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즈는 만남의 음악이다. 흑인과 백인의 문화가 어우러져 만들어진 그 시작부터가 그랬다. 그래서인지 연주자들은 만남을 통해 새로운 음악을 만들곤 했다.
따라서 이탈리아 출신의 트럼펫 연주자 파올로 프레주와 쿠바 출신의 피아노 연주자 오마르 소사의 만남은 그리 특별한 일은 아니었다. 두 사람의 인연은 오마르 소사가 2006년 자신의 앨범 <The Promise>를 녹음하면서 트럼펫 연주자를 게스트로 부른 것으로 시작되었다. 두 연주자 모두 누구보다 열린 자세로 여러 만남을 즐겼던 만큼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 만남은 색다르고 신선한 경험으로 끝나지 않았다. 그 만남에서 두 연주자는 새로운 음악적 가능성을 꿈꾸었다. 하지만 성급하게 무엇을 만들려 하지 않았다. 먼저 5년여간 공연을 통해 영감을 공유한 후 2012년에서야 <Alma>를 선보일 수 있었다. 그래서일까? 앨범은 서로 다른 영혼(Alma)의 만남, 충돌이 아닌 조화, 공존의 분위기가 강했다. 어느 누구에 치우치지 않은, 1+1=2를 넘어서는 새로운 음악이었다.
그리고 다시 4년이 지난 2016년, 어느덧 인연이 10년을 맞이한 해에 두 연주자는 두 번째 앨범 <Eros>를 선보였다. 앨범 타이틀에서 알 수 있듯이 이번 앨범에서 두 연주자는 사랑을 주제로 교감을 나누었다. 그런데 앨범 후면에 고대 그리스어로 “ΕΡΩΣ(에로스)”라 적은 것으로 보아 사랑의 네 가지 종류의 하나인 남녀간의 사랑을 의미하는 것 외에 그것의 기원인 그리스 신화 속 에로스를 반영하려 하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바람둥이였던 제우스, 성적 욕망의 신인 “히메로스”가 등장하는 것도 이 때문이리라.
그래서일까? 두 연주자는 사랑을 단편적으로 묘사하지 않는다. 지고지순하고 아름다운 사랑, 이상적이고 서정적인 사랑 외에 육체적인 욕망이 바탕이 된 성적인 쾌감 등 에로스에 내포된 다양한 면모를 그려냈다. “Sensuousness”에서 관능미를 드러내던 것이 “Brezza Del Verano 여름 바람” 에서는 청순미를 드러내는가 하면 피터 가브리엘의 곡을 연주한 “what Lies Ahead”에서는 사랑의 아픔을 드러내는 식이다.
이를 위해 두 연주자는 단순히 트럼펫과 피아노만을 연주하지 않았다. 파올로 프레주는 플뤼겔 혼와 타악기, 그리고 다양한 샘플을 사용했으며 오마르 소사 또한 키보드, 샘플러, 타악기, 프로그래밍 그리고 자신의 목소리까지 사용했다. 오버 더빙이 적극 사용된 것은 물론이다. 그 결과 여백이 많은 듀오 앨범이 아닌, 곡마다 사랑의 변화만큼이나 질감의 변화를 보이는 입체적인 사운드의 앨범이 완성되었다. 그리고 이것은 서로 다른 음악적 바탕을 지닌 두 연주자의 만남이 하나의 지향점을 향해 손잡고 나아가는 동료로 안착되었음을 의미한다. 실제 곡마다 펼쳐지는 두 사람의 연주는 긴장 어린 순간에서도 탄탄한 호흡을 보인다. 작곡에서도 마찬가지다. 오마르 소사가 더 많은 곡을 작곡했지만 실제 곡의 분위기에 있어서는 누가 썼냐는 의미가 없어 보인다. 오히려 파트너를 생각하며 곡을 쓴 듯 하다.
한편 이탈리아, 쿠바 외에 아랍, 브라질의 연주자들이 만나 어울린 것도 사랑의 다양한 면만큼이나 육감적이다. 먼저 오마르 소사와의 인연으로 지난 앨범에도 참여했던 첼로 연주자 자끄 모렐렌바움이 이번 앨범에서도 “La Llamada”같은 곡에서 부드러운 존재감을 드러냈으며 파올로 프레주와 인연이 깊은 알보라다 스트링 쿼텟이 “Eros Mediterraneo 지중해식 사랑” 등의 곡에서 온화한 바람 같은 연주를 펼쳤다.
또한 앨범에서 가장 흥미로운 부분이라 할 수 있는데 유대 혈통의 벨기에 출신 보컬 나타샤 아틀라스가 참여해 몇 곡에서 이국적이며 육감적인 노래와 허밍을 불렀다. 특히 매시브 어택의 곡을 연주한 “Teardrop”에서의 허밍이나 “My Soul My Spirit”에서의 성(聖)과 성(性) 사이에서 괴로워하는 듯한 분위기는 그녀가 아니면 표현하기 어려웠겠다 싶을 정도로 인상적이다.
앨범 내지에는 ‘사랑은 몸을 무기력하게 하고 나를 흔들어 버린다. 그것은 달콤쌉싸름하고 음흉하며 통제할 수 없다’는 그리스 시인 사포가 쓴 에로스에 대한 글이 실려 있다. 앨범의 주제를 전달하기 위해 인용한 것이리라. 하지만 이 글은 그대로 이번 앨범에도 적용된다. 듣는 내내 감상자를 나른하게 만들고 사랑의 다양한 감정으로 흔들어 버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