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27일 오후 피아노 연주자 제리 알렌이 세상을 떠났다. 그녀의 오랜 매니저의 발표에 따르면 사인은 암이라 한다. 하지만 정확히 어떤 암이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아무튼 그토록 건강하고 역동적인 연주를 펼쳤던 그녀에게도 몸 속의 악성 종양은 이길 수 없었던 모양이다.
최근 몇 해 동안 수 많은 재즈의 별들이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나는 이에 대한 놀라움, 아쉬움 속에 부고의 글을 써왔다. 그런데 이 피아노 연주자의 경우 2주 전에 막 60대를 시작한, 아직은 더 많은 활동을 기대할 수 있던 시기에 사망한 터라 황망함이 더하다. 죽음에는 순서가 없음을 새삼 깨닫게 된다.
게다가 그녀는 한 때 잘 나갔던, 나이가 들면서 과거의 영광을 뒤로 하고 살던 연주자가 아니었다. 현재 진행형의 연주자로 시대와 호흡하는 한편 더욱 더 먼 곳을 바라보며 앞으로 나아가는 중이었던 연주자였다.
1957년 6월 12일 미국 미시간 주의 폰티악에서 태어나 디트로이트에서 자란 그녀는 델로니어스 몽크, 행크 존스, 버드 파웰, 매리 루 윌리엄스, 허비 행콕, 맥코이 타이너, 세실 테일러 등 재즈의 거의 모든 시대에 걸친 연주자들의 스타일을 흡수했다. 그 가운데 2010년에 선보였던 피아노 솔로 앨범 <Flying Toward the Sound>를 통해 허비 행콕, 맥코이 타이너, 세실 테일러의 영향을 특별히 표현하기도 했다. 이 앨범에서 언급된 연주자들은 음악의 수평과 수직, 그리고 역동적 에너지 등에서 섞이기 어려운 그들만의 길을 찾아냈던 인물들이었다. 그런데 그녀는 이들의 음악을 종합하고 거기서 찾아낸 자신만의 연주를 들려주었다. (어찌 보면 크레이그 테이번, 비제이 아이어 등 후배 피아노 연주자들의 원형과도 같은 연주이기도 했다.)
한편 다양한 연주자들을 연구하고 흡수한 만큼 그녀는 비밥, 프리 재즈, 포스트 밥 그리고 재즈 밖의 소울 음악 등에 유연하게 반응하며 그녀만의 음악을 만들어낼 줄 알았다. 앨범마다 스타일을 바꿔갔다는 것도 아니다. 그 보다는 이 모든 것을 하나로 묶을 줄 알았다는 것이 더 정확할 듯싶다.
예를 들면 2013년도 앨범 <Grand River Crossings>에서 모타운 레코드로 대변되는 그녀가 자란 디트로이트의 소울 음악 히트 곡들을 연주했을 때도 그녀는 곡의 기본을 유지하면서도 모든 곳의 에너지를 흡수하고 온몸으로 발산하는 듯한 자유로운 솔로와 재조립에 가까운 과감한 편곡으로 누구도 하지 않았던 색다른 연주를 들려주었다.
찰리 헤이든, 론 카터, 데이브 홀랜드 등의 베이스 연주자와 폴 모시앙, 토니 윌리엄스, 잭 드조네트 등의 선배 연주자들이 기꺼이 그녀와 트리오를 이루어 연주하거나 찰스 로이드, 듀이 레드맨 등의 선배 색소폰 연주자들의 부름을 받았던 것도 그만큼 그녀가 전(前)시대의 재즈와 선배 연주자들의 선구자적인 자세를 이해했기 때문이었다. 특히 평소 화성이 솔로 연주의 자유를 속박한다며 피아노와의 연주를 좀처럼 하지 않았던 색소폰 연주자 오넷 콜맨이 1996년 두 장의 앨범 <Sound Museum: Hidden Man>과 <Sound Museum: Three Women>을 녹음하면서 정규 앨범으로서는 유일하게 피아노를 편성에 포함시키기로 결정했을 때 그녀를 선택한 것도 같은 이유였다.
선배 연주자들뿐 아니라 그렉 오스비, 게리 토마스, 스티브 콜맨 등의 동년배 색소폰 연주자 연주자들-역시 음악적 색이 각각 분명한-도 그녀와 함께 하기를 즐겼다. 어디 그 뿐인가 드럼 연주자 테리 린 캐링턴, 베이스 연주자겸 보컬 에스페란자 스팔딩 등의 후배들도 그녀를 찾곤 했다.
요컨대 그녀는 함께 하는 연주자들의 다양한 개성을 존중하면서도 자신의 연주를 유지할 줄 알았던 연주자, 그래서 스타일과 나이 등은 중요하지 않았던 연주자였다. 재즈의 전 시간을 현재라는 공간에 응축시켰던 연주자였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그녀의 떠남이 더욱 안타깝다. 조금 더 그녀가 활동했다면 재즈의 역사를 느끼면서 시선을 앞으로 향하게 하는 새로운 음악, 재즈의 역사가 보다 더 단단하게 융합된 음악을 선보였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아쉬운 마음과 함께 그녀의 명복을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