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lis Regina & Tom Jobim – Agua de Março(Waters of March)

착각이란 무서운 것이다. 있지도 않았던 것을 있는 것처럼, 경험하지도 않았던 것을 경험한 것처럼, 일어나지도 않았던 것을 일어났던 것처럼 생각하게 만든다. 조금 전이 그랬다. 성급한 마음에 3월을 생각하고 봄을 그려보았다. 한 달 뒤 초록색의 촉촉한 기운이 깃들기 시작하는 들판을 보면 막 힘이 솟아나지 않을까 생각했다. 아닐 줄 알면서도 말이다.

그러다가 생각은 안토니오 카를로스 조빔의 “Agua de Março(Waters Of March)”가 생각나 이 곡을 듣기로 했다. 그래서 작곡자 본인의 노래부터 엘리스 레지나, 스탄 겟츠, 바시아, 로사 파소스, 존 피자렐리, 카산드라 윌슨 등의 연주와 노래를 들었다. 실은 봄이 아니라 초겨울의 우기(雨期)를 주제로 한 곡이지만 따스하면서 통통거리는 보사노바 리듬과 멜로디가 확실히 3월에 참 잘 어울림을 다시 확인했다.

그런 중 카산드라 윌슨의 “Agua de Março”를 듣다가 파트리시아 바버의 것도 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카산드라 윌슨이 무겁고 건조한 목소리임에도 새순처럼 산뜻하게 노래했던 것처럼 파트리시아 바버도 음울한 목소리로 나름 봄날 아지랑이처럼 노래했던 것이 생각났다.

그런데……그런데 그것이 내 착각이었다. 파트리시아 바버는 “Agua de Março”를 노래한 적이 없었다. 영어 버전인 “Waters Of March”도 부른 적이 없었다. 앨범을 찾고 또 찾아봐도 나오지 않았다. 찾는 중에도 내 머리 속에는 계속 그녀가 “É pau, é pedra, é o fim do caminho”하면서 조금은 뒤뚱거리듯 부른 노래가 맴돌았다. 그녀는 피아노를 연주하며 무심한 듯 노래했고 그 무거운 느낌을 닐 알제의 기타가 중심이 된 리듬 섹션이 보사노바 리듬으로 끌어올렸다.

하지만 내 머리 속에 너무나도 명확한, 그녀의 창법부터 피아노와 기타 솔로, 타악기의 촉촉한 울림까지 또렷한 그 곡은 현실에는 없는 것이었다.

도대체 나는 어디서 이 곡을 들었던 것일까? 라이브를 본 적도 없다. 내가 그녀의 음악을 좋아해서? 굳이 파고들면 2008년-벌써 10년-도 앨범 <Cole Porter Mix>의 사운드에서 착각이 시작된 것 같기는 하다. 하지만 그래도 어찌 이리 선명하게 머리 속에 떠오를 수 있는 것일까?

그렇다면 내가 들었던 음악, 만났던 사람 그리고 지난 시간의 추억 중에는 실재하지 않았던 것도 있지 않을까? 아니면 잠시 나는 시간과 공간을 가로질러 평행우주 저편에 다녀오기라도 한 것일까? 또 다시 그렇다면 나는 누구일까?

현기증을 엘리스 레지나와 안토니오 카를로스 조빔의 노래로 지워본다.

4 COMMENTS

  1. 현기증이 실재에 대한 팩트 체크로 사라질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드네요.
    ‘나’라는 정체성은 내가 경험한 실재의 합이라기 보다 그 경험에 대한 의식적 무의식적 의미부여 과정을 통해서인 것 같습니다. 경험들이 조합되는 과정이 반드시 인과성이나 필연성으로 이루어지진 안잖아요..?

    그나저나 영상이 뭔가…엄마 미소를 짓게 하네요..^^ 간만에 흐뭇한 느낌을 받고 갑니다.

    • 주어진 것의 종합…칸트의 주체…뭐 이런 것으로 생각이 이어지네요. ㅎ
      착각은 늘 일어날 수 있는 것인데 그것을 매우 늦게 깨닫게 되면 이리 어지럼이 생깁니다.
      거기서 뭔가 새로운 영감이 나올지도 모르겠네요. ㅎ

    • 개인적으론 칸트에 대한 양가적 감정을 갖고 있습니다. 선험성을 결코 놓지 않는다는 점에서는 칸트 사상을 완전히 받아들이진 않습니다만..
      암튼, 착각이 기억에 대한 오류이건 새로운 영감의 발로이건.. 그 판단은 주변의 평가에 달라 지겠죠. 시간에 따라 달라질 수 도 있고요.
      그럼에도 기억, 착각, 자아정체성으로 이어지는 이 글이 참 좋습니다. 스스로 반추해보기도 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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