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해 동안 재즈사를 빛낸 명 연주자들의 부고(訃告)를 접할 때마다 나는 색소폰 연주자 리 코니츠를 떠올리곤 했다. 꾸준히 발표해오던 앨범 소식이 들리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지난해 이탈리아 피아노 연주자 파올로 비로 트리오와 함께 한 <Foolin’ Myself Humorous Lee>가 발매되기는 했지만 이 또한 2008년에 녹음된 것이었다. 그래서 그의 활동에 대한 우려를 지우지는 못했다. 사실 그가 1927년 생인 것을 생각하면, 더구나 호흡이 중요한 색소폰 연주자임을 고려하면 활동을 멈춘다 해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일이었다.
내가 그의 건강과 활동을 궁금해 했던 것은 단지 나이에 대한 염려 때문만은 아니었다. 시간이 지나도 예리함을 잃지 않는 그의 신선한 음악 때문이었다. 어느 누구와 함께 해도 자신을 잃지 않는 연주, 몇 개의 고정 레퍼토리만으로도 새로움을 만들어 내는 연주, 새로움을 위한다고 재즈 본연의 전통적 가치를 잃는 오류가 없는 연주를 더 이상 만나지 못할까에 대한 우려 때문이었다.
리 코니츠의 음악 이력을 따라 온 감상자라면 나의 우려에 공감하지 않을까 싶다. 그래서 우리 나이로 구순(九旬)을 넘어 망백(望百)의 삶을 시작한 나이에 발표한 이번 새 앨범에서 안도감을 느꼈을 것이다. 사실 이 앨범은 2015년 11월 30일과 12월 1일에 녹음되었다. 89세의 나이에 녹음된 것, 그래서 다시 현재 그의 건강이 궁금하지만 그래도 반가운 것은 변함 없다.
그 기다림에 걸맞게 이번 스튜디오 앨범에서 그는 신체적 나이는 많더라도 음악적 나이는 이와 무관함을 보여준다. 앞서 언급한 그의 매력은 그대로임을 느끼게 해준다. 음악적 분위기 자체가 그렇다. 케니 베이런, 피터 워싱턴, 케니 워싱턴 등 재즈의 전통을 두터이 하는 연주에 출중한 연주자들과 함께 그 동안 여러 앨범에서 들려주었던 곡들을 다시 연주하면서도 그는 여전히 할 이야기가 있다는 듯 신선함을 발산한다.
첫 곡 “Stella By Starlight”가 대표적이다. 특이하게도 그는 이 곡을 자신의 색소폰 솔로를 시작으로 피아노-베이스-드럼이 각각 솔로 연주를 펼친 뒤 쿼텟 연주가 이어지게 했다. 별 것 아닌 구성일 지 모르지만 그로 인해 개별 연주자들이 모여 하나를 이루는 것을 확인하게 해주는 것은 매우 신선하다. 이 외에 그의 대표곡이라 할 수 있는 “Thingin”을 비롯해 “Out Of Nowhere”, “Cherokee” 등의 곡에서 그는 여전한 예리함으로 현대적인 감각의 솔로를 펼친다.
한편 “Darn That Dream”에서 그는 뜻밖에도 색소폰 연주 외에 스캣을 펼쳤다. 지적인 색소폰 연주와는 다른 낭만적이고 정겨운 스캣이다. 그러면서도 노쇠한 느낌이 어쩔 수 없이 그의 나이를 실감하게 한다.
아무튼 이번 앨범에서 노장 색소폰 연주자는 그의 건재를 알리는 것을 너머 여전히 그의 음악은 싱싱함을 입증했다. 부디 이런 음악이 지속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