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B로 돌아와 세상을 향해 사랑을 노래하다.
우리는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어제와는 다른 하루가 펼쳐지기를 바란다. 그리고 다시 내일은 오늘과 다른 새로움이 찾아오기를 바란다.
음악적으로도 우리는 늘 새로운 것을 기다린다. 이전과 다른 새로운 무엇이 내 마음을 감동시키길 기대한다. 그런데 역설적인 것은 새로운 음악을 기대하면서도 한편으로는 한 음악인이 이전 스타일 혹은 장르에 머무르기를 바란다는 것이다.
음악인들도 마찬가지다. 강박적으로 이전과 다른 새로움을 찾기 위해 노력을 거듭하지만 그럼에도 이전 자신의 음악을 무시하지는 못한다. 적어도 자신의 현재를 규정한 장르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간혹 그런 경우가 있기는 해도 그것은 단지 잠깐의 여행 같은 것일 뿐, 그의 음악 인생은 한 장르를 중심으로 흐를 것이다.
그런데 호세 제임스는 좀 다르다. “재즈 및 현대 음악 뉴 스쿨(The New School for Jazz and Contemporary Music)을 졸업하고 2008년 첫 앨범 <The Dreamer>를 통해 (약간의 소울 음악의 질감을 가미했다지만) 기본적으로는 재즈의 전통을 존중한 훌륭한 노래로 인상적인 출발을 했으니 그를 재즈 보컬로 생각하기 쉽다. 이 외에도 2010년 벨기에 출신의 피아노 연주자와 함께 한 세 번째 앨범 <For All We Know>, 지난 2015년 빌리 할리데이에 대한 헌정의 마음을 담아 만든 앨범 <Yesterday I Had The Blues> 등은 재즈 보컬로서 그가 지닌 매력을 제대로 확인시켜주었다.
하지만 흥미롭게도 그의 음악은 재즈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2010년에 발매된 두 번째 앨범 <Blackmagic>의 경우 재즈의 양을 줄이고 소울, 힙합, 일렉트로닉의 질감을 담아내더니 블루 노트 레이블에서의 첫 앨범 <No Beginning No End>(2013)에서는 소울, R&B적인 맛이 강한 음악을, 나아가 <While You Were Sleeping>(2014)는 여기에 다시 록적인 질감을 더한 음악을 선보인 것이다.
이처럼 그가 재즈와 R&B 등의 팝 음악을 아우르는 활동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존 콜트레인, 마일스 데이비스, 빌리 할리데이 등 재즈의 명인의 음악은 물론 프랭크 오션, 제임스 블레이크, 너바나, 라디오헤드 등 팝, 록의 인기 스타들의 음악까지 즐기는 그의 폭 넓은 취향 때문이었다. 즉, 감상자가 아닌 창작자의 입장에서도 장르와 상관 없이 자신의 취향을 따랐기에 가능했다는 것이다. 좋아하는 다양한 음악을 바탕으로 자신의 음악을 주조(鑄造)하기에 매번 그 함량에 따라 새로운 느낌의 앨범이 만들어질 수 있었다.
따라서 감상자의 입장에서는 새 앨범을 접할 때마다 신선함을 넘어 당혹스러울 때도 있다. 지금 우리가 듣고 있는 이번 앨범도 마찬가지다. 2015년 앨범에서 재즈와 블루스를 노래했던 그는 이번 앨범에서는 소울, R&B 스타일로 돌아왔다. “다시 재즈”를 기대했을 감상자-혹시 당신?-의 예상을 보기 좋게 뒤틀어버린 것이다. 게다가 소울, R&B 스타일로 돌아왔다지만 여기에 일렉트로닉, 포크, 가스펠, 펑크 등의 음악적 양념을 가미해 이전의 유사한 앨범들과는 느낌이 또 다르다. 한층 더 팝으로 나아갔다고 할까? 아니 그보다는 현재 팝, R&B의 주도적인 사운드 가운데 가장 좋아하는 부분을 자기식대로 소화했다고 하는 것이 더 적합할 것 같다. 실제 사운드의 측면에서 이번 앨범은 그라임스의 신비로운 분위기의 전자적 질감, FKA 트윅스의 원초적이고 어두운 감성, 브라이슨 틸러의 공간감 등 현재 인기를 얻고 있는 개성 강한 팝 아티스트들의 음악을 복합적으로 소화한 듯한 느낌을 준다. 현재의 팝 음악에 대한 호세 제임스식 화답이라고 할까?
이를 위해 그는 미구엘, 플로 리다 등과 작업했던 타리오(Tario)를 주축으로 페로아 먼치, 앤서니 해밀턴 등과 작업했던 듀오 라이크마인즈에게 제작을 맡겼다. (여기에 제작자로서는 아니지만 작곡과 연주, 보컬 등에 말리 뮤직이 큰 역할을 했다.) 이들은 작곡부터 연주, 프로그래밍, 믹싱 등을 직접 담당하며 현대적인 동시 호세 제임스에게 최적화된 음악과 사운드의 질감을 만들어 냈다. 이를 신뢰하듯 호세 제임스는 공동 작곡에 참여하기는 했지만 전반적으로 보통의 팝 스타처럼 주어진 곡을 소화하는데 더 집중했다. 호세 제임스의 이전 앨범들과 이번 앨범의 차이는 바로 여기서 발생한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이 제작자들이 소울, R&B, 힘합 등을 자유로이 섞어 첨단의 음악을 만든다고 여러 악기와 소리로 공간을 꽉 채우려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앨범이 발매되기 전에 선 공개된 “Always There”의 경우 타리오의 프로그래밍으로만 이루어졌는데 사운드의 층이 그리 많지 않다. 여백을 그대로 드러낸다. “Let It Fall”은 거의 전 부분을 기타-프로그래밍으로 만들어 낸 듯하다-사운드 하나에 의지하고 있다. 역시 선 공개된 “To Be With You”에서는 프로그래밍 사운드를 양념처럼 희미하게 배치하고 말리 뮤직이 연주하는 피아노가 전체 사운드를 책임진다. “I’m Yours”도 마찬가지다. 이처럼 단순, 담백한 소리 구성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앨범의 거의 모든 곡에서 반복된다.
상대적으로 조금은 더 화려하고 두터운 질감의 곡들이 있기는 하다. 프로그래밍 사운드 위로 베이스와 기타가 추가된“Live Your Fantasy”와 다시 여기에 5관 브라스 섹션이 추가된“Ladies Man”이 그렇다. 아무래도 이들 곡이 다른 곡들과 달리 절로 몸을 흔들게 만드는 흥겨운 펑키 사운드를 바탕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조금은 더 화려한 편성을 가져간 듯하다. 하지만 보컬과 사운드를 나누어 생각하면 이 화려한 사운드도 그 세기에 있어서는 보컬 뒤에 머무른다.
그렇다면 왜 제작자들은 전자악기들로 이루어졌으면서도 여백이 많은 사운드를 선택했던 것일까? 아마도 호세 제임스의 이전 음악을 고려한 결과가 아닌가 싶다. 재즈 앨범이건 되었건 R&B, 소울 성향의 앨범이건 호세 제임스의 음악은 늘 사운드의 여유가 있었다. 바쁘더라도 여유를 잃지 않는 자의 분위기를 늘 담고 있었다. 실제 이번 앨범에서도 그런 여유의 느낌은 그대로이다.
나아가 간결하게 정돈된 사운드는 호세 제임스의 노래가 지닌 매력을 다시금 확인시켜주는 것으로 이어진다. 어깨에 힘을 뺀 듯 시종일관 담담한 분위기로 흐르는 그의 목소리가 이번 앨범을 이루는 다양한 스타일을 하나로 묶고 결국엔 앨범을 다른 누구의 것이 아닌 자신만의 것으로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의 개성은 음악 스타일에 있는 것이 아니라 목소리와 노래에 있음을 깨닫게 해준다. 재즈와 팝의 여러 스타일을 자유로이 오갈 수 있었던 것도 이 때문이리라.
한편 호세 제임스는 원래 이번 앨범을 두 장으로 구성하려 했다고 한다. 한 장에는 사랑을, 다른 한 장에는 미국을 비롯해 세계 곳곳에서 가난한 사람들, 유색 인종, 이민자, 여성, 어린 아이를 대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폭력, 인권 유린 등의 광기를 담으려 했다. 그런데 날로 더해가는 세상의 광기를 음악으로 표현하는 것에 회의를 느낀 모양이다. 그래서 방향을 수정해 사랑 노래로 광기로 물든 세상을 위로하겠다는 마음으로 사랑을 주제로 한 곡들만 선보이게 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호세 제임스는 사랑을 낭만적으로만 그리려 하지 않았다. 사랑의 여러 측면을 다루려 했다. 그 결과 앨범에는 달콤하디 달콤한 “To Be With You”가 있는가 하면 사랑이 무슨 소용이 있냐고 묻는 “What Good Is Love”가 있다. 즐겁고 감각적인 느낌의 “Live Your Fantasy”가 있는가 하면 비처럼 사랑이 내리는 경건한 느낌의 “Let It Fall”이 있다.
그럼에도 앨범은 결국 사랑 속에 사는 사람들과 그렇지 못한 사람들 모두를 감싸고 평온의 메시지를 건넨다. 앨범의 마지막에 위치한 “I’m Yours”가 이를 증명한다. 올레타 아담스가 함께 노래한 이 곡은 가스펠적인 색채로 앞선 모든 사랑의 이미지를 정화하듯 차분하고 평온한 분위기를 연출하며 앨범을 마무리 짓는다.
미국의 시인 글로리아 밴더빌트는 “동화(童話, Fairy Tale)”라는 제목으로 다음과 같은 심심할 정도로 짧은 시를 썼다.
옛날에 한 아이가
날마다 날마다
내일은 오늘과 다르기를
바라며 살았답니다”
나는 아이의 바람처럼 삶이 새로움으로 가득 차기란 쉽지 않기에 시인이 이 시를 쓴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러나 적어도 호세 제임스의 음악적 삶은 이 “동화”같지 않나 싶다. 앨범마다 계속 새로운 음악을 선보이고 있으니 말이다. 그것도 감상자를 매혹시킬만한 뛰어난 음악을 말이다. 그 결과 이 앨범을 듣는 감상자 또한 잠시나마 새로움으로 가득한 생경한 시간을 보내게 되리라 생각한다. 나아가 사랑으로 평화로운 “동화”같은 세상을 꿈꾸게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