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zz Loves – Laura Fygi (Universal 2017)

팝의 명곡들에 대한 로라 피지의 낭만적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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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언제나 새로운 무엇을 찾아왔어요. 왜냐하면 자기 반복을 하면 안 된다 생각하기 때문이죠. 저는 판에 박힌 것이 싫습니다.’

이 앨범의 주인공 로라 피지가 2011년 자신의 솔로 활동 20년을 기념하는 앨범 <The Best Is Yet To Come>을 소개하며 한 말이다. 사실 재즈 뮤지션이라면 누구나 새로움에 대한 강한 욕망을 지니고 있다. 아니 남들과 다른 자신만의 것을 지속적으로 보여주어야 하는 것은 의무에 가깝다. 실제 재즈사를 장식한 연주자나 보컬들은 남들과 다른 무엇을 보여주었던 인물들이었다.

하지만 새로움을 추구하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나 예술적 긴장보다 대중적 편안함이 매력인 뮤지션의 경우 새로운 음악을 시도한다는 것은 상당히 위험한 일이다. 새로움으로 인한 낯선 음악이 대중적 기반을 무너뜨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기존과 똑 같은 음악만을 고집하는 것도 위험하다. 좋은 것도 한두 번이라고 대중의 취향은 언젠가는 변할 테니 말이다. 따라서 대중적 인기를 얻고 있는 뮤지션의 경우 기존의 익숙함과 새로움을 적절히 공존시키는 지혜가 필요하다.

 

팝 그룹 활동을 하다가 1991년부터 솔로 활동을 시작한 로라 피지는 지금까지 자신의 매력이라 할 수 있는 부드러운 결이 느껴지는 벨벳 같은 포근한 목소리가 바탕이 된 편안한 창법은 유지하면서 재즈, 보사노바, 라틴 음악, 팝 등을 가로지르며 이와 함께 폭 넓은 레퍼토리의 선택으로 친근하면서도 신선한 음악을 선보여왔다.

예를 들면 <The Lady Wants To Know>(1994)에서는 보사노바를 노래하고 <Watch What Happens>(1997)에서는 영화 음악의 거장 미셀 르그랑과 함께 하더니 <The Latin Touch>(2000)에서는 남미의 명곡들을, <Rendez-Vous>(2007)에서는 프랑스 샹송의 고전을 노래하는 식이다. 나아가 지난 2012년에 선보인 앨범 <Flower>에서는 중국의 유명 곡들을 중국어, 영어, 프랑스어로 노래하기도 했다. 그 결과 그녀의 앨범들은 어느 정도 그 스타일을 예측하게 하면서도 ‘이런 곡을 노래했어?’ 하는 흥미를 동시에 유발해왔다.

 

이것은 지금 우리가 듣고 있는 앨범에서도 마찬가지다. 이번 앨범에서 그녀는 널리 알려진 팝을 노래했다. 사실 스탠더드 재즈 곡들이 1920, 30년대의 영화 음악, 뮤지컬 인기 곡을 바탕으로 시간의 흐름 속에 팝 인기 곡을 추가하며 만들어진 것임을 생각하면 대중적인 편안한 노래를 하는 보컬이 팝을 노래하는 것은 그리 이상한 일이 아니다. 게다가 요즈음은 특히나 많은 연주자나 보컬들이 팝과 록의 인기 곡을 연주하고 노래한다. 로라 피지 또한 이전 앨범들에서 팝 곡들을 노래하기도 했다.

앨범에서 그녀가 노래한 곡들은 매우 다양하다. 그리고 특별하다. 먼저 비틀즈의 “And I Love Him”, 에디트 피아프의 “La Vie En Rose”, 바비 헵 이후 보니 M의 노래로 국내에 유명한 “Sunny”같은 곡이야 이미 수 많은 재즈 뮤지션들이 연주하고 노래했기에 아주 특별하게 보이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코린 배일리 래의 “Like A Star”를 시작으로 알리시아 키스의 “If I Ain’t Got You”, 돈 맥린의 “Vincent”, 샤데이의 “Your Love Is King / Smooth Operator”루비 앤 더 로맨틱스나 에이미 와인하우스의 노래로 유명한 “Our Day Will Come”, 다니엘 파우터의 “Cupid”, 리차드 막스의 “Right Here Waiting” 등의 곡들은 아직까지는 그리 자주 재즈로 연주되고 노래된 곡들이 아니다. 그 가운데 세계적 주목을 받았던 적은 있지만 아주 유명하다고 할 수 없는 캐나다 출신의 싱어송라이터 다니엘 파우터의 곡을 노래한 것은 다소 의외다. 이것은 그녀가 앨범의 대중성을 높이기 위해 이들 곡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평소 팝, 포크, 록, 소울, R&B 등의 음악을 폭 넓게 들으며 그녀가 좋아한 곡들, 노래하고 싶어한 곡들을 선택했음을 생각하게 한다. 이에 대해 그녀는 그녀는 지금도 아름다운 노래들이 꾸준히 만들어지고 있음을 깨달아 이번 앨범을 즐거이 만들 수 있었다고 한다.

 

이 신선한 레퍼토리들을 노래함에 있어 그녀는 새롭게 만들기 위해 무리하게 곡의 이미지를 바꾸려 하지 않았다. 원곡의 편성, 사운드를 단순, 담백화하기는 했지만 기본적으로 널리 알려진 원곡의 멜로디와 정서를 그대로 유지하려 했다. 예를 들면 “Like A Star”는 보사노바 리듬을 사용하기는 했지만 어쿠스틱 기타가 전체를 이끄는 것은 코린 배일리 래의 노래와 동일하다. “If I Ain’t Got You”도 알리시아 키스의 멜로디를 충실히 따른다. “Vincent”도 기타 대신 피아노가 전체를 이끌지만 별이 반짝이는 고흐의 그림을 주제로 한 낭만적인 분위기는 그대로 유지되었다. “Right Here Waiting”의 경우 리차드 막스의 호소력 강한 허스키 보이스 대신 로라 피지의 부드러운 목소리가 자리잡았지만 애절한 사랑 고백의 느낌은 그대로이다. “Our Day Will Come”도 마찬가지다. 분명 루비 앤 더 로맨틱스나 에이미 와인하우스의 노래와는 차이가 있지만 편안한 느낌은 변하지 않았다.

그 결과 앨범은 로라 피지가 평소 쉬면서 이런저런 음악을 듣다가 좋아 따라 불렀던 것을 그대로 옮겨놓은 것 같은 느낌을 준다. 그렇다고 단순한 다시 부르기로 가벼이 생각할 필요는 없다. 그보다는 부담 없이 노래한 듯한 개인적인 느낌이 편안하고 낭만적으로 다가온다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늘 알았던 친구의 새로운 근황을 듣는 것처럼 흥미로우면서도 부담스럽지 않게 다가오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로라 피지의 목소리와 특별하게 보이려는 대신 곡이 지닌 흐름을 따라 담백하게 노래한 것에 기인한다. 지금까지 그녀가 여러 앨범을 통해 발산했던 은근한 매력이 다시 한번 빛을 발했다 할 수 있겠다.

사운드 또한 로라 피지의 최근 앨범들과는 다른 매력으로 다가온다. 지난 10여년간 그녀는 스트링 오케스트라나, 빅 밴드 혹은 재즈 콤보를 배경으로 노래를 해왔다. 하지만 이번 앨범에서는 원곡이 지닌 팝적인 측면을 강조하면서, 굳이 따진다면 스무드 재즈에 해당하는 가볍고 부드러운 질감의 사운드를 선택했다. 그 결과 도시적 세련미가 돋보이게 되었는데 이것은 2001년도 앨범 <Change> 이후 오랜만에 만나는 사운드이다. 그리고 내용에서는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국내에서 큰 인기를 얻었던 1994년도 앨범 <The Lady Wants To Know>과도 통하는 것이라 더욱 반갑다.

 

이번 앨범의 타이틀 “Jazz Love”는 완성된 문장이 아니다. 재즈가 모든 음악을 사랑스럽게 포용할 수 있음을 나타내기 위해 이런 열린 문장으로 타이틀을 정했으리라. 다양한 장르의 곡들이 재즈라는 틀 안에서 낭만적으로 공존한 것이 이를 말한다. 한편 나아가 앨범 타이틀은 재즈가 이 앨범을 듣는 모든 감상자들을 감쌀 수 있음을 의미하는 것으로도 이해할 수 있다. 재즈가 아닌 보통의 팝 애호가들도 이번 앨범에 담긴 달콤한 재즈, 부드럽고 낭만적인 로라 피지의 노래를 좋아하게 될 테니 말이다. 실제 앨범은 싱가포르에서 재즈 앨범 차트 1위에 오르는 등 그녀의 지지기반인 아시아의 여러 국가들에서 이미 인기를 얻고 있다. 이제 그 인기가 한국에서도 이어질 차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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