싶은데 나는 그보다는 연주 곡에 더 마음이 갔다. 특히 도시적인 질감과 재즈의 낭만이 어우러진 발라드 곡들이 주는 고독한 질감이 매력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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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lly Childs – Rebirth (Mack Avenue)


빌리 차일즈는 30년 이상 활동을 이어온 뛰어난 피아노 연주자이다. 하지만 최근에서야 나는 이 연주자가 지닌 능력이 꽃을 피운다고 생각한다. 이번 앨범이 그랬다. 쿼텟을 기본으로 보컬, 트롬본 등이 간간히 가세한 이 앨범에서 그는 강한 확신으로 자신의 연주를 밀어 부쳤다. 가뿐 호흡으로 달리면서도 흔들리지 않는 단단한 연주였다. 그럼에도 여유로웠다. 좁은 계곡이 아닌 광활한 평원을 달리는 기차 같다고 할까? 다만 보컬 곡은 물론 색소폰까지 제거한 트리오 연주였다면 더 좋았을 것 같다.

17
Laurent de Wilde – New Monk Trio (Gazebo)


2017년은 델로니어스 몽크의 탄생 100주년이었다. 책까지 썼을 정도로 델로니어스 몽크를 좋아하는 로랑 드 빌드가 이를 기념하는 앨범을 녹음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트리오 편성으로 이 프랑스 연주자는 재즈 역사상 가장 독특했던 피아노 연주자의 곡들을 새로이 연주했다. 발라드는 더 발라드답게 뒤뚱거렸던 곡들은 새로운 그루브를 넣어 연주했다. 그러면서 몽크다우면서도 로랑 드 빌드만의 음악이 만들어졌다. 거창하지 않은 개인적인 존경이 담긴 뛰어난 앨범이었다.

16
Marc Copland – Nightfall (Innervoice Jazz)


피아노 연주자 마크 코플랜드는 솔로 연주에 특화된 인물이라 생각한다. 2017년 그는 자신의 이름으로 두 장의 앨범을 선보였는데 역시 돋보이는 것은 이 솔로 앨범이었다. 밤을 주제로 한 이 앨범은 빈센트 반 고흐의 그림을 표지로 하고 있다. 그래서 나는 멜로디가 고운 낭만적인 연주를 기대했다. 하지만 음들이 용솟음치고 긴장 속에 소용돌이를 만들어 내는 연주가 많아 다소 당황했다. 그런데 들을수록 그가 저 푸른 밤을 그린 고흐의 붓질-시간 속에 완성된-을 표현한 것이 아닐까 생각되었다. 즉, 자신의 내면에 집중하고 다양한 감정을 발견하는 밤을 위한 연주였다.

15
Noël Akchoté – KCS (Kansas City Sessions) (Noël Akchoté)


프랑스 출신의 기타 연주자 노엘 악쇼테는 아방가르드 재즈를 즐기는 기타 연주자이다. 이런 그가 카운트 베이시의 캔사스 시티 5와 6에 영감을 받아 앨범을 녹음했다는 것은 무척이나 의외적인 일이었다. 물론 그렇다고 그가 카운트 베이시의 앨범에 담겼던 곡을 그 스타일로 연주한 것은 아니다. 편성도 마리 핼버슨과의 트윈 기타-무슨 헤비 메탈 소개 같다-를 이룬 퀸텟 편성을 사용했다. 연주도 평범을 거부한다. 하지만 그 속에서도 전통적이고 정겨운 맛이 드러났다. 그것이 새롭고 좋았다.

14
Fred Hersch – Open Book (Palmetto)


늘 그렇긴 했지만 특히나 2010년대에 발표한 피아노 연주자 프레드 허쉬의 앨범들은 모두가 뛰어나다. 그의 영감은 계속 솟아나고 연주는 쉴 줄 모른다. 이 앨범에서도 그는 왼손과 오른손이 아예 다른 개체인 것 같은, 그래서 두 연주자가 연주하는 듯한 정교한 연주로 나를 사로잡았다. 여기에 20여분에 걸친 “Through the Forest”에서 숲길을 가로지르는 여정을 그리듯 강약, 속도, 양손의 겹침과 어긋남이 복합적으로 변화하는, 말 그대로 자유로운 연주는 피아노 연주자가 지닌 아름다움의 정수라 할만한 것이었다.

13
Django Bates’ Belovèd – The Study Of Touch (ECM)


2017년에는 의외의 모습을 보인 연주자가 많았던 것 같다. 영국 출신의 피아노 연주자 쟝고 베이츠도 그랬다. 1990년대 신선한 음악으로 감상자를 사로잡았던 그는 2000년대에 들어 다소 침체된 모습을 보였다. 2017년에 그는 두 장의 솔로 앨범을 선보였다. 그 중 비틀즈를 자기 식으로 연주한 앨범은 내게는 그리 큰 감흥을 주지 못했다. 그래서 아쉽다 했는데 이 앨범은 달랐다. 모처럼 피아노 연주자로서의 존재감을 적극 드러냈는데 그 이지적인 연주가 무척이나 매혹적이었다. 앞으로 트리오 이름처럼 소중하고 사랑 받는 트리오가 되지 않을까?

12
Passin’ Thru – Charles Lloyd New Quartet (Blue Note)


색소폰 연주자 찰스 로이드는 기본적인 색은 큰 변함이 없지만 이 노장은 워킹 밴드의 지속을 통해 새로운 결과물을 만들어내곤 했다. 제이슨 모란(피아노), 루벤 로저스(베이스), 에릭 할란드(드럼)이 함께 한 뉴 쿼텟의 10년에 맞추어 발매한 이 앨범도 그렇다. 꿈결처럼 고운 질감으로 비상을 거듭하는 연주, 40,50년 전을 연상시키는 질감 등은 이전과 크게 다를 것이 없지만 안정적인 밴드의 조화 그리고 그 속에서 만들어진 음악은 익숙한 반복을 넘어선 것이었다. 10년의 정리가 아니라 새로운 출발이었으면 하는 바람을 갖게 하는 앨범 이었다.

11
Jason Moran, Mary Halvorson, Ron Miles – Bangs (Yes)


2017년 피아노 연주자 제이슨 모란은 각기 다른 악기 편성의 트리오 앨범 석 장을 선보였다. 그 가운데 매리 핼버슨(기타), 론 마일스(트럼펫)과 함께 한 이 앨범이 제일 좋았다. 세 연주자가 일시적으로 만나 만들어 낸 음악은 +3 이상이었다. 트리오는 각각의 자작곡을 고르게 선택해 세 개의 레이어가 겹치듯 셋 모두가 중심을 이룬 연주를 펼쳤다. 그리고 안정과 불안의 경계를 능란하게 줄타며 낭만과 위트 등 각 연주자들의 개성을 전체 속에서 숨은 그림 찾기처럼 절묘하게 드러나게 했다. 그래서 전체를 들으며 부분을 발견하는 재미가 좋았다.

10
Ahmad Jamal – Marseille (Jazz Village)


80대 후반의 노장 피아노 연주자가 어떻게 이리도 싱싱한 연주를 펼칠 수 있을까? 타건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음악 자체를 말하는 것이다. 이 앨범에서 그는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다는 듯이 능수능란하게 연주했다. 하지만 그것에 생동감을 불어 넣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이 피아노 연주자는 이 조차 계산에 넣었던 것 같다. 리듬을 지속시키면서 그 속에서 재즈의 현재를 적절히 스며들게 한 연주는 정말 경험이 많은, 그럼에서 호기심이 여전한 연주자만이 할 수 있는 것이었다.

9
Hervé Sellin – Passerelles (Cristal)


프랑스의 피아노 연주자 에르베 셀랭은 2017년 두 장의 앨범을 발표했다. 하나는 색소폰 연주자 필 우즈를 주제로 한 앨범이었다. 하나는 슈만, 드뷔시, 사티 등의 클래식을 재즈로 연주한 이 앨범이었다. 이 앨범을 위해 그는 세심한 편곡을 통해 클래식 곡에 재즈적인 색채감을 잘 부여했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자신의 피아노 외에 두 번째 피아노를 편성에 추가한 것이 신선했다. 두 피아노는 역할이 명확히 나뉜다거나 겹치는 일 없이 곡에 따라 경제적인 움직임으로 훌륭한 조화를 보였다.

8
Tommy Smith – Embodying the Light A Dedication to John Coltrane (Spartacus)


스코틀랜드 출신의 색소폰 연주자 타미 스미스도 존 콜트레인을 주제로 한 앨범을 발표했다. 존 콜트레인의 영향을 받은 연주자라면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었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그는 이 앨범은 자신의 50세를 기념해 녹음했다. 즉, 선배의 영향을 흡수해 자신만의 경지에 오른 것을 보여주려 했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인지 존 콜트레인의 곡들을 연주했지만 여러모로 연주 곳곳에서 그만의 것이 차이로 드러났다. 조금은 더 간결해진 연주였다. 존 콜트레인의 쿼텟을 모범으로 삼은 쿼텟 연주도 마찬가지였다. 혹자에 따라서는 차라리 같은 주제로 제작된 데니스 밥티스트의 앨범이 더 좋지 않겠냐 생각할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내 경우는 이 정돈된 느낌, 그로 인한 타미 스미스의 멋이 드러난 것이 더 좋았다.

7
Tubis Trio – The Truth (Challenge)


에스뵤른 스벤슨 트리오를 모범으로 한, 어쿠스틱 편성으로 전자적 질감의 연주를 펼치는 트리오가 매 해 등장하고 있다. 2017년도 마찬가지였다. 그 가운데 폴란드의 피아노 연주자 마체이 투비스가 이끄는 투비스 트리오의 앨범이 난 좋았다. 피아노 연주자의 새로운 호기심에서 비롯된 사운드가 아닌 베이스와 드럼 연주자의 공감이 바탕이 된 트렌디한 연주였기 때문이다. 여기에 특별한 효과 없이 어쿠스틱 트리오 편성을 유지하며 에스뵤른 스벤슨 외에 브래드 멜다우의 그림자가 느껴지는 우수를 담아낸 것도 괜찮았다.

6
Airelle Besson, Edouard Ferlet & Stéphane Kerecki – Aïrés (Alpha)


현 프랑스 재즈를 대표하는 트럼펫 연주자 에어렐 베송, 피아노 연주자 에두아르 페를레, 베이스 연주자 스테판 케렉키가 만났다. 각기 개성 강한 연주자들의 만남은 색다른 트리오의 신선한 조화로 이어졌다. 어느 한 쪽에 치우치지 않는 사운드, 특히 홀에서 앙상블 형식으로 녹음하는 등 실내악적인 울림을 만들어 낸 것이 좋았다. 여기에 자작곡 외에 차이코프스키, 라벨, 포레를 연주해 더 우아한 느낌이 났다. 여기에 어울림의 순간에도 빛나는 솔로의 아름다움은 앨범의 백미였다.

5
Ron Miles with Bill Frisell, Blade, Jason Moran & Thomas Morgan – I Am a Man (Yellowbird Records)


트럼펫 연주자 론 마일스와 기타 연주자 빌 프리셀, 드럼 연주자, 브라이언 블레이드는 트럼펫 연주자의 이름으로 이미 두 장의 앨범을 녹음한 적이 있다. 이 앨범은 기존 편성에 피아노 연주자 제이슨 모란, 베이스 연주자 토마스 모건이 가세한 퀸텟 편성으로 이루어졌다. 그럼에도 이전 두 장의 트리오 앨범의 연장선상에 놓이는 음악을 들려주었다. 새로 합류한 연주자들이 이미 다른 기회로 기존 트리오 연주자들과 함께 한 이력이 있기 때문이리라. 음악은 사실 평이한 편이었다. 그러나 그 안에 담긴 미국적인 정서, 햇살 강한 여름 오후 같은 분위기가 좋았다. 여기에 대충 어울리는 듯하면서도 툭툭 서로의 비어 있는 부분을 메우는 듯한 연주자들의 움직임은 앨범의 가장 큰 매력이었다.

4
Olivier Boge – When Ghosts Were Young (Jazz & People)


기타와 색소폰 그리고 건반까지 연주하는 프랑스 출신의 올리비에 보제의 음악은 팻 메시니가 들려주었던 여행자적 정서를 많이 담고 있다. 그것이 정교한 편곡과 연주를 통해 구현되고 있다는 것도 절로 팻 메시니와 비교하게 한다. 하지만 내가 올리비에 보제를 좋아하는 이유는 음악이 그만의 상상력, 그만의 서사를 바탕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농담이 강한 사운드의 질감 또한 그만의 것이다. 이 앨범에서도 그는 우리의 의식 저편에 가능성의 형태로 남아 있던 길 하나를 따라가는 상상을 하게 만들었다. 찬란해 슬프기까지 한, 보이지만 갈 수 없는 여행의 상상 말이다. 꿈을 꾸게 하는 음악만 큼 좋은 것이 어디 있으랴.

3
Tarkovsky Quartet – Nuit Blanche (ECM)


프랑스 출신의 피아노 연주자 프랑소와 크튀리에가 중심이 된 타르코프스키 쿼텟의 음악은 장르나 연주를 생각하기 전에 모노톤의 이미지, 그리고 그 안에 꽉 차있는 서정미로 감상자를 사로잡는다. 이번 앨범은 더 했다. 음 몇 개만으로 감상자를 울컥하게 만드는 물기 많은 피아노, 반대로 가슴 깊이 갈증을 느끼게 하는 첼로, 바람 같은 공허를 만들어 내는 아코데온, 그리고 공간을 부유하고 상승하는 색소폰이 절묘하게 어울리고 하나가 되어 느림과 몽환으로 가득한 시적인 세계를 보여주었는데 나는 여기서 쉽게 헤어나질 못했다. 

2
Tony Allen – The Source (Blue Note)


나이지리아 출신의 드럼 연주자 토니 앨런은 그동안 재즈 외에 다른 장르에서도 활발한 활동을 해왔다. 그의 연주는 늘 아프리카적인 맛이 났다. 이번 앨범의 경우 그는 오랜 시간 축적된 경험을 바탕으로 60년대부터 현재에 이르는 시간과 아프리카와 미국 등을 아우르는 음악을 선보였다. 이것은 평소 그가 하던 음악이기도 했지만 그래도 아프로 펑크 스타일의 리듬과 사운드가 주는 만족감은 이전보다 훨씬 높았다. 그리고 분위기가 확확 달라지지 않으면서도 다채롭다는 느낌을 주었다. 앨범의 완성도가 그만큼 높았다는 뜻이다.

1
Vijay Iyer Sextet – Far From Over (ECM)


2017년 최고의 앨범으로 피아노 연주자 비제이 아이어의 이번 섹스텟 앨범을 선정한다. 그동안 나는 이 피아노 연주자가 ECM과 그리 잘 어울린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앨범마다 새로운 시도로 그만의 음악을 들려준 것은 사실이었지만 그것이 100%라 생각되지 않았다. 그러나 이번 앨범은 달랐다. 치밀한 작,편곡, 그만큼 즉흥 연주에 대한 배려, 터질 듯 한 긴장과 펑키한 진행의 균형 등 가장 그다운 음악을 들려주었다. 특히 롤러 코스터를 탈 때나 동작이 큰 액션 영화를 볼 때처럼 심장을 쫄깃하게 만드는 격정적인 연주의 이어짐은 재즈를 듣는 이유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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