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한국 재즈 앨범 15선(2017 Best Korean Jazz Albums)

드디어! 2017년 베스트 앨범 소개를 시작한다. 가장 뒤늦은 베스트 앨범 소개가 아닐까 싶다. 이것은 여러 차례 이야기했지만 12월에 발매되는 앨범까지 다 고려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물론 모든 앨범을 듣기에는 개인의 능력에 한계가 있음을 안다. 불가능한 가능성! 그래도 내 선정에서 생기는 괜한 마음의 짐을 조금이라도 덜고 싶어 최대한 기간을 연장해가며 들으며 했다. 그럼에도 부득이 하게 오늘 소개하는 2017 한국 재즈 앨범 15선에 지난 해 12월에 발매된 앨범이 포함되었다. 올 2월에서야 앨범을 듣게 되었기 때문.

아무튼 그 첫 번째로 2017년 내게 깊은 인상을 남긴 15장의 우리 재즈 앨범을 소개한다. 2017년 한국 재즈는 음반 발매의 수는 최근 몇 해에 비해 줄었다. 그래도 다양성은 늘었다고 생각된다. (명확히 정의하기 어려워지긴 했지만) 재즈의 전통을 무시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의 무게를 극복했다고 할까? 달리 말하면 연주자들이 자신에 보다 더 집중해 자기 이야기를 잘 드러내었다는 것이다. 그런 과정에서 작,편곡에서 뛰어난 앨범들, 단순한 단상을 넘어서는 음악을 담은 앨범들이 많았다.

하고픈 이야기가 있음에도 그것을 표현하는데 어눌해 보이거나 설득력이 부족한 경우도 있었다. 사실 이런 경우가 아직은 더 많은 것 같다. 나는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타인의 음악을 연주자들이 조금 더 많이 듣는 것을 권하고 싶다. 누구를 모방하라는 것이 아니다. 내가 생각하지 못한 가능성을 발견하라는 것이다. 결국 지평이란 경험에 비례하지 않던가? 세계를 이야기하기 위해 모든 지역을 직접 다 여행할 필요는 없다. 내 여행 만큼 타인의 여행기를 읽는 것도 필요하다. 책처럼 음악도 열심히 듣기를…

 

조남혁 쿼텟 – About Happiness (조남혁)

드럼 연주자 조남혁의 두 번째 앨범은 행복을 주제로 하고 있다. 그런데 ‘행복에 관한’ 연주자의 이야기가 아니라 그 ‘행복이란 무엇일까?”에 대한 고민이다. 무작정의 긍정이 아닌 의문. 여기에는 생활인으로서 연주자가 지닌 고민, 행복한 상태에 도달하지 못한 자의 희망이 자리잡고 있다. 그래서 드럼 연주자를 중심으로 한 쿼텟의 연주는 역시 비슷한 질문을 지닌 대부분의 감상자를 어루만진다. 특히 타이틀 곡에 해당하는 “Happiness”에서의 우울한 달콤은 무척이나 매혹적이었다. 그 자체로 행복하게 했다.

김오키 – 피스투아우어솔 (포크라노스)

2017년 김오키의 활동은 매우 풍성했다. 그러면서 의외적이었다. 첫 앨범부터 세 번째 앨범에 이르는 진지하고 앞서가는 사운드 외에 대중적인, 장르 결합적인 음악까지, 외연을 넓힌 음악을 선보였기 때문이다. 이전과 다른 질감의 음악을 통해 오히려 그는 자신만의 색이 무엇인지를 더 잘 확인하게 해주었다. <피스투아우어솔>은 소울적인 리듬과 랩이 등장하고 여기에 긴장을 머금은 진보적인 연주가 공존한다. 그러나 그것이 이질적이지 않다. 때로는 지나치게 냉소적이다 싶을 정도로 차분한 김오키의 그 간극을 편안하게 유영하기 때문이다.

최윤화 그룹 + 챔버 프로젝트 – Sound∙Scape ; 소리풍경 (Gig Studio)

피아노 연주자 최윤화의 첫 앨범은 그 타이틀처럼 풍경을 묘사한 것 같다. 서정적임을 강조하는 차원의 풍경이 아닌 풍경을 이루는 다양한 일부를 떼어 각각의 곡으로 그려냈다는 것이다. 스트링 앙상블과 절묘한 어울림을 보이고 일렉트릭 기타가 자연적인 사운드에 두터운 붓질을 하고 김영랑 시인의 시를 인용한 노래가 최윤화의 피아노와 함께 흐른다. 사실 완전 연주 앨범이었다면 나로서는 더 좋았을 것 같다. 그래도 피아노 연주자가 아닌 풍경의 관찰자, 구성자로서 최윤화의 모습이 무척 반가웠다.

김지훈 트리오 – 서른 (Documents Inevitable)

나는 김지훈의 피아노 연주가 실력보다 주목을 받지 못하는 상황이 안타깝다. 그는 연주와 상상력 모두에서 매우 뛰어난 능력을 지닌 젊은 연주자이다. 앨범 <서른>은 그의 세 번째 앨범으로 삼십 대에 접어드는 자신의 상황을 주제로 한 앨범이다. 그런데 서른이 되면 무엇인가 되어있을 것이라 기대하는 보통의 청춘처럼 그 또한 서른에 막연한 기대를 품은 듯하다. 그래서 속도보다는 서정을 즐기는 연주를 펼쳤다. 청춘을 회상하듯 봄의 아련한 정서를 담은 연주였다. 그런데 그것이 느슨하다는 느낌보다는 그의 또 다른 매력을 확인하게 해주어 좋았다.

나윤선 – She Moves On (ACT)

나윤선의 앨범은 늘 일정 이상의 만족을 보장한다. 유럽이 아닌 미국을 향해, 미국 연주자들과 함께 한 이번 앨범도 그렇다. 제이미 샤프트의 협력 속에 재즈 외에 포크, 록적인 맛을 강화한 앨범은 그녀가 유럽 뿐만 아니라 미국에서도 여행을 계속할 수 있겠다는 확신을 갖게 해주었다. 노래를 잘하면 나머지는 상관 없다는 생각을 하게 했다. 그런데 연주까지 좋으니 결과가 뛰어남은 당연한 법. 다만 미국으로 건너간 만큼 재즈 자체에 보다 천착했으면 어땠을까 싶기도 했다.

서영도 일렉트릭 앙상블 – 가물거리는 세상 (YDS MUSIC)

베이스 연주자 서영도가 이끄는 일렉트릭 앙상블의 이번 앨범 또한 지난 앨범들과는 다른 음악을 담고 있어 특별했다. 앙상블은 여전하지만 여기에 혼탁한 현실과 그럼에도 품는 희망의 메시지를 담아낸 것이다. 사실 나는 이 새로움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다. 음악적으로 뛰어나지 못해서가 아니라 이전의 음악이 좋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층 가벼워진 사운드가 주는 매력은 과거와 상관 없이 재미있었다. 그리고 현대적이었다. ‘달콤한 인생’은 그 가운데 최고.

김책 & 김성은 – The Reflexive Dialogues (김책음악출판)

드럼 연주자 김책과 기타 연주자 김성은의 듀오 앨범이다. 약 1년간 복합문화공간 무대륙에서의 연주를 정리하고 있다. 두 연주자는 각각 자유로운 방식으로 연주를 펼쳤다. 그런데 그 밀도가 상당했다. 교감을 넘어서는, 말 그대로 대화의 연주였다. 앨범보다는 실제 라이브에서 더 잘 느낄 수 있는 대화. 이런 대화는 두 연주자가 자유로이 연주하면서도 기타와 드럼이라는 자기 자리를 잘 지켰기 때문이었다. 내게는 특히 “Dialogue 4″가 좋았다.

김도연 & Chase Morrin – GaPi (김도연)

가야금 연주자 김도연과 피아노 연주자 체이스 모린의 듀오 앨범이다. 악기의 구성을 보면 크로스오버 음악으로 분류될 수 있겠지만 앨범에 담긴 음악은 재즈에 더 가깝다. 김도연의 가야금 연주는 서양음악을 국악기로 연주한다는 차원을 넘어 가야금이 지닌 풍부한 표현력을 유감 없이  보여준다. 체이스 모린의 피아노가 오히려 우리 음악과 조화를 이루려 노력했다. 즉, 상호이해가 돋보인다는 것인데 그래서 이 앨범의 미덕은 두 문화의 만남, 가야금의 색다른 모습이 아닌 결국 사람이 만나서 대화한 그 자체에 있다.

조영덕 트리오 – Inner Side (JYD MUSIC)

기타 연주자 조영덕은 2017년 두 장의 앨범을 선보였다. 하나는 자신의 트리오 앨범, 하나는 덕스트리트의 이름으로 녹음한 앨범이었다. 모두 기타 트리오의 앨범으로 인상적인 음악을 들려주었다. 그래도 나는 전자에 해당하는 우리네 정서와 전통적인 기타 트리오 음악이 잘 어울린 음악을 담은 전자의 이 앨범이 더 좋았다. 의도적이었겠지만 자연스러운 결과물이었다. 여기에 트리오와 기타 연주자의 솔로 연주 또한 인상적이었다. 앞으로 계속 주목할 것 같다.

김창현 – 해체 (解體) (Tal)

베이스 연주자 김창현과 색소폰 연주자 김성완, 드럼 연주자 김선기의 트리오 앨범이다. 베이스 연주자를 중심으로 세 연주자는 자유롭고 즉흥적인 프리 재즈 연주를 들려주었다. 그런데 그 우연적인 진행이 일종의 자장(磁場)을 형성하고 있어서 흥미로웠다. 해체된 조직의 일부가 다시 결합을 지향한다고 할까? 아무리 자유롭다 해도 우리는 서로의 영향아래 있음을 생각하게 해주는 연주였다. 그것을 느끼는 것이 사실 프리 재즈를 듣는 즐거움이다.

이한얼 – Piano Improvisations (Audio Guy)

2017년 흥미로운 피아노 솔로 앨범 몇 장이 있었다. 키스 자렛의 솔로 콘서트를 지향하는 듯한 앨범까지 있었다. 그 가운데 이한얼의 이 앨범이 제일 좋았다. 재즈와 클래식적인 감성이 어우러진 즉흥 연주였는데 서정적인 요인에만 의존하지 않는 하지 않아서 좋았다. 그것이 앨범을 더 오래 감상하게 만들 것으로 예상한다. 여기에 고요 속으로 빠질 듯한 피아노의 질감과 공간감은  내밀한 연주를 더욱 매혹적으로 만들었다.

김세운 재즈 챔버 – Dance Of Birds (SEBA 2016)

2017년이 아닌 2016년에 발매된 앨범이다. 뒤늦게 들어서 너무나 안타까웠다. 비슷한 경우 보통은 무시하고 넘어가곤 했는데 이번에는 그럴 수 없었다. 아마도 2017년-정확히는 2016년 12월 이후 발매된 앨범 가운데 가장 그림 같은 음악을 담고 있지 않나 싶다. 스트링 앙상블, 클라리넷, 플루트, 베이스, 피아노가 어우러진 음악인데 클래식과 재즈의 가로지름을 이야기하기 전에 음악이 담은 풍경이 너무나 아름다웠다. 바다 위를 나는 새들의 이미지!를 지닌 타이틀 곡은 그 중 백미였다.

황호규 – Straight, No Chaser (Blue Room)

베이스 연주자 황호규의 첫 앨범은 굳이 한국이라는 틀에서 생각할 필요가 없는, 어디에서나 통할 수 있는 포스트 밥 사운드를 담고 있다. 여기에는 제프 테인 와츠(드럼), 데이빗 키코스키(피아노), 아담 로저스(기타) 같은 해외 일급 연주자들이 함께 했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그 전에 황호규의 세련된 작,편곡이 더 큰 이유로 작용했다. 그는 어깨를 나란히 하는 것을 넘어 밴드를 이끌고 그 안에 자신의 음악을 투영했다. 이런 앨범은 계속 나와야 한다.

장은성- I’m Doing Fine, Father (EJ Music)

올 해의 발견을 꼽는다면 나는 피아노 연주자 장은성을 꼽고 싶다. 이 피아노 연주자는 기타가 가세한 쿼텟 편성을 기반으로 자신의 경험을 포스트 밥의 직선적인 면과 클래식의 서정성을 아우르는 연주로 풀어냈다. 그런데 그것이 매우 설득력 있었다. 자기 이야기라고 해서 자신만의 서정에 갇히는 법이 없었다. 연주는 짜릿했고 여운은 깊었다. 이런 연주자의 등장은 여전히 어려운 한국 재즈의 현실에서도 새로운 희망을 품게 한다.

이지연 컨템포러리 재즈 오케스트라 – Feather, Dream Drop (P.O.M)

피아노 연주자 이지연의 이번 빅 밴드 앨범은 위에 소개한 앨범들에서 내가 받았던 좋은 인상을 모두 다 지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색을 통해 얻은 상상력, 섬세한 작,편곡 그리고 실내악을 연상시키는 밴드의 움직임까지 모든 것이 아름다웠다. 꿈꾸게 했다. 결국 이것은 비교적 긴 시간 속에 하고픈 이야기가 쌓이고 그 이야기를 다시 음악으로 어떻게 풀어갈지 차근차근 고민한 끝이 나온 것이다. 재즈가 순간의 음악인 것은 맞지만 그 순간을 만나기 위해 연주자들은 기다리고 또 기다린다. 그 여유가 돋보이는 앨범이었다. 국내에서만 듣기에는 아쉬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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