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is In The Rain – Sarah McKenzie (Impulse! 2017)

재즈의 전통적 사운드 안에 담긴 행복한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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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사라 멕켄지는 국내 재즈 애호가들에게 낯선 존재가 아닐까 싶다. 세계적으로도 피아노를 연주하며 노래하는, 그리고 작곡과 편곡에도 뛰어난 실력을 지닌 이 여성이 주목 받게 된 것은 지난 2015년에 발매된 앨범 <We Could Be Lovers>를 통해서였다. 이 앨범에서 그녀는 블로섬 디어리 스타일의 백인 여성 보컬의 계보를 잇는 앳된 목소리와 그에 걸맞은 산뜻한 사운드로 적지 않은 호응을 얻었다. 아직은 미완이지만 1993년 다이아나 크롤이 등장했을 때와 유사한-음악적인 것을 너머 감상자에게 준 인상의 깊이에서-느낌이었다.

하지만 다이아나 크롤이 첫 앨범이 모국 캐나다에서 성공을 거두고 이에 힘입어 곧바로 미국을 거쳐 세계적 인기를 얻을 수 있었다면 사라 맥켄지의 경우는 그보다 긴 시간이 필요 했다 실력의 문제가 아니라 지리적 여건에 따른 기회의 문제였다.

 

우리는 물론 세계의 재즈 애호가들 대부분은 그녀가 2015년도 앨범으로 등장한 신인으로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실제 그녀의 경력은 그 이상이다. 올 해 우리 나이로 30인 것에 걸맞게 이미 그녀는 이미 10여년 가량 꾸준히 활동해왔다. 2015년도 앨범만 해도 2011년의 <Don’t Tempt Me>, 2012년의 <Close Your Eyes>에 이은 세 번째 앨범이다.

그러한 활동에도 그녀가 널리 알려지지 않았던 것은 그녀가 호주인이기 때문이었다. 한국만큼이나 유럽과 미국에서 멀리 떨어진 호주를 중심으로 활동했기에 알려질 기회를 얻기 어려웠던 것이다. 게다가 그 기회는 그녀가 만들어 낸 것이었다. 호주에서 재즈를 공부하고 앨범을 녹음하는 것에서 나아가 그녀는 이탈리아를 거쳐 우리 나이로 25세에 미국 버클리 음대에 입학해 학업을 이어갔고 여러 경연 대회에 참가하는 등 꾸준히 자신의 활동 영역을 높이기 위해 노력했다. 미국에서 공부를 계속하게 된 것은 배움에 대한 열정 외에 장기간 미국에 체류하기 위한 자격을 얻기 위한 측면도 있었다. 그 결과 2014년 미국에서 공부하던 중 호주에서 발매한 세 번째 앨범이 임펄스 레이블의 주목을 받아 새로이 발매되면서 세계적인 성공의 길을 시작할 수 있게 되었다.

 

사라 맥켄지의 음악이 임펄스 레이블의 관심을 받게 된 것에는 재즈의 전통에 대한 깊은 이해와 존중이 큰 역할을 했다. 그녀는 9세 때부터 클래식이 아닌 블루스 음악으로 피아노 수업을 받았고 13세 무렵 오스카 피터슨을 알게 되면서 재즈 피아노 연주자의 삶을 꿈꾸기 시작했다. 그것도 미국에서 인정 받는 피아노 연주자로서의 삶을. 피아노가 우선이었기에 그녀는 오스카 피터슨 외에 진 해리스, 윈튼 켈리, 빌 에반스 등의 피아노 연주자들에게서 영감을 받아 자신의 연주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노래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한참 후인 버클리 음대 시절이었다.

작곡에 있어서도 그녀는 콜 포터, 사이 콜맨, 어빈 벌린 같은 작곡가들, 새미 칸, 조니 머서 같은 작사가들에서 영감을 받아 가사와 멜로디가 어울려 우아함을 발산하는 곡을 쓰려 노력했다. 또한 듀크 엘링턴, 빌 에반스, 디지 길레스피, 허비 행콕 등 연주만큼이나 작곡에 있어서도 자신만의 어법을 지녔던 명인들처럼 그녀 또한 자신만의 무엇을 이루려 노력했다.

 

지금 우리가 듣고 있는 앨범 <Paris In The Rain> 또한 전통적인 것을 존중하면서 그 안에 자신만의 매력을 담으려는 사라 맥켄지의 노력을 담고 있다. 기본적으로는 지난 2015년도 앨범과 크게 달라진 것은 없다. 랄프 무어(색소폰), 도미닉 파리나치(트럼펫), 마크 휘필드, 로메로 루밤보(이상 기타), 그레고리 허친슨(드럼) 등 중견급 연주자들이 대거 참여해 사운드를 풍성하게 만들어주었다는 것만 다를 뿐 상큼한 보컬과 스윙감이 살아 있는 상쾌한 사운드는 그대로이다.

특히 앨범 전체에 편재하는 밝음과 긍정의 정서는 이 앨범의 가장 큰 미덕이다. 그녀의 노래는 사랑을 고백하는 노래에는 이미 고백이 성공하리라는 확신을, 사랑을 기대하는 노래는 사랑이 찾아 오리라는 믿음을 바탕으로 노래한 듯한 느낌을 준다. 목소리 자체가 우수보다는 밝고 산뜻한 정서에 더 어울리는 것 같다. “Tea For Two”, “I’m Old Fashioned Love”, “Onward And Upward”같은 곡이 대표적이다. 3관 섹션의 시원한 울림과 바삭거리는 드럼, 경쾌한 그녀 자신의 피아노 연주와 가벼이 날아갈 듯한 노래가 어우러져 산뜻한 느낌을 준다.

“Little Girl Blue”같은 발라드 곡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녀의 노래는 우울한 소녀가 아닌 미래의 꿈으로 가득한 소녀를 그리게 한다. 재즈 연주자를 꿈꾸던 그녀의 어린 시절을 반영한 것일까? 또 다른 자작곡 “Don’t Be A Fool”처럼 우수가 느껴지는 곡도 있기는 하다. 그러나 미셀 르그랑 풍의 멜로디를 지닌 이 곡에서도 그녀는 감상자를 깊은 슬픔에 빠지게 하는 대신 그 슬픔을 위로한다.

 

앨범 전체에 흐르는 행복한 기운은 사라 맥켄지의 삶, 경험을 바탕으로 하고 있기에 더욱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이 앨범 발매를 앞두고 나는 그녀와 이메일로 질문을 주고 받을 기회가 있었다. 그 가운데 그녀는 늘 자신의 경험과 관련이 있는 곡을 선택한다고 했다. 그래야 음악이 진실되기 때문이란다. 이번 앨범의 경우 타이틀 곡 “Paris In The Rain”이 대표적이다. 그녀는 임펄스 레이블과의 계약을 미국이 아닌 프랑스에서 했다. 임펄스 레이블 프랑스가 먼저 주목한 것. 그래서 계약을 위해 파리에 머물면서 도시를 사랑하게 되었다고 한다. 파리 자체가 낭만적인 도시이기는 하지만 여기에 재즈의 유서 깊은 레이블과 계약하고 이를 통해 자신의 음악을 전세계에 알릴 수 있다는 기대감까지 있었으니 그 행복감은 더했을 것이다. 그래서 비 오는 날까지 매력적으로 보였을 것이다.

그렇다고 앨범 전체가 파리를 주제로 하고 있지는 않다. 그보다는 임펄스 레이블을 통해 앨범을 발매하고 기대했던 대로 세계 곳곳을 다니며 공연을 이어가는 여정과 진정 재즈의 일부가 된 것 같은 행복감이 앨범의 주제라 할 수 있다. 실제 “Tea For Two”, 타이틀 곡만큼이나 낭만적인 “When In Rome”, 부드러운 보사노바 리듬 위를 나비처럼 나풀거리듯 노래한 “Triste” 등의 곡은 각각 공연을 위해 영국 런던, 이탈리아 로마, 포르투갈 등을 방문했을 때의 즐거운 기억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이 모두 스탠더드 곡이지만 같은 말이라도 화자에 따라 느낌이 다르듯 그녀의 행복한 추억으로 인해 밝고 화사한 분위기가 한층 더해졌다. 이 밖에 비밥 스타일의 찌릿한 연주로만 이루어진 그녀의 자작곡 “Road Chop”도 즐거운 여정의 기억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한편 사라 맥켄지가 밝은 분위기의 노래로 앨범을 채우게 된 것은 그녀 스스로 인정한 낙천주의적 성격이 반영되어 있기 때문인 것 같다. 그녀는 재즈를 행복한 음악이며 감상자들의 정신을 풀어주는 음악으로 생각하고 있다. 그냥 정신을 멍하게 한다는 것이 아니다. 조금 지쳐 있을 때 음악을 듣고 나면 기분이 나아지게 만드는 것이 그녀가 추구하는 재즈라는 것이다. 늘 이런저런 변수들이 의외의 상황으로 우리를 이끌곤 하는 우리네 삶을 그대로 이야기하기 보다 그런 중에도 희망이 있음을 말하고 그 희망을 바라보며 나아갈 수 있도록 노래와 연주를 통해 도와주고 싶다는 것이다. 그 결과 이번 앨범은 들을수록 편안하다. 듣는 순간만큼은 그녀의 노래를 따라 콧노래를 흥얼거리고 손가락을 까딱거리며 불안과 근심을 잊게 된다. 그러니 어찌 그녀의 노래에 이번 앨범에 반하지 않을 수 있을까?

재즈의 전통적 분위기 속에서 일상의 피로를 잊게 해주는 행복한 기운을 맛보고 싶다면 이 앨범이 최상의 선택이 될 수 있다. 그럼 그 행복에 빠져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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