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zz Loves Disney – V.A (Verve 2016)

신선한 노래에 담긴 디즈니 영화의 추억

VA

내가 재즈를 좋아하게 된 시간은 대략 30년 정도 된다. 하지만 재즈와의 만남은 그보다 더 오래 전인 것 같다. 다만 그 음악이 재즈임을 몰랐던 것일 뿐. 내가 어렸을 때에는 TV에서 <미키 마우스>, <톰과 제리> 같은 미국 만화 영화-요즈음은 애니메이션이란 말이 더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듯 하다-를 볼 수 있었다. 이들 만화 영화는 동물이 주인공이라서 그랬는지 모르지만 무언극에 가까웠다. 대사 없이 고양이, 생쥐, 강아지 등의 동물들이 몸으로 이야기를 전개하곤 했는데 이를 보다 효과적으로 설명하기 위해 음악이 상당한 역할을 했다. 그런데 그 음악이 바로 재즈였던 것이다. 특히 <미키 마우스>의 경우 아예 빅 밴드가 스윙 재즈를 연주 하면서 그 안에 효과음적인 요소까지 넣어 음악이 미키 마우스의 움직임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미키 마우스가 음악에 맞추어 움직이는 듯한, 그러니까 지금의 뮤직 비디오 같은 느낌의 영상이 종종 있었다. 나는 음악과 영상의 절묘한 일치에 감탄하곤 했다. 그것이 훗날 재즈를 좋아하게 된 것은 아닐까 생각한다.

실제 재즈의 세계에 빠진 이후 나는 생각보다 훨씬 더 깊게 만화 영화 음악이 재즈에 자리잡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우리가 보통 말하는 스탠더드 재즈라 불리는 곡들은 1930,40년대의 영화나 뮤지컬 인기 곡에 기반하는데 그 가운데 만화 영화의 주제곡들, 특히 월트 디즈니사가 극장용으로 만든 영화의 주제 곡들이 상당했던 것이다. 그 가운데 <백설공주와 일곱 난장이>의 주제곡인 “Someday My Prince Will Come”과 <피노키오>의 주제곡인 “When You Wish Upon A Star”는 스탠더드 곡 중의 스탠더드 곡이라 할 만큼 여러 꾸준히 연주되고 노래되면서 지금까지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여러 디즈니 영화 음악들이 재즈 인들의 사랑을 받은 만큼 이를 주제로 한 앨범들은 매우 많았다. 그 앨범들은 모두 빅 밴드 스윙부터 비밥, 쿨, 퓨전 재즈, 포스트 밥까지 다양한 스타일로 디즈니 영화 음악을 연주해 감상의 재미를 주었다.

지금 우리가 듣고 있는 앨범도 그 가운데 하나이다. 이 앨범은 디즈니 영화 음악을 여러 유명 보컬들의 노래-한 곡은 연주 곡이다-로 담아내었다. 이를 위해 현재 가장 큰 인기를 얻고 있는 남성 보컬 그레고리 포터를 비롯해 제이미 컬럼, 멜로디 가르도, 스테이시 켄트, 차이나 모제스-디디 브리지워터의 딸이기도 한-, 니카 야노프스키, 라이카 파티앙, 라파엘 괄라찌 등의 재즈 보컬과 블루스 록을 중심으로 최근 재즈까지 음악적 영역을 넓힌 휴 콜트먼, 재즈를 거쳐 최근 프렌치 팝의 기대주로 활동 중인 보컬 안 실라 등이 참여했다. 디즈니 영화 음악이 아니라 다른 주제로 모였다고 해도 관심을 끌 정도로 참으로 화려하고 다양한 구성이다.

이들 보컬들은 <백설공주와 일곱 난장이>, <신데렐라>, <피노키오>, <잠자는 숲 속의 미녀>,  <아리스토캣>, <레이디와 트럼프>, <정글북> 등의 고전부터 <누가 로저 래빗을 모함했나?>, <토이 스토리>, <겨울 왕국> 등 아직까지는 재즈 연주자나 보컬의 관심을 덜 받고 있는 근작 영화에서 깊은 인상을 남긴 곡들을 노래했다. 그래서 선곡 또한 다른 디즈니 재즈 앨범들에 비해 다양하고 신선한 느낌을 준다.

 

하지만 진정한 이 앨범의 새로운 매력은 각 보컬들의 개성과 재즈라는 장르적 특성을 유지하면서도 디즈니 원작 영화 음악에 대한 배려를 잊지 않았다는 것에 있다. 즉, 새롭게 재즈로 편곡하고 각 보컬들이 자기 식으로 노래했음에도 영화에서 멀리 떨어진 느낌을 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것은 참여한 보컬들 모두 어린 시절 디즈니 영화를 즐겼으며 그 음악을 좋아했기 때문이었다. 실제 앨범을 들으면 각 보컬들의 개성 뒤로 디즈니 영화의 그림자, 나아가 각 보컬들이 지닌 디즈니 영화에 대한 추억을 생각하게 된다.

이것은 앨범의 시작을 알리는 제이미 컬럼의 노래에서부터 느낄 수 있다. 이 영국 출신의 보컬은 <아리스토캣>의 주제곡 “Everybody Want To Be A Cat”을 특유의 까칠한 목소리로 노래했다. 그런데 그것이 원작 영화에서 여러 남녀 보컬이 고양이들의 왁자지껄한 찬가 형태로 부른 노래를 그대로 연상시킨다. 이탈리아 출신의 라파엘 괄라찌가 노래한 “I Wanna Be Like You”도 사운드의 질감은 다르지만 원작인 <정글북>에서 루이스 프리마가 부른 노래와 분위기가 다르지 않다. 이 외에 <토이 스토리>에서 랜디 뉴먼의 노래로 등장했던 “You’ve Got A Friend In Me”를 노래한 휴 콜트먼, 레이디와 트램프>에서 페기 리가 불렀던 “He’s A Tramp”를 노래한 멜로디 가르도, 몇 해전 큰 인기를 얻었던 <겨울 왕국>의 “Let It Go”를 노래한 안 실라 등의 노래도 원작을 추억하게 한다.

다른 질감임에도 원작을 떠올리게 만드는 곡도 있다. 스테이시 켄트가 노래한 “Bibbidi Bobbidi Boo”가 그렇다. 원작 <신데렐라>에서 마법사가 신데렐라를 위해 마법을 부리는 장면에 등장하는 이 곡을 스테이시 켄트는 남편인 색소폰 연주자 짐 탐린슨과 함께 그녀가 가장 잘 하는 보사노바 스타일로 노래했다. 하지만 밝고 유쾌한 마법의 주문에 담긴 정서는 원작 영화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차이나 모제스가 노래한 “Why Don’t You Do Right”은 어떤가? <누가 로저 래빗을 모함했나?>에서 만화 캐릭터 제시 래빗의 노래는 애교 많은 백인 보컬의 느낌이 강했다. (실제 이 곡은 배우 에미이 어빙이 노래했는데 그녀는 백인이다.) 이 곡을 차이나 모제스는 육중한 베이스 라인을 배경으로 매우 육감적으로 노래했다. 그럼에도 그 매혹적인 분위기가 원작 영화에서 남자를 홀리는 제시 래빗이 연상된다.

멜로디 가르도와 라파엘 괄라찌가 듀오로 노래한 <정글북>의 “The Bare Necessities”도 스타일은 다르지만 정겨운 어울림이 원작에서 모글리와 곰 발루의 즐거운 어울림을 반영했음을 느끼게 한다. 라이카 파티앙이 노래한 <잠자는 숲 속의 미녀>의 “Once Upon A Dream”도 마찬가지다. 영화에서는 클래식 풍의 합창곡이었던 이 곡을 그녀는 재즈로 바꾸어 노래하면서도 나지막한 목소리에 담긴 우아함으로 영화에 그대로 사용 되어도 좋을 것 같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한편 <신데렐라>에서 여성 보컬 이렌 우드가 노래했던 “A Dream Is A Wish Your Heart Makes”는 롭 마운시 우케스트라의 연주로 이번 앨범에 담겼다. 노래가 없지만 류 솔로프의 낭만적인 플뤼겔혼 솔로다 돋보이는 이 연주 또한 원곡과 정서적으로 통한다.

한편 <피노키오>의 주제곡 “When You Wish Upon A Star”와 <백설공주와 일곱 난장이>의 주제곡 “Someday My Prince Will Come>은 언급했듯이 워낙 많이 재즈로 연주되고 노래되어 재즈 애호가라면 영화에 대한 기억보다 재즈에 대한 기억이 앞설 수 있는 곡이다. 그래서 이들 곡을 각각 노래한 그레고리 포터와 니키 야노프스키에게는 적잖은 부담이 되지 않았나 싶다. 하지만 두 보컬 모두 원작 영화의 분위기를 유지하면서도 자신의 노래를 하는 것으로 잘 극복했다. 그레고리 포터는 구수하고 푸근한 목소리로 평이한 듯한 느낌 속에 결국 그의 매력에 끌리게 만든다. 니키 야노프스키는 특이하게도 이 곡을 프랑스어로 바꾸어 “Un Jour Mon Prince Viendra”란 제목으로 노래했다. (영어 제목과 의미는 같다.) 역시 엘라 핏제랄드의 부활이라 평가 받는 목소리와 창법이 곡이 지닌 아름다움을 그대로 느끼게 해준다.

 

몇 해 전부터 지난 시대의 노래를 지금의 보컬들이 다시 노래하는 TV 프로그램이 인기를 얻고 있다. 취지는 지난 시대의 음악을 추억하는 것이라는데 경연 형태로 이루어지기 때문인지 새로움을 강조한 나머지 과도한 편곡으로 인해 원곡의 추억이 잘 드러나지 않는 경우가 종종 있다. 나는 이를 음악적으로는 충분히 이해하고 때로는 감탄하지만 기억, 추모, 헌정의 차원에서는 다소 아쉬움을 느낀다.

그런데 이 앨범은 그렇지 않다. 신선함과 익숙함이 잘 조화를 이루고 있다. 각각의 보컬들이 L.A, 파리, 런던에서 녹음을 했다지만 모두 모여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가벼이 나누며 노래한 것만 같은 착각에 빠지게 만든다.

그것이 감상자에게는 재즈적인 신선함 속에 디즈니 원작 영화를 추억하게 것이라 생각한다. 특히 중년 이상의 감상자들은 이들 영화를 보았던 유년 시절을 상기하며 아련한 감상에 젖지 않을까 싶다. 젊은 감상자들? 이들은 아마 원작 영화를 찾아보게 되지 않을까? 그러면서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만화 영화의 낭만성, 환상성에 공감하지 않을까? 그리고 앞선 삼촌 혹은 아버지 세대와 다정한 이야기를 나누게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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