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아나 크롤이 5월 말 새 앨범을 발매한다. 앨범 타이틀은 <Turn Up The Quiet>.
1993년 첫 앨범 <Stepping Out>을 발매한 이후 그녀는 지금까지 특별한 어려움 없는 성공적인 음악 인생을 살았다. 24년간 발표한 12장의 정규 앨범과 한 장의 라이브 앨범 중 8장의 앨범이 발매와 함께 빌보드 재즈 앨범 차트 정상에 올랐으며 다섯 개의 그래미 상을 비롯한 여러 상을 수상하는 등 90년대 이후 누구보다도 돋보이는 성공을 거두었다. 감히 90년대이후 재즈는 보컬 분야에서만큼은 다이아나 크롤의 시대였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이러한 그녀의 성공은 무엇보다도 그녀의 음악적 개성 때문일 것이다. 부드럽고 따스한 이불 같은 목소리와 그 안에 공존하는 관능과 순수의 이미지, 블루스와 팝을 자유로이 아우르는 피아노 연주력, 그리고 자신을 솔직히 담아내는 작곡 등 그녀는 음악적으로 상당한 매력을 지녔다.
그녀의 음악적 출발은 1993년 우리 나이로 30세에 고향 캐나다의 Justin Time 레이블에서 발매한 <Stepping Out>이었다. 존 클래이튼(베이스) 제프 해밀튼(드럼)과 트리오를 이루어 녹음한 이 앨범에서 그녀는 블루스를 제대로 소화할 줄 아는, 백인이지만 흑인 보컬들이 일구어 놓은 전통적인 면을 충실히 계승한 노래를 들려주었다. 그리고 막 전문 보컬로서의 삶을 시작한, 꿈 많은 청춘답게 그녀의 노래는 생동감으로 가득했다.
피아노 연주 또한 마찬가지였다. 단순히 자신의 노래를 반주하는 차원을 넘어 제대로 된 트리오 연주를 펼쳤다. “42nd Street”같은 곡에서는 아예 노래를 하지 않고 피아노 트리오 연주에만 집중하기도 했다. 더 흥미로운 것은 베이스, 드럼과 교감을 나누는 동시에 자신의 노래와도 호흡을 맞추었다는 것이다, “This Can’t Be Love”에서 노래 사이사이를 파고드는 감각적인 연주가 좋은 예였다.
이 첫 앨범은 캐나다에서만 골드 레코드를 기록하며 성공을 거두었다. 더 고무적인 점은 이 앨범을 명 제작자 토미 리푸마가 들었다는 것, 그리고 그녀의 노래와 연주에 매료되었다는 것이었다. 제작자는 그녀가 캐나다를 넘어 미국은 물론 세계적인 성공을 거둘 수 있겠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바로 그녀와 계약하고 앨범을 녹음했다.
<Only Trust Your Heart>란 타이틀로 1995년 2월에 발매된 그녀의 두 번째 앨범은 기본적으로는 첫 앨범과 같은 분위기를 지녔다. 재즈의 전통을 존중하는 보컬이자 그만큼의 매력을 지닌 피아노 연주자로서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래이 브라운, 크리스티안 맥브라이드 등의 베이스 연주자와 드럼 연주자 루이스 내쉬 그리고 색소폰 연주자 스탠리 터렌타인이 함께 했다는 것이다. 특히 레이 브라운, 스탠리 터렌타인 같은 재즈의 역사를 두텁게 한 노장들의 참여는 그녀의 노래와 연주가 전통을 충실히 계승하고 있음을 입증해주는 역할을 했다. 그래서 그녀를 외모가 아름다운 블론디 여성 보컬이 아닌 당시 유행하던 신 전통주의를 추구하는 연주자겸 보컬로 인식하게 했다.
한편 앨범에서 그녀는 업 비트의 경쾌한 곡 외에 타이틀 곡과 “All Night Long”처럼 느린 발라드 곡들도 노래했는데 이들 곡들은 이후 그녀가 보다 폭 넓은 대중을 사로잡게 될 매혹적인 모습을 예견하는 것이었다.
<Only Trust Your Heart> 발매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다이아나 크롤은 다시 새로운 앨범 제작에 들어갔다. 마침 1995년이 냇 킹 콜이 1965년 세상을 떠난 뒤 30주년이 되었기 때문일까? 새 앨범은 냇 킹 콜의 트리오 음악을 주제로 한 <All for You: A Dedication to the Nat King Cole Trio>이 되었다. 냇 킹 콜은 그녀에 앞서 뛰어난 노래와 피아노 연주로 재즈사를 빛낸 명인이었다. 특히 피아노, 베이스, 기타로 구성된 독특한 트리오 연주로 유명했다.
다이아나 크롤 또한 드럼을 제외하고 폴 켈러의 베이스, 러셀 말론의 기타와 트리오를 이루어 앨범을 녹음했다. 그렇다고 선배의 노래와 연주를 그대로 따르지는 않았다. 선배에 경의를 표하되 그것은 은은한 흔적 정도로 놔두고 자신의 노래와 연주를 우선으로 했다. 그 결과 “I’m Through With Love”같은 곡에서는 역시 피아노를 연주하며 노래했던-당시에는 생존해 있던- 셜리 혼의 그림자가 느껴지는 등 다채로운 느낌을 주었다.
이 앨범은 미국과 캐나다에서 골드 레코드를 기록하는 성공을 거두었다. (이후 그녀의 모든 앨범들은 골드 혹은 플래티넘의 성공을 거둘 것이다.) 그래미상 최우수 재즈 보컬 앨범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완벽한 성공이자 그것의 본격적인 시작이기도 했다.
성공을 확인하고 이어가고 싶어서였을까? 1997년에 발매된 앨범 <Love Scenes>에서 그녀는 다시 한번 냇 킹 콜 헌정 앨범에서 했던 피아노-베이스-기타 트리오 편성을 선택했다. 다만 이전 앨범의 폴 켈러 대신 <Only Trust Your Heart>에서 함께 했던 크리스티안 맥브라이드가 베이스를 연주한 것이 달랐을 뿐이다.
부드러운 스윙감, 진득한 블루스적인 감각, 감칠맛 나는 솔로 등이 어우러진 사운드 또한 이전 앨범과 흡사했다. 그래서 친근한 맛이 더했다. 여기에 “Gentle Rain”, “I Miss You So”, “How Deep Is the Ocean”같은 발라드 곡을 더 많이 부른 것도 감상자가 앨범을 한결 더 편안하고 부드럽게 받아들이게 했다. 그 결과 앨범은 전작 이상의 성공을 거두었다.
그러나 이것이 끝은 아니었다. 1999년에 발매된 앨범 <When I Look In Your Eyes>는 재즈의 영역을 넘어서는 큰 성공을 거두었다. 캐나다에서 트리플 플래티넘의 판매고를 올린 것을 비롯해 미국, 영국, 프랑스 등지에서 큰 인기를 얻었다. 재즈 앨범으로서는 매우 드물게 그래미상 “올해의 앨범”후보에 오를 정도였다.
이 앨범에서 다이아나 크롤은 자신의 모든 역량을 보여주겠다는 듯 냇 킹 콜 트리오 스타일의 연주부터 피아노 트리오를 기본으로 기타나 비브라폰이 가세한 그룹 연주, 그리고 자니 멘델이 이끄는 스트링 오케스트라가 함께 한 연주까지 다채로운 편성의 연주를 시도했다. 그리고 그 다양한 연주들은 각각의 스타일로 돋보였으며 동시에 서로 잘 어울렸다.
이 다양한 편성의 연주가 어지럽지 않게 보일 수 있었던 것에는 어떠한 편성에서도 매력을 발산하는 그녀의 노래가 큰 역할을 했다. 이 앨범에서 그녀의 목소리는 부드러운 결을 지닌 그윽한 스모키 보이스의 매력을 발산했다. 창법 또한 힘을 빼고 부드럽게 속삭이듯 노래하는 경향이 커졌다. 현재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다이아나 크롤의 모습이 구체적으로 나타난 것이다. “I’ll String Along with You”가 대표적이었다.
한편 <When I Look in Your Eyes>에서 그녀는 “Let’s Face Music & Dance” 등의 곡을 통해 바람결 같은 스트링 오케스트라와 부드러운 보사노바 리듬에 자신의 목소리가 얼마나 잘 어울리는지 보여주었다. 그녀는 물론 제작자 토미 리푸마 또한 이 부분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보았다. 그래서 2001년에 발매된 6번째 앨범 <The Look Of Love>에서 이를 적극 반영해 클라우스 오거만이 지휘하는 스트링 오케스트라와 보사노바 리듬이 전체 사운드를 주도하게 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나이가 들수록 달콤하고 부드러운 맛이 강해진 다이아나 크롤의 목소리는 미풍처럼 살랑이는 스트링 오케스트라와 시냇물처럼 흐르는 보사노바 리듬과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었다.
2001년 9월 앨범 <The Look Of Love>를 발매하고 그녀는 곧바로 세계 순회 공연을 다녔다. 그 가운데 프랑스 파리 올랭피아 극장 공연을 정리해 앨범 <Live I Paris>로 발매했다. 공연에서도 그녀는 스튜디오 앨범만큼의 안정적인 연주와 노래로 자신의 매력과 실력을 유감 없이 드러냈다. 그리고 보너스 트랙으로 빌리 조엘의 “Just The Way You Are”를 실어 별도의 인기를 얻기도 했다.
성공적인 활동을 펼치는 가운데 다이아나 크롤은 마흔을 앞둔 2003년 12월 영국출신의 싱어송라이터 엘비스 코스텔로와 결혼했다. 남편과의 만남은 삶뿐만 아니라 음악에도 영향을 끼쳤다. 2004년 봄에 발매된 <The Girl In The Other Room>이 그 결과였다. 이 앨범에서 그녀는 스탠더드 곡이 아닌 자작곡을 노래했다. 게다가 그 스타일 또한 재즈를 근간으로 블루스, 포크 등의 요소가 어우러진, 이전 그녀의 앨범과 비교하면 매우 현대적이었다. 앨범 타이틀처럼 그 동안 다른 방에 두고 보여주지 않았던, 남편의 도움을 통해 밖으로 나온 또 다른 그녀의 음악적 자아를 보여주었다 할 수 있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앨범은 낯설다는 느낌보다는 신선함으로 다가왔다. 감상자들은 이 앨범에도 찬사를 보냈다. 음악과 상관 없이 디바의 모습을 잃지 않은 그녀의 노래에 열광했다.
현대적인 감추어진 자아를 드러낸 이후 그녀는 2005년 <Christmas Songs>를 녹음하면서 다시 전통적인 스타일로 돌아갔다. 앨범의 주제가 크리스마스 캐롤이었으니, 크리스마스의 정겹고 따스한 분위기를 연출하기에는 전통적인 재즈만한 것이 없으니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나아가 그녀는 존 클레이튼, 제프 해밀턴이 이끄는 빅 밴드를 선택했다. 빅 밴드는 기대했던 대로 즐거운 울림으로 크리스마스의 정서를 고취시켰다. 이에 맞추어 그녀 또한 활기 넘치는 노래를 불렀다. 하얀 겨울, 따스함으로 가득한 크리스마스에 어울리는 멋진 노래와 연주였다.
<Christmas Songs>에 담은 가족과 함께 하는 즐거움은 그녀의 개인사로도 이어졌다. 결혼에 이어 아이를 갖게 된 것. 그래서일까? 2006년 그녀는 출산을 앞두고 다시 한번 클레이튼-해밀튼 오케스트라를 불러 앨범 <From This Moments On>을 녹음했다. 앨범에서 그녀는 아이에 대한 행복한 기대를 반영한 듯 편안하고 낙관적인 정서를 가득 담아 노래했다. 빅 밴드 또한 기대대로 이전 앨범에 이어 정겹고 생기 넘치는 분위기를 연출했다. 전통적인 빅 밴드 재즈가 줄 수 있는 최고의 미덕이라 할만한 것이었다.
행복한 정서는 2009년에 발매된 <Quiet Nights>로 이어졌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 행복을 빅 밴드 재즈가 아닌 보사노바에 담았다. 여기에는 2008년 브라질 공연이 큰 영향을 끼쳤다. 공연을 위해 브라질에 머물면서 들었던 브라질 음악에서 새 앨범의 방향을 잡았던 것이다.
보사노바를 노래했다는 점에서 이 앨범은 2001년에 발매했던 앨범 <The Look Of Love>와 유사하다. 클라우스 오거만이 이끄는 오케스트라가 다시 등장한다는 것이 그렇다. 하지만 2001년에 비해 연주와 노래가 한층 더 부드럽고 여유로워졌다. 긴장을 이완시키는 보사노바의 매력을 더 잘 이해한 연주와 노래라 할까? 아니 행복의 달콤한 순간을 최대한 반영한 연주와 노래였다.
보사노바를 통해 행복을 노래한 후 다이아나 크롤의 관심은 개인적 추억을 향했다. 먼저 어린 시절 아버지와 함께 1920년대 보드빌 음악을 들었던 때가 떠올랐다. 살아보지도 않았던 시대였지만 그녀는 노래를 따라 부르며 지금보다 훨씬 더 야성적이었던 그 시대를 동경했었다. 그 기억을 떠 올려 새로운 제작자 T 본 버넷과 함께 앨범 <Glad Rag Doll>을 녹음했다. 2012년에 발매된 앨범에서 그녀는 어린 시절 좋아했던 1920년대 보드빌 스타일의 곡을 노래했다. 편곡 또한 그 시대적 분위기를 반영했다. 그래서 역시 그 시대를 잘 모르는 감상자들에게는 다소 낯설게 느껴질 수 있었다. 하지만 그 복고적인 사운드에서도 편안하고 낭만적인 분위기는 변하지 않았다. 그 결과 앨범은 이전의 성공을 계속 이어갈 수 있었다.
그녀의 추억은 유년 시절에 이어 청소년기로 넘어갔다. 10대 시절, 팝, 록, 포크 등 다양한 당대의 히트 곡들을 좋아하고 따라 불렀던 것을 떠올린 것. 이를 바탕으로 앨범 <Wallflower>를 제작했는데 2015년에 발매된 이 앨범에서 그녀는 밥 딜런, 엘튼 존, 길버트 오 설리번, 10CC 등 과거 그녀가 좋아했던 팝 히트 곡들을 노래했다.
그녀의 노래는 스탠더드 곡을 노래하듯 팝을 재즈로 노래하는 것과는 달랐다. 오히려 그녀의 노래는 재즈적인 면보다 팝적인 면이 더 강했다. 여기에는 그녀가 지난 시절의 추억을 생각하며 노래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원곡의 느낌을 상당 부분 보존했던 것이다. 천천히 향수를 담은 듯 아련한 분위기로 노래한 것도 이 때문이었다.
그런데 <Wallflower>의 강한 팝적인 면은 다이아나 크롤의 음악이 대중친화적이라 해도 다소 심했다는 인상 또한 주었다. <The Girl In The Other Room>과는 또 다른 차원-정반대-에서 번 외적 느낌마저 주었다.
이를 그녀 또한 의식했던 것일까? 다음 달 발매를 앞 둔 새 앨범 <Turn Up The Quiet>에서 <From This Moments On> 이후 10여년 만에 다시 스탠더드 곡들을 노래하면서 재즈의 전통을 반영한 사운드로 돌아갔다. 게다가 노래 외에 사운드의 측면에도 신경을 쓴 듯 피아노-베이스-기타로 구성된 트리오, 피아노 트리오 편성에 기타가 가세한 쿼텟, 다시 바이올린이 가세한 퀸텟 이렇게 세 가지 다른 편성을 시도했다. 게다가 각 편성마다 다른 연주자와 함께 했다. 아마도 그녀의 최고 성공작이라 할 수 있는 <When I Look In Your Eyes>처럼 그녀의 이전 음악을 다시 종합하는 한편 다른 환경 속에서도 변하지 않은 그녀의 매력을 드러내려 한 듯하다.
현재 앨범에서 “Blue Skies”와 “Night & Skies”가 먼저 공개되었는데 확실히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갔다는 인상을 준다. 특히 노래 외에 피아노 연주자로서의 실력과 매력을 다시 적극 드러내려 한 것 같아 더욱 반갑다.
이상 다이아나 크롤의 새 앨범 발매를 앞두고 그녀의 음악을 앨범을 중심으로 정리해 보았다. 이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그녀가 연주와 노래, 작, 편곡 등의 음악적 실력 외에 자신의 매력을 만들고 이를 바탕으로 새로움을 추구할 줄 알았다는 것, 한편으로는 그 새로움을 이전 앨범을 통해 획득한 익숙함과 적절히 섞을 줄 알았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그녀는 “다이아나 크롤표(標) 음악”을 만들어냈고 이것이 많은 사람들이 그녀의 음악에 빠지게 했다. 아니 다시는 그녀의 음악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도록 사로잡았다.
따라서 그녀의 인기는 그녀의 삶을 너머 영속되지 않을까 싶다. 엘라 핏제랄드, 사라 본, 빌리 할리데이가 그런 것처럼 말이다. 감히 말하건대 재즈사는 그녀를 1990년대 이후를 주도한 재즈의 디바로 그녀를 기록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