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은 풍경을 바꾼다.
어제 저녁 무렵 고속도로를 달렸다. 작은 댁 제사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고속도로는 한산했다. 그만큼 나 또한 급할 것이 없었다. 100킬로를 넘지 않는 속도로 천천히 달렸다. 평소의 나라면 앞에 차가 나타날 때까지 속도를 높였을 텐데 이상하게도 그러고 싶지 않았다. 일요일 저녁이 주는 나른함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시속 100킬로미터의 속력을 견디지 못한 차들이 나를 추월해 지나갔다. 저 멀리 연인과의 만남이 있는지 차들은 저녁 노을처럼 상기된 표정이었다. 그 많은 지나침에 살짝 현기증을 느낀 나는 속력을 더 줄여야 했다.
고속도로에 접어들면서 최근 빠져 있는 러시아 출신의 피나오 연주자 폴리나 오세틴스카야가 동향의 작곡가 세르게이 아쿠노프의 곡을 연주한 새 앨범 <Sketches>를 듣기 시작했다. 클래식이지만 소품 성격의 단아한 곡들이 이어지기 시작했다. 느린 템포의 명상적 분위기의 곡들.
그러자 갑자기 모든 것이 운명처럼 느껴졌다. 나를 앞질러 가는 모든 차들이 애초에 그렇게 정해져 있었던 것 같았다. 규정 속도를 넘지 않는 것이 나의 정해진 운명이었고.
급기야 모든 것이 정지된 듯한 착각으로 이어졌다. 내 앞으로 차들이 빛처럼 지나가지만 실은 이 모두를 감싼 공간이 움직이는 것 같았다. 그래서 어지럽게 보이는 다양한 속도의 움직임이 매우 안정적인 것처럼 보였다. 시간의 프레임을 절반 이하로 낮추면 볼 수 있는 풍경이었다.
속도를 높여도 사고 없이 모든 차들이 조화를 이루어 나아갈 것 같은…..나른 했다. 눈을 감아도 어둠을 헤치고 목적지에 편안하게 도착할 것만 같았다.
이 모두 피아노 연주 하나로 인해 일어난 일이었다. 이 곳이 아닌 다른 곳을 꿈꾸게 하는 음악 하나가 만들어 낸 환상적 풍경이었다.
선율이 정말 아름답습니다. 자분자분.. 가만이 제 마음을 들여다보려는 느낌이랄까요. 음악이 감성충만이네요..!^^
네 클래식이면서도 대중 음악적인 면이 있어서 그런지 마음에 더 쉬이 다가오는 것 같습니다.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