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한 노래로 만든 엘라 핏제랄드의 새 앨범
2017년은 엘라 핏제랄드의 탄생 100주년이 되는 해이다. 그녀는 1917년 4월 25일 미국 버지니아 주(州)의 뉴포트 뉴스 시(市)에서 태어났다. 이후 1934년 뉴욕의 아폴로 극장에서 열린 아마추어 오디션에서 주목을 받아 본격적으로 노래를 시작한 후 1996년 6월 15일 우리 나이로 80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200장 이상의 앨범을 통해 재즈의 모든 곡을 노래하며 재즈의 여왕이란 평가를 받았다.
그녀의 노래가 오랜 시간 인기를 얻었던 것은 기교 때문만은 아니었다. 물론 맑은 목소리, 명확한 발음, 목소리를 악기 차원으로 승화시킨 화려한 스캣 등은 지금도 쉽게 넘볼 수 없을 정도로 뛰어난 것이었다. 하지만 그녀의 진정한 매력은 정서적 표현력에 있었다. 특히 그녀는 밝고 행복한 노래에 능했다. 어둡고 우울한 분위기의 곡마저도 그녀가 노래하면 그 안에서 한 줄기 희망이 보였다.
재즈 역사상 가장 뛰어난 보컬의 한 명이었기에 엘라 핏제랄드의 탄생 100주년에 맞추어 다양한 기념 앨범이 제작되는 것은 당연했다. 하지만 대부분 그녀의 노래를 이런 저런 방식으로 정리한 베스트 앨범이었다. 하긴 아무리 100번째 생일을 축하하는 앨범이라 해도 이미 이 세상에 없는 보컬인데 어떻게 그 이상의 특별한 앨범을 만들 수 있을까?
그런데 그녀의 주요 앨범들을 제작했던 버브 레이블의 생각은 달랐다. 그 동안 발매된 것들과 큰 차이가 없는 또 다른 베스트 앨범을 제작하는 대신 새로운 앨범을 제작하기로 결정했다. 세상을 떠난 지 20년이나 지난 사람의 새 앨범을 어떻게 제작할 수 있을까? 그렇다고 미공개 녹음을 찾아낸 것도 아니었다. 대신 버브 레이블은 첨단의 녹음 기술을 활용하기로 했다. 그녀의 기존 녹음에서 노래만을 분리하고 여기에 새로운 연주를 입히기로 한 것이다.
사실 과거의 연주자나 보컬을 현재로 소환한 일은 이전에도 있었다. 나탈리 콜이 1991년 앨범 <Unforgettable… with Love>에서 이미 세상을 떠난 아버지 냇 킹 콜과 함께 “Unforgettable”을 노래한 것이 대표적이다. 그에 앞서 비밥 혁명을 이끌었던 색소폰 연주자 찰리 파커의 불꽃 같은 삶을 그렸던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의 1988년도 영화 <버드>에서는 찰리 파커의 오래된 녹음에서 색소폰 연주만 추출한 뒤 여기에 레이 브라운, 월터 테이비스 주니어, 론 카터 등 당시 활동 중이던 연주자들의 새로운 연주를 입혀 사운드트랙으로 사용했다. 영화 속 현재를 그리기에는 찰리 파커의 녹음이 오래된 느낌을 주기에 고안한 방법이었다.
버브 레이블은 이 프로젝트를 영국의 제작자 부부 제임스 모건과 줄리엣 포친에게 맡겼다. 두 사람은 그 동안 클래식과 크로스오버 분야의 음악 편곡과 앨범 제작에서 역량을 발휘해왔다. 그래서 이들이 엘라 핏제랄드의 새 앨범을 제작한 것에 의아함을 느끼는 사람들이 있을 것 같다. 하지만 기존에 녹음된, 모든 것이 정해진 노래에 새로운 연주를 입히는 것은 어찌 보면 재즈보다는 클래식 쪽 경력이 많은 제작자에게 더 어울리는 일이 아닐까 싶다. 실제 두 사람은 곡의 선택부터 편곡, 오케스트라 지휘까지 제작의 모든 부분에 관여하며 무모할 수도 있는 기획을 훌륭한 결과로 이끌었다.
기존에 녹음된 수 많은 엘라 핏제랄드의 노래 가운데 이번 앨범의 특별한 기획에 맞는 곡을 찾는 데는 여러 어려움이 있었다. 아무리 기술이 발달되었다고 해도 이미 하나의 트랙으로 합쳐진 녹음에서 다른 연주를 제거하고 목소리만을 분리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최근 주파수 대역을 고려해 목소리만을 분리하는 기술이 나왔다지만 이 또한 아직 완벽하지 못해 그 과정에서 목소리가 변형될 위험이 크다. 그러므로 연주를 제거하고 목소리만 온전히 남기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다.
한편 앨범 전체의 통일성을 위해서는 서로 인접한 시기에 녹음된 곡들을 선택해야 했다. 곡마다 녹음된 시기가 크게 다르면 아무래도 그 질감 또한 다를 것이니 말이다. 게다가 기획의 특성상 앨범의 통일성은 그대로 앨범의 현재성으로 이어진다. 마치 엘라 핏제랄드가 살아 돌아와 새 앨범을 녹음한 듯한 환상을 만들어낼 수 있다. 그것이 바로 이번 앨범의 기획 의도가 아닐까?
이러한 기술적 한계와 고려 사항을 반영해 제임스 모건과 줄리엣 포친은 1950년부터 1960년 사이에 녹음된 앨범에 집중했다. 이 기간 동안 엘라 핏제랄드는 데카 레이블과 버브 레이블에서 약 30여장의 앨범을 녹음했다. 그 가운데 스튜디오에서 소편성으로 녹음된 앨범들이 이번 기획에 잘 어울렸다. 소편성인 만큼 목소리를 제외한 부분을 제거하기가 빅밴드 편성보다 상대적으로 쉬었기 때문이다. 또한 약 10년 사이에 녹음된 것인 만큼 목소리의 통일성 또한 담보할 수 있었다. 게다가 30대 중반부터 40대 중반에 걸친 이 기간 동안 엘라 핏제랄드의 노래는 절정에 오른 아름다움을 보여주었다.
그렇게 해서 1950년에 녹음된 첫 번째 정규 앨범 <Ella Sings Gershwin>에 수록된 “Someone To Watch Over Me”를 비롯해 1954년도 앨범 <Songs in a Mellow Mood>의 “People Will Say We’re in Love”, “Makin’ Whoopee!”, “What Is There To Say”, 1956년도 앨범 <Sings the Cole Porter Songbook>의 “I Get A Kick Out Of You”, “Let’s Do It (Let’s Fall In Love)”, 역시 1956년에 녹음된 루이 암스트롱과의 듀오 앨범 <Ella and Louis>의 “They Can’t Take That Away From Me”, 같은 시기에 녹음된 <Sings the Rodgers & Hart Songbook>의 “Bewitched”, “With A Song In My Heart”, 1957년에 녹음된 루이 암스트롱과의 두 번째 듀오 앨범 <Ella & Louis Again>의 “These Foolish Things (Remind Me Of You)”, “Let’s Call The Whole Thing Off”, 1960년도 앨범 <Songs from “Let No Man Write My Epitaph>의 “Misty” 등 총 7장의 앨범에서 12곡이 선별되었다.
이들 곡들은 모두 소편성으로 녹음된 것들로 새로운 오케스트라 연주를 더하기에 큰 어려움이 없었다. 그럼에도 두 제작자는 기존의 연주를 무리해서 지우지 않았다. 엘라 핏제랄드의 목소리를 왜곡시킬 위험이 있다고 판단되면 기존 연주를 그대로 두었다. 대신 이를 고려해 오케스트라 편곡을 했다. 예를 들어 “Makin’ Whoopee!”의 경우 밝은 오케스트라의 연주에 이어 노래가 시작되기 직접 피아노 연주가 흐르기 시작하는데 이것은 1954년 녹음 당시 반주를 담당했던 엘리스 라킨이 연주한 것이다. 하지만 이 연주는 별 다른 이질감 없이 오케스트라의 연주와 잘 어울린다. 이 외에 “I Get A Kick Out Of You”에서 들리는 바니 케셀의 기타 연주, “Misty”에서 들리는 폴 스미스의 피아노 연주 등이 그대로 남아 오케스트라와 함께 했다.
이러한 어울림은 제작자 부부와 아르헨티나 출신의 지휘자겸 편곡자 호르헤 칼란드렐리의 오케스트라 편곡이 기존 녹음의 편곡을 적극 반영했기에 가능했다. 예를 들면 이번 앨범의 타이틀 곡 “Someone To Watch Over Me”이나 “People Will Say We’re in Love”에서 낭만적인 오케스트라 인트로는 엘리스 라킨의 짧은 피아노 인트로를 변형한 것이다. “Bewitched”도 마찬가지. 폴 스미스의 짧은 피아노 연주를 발전시킨 오케스트라 연주가 인트로로 등장한다.
한편 “They Can’t Take That Away From Me”와 “Let’s Call The Whole Thing Off”의 경우 루이 암스트롱과 함께 한 앨범에서 가져오면서 아예 루이 암스트롱의 노래와 트럼펫 솔로도 그대로 남겼다. 이 두 곡은 원곡을 거의 그대로 둔 채 여백 사이사이로 오케스트라 연주가 흐르게 했는데 그 섬세한 들어가고 나감이 1950년대에 앨범을 녹음할 때 오케스트라가 이미 있었던 것처럼 들린다. 시간의 차이가 느껴지지 않는다.
이처럼 원곡의 연주를 오케스트라에 맞추어 바꾸는 것을 중심으로 편곡을 진행했기에 각 곡들이 주는 정서는 원곡과 아주 다르지는 않다. 엘라 핏제랄드의 고운 노래가 주는 편안하고 낭만적인 분위기는 이번 새 앨범에서도 그대로 유효하다. 이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원곡과 비교해 감상해 보기 바란다. 편곡까지 담당한 두 제작자가 얼마나 원곡의 분위기를 세심히 고려해 오케스트라 편곡을 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한편 두 제작자는 원곡에 오케스트라를 더한 하는 것에만 만족하지 않았다. 이번 앨범이 2017년에 발매된 새로운 앨범임을 강조하기 위해 조금 더 과감한 시도도 했다. 앨범의 시작을 알리는 “People Will Say We’re in Love”가 그렇다. 이 곡에서는 현재 가장 높은 인기를 얻고 있는 남성 보컬 그레고리 포터가 등장해 67년 전의 엘라 핏제랄드와 함께 노래한다. 엘라 핏제랄드의 부드럽고 우아한 목소리와 그레고리 포터의 포근하고 정겨운 목소리가 편안하게 어울린다. 시공을 초월한 만남이 주는 어색함은 느껴지지 않는다. 녹음 시점을 기준으로 우리 나이 38세의 여성과 47세 남성이 평범하게 만나 사랑의 노래를 부르는 것 같다. 노래 제목처럼 잘 모르는 사람은 두 보컬을 연인으로 볼 것이다.
이 외에 <Ella & Louis Again>에서 가져온 또 다른 곡“These Foolish Things (Remind Me Of You)”에서는 7분이 넘는 원곡의 길이를 과감하게 3분가량 축소했다. 그럼에도 과한 편집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오히려 새 노래 같은 신선한 느낌을 준다.
지난 시대의 명연을 듣다 보면 내가 그 시대에 살았다면 좋았겠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지금 아련한 향수에 젖어 수십 년 전의 녹음을 듣는 것과는 다른 생동감을 느낄 수 있었을 것이다. 마지 지금의 팝 음악을 듣는 것처럼 말이다.
엘라 핏제랄드의 노래를 새로운 오케스트라와 함께 하게 만든 이번 앨범은 재즈가 가장 아름다웠던 시절로 시간 여행을 하고픈 감상자들의 이러한 바램을 충족시킨다. 물론 전설이 되어버린 엘라 핏제랄드가 다시 살아 돌아올 리는 없다. 그래도 이렇게 발달된 기술의 힘을 빌어 과거와 현재가 어우러진 가상의 공간을 만들고 그 속에서 눈 앞의 인물로 그녀를 만나게 된 것은 매우 특별한 일이다. 과거가 아닌 2017년의 추억이 새로이 만들어진 것이니 말이다.
재미있는 기획이네요.ㅎㅎ 더군다나 발매한 곳이 데카라니!
고운노래 향이 짙은 우아한 목소리.. 끈적이지 않아도 너무나 재즈 그자체인 목소리. Bewitched를 들으며 낭만적인 차한잔을 누군가와 나누고 싶은 고독한ㅠㅠ 밤이네요….
혼자 음악을 듣는 밤은 고독하면서도 낭만적이죠. ㅎ 그런데 엘라의 노래는 고독보다는 누군가와 함께 들어야 더 맛이 좋지 않을까 싶습니다.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